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

조회 수 3455 추천 수 194 2005.11.19 18: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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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에 대한 상반된 평가

최근에 작고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Peter Drucker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어 비교해서 읽으면 흥미로울 것 같아 옮깁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한 인간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필자가 동일한 기준에 의거해서 드러커라는 한 인물의 사상 전부를 비교한 것이  아니기에, 사실은 이 두 글을 통해 객관적인 대조는 불가능합니다. 첫째 견해는 드러커 개인의 '지적 경험'에 관한 것이고 둘째 견해는 복음주의 기준에서 본 그의 신앙 상의 의문점에 관한 것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비복음적 기독교인들 포함) 가운데는 학술, 정치, 경제, 사회, 예술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자들이 많이 습니다. 예수를 믿는 신자로서 그들을 평가할 때에는 보고 배울 만한 것은 인정하되, 근본적으로 영적인 분별력도 갖추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운영자(11/18/2005)

[첫째  견해]

프로페셔널의 조건  
출처 “God People 영성훈련카페 치유의 집”

최근에 세상을 떠난 경영학의 탁월한 교수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으며,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 같은 회사에 경영 컨설팅을 했으며, 타계하기 전까지 드러커 경영대학원의 교수로 재임했습니다. 이 글은 그의 저서 가운데 하나인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의 내용 중 ‘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이라는 소제목의 글을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Peter Drucker ‘The Essenctial Drucker(Vols,Ⅰ-Ⅲ)’ 2000, 154~167쪽).

이 글은 드러커가 대학생 시절부터 자신의 삶의 고비마다 다가온 여러 가지 경험들을 바탕으로 깨닫게 된 지식인의 행동의 원리를 제공해줍니다. 그는 1927년 경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 함부르크에 있는 면세품 수출회사에 견습생으로 입사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공무원, 교수, 변호사, 의사 등을 배출했기 때문에 그의 부친도 그가 대학에 다니기를 바랐지만 그는 공부보다는 일하는 것이 더 좋아서 학교에 등록만 하고는 회사에 견습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은 등록만 해 놓고 출석하기 않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교수들이 출석체크를 하는데 그들에게 적당히 선물을 쥐어주면 출석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견습생의 일이란 별로 재미도 없었고 시간도 많이 남아돌아 인근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습니다. 이런 삶 속에서 첫 번째 경험을 통해서 ‘목표와 비전을 가지라’는 제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학생 신분인 그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팔리지 않은 값싼 자리를 막이 오르기 직전에 대학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본 그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 엄청나게 활기찬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여든이 넘는 노인이었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이 50이 채 되지 않은 시절에 팔순이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제페에게 팔순이 된 고령에 이렇게 엄청나고 힘든 주제를 가지고 작곡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미 명성을 얻었고 따라서 힘든 작곡을 하지 않아도 삶이 보장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그는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써왔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한 번 더 도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여든에 이미 노련한 작곡가였지만 자신은 그때 겨우 면제품 수출 사업으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지 않음을 확인한 정도였지 장차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더 지난 30대 초반에야 자신에게 어떤 소질이 있고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당시에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베르디와 같은 마음으로 나이가 먹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갈 것이지만 자신은 그 완벽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말합니다.

견습공 일을 하는 그 시기에 그는 완벽이라는 주제에 의미를 다시 새기는 두 번째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라는 주제인데,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Phidias)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40년경에 그는 조각 작품을 의뢰 받았는데, 그때 조각한 작품들이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 지붕위에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대영제국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습니다. 이 유명한 걸작들에 대해서 당시 재무관은 작품료를 지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높은 신전의 지붕 위에 있는 이 조각상들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서 피디아스는 ‘아무도 볼 수 없다구. 당신이 틀렸어, 하늘의 신들이 보고 있지’라고 대꾸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드러커에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살지 못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눈치 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비록 신들만이 보게 될지라도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책이 가장 훌륭한 책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노년에도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으며, 이 책을 썼던 때에도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이었습니다.

세 번째 경험은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라’인데, 그는 몇 년 뒤에 프랑크푸르트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증권회사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의 여파로 근무하던 회사도 파산했고, 그 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신문사 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전 여섯 시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두시 반에 일을 마치고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법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차츰 자신 만의 공부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방법으로 3년 또는 4년 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 주제들은 통계학, 중세역사, 일본미술, 경제학 등 다양합니다. 3년의 기간은 전문가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 분야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기간입니다.

