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비밀과 예수의 비밀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許諾)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눅4:41-43)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은 귀신들이 가장 먼저 알아봤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귀신들도 영적 존재인지라 영적 차원의 일을 그런대로 분별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한 경륜까지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귀신들은 지금껏 모든 사람을 마음껏 농락하다가 전혀 다른 사람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들 능력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너무나 엄청난 성령의 권세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절감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성령의 함께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아니 오늘날도 일부 은사자들이 성령의 권세로 축사(逐邪) 사역을 수행하지만 귀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해준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계획과 뜻까지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이미 왔다는 사실만 인지한 것입니다. 그들 대장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려 들다가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기도 전에 먼저 알아보고 혹시 멸하려 오셨는지 의심할 정도였지 않습니까?(막1:24)
말하자면 흑암의 영적 세력권에선 하나님 독생자가 자기들이 장악하고 있던 구역에 들어오셨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토픽거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에 대한 대응 작전도 사실상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참으로 교묘한 작전입니다.
그러나 그런 작전이 예수님께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단순 논리로만 따져도 꾸짖었다는 것은 그렇게 외치는 것이 당신 사역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마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단의 의도는 예수님보다는 사람들을 속임의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온갖 이적을 일으키면서 당사자에게 비밀로 할 것을 명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이유는 더러운 귀신들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도 추한 죄 중에 있으면서 회개치 않은 채 그 이름을 부르며 아무리 뜨겁게 기도해도 오히려 말함을 허락받지 못하고 꾸중만 들을 뿐입니다.
영적존재인 귀신들은 예수님께 꾸중들을 줄도 알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이번에는 완전 멸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눈치 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적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임을 천하 사람들로 알게 하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지금껏 어떤 이도 말 한마디로 귀신들을 다 쫓아내고, 각색 불치병을 고치는 자는 없었지 않느냐고 동네방네 소문내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오직 그런 일로만 예수를 찾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의도와 동일합니다. 그 때는 귀신들의 대장으로서 예수를 직접 상대해 자기 종으로 삼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 첫째 시도가 실패하자 그 목적과 속인다는 전략은 그대로 두고 속일 대상만 살짝 바꾼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가 당신의 메시아 사역에 실패할 리 만무하다는 점까지도 미리 감안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해주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메시아 개념을 바꾸려는, 정확히 말해 이미 갖고 있는 기복적 메시야 개념을 더 굳게 붙들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자기들 우두머리 마귀가 이미 패배 당했던 예수를 귀신들이 직접 대적할 수는 도무지 없었습니다. 예수님 대신에 어리석은 사람들을 상대해서 모략을 펼치고 계속 미혹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분에 가득차서 동네 밖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했습니다.(눅4:28,29) 물론 그들이 목수 요셉의 아들 주제에 감히 자기를 가르치려 한다고 여기고 미리 귀를 닫은 면도 있지만, 유대 선민이라고 기고만장한 그들에게 죄를 회개치 않으면 멸망당한다고 지적하니까 도무지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와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과 많은 이들의 각색 병을 고치자 그 반응은 극적으로 반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 물러가도 무리가 찾아와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했습니다.(4:42) 아무리 다른 동네이긴 해도 나사렛 목수 아들 출신임을 아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 낫고 귀신 쫓아주는 큰 능력자라면 어디에서 무슨 출신이든지 무조건 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항상 같이 있어서 무슨 문제든지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한마디로 당신의 본업은 귀신 쫓거나 병 고치는 일이 아니고 복음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동네에서도 나사렛처럼 또 내침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겪더라도 복음 전하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내용이 그가 처한 모든 환경을 안일, 형통,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에 들어오기 적합한 거룩한 자로 바꾸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와중에 귀신들은 쫓겨나가면 창피해서라도 조용해야 정상인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너무나 교묘하지 않습니까? 하늘의 비밀을 사람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던 귀신들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발설하고 있습니다. 와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능력이 있으면 우리 같은 귀신들도 다 쫓아내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단에게나 예수님에게나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이 공히 큰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먹고 마시게 만들어 주는 능력자”로서, 예수님은 “죄에서 깨끗케 해주려고 십자가에서 수난 받는 종”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2천 년 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사단은 우리를 아주 교묘하게 속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양 우리에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너무나도 확실하다. 와서 봐라! 귀신이 쫓겨 가고 각색 병이 낫지 않느냐? 이런 예수를 안 믿다니 말이나 되느냐?”라고 말입니다.
신자가 그런 속임수에 맞설 대책도 오직 하나입니다. 거짓 비밀에는 진짜 비밀로 맞불을 놓아야 합니다. “그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다. 십자가에 내 대신 돌아가심으로써 천국 비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제 나를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끊을 것은 이 세상에 사단을 포함해 단 하나도 없다.”라고 당당하게 소리 질러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복음은 거부하고 복은 환영합니다. 수많은 강단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외쳐져야할 복음 대신 단지 귀신 쫓고 병 고치는 예수만 선전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도 이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로 복음 전하러 떠나 가버리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진짜 비밀은 따로 있습니다. 사단처럼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틀리게 전하면 입을 봉하거나 곧바로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작금 사단까지 나서서 그분의 능력자 되심을 선포하는 일을 도와주는(?) 교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4/8/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