미야

조회 수 945 추천 수 87 2009.09.29 20:10:02
약 한 달 전에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집으로 데려와 기르고 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오래 굶었는지 바짝 마른 몸으로 야옹 야옹 울며 먹을 것을 찾아 어느 집 쓰레기통 부근을 헤매고 있더군요. 지금은 살도 토실토실 올랐고 털도 윤기가 흐르고 크기도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한동안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제 울음 소리를 따 미야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식으론 야옹이가 되겠지요. 별명은 하도 까불어 대어 까순이입니다. 몸통은 까만색이나 코주변과 앞목, 가슴과 배, 그리고 발은 하얀색이라 누구에게도 첫눈에 귀여워 보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탐탁히 여기지 않아 한동안 어떻게 하든 다른 곳으로 내보내고 싶어 미야에게 다른 집으로 갈 것을 부드럽게 권하기도 하고 때론 야단치며 나가라기도 하고 때론 저 몰래 미야를 문밖에 내버려 두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미야가 싫은 것이 아니라 고양이란 동물을 싫어 합니다. 특히 고양이의 눈과 울음소리가 기분 나빠 싫답니다. (이상하게도 절대 다수의 여자들이 고양이를 싫어 하는 듯합니다. 서로 닮은 데가 있어서 그런지요?) 혹시라도 과거에 고양이와의 악연이나 좋지 못한 경험이 있었는지 물어 보았으나, 그런 적은 없다더군요. 그러니까 아내에겐 고양이가 쥐나 뱀 벌레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거지요. 난 아내에게, 고양이를 키워 본 적도 없고 고양이로 인해 어떠한 좋지 않은 기억거리도 없으면서 무작정 싫어 하는 것은 근거없는 편견에 의한 차별행위로서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아내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더군요.

고맙게도 아내는, 말로는 고양이와 나를 구박하면서도 내가 고양이를 돌보는 것을 막지는 않더군요. 예전에 누구에게선가 고양이는 자라면 집을 나간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과 커서도 안 나가면 그때 내다 버리면 되리란 심산, 새끼 고양이에 대한 인도적 감정, 그리고 남편에 대한 애정이 두루 작용했나 봅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안으로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는 허가조건 때문에 미야는 차고에 일단 거처를 잡았습니다. 밥과 물을 함께 담는 두 칸 그릇과 잠자리 깔개, 그리고 용변을 보는 모래 상자가 제 살림의 전부입니다.

미야는, 제게 먹이를 주고 제 똥오줌을 치워주니 당연한 거겟지만, 날 무척 따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마치 강아지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찾고, 내가 일에서 돌아오면 반갑다고 소리내며 달려오고, 틈만 나면 내게 안겨 몸을 부벼대는 것이 아내보다 더 합니다. 어려서부터 개며 고양이를 좋아했던 나로선 그런 미야가 더욱 귀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눈엔 미야와 나의 애정 행각은 꼴볼견에 불과합니다.

한동안은 아내 몰래 미야를 집안으로 들여 놓아 함께 장난도 하고 미야가 집안을 탐험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의 태도완 달리 그런 우리를 그리 나무라지 않더군요. 키워 보신 분만 아시겠지만, 새끼 고양이 노는 게 여간 재밌고 귀여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내 눈에도 미야의 짓거리가 밉지는 않은가 봅니다.

한 날은 미야를 안방으로 데리고 올라와 깨끗이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리곤 미야를 내려 보내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방안을 돌아 다니던 끝에 결국 날 찾아 침대 위까지 올라 왔습니다. 난 내심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한동안 무심한 척 내버려 두던 아내는 이윽고 “냄새 난다”며 고양이를 내보내라고 하명했습니다. 그리곤 침실엔 들이지 말라는 주문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 말을, 침실만 아니면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지요.

그날 밤 미야는 아내 몰래 내가 침실문 밖에 깔아준 수건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연 아내는 문 앞에서 야옹 하며 인사를 하는 미야를 보고 놀라면서도 쬐금 감동받은 눈치였습니다. 그날부터 미야는 차고에 놓아 둔 깔개가 아닌 침실문 앞 수건을 잠자리로 삼았습니다. 그 말은, 아내가 미야를 침실에서 노는 것까진 허용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미야는제 맘 내키는대로 침실로 들어와 까불고 놉니다. 침대위를 올랐다 내렸다, 장농 밑으로 침대 밑으로 또 옷장 속으로 들락 날락거리고, 아내의 핸드백에 달린 구슬을 까불며 놀다 야단맞기도 하고, 괜스레 이쪽 저쪽을 뛰어 다니며 부산을 떨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도 속으로 조마조마 하여 아내가 뭐라고 그러기 전에 먼저 미야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미야는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또 다시 장난질을 합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침대로 올라와 제 손가락을 깨물며 장난을 겁니다. 아내는 어쩐 영문인지 그런 미야를 내버려 두더군요.

어제는 미야가 침대 아래 앉아서 연속극을 보고 있는 아내의 무릎에 올라가 아내의 품을 파고 들었습니다. 전 그만 지레 기겁을 했는데, 의외로 아내는, “어머 얘 좀 봐! 젖을 달래네!”하며 어이없어만 할뿐, 미야를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용기를 얻었는지 미야는 아내의 드러난 어깨를 딛고 목 뒤로 올라 침대로 올라왔습니다. 한 달 전 미야를 처음 데려온 날엔 감히 생각치도 못하던 일이 일어난 겁니다. 고양이는 무조건 싫다던 아내가 고양이가 자기 몸 위로 걸어 다니게 내버려 두다니요. 아마도 아내는 미야에게 예외 자격을 부여해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더 가면 고양이도 개와 같은 부류로 옮겨질지 기대해 봅니다.

미야는 저를 데려와 돌봐 주는 내게 흔들림없는 믿음이 있는 듯합니다. 날 대하는 짓을 보면 혹시 날 제 에미라 여기는 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미야는 저를 향한 제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것 저것 요구하고 애정을 표현하고 애정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미야가 내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아직 그가 이름없는 새끼 고양이였을 때 내게 처량하게 울며 매달렸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저를 거두기로 작정한 것은, 측은지심이 발동된 내가 저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와 우유를 먹여주고 차고에서 재운 다음 날, 집 밖에 내다 놓고 일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도록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나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것이지 제 의지적 선택이나 결단은 아닙니다. 미야는 그저 고양이가 하는 짓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짓거리들 중엔 야단맞을 짓거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분을 뒤엎는다던가, 식탁엘 올라간다던가, 구두코를 긁어 놓고 핸드백 손잡이의 장식을 씹어서 망쳐 놓는다던가 하는. 그때마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미야는 여전히 내 사랑을 의심치 않고 내게 제 머리를 부벼대고 손가락을 깨물고 핥으며 애정을 표현합니다. 나는 그런 미야를 도무지 미워할 수 없습니다.

눈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는 미야를 보며 잠시 하나님 눈으로 나를 바라 봅니다. 나의 온갖 약점과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변함없이 날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설령 내가 하나님 집을 떠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선 나를 찾아 나서실 것이고 나를 반드시 당신의 집으로 다시 데려오실 겁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미야에 대한 내 마음이 그럴진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있기에 저는 오늘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2009.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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