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34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재림하실 것인가?

조회 수 6637 추천 수 3 2013.11.12 01: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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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재림하실 것인가?


[질문]


신약성경 마태복음 24:34, 마가복음13:30, 누가복음21:32 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그 모든 일이 정말로 예수님의 세대가 지나기 전에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인가요?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세대를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세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뜻하는 것이었을 텐데, 예수님의 말씀이 참 말이라면, 예수님의 세대에 성경에서 열거하신 모든 일들 (마가복음 13장 6절-27절) 이 정말로 일어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 아직도 일어나지는 않은 것 아닌가요? 그러면 예수님의 예언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답변]

성경의 다중적(多重的) 계시


열거하신 세 구절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평행구절입니다. 앞뒤 문맥을 살피면 “모든 일”은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등의 일입니다. 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며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택한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럴 징조도 안 보이기에 주님의 예언임에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해할 때에 반드시 감안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의 예언 안에  그 당대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고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진적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실현된 부분은 장래 사건을 예표 상징하며, 언젠가는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확실한 뜻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언마다 아직 성취 안 된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것을 예언의 이중적/삼중적 조명 (Double/Triple Reference in Prophecy)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 예를 하나 들자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입니다. 그 아들을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 한 명 또 당대의 아하스 왕, 가까운 미래의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그 예언이 점진적 다중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각각의 해석은 성경본문의 일부는 몰라도 전부를 만족시키지 않기에 궁극적으로는 동정녀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에 관한 예언으로 봅니다. 우선 예언 자체가 다윗 가문 전체에 대한 예언이라고 명시했고(사7:13), 결정적으로는 마태가 그 예언이 아기 예수로 성취되었다고 확언했기(마12:21-23) 때문입니다.

구체적 질문과 애매한(?) 답변  

질문하신 구절이 바로 이중적 계시에 해당되는데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있을 내용을 하나의 표현 안에 다 포함시켰습니다. 우선 ‘세대’의 헬라 원어 ‘게네아’에도 다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의미는, 세대(generation) 37, 시간(time) 2, 시대(age) 2, 국가(nation) 1 총 42 군데입니다. 인용한 구절들에선 분명 세대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렇게 번역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당시 세대로만 보면, 다른 말로 이중 혹은 삼중적 예언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기에 해석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 자체부터 초림과 재림 둘 다 포함해서 말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용이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또 가장 자세히 기록되었으므로 마태복음만 인용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제자들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24:3)라는 물음에 답변한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재림과 종말의 징조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1절)고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날 환난 후에”(29절) 하늘이 흔들리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 대환난은 재림 직전에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재림의 징조만 물은 것이 아닙니다.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고 묻기 바로 전에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라는 다른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4:1,2에서 예수님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 시기를 물은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이 이 두 질문을 구분해서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내용이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고(9절),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으며(12절),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으며(13절),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뒤에 끝이 온다(14절)는 등의 진술이 다 그러합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리라”(34절)는 말씀의 바로 앞뒤에도 동일한 의미의 예언들입니다. 임자의 임함이 번개 같을 것이며(27절),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며(30절), 천지는 없어지나 당신의 말씀은 영원하며(35절),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36절)고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성전 무너지는 시기에 대해 구체적 확정적 언질은 주지 않고 대신에 그 때를 마지막 때의 징조와 함께 포괄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 자체가, 구체적으로는 ‘세대’라는 단어 안에, 이중, 삼중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앞뒤 문맥을 살펴서 핵심 주제와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본문은 마태복음의 경우 최소한 24장 전체에 비추어서 그 뜻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 예언의 삼중적 성취  

이 예언이 이중 혹은 삼중의 의미를 지녔다면 예수님 당대와, 가까운 미래와, 먼 장래에 과연 그대로 실천되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 당대에도 분명히 실현되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마16:28,17:1) 예수님이 제자들 중 일부는 죽기 전에 당신의 재림을, 정확히는 당신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 볼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엿새 후에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천국의 왕권을 소지하고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임을 세 제자더러 직접 목격케 하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또 열두 제자 중에 유일하게 순교 당하지 않고 백세 가량 장수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계시록을 작성하게끔 천국 영광에 대한 생생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작성할 수 있었는데 그 때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들으니”(계1:10) 일곱 금 촛대를 보았고, 그의 눈은 불 꽃 같고, 음성은 맑은 물소리 같으며,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입에서 좌우 날선 검이 나오고, 얼굴은 해처럼 비취니까 “그 발에서 엎드려 죽은 자 같이”되었다고 고백합니다.(계1:12-16) 바로 마태복음의 기술들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자구 하나하나가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나팔 소리와 함께 큰 영광 중에 임하신다는 사실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것을 보리라는 말씀을 들은 요한으로선 그 말씀이 분명히 자기 세대에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유대인의 반란(AD 66년)이 일시적으로 성공했지만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진압될 때에 성전이 철저하고도 비참하게 유린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고, 참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우상이 세워졌으며, 율법에서 부정한 동물의 대표로 유대인들은 먹지도 않는 돼지의 피를 온 성전에 발라 더럽혔습니다. 유대인들로선 상상도 못할 끔찍하고도 불경한 신성모독의 범죄였습니다.