이런 식으로 60여 년간 3~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가면서 공부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은 그에게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해주었고, 그로 하여금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갖도록 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들 주제들은 서로 상이한 가정과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30년대 유럽에는 1차 대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인재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물두 살에 편집국장 보가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젊은이가 이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어린 시절인 50년대의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했는데 중학교 정도의 학력만 있으면 면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읍면 직원의 수준이야 말로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한자를 제대로 모르는 공무원이 태반이어서 호적 정리에 오류가 생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독일에도 마찬가지여서 편집국장은 젊은 부하 직원을 가르치는 일로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이 때 일년에 두 번씩 정월 초와 6월에 시작되는 휴가철 바로 직전에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하루 종일 지난 6개월간 해왔던 일에 대해서 토론하면서 보냈습니다. 먼저 잘한 일부터 시작해서 잘하려고 노력한 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충분히 노력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패한 일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계획했습니다. 이 토론이 있은 후 일주일 후에 편집국장에게 앞으로 해야 할 업무계획과 학습계획을 제출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은 신문사를 떠난 후에는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10년이 지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있던 드러커는 그 당시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40년대 초였습니다. 이 네 번째 경험을 그는 ‘자신의 일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라’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무렵 그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업에 경영 컨설팅을 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그 때 편집국에서 배운 방법을 떠올려 줄곧 여름만 되면, 2주간 시간을 따로 내어 지난 1년간의 일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우리가 안식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은 1주에 하루 자신을 되돌아볼 것을 요구합니다. 6년에 한 번 1년간 쉬면서 재충전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매년 8월에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대로 충실한 삶을 산 것은 아니더라도 그 계획을 통해서 베르디의 교훈 즉 완벽을 향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다섯 번째 경험은 ‘새로운 일이 요구하는 것을 배우라’입니다. 33년에 런던으로 갔을 때 그는 그곳에서 개인 은행의 경제 분석가 겸 3명의 시니어 파트너의 수석 비서로 근무했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창업주가 그를 불렀습니다. 70대 노인인 창업주가 30대인 젊은 드러커를 불러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네가 이 회사에 입사할 때 난 자네를 눈여겨보지 않았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군. 그뿐 아니라 자네는 보통 이상으로 어리석군.’ 그는 젊은 두 파트너로부터 날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칭찬을 받고 있었던 터라 이 노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듣는 이 비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이어서 ‘나는 자네가 보험 회사의 증권분석사로서는 일을 썩 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가 그 일을 계속하길 바란다면 우리는 자네를 이 자리로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걸세. 그런데 지금 자네는 시니어 파트너의 수석 비서인데 여전히 증권분석사 시절에 하던 것처럼 일하고 있더군. 지금 자네가 새로운 일에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나.’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속으로는 그 노인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40여 년간 기업에 컨설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승진 관리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승진해서 새로운 직무를 맡은 사람들 가운데 계속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도 실패도 아닌 보통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합니다. 10년 내지 15년 동안 유능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무능해졌는가? 그 이유는 60년 전에 그가 런던 은행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그들도 똑같이 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그들이 전에 성공한 스타일대로 일을 행하는 것은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부적절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경험은 ‘피드백을 활용하라’입니다. 37년에 그는 영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1945년경 그는 근대 유럽의 초기 역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3년간에 걸친 15~16세기의 역사 연구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지닌 두 개의 조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남부 유럽의 예수회였고, 다른 하나는 프로테스탄트가 지배하는 북부유럽의 칼벵파였습니다. 1536년에 독자적으로 생긴 이 두 교단은 같은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두 교단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들이 예상하는 결과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9개월 후에 실제 결과와 예상 결과를 비교해 보는 피드백(feed back)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이 방법을 50년간 꾸준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장점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가르쳐주며, 개인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를 알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지속적인 학습의 관건입니다.

마지막 경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가’입니다. 그가 뉴욕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칠 무렵인 1949년 부친께서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유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66세로 하버드에서 강의하고 있었고, 미국경제학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두 분은 19살 때 서로 알게 되었는데, 슘페터는 활기차고 당당하고 외향적이었지만 부친은 조용하고 예의바르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을 정도로 겸손했습니다.

그러던 슘페터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하버드 교수인 그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부친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 아직도 자네가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다니나?’ 이 질문에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30세 무렵에 경제학 저술을 출판했을 때 누군가가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유럽 미인들의 최고 연인, 유럽의 최고 승마인, 그 다음으로 최고 경제학자로 기억되기 바란다.’라고 대답해서 악명이 높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질문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다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네. 나는 대 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사로 기억되길 바라네. 이제 책이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어.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책이나 이론이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단 말일세.’ 이 대화에서 그가 배운 세 가지 원리가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늙으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 가면서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꿔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한 가치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견해]

릭 워렌의 멘토가 죽었다.
출처: 아멘넷 김삼의 시사 칼럼

릭 워렌의 멘토이자 대부 격인 리더십/매니지먼트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11월 11일 죽었다. 로스앤젤레스 동부 클레어몬트의 자택에서였다. 향년은 95. 이 글의 일부는 경제전문지 '포브스'지의 보도에 근거했다.

드러커의 생애

널리 알려진 경제계 저술가/미래사상가/연사인 드러커는 96년전 11월 19일 독일 빈에서 태어나 모국과 영국에서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의 한 신문사 기자로 뛰면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땄다. 1933년까지 독일에 남아있었으나 나치에 에세이 한 편을 금지당하자 런던 어느 은행의 경제분석가로 있다가 1937년 미국으로 왔다.
그 뒤 버몬트주 베닝턴대학 정치학/철학 교수, 뉴욕대학교 대학원 비지니스스쿨 관리학 교수, 클레어몬트 대학원 기업중역 코스 담당 교수 등을 지냈다. 경제분석, 리더십에 관한 책들과 2권의 소설도 썼다. 뉴욕엔 그가 세운 피터 F. 드러커 재단(현 리더투리더 인스티튜트)이 있다.    

드러커-워렌 커넥션
  
드러커-워렌 커넥션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목회자였던 워렌이 드러커를 찾아가 조언을 요청했고 그 멘토링의 결과에 따라 오늘날의 기독교 '앙트르프리뇌르'(기업) 새들백이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인수 2만에 육박했고 '목적 40일 운동'을 통해 한인교회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목적에 이끌린 삶'은 2000만권 가까이 이미 팔렸고 요즘도 매달 평균 50만권 이상 날개돋힌 듯 팔려나간다. 누구나 부러워함직한 성공이다.  

성공회 교인인 드러커는 남침례교인인 워렌에게 지난 20여년간 매년 2번씩 가르침을 줬다. 드러커는 목적/미션 중심 성공비법을 워렌에게 전수한 장본인이다. 워렌에게 우선적인 멘토는 예수 크리스토보다는 드러커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목적'으로 몰아가는 그의 모든 모습에서 나타난다. 책 '목적에 이끌린..' 자체가 목적에 홀리고 목적을 노린 상품이다. 그는 크리스토님의 목적을 위해 목자로서 교회를 이끌기 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쪽에 가깝다.

반면 참 신자는 워렌의 '목적'이 아닌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성경 어디에도 신자가 '목적'에 이끌려 산다는 말이 없다. 복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던 사도 파울의 말은 있긴 있어도.. 비록 워렌은 온갖 성경 번역판에서 그의 '목적'의 근거를 대려 들지만.

워렌의 목적주의는 알고보면 성령의 영감이 아닌 드러커의 머리통에서 나온 것이다. 드러커의 사상에다 성경을 이리저리 끼어 맞춘 셈이다. 그것은 프뉴마의 영성이 아닌 프쉬케의 영성 곧 심성이다. 그래서 목적주의는 신본주의 아닌 인본주의요 목적 중심으로 결국 세계합일을 추구하는 일종의 뉴에이지 신학사상이란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드러커는 현대 복음주의권을 지그재그로 오염시킨 사람이다. 예를 들면 한국 복음주의자들도 그의 비영리단체(NGO)중심의 영성을 믿는다. 그 영성이란 게 종교다원적이자 뉴에이지 영성이란 걸 모르고(알아도 모른 척 하고?) 말이다.