성전 건물도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의 예루살렘에는 성전은 흔적도 없고 성벽의 극히 일부만 남아있는데 “통곡의 벽”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성전을 복원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정통 유대인들 사이에 제 삼의 성전을 지을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2)는 예언이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이라는 말씀도 우상이 성전 안에 세워진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사건(AD 70)은 예수님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AD 30년 경) 후에 일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요한의 밧모섬 계시(AD 95년 경)와 함께 예수님 예언이 가까운 미래에 성취된 것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전체로 볼 때는 이사야서의 임마누엘 예언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에 불과합니다.

앞에서 예언의 이중 삼중 계시는 차츰 점진적 구체적으로 실현된다고 말한 대로입니다. 당대 혹은 가까운 미래에 성취 된 것은 부분적이긴 해도 궁극적 실현에 대한 예표와 상징과 경고의 의미를 가집니다. 인용하신 구절들의 “이 세대”는 결국 종말의 때를 말하며, 그 때에는 24장 전체 예언이 완벽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왜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했는가?

말씀드린 대로 ‘세대’의 궁극적 의미가 “마지막 때”라는 것은 앞뒤 문맥을 잘 살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신빙성 없는 예언을 할 리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대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었던 사건들은 몰라도 세대 대신에 종말을 대입하면 예수님이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를 놓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정작 따져야 할 것은 예수님이 왜 후대 독자에게 혼돈을 줄 수 있는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 그 이유입니다.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합리적으로 답변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성전은 AD 70 년에 즉, 너희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철저히 로마에 의해서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종말의 시기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고 나도 말해 줄 수 없다. 너희 세대에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고 대신에 그 징조만 지금부터 말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럼 제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나타났겠습니까? 종말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입니다. 또 성전 파괴도 당시로선 근 40년 후니까 고대인들의 수명에 비하면 자기들과 무관한 사건으로 여길 것입니다. 오늘날의 독자도 성전 파괴에는 어떤 의미도 두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종말에 대해서도 어차피 먼 미래의 일이니까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경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컨대 세대라는 단어가 사실은 종말을 설명하는데 가장 합당한 용어일 뿐 아니라 반드시 그 용어를 사용했어야만 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때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불시에 옵니다. 지금 우리 세대에, 당장 내일, 아니 오늘이라도 주님이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모든 사람의 모든 세대에 재림의 가능성은 있는 것입니다. 종말, 즉 마지막 심판은 이미(already) 시작된 것으로, 단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not yet) 뿐입니다.  

다지 강조하자면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은 우리, 우리 아들, 우리 손자 세대 모두에게 백 % 합당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정확하고도 완벽한 표현은 없습니다. 예수님 후대의 성경독자에게 혼동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하고도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용어입니다.

예수님 당대와 가까운 미래에 종말이 임하지 않았던 까닭은 예수님 예언대로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완비하고 기독교 교회를 창건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자들이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당신의 온전한 뜻에 합당하게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신자들의 공동체와  기독교의 교리가 체계화 되었고 무엇보다 종교개혁으로 복음의 진리도 바르게 세워졌습니다. 거의 모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 구원 받은 것은 아니라도 예수가 누구인지 알려졌습니다. 정말로 이 예언대로 깨어 있어야 할 세대가 된 것입니다.    

예언의 일차, 이차 점진적 성취는 궁극적 성취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기 전에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상의 처참한 대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환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도들이 변화산에서 본 영광은 물론,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천국 영광을 우리가 누릴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예언을 통해 강조하는 핵심은 그 영광에 비하면 대환난에 겪을 핍박은, 아니 지금 현재의 현실적 고난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므로 두려워할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11/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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