그의 영향은 특히 워렌의 '목적중심' 교회, 여기저기 산재한 소위 '마켓 플레이스'(시장 중심) 교회 등에서 잘 나타난다. 워렌의 배후엔 그의 그림자가 짙게 서려있다. 드러커의 책 '내일의 이정표'(1959년, 뉴에이지를 찬양하다시피한 이 책을 1996년에 재판한 것은 그의 내적 상태를 웅변해준다)는 미래학의 고전이다. 그보다 수십년 후배인 또다른 미래학자 윌리스 하먼 처럼 그도 다가올 뉴에이지를 위한 '형이상학'을 창안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계를 보는 새 관점, 새 컨셉, 새로운 인간 역량"이 필요하다고.

드러커는 뉴에이저(New Ager)였다

기독교 블로거들에 따르면 드러커는 어떤 의미에서 적극적인 뉴에이저였다. 그는 [심지어 원죄를 포함한] 인간의 선천적 문제가 나름대로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식과 능력은 에덴동산 때부터 인간의 문제였다. 이제 그 문제는 인간 실존의 중심에 있다..뉴에이지가 발견하는 해결책이 그 특성과 의미를 결정짓는다. 만일 해결에 실패하면 그것은 시작 없는 암흑기가 될뿐더러 밤을 밝히기에도 실패할 것이다. 충분히 인간의 종말이 됨직하다..우주의 정복도 이것을 바꾸지 못한다. 어떻게든 뉴에이지가 이 문제 해결에 성공한다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시대가 될 것이다."('내일의 이정표', 268쪽).

그의 뉴에이지적/다원적 종교철학을 한번 보자.

"사회는 영적 가치관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재료를 벌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생산적이기 위해서다..인간은 영적 가치관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온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고등종교들이 공유하는 바 '신(Thou)과 나(the I)는 하나'라는 깊은 경험이 필요하다"(1996년판, 264~265쪽).

드러커의 전체론과 선불교 지향성

드러커의 이런 뉴에이지적 발상의 뿌리는 이상스럽지 않다. 그는 독일 신비주의의 영향, 후년엔 선(Zen)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합쳐져 그의 전체론(holism)이 됐다. 1996년판 서문에서 그는 "부분들은 전체에 대한 관상(contemplation) 속에서 존재한다"고 정의했다. 관상주의자들이 딱 좋아할 만한 문구다.

그는 또 '잉크'(Inc.) 매거진의 여기자 해리엇 루빈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선불교적 철학을 천명한 바 있다. 드러커의 세계관을 드러낸 이 대담에서 루빈은 드러커의 일본 회화 수집 취미를 눈여겨 봤다. 루빈은 "그 그림들은 일본에 관해 가르쳐줄뿐더러 사물 관조법(how to look)을 가르친다"고 썼다. 드러커는 그녀를 자기 서재로 데리고 들어가 노란 바탕에 얼룩 몇 개만 있는 (황당한) 일본 그림을 몇 폭 보여주면서 일본 화가들이 사물을 투시하는 방법을 이해시켰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간추린 일본미술사'란 책을 건넸다. 책 속엔 작은 연필 한 자루와 함께 연필로 끄적인 다음 글이 곁들여있었다.

   "참선에 영감을 받은 화가는 한 풍경 속의 '진리'를 홀연한 깨달음 속에서 찾아낸다. 종교의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세밀하게 구도를 짜낼 여유란 거기 없다. 오랜 관상 끝에 그는 내적인 진리를 붙잡아 검처럼 붓을 휘두른다. 바로 이 '본질주의'가 큰 풍경 속에서든 한 나무가지에서든, 가장 폭넓은 파노라마 속이든, 그 미세한 구성분 속에서든 동등하게 표현될 수 있다."

이 철학적 관조가 바로 전체론이다. 이 뉴에이지적 전체론은 지구미래학자 어빈 라즐로에게서도 나타난다. 라즐로는 그의 책 '미래전략: 세계질서를 향한 시스템'(1979년)에서 전체론에 의거해 세계(단일)정부의 청사진을 그려낸다.

미래학 지향적인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부편집인 제프 셀러즈는 이런 드러커의 종교신앙을 '크리스천'으로 반 정의했다. 드러커는 자신의 이같은 미래학을 NGO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맥락에서 워렌 목사의 멘토가 되어 복음주의권 마켓에 미래지향적 '목적중심' 브랜드 교회 상품을 내놨다.
매거진 '뉴요커'의 맬컴 글래드웰은 드러커의 다음 말을 전했다. "워렌은 구식 부흥강사들처럼 천막집회식 사역체를 일으키려는 게 아니다. 그는 예수회(Jesuits) 같은 군대를 일으키려 한다." 한 블로거는 말한다. "전체론의 밀교적(esoteric) 철학은 워렌이 세우고 있는 소그룹 중심의 셀룰러 구조에서 가장 확연해진다."

이렇게 볼 때, 드러커는 하나님의 사람이기보다 사탄의 사람이기가 더 쉬운 것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멘토링을 받은 사람은 또 어떨 지가 궁금하다.

드러커와 프리메이슨들

드러커가 가장 최근 남긴 몇 마디 중 필자를 정말 웃기는 것이 있다. 카리즈마(통솔력 이미지)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히틀러/스탈린/마오저둥(모택동)/무솔리니 등은 가장 카리즈마적이었지만 엉터리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 백 년간 "가장 유능한"(effective) 대통령으로 해리 트루먼을 꼽았다. 트루먼은 1 온스 만큼의 카리즈마도 갖고 있지 않았다면서.

그 다음 말을 들어보자. 워렌과 기자가 있는 데서 한 말의 일부다.

"..트루먼은 죽은 고등어처럼 덤덤했죠. 그는 절대적으로 믿음직했기에 그의 일꾼마다 그를 숭배했습니다. 트루먼이 '노'라고 하면 노,'예스'라면 예스였죠. 같은 이슈를 갖고 한 사람에겐 '노', 딴 사람에겐 '예스'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0년래 또다른 유능한 대통령은 라널드 레이건이었습니다.."('포브스'에서 필자 옮김).

해리 트루먼이 누구던가? 그는 고위급 프리메이슨이었다(33단). [혼자의 집념으로 한국전을 핵전쟁으로 밀고 나가려다 트루먼의 명령 하나에 파직돼 한국에서 돌아온 더글러스 매카터도 메이슨이었다(33단).] 드러커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지, 아니면 드러커 자신이 메이슨인지는 모르되 프리메이슨 다수가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사실은 세계단일화 음모 등 암시해주는 바가 많지만 그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확실히 진리밖에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즉 트루먼/매카터는 물론 드러커 자신도 진리밖에 있는 인물이란 점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위 같은 말 따위는 입밖에 내뱉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밀결사집단인 프리메이슨과 그 측근, 관계자들은 필연적으로 종교다원적인 사람들이다. 즉 예수 크리스토를 유일한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드러커를 멘토로 모신 워렌도 대동소이한 인물이라고 필자는 사뭇 굳게 믿는다.

뉴 깅리치 전하원의장(33단 메이슨)도 드러커의 죽음을 놓고 "그분은 정말정말 20세기의 효율적인 관리와 효율적인 공중정책의 가장 중요한 개발자 중 한분이었습니다" 라고  아쉬워했다. 깅리치는 지난 30여년간 드러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배운 사람이었기에 드러커를 "값지고 둘도 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그리고 조지 부시('해골단'/S&B 단원)는 지난 2002년 드러커에게 '대통령 자유메달'(PMF)을 수여했다.  

맺는 글

우리의 모범이시고 멘토이시며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신 예수 크리스토께서는 "그러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고 하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워렌의 겉 열매만 보고 열매 속 씨알은 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P.E.A.C.E. 프로젝트를 통해 유엔과 손잡고 세계 종교계의 통일 제패를 추진하고 있다. 말하자면 워렌은 21세기의 빌리 그래엄, 신교의 교황 같은 행세를 하고 있다.  

그가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 운동처럼 관상(호흡)기도/요가/미로(labyrinth) 등을 통해 적극 뉴에이지 신학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표면상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말이다. 성경에 따르면 사실상의 바빌론 종교인 뉴에이지는 장차 온세계의 단일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릭 워렌은 하나님의 사람일까, 루시퍼의 사람일까? 시간과 열매가 말해줄 것이다. 필자의 주된 논지는 그 열매가 무르익기 전, 너무 늦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부터 조심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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