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구원에서 유일하게 아는 것

조회 수 391 추천 수 14 2009.11.04 20:28:59
신자가 구원에서 유일하게 아는 것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에델 헷필드라는 할머니가 76세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려고 신청했다가 담임목사로부터 복음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거절을 당했습니다. 상심해서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중에 우연히 지나가는 중국학생으로부터 장미가 참 예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학생을 집안으로 초대해 다과를 대접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음날 그 학생은 친구를 데리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장례식에는 그녀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변화된 70명의 중국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기에 너무 늙은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단지 복음을 말로써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구원이 인간의 노력과 실력에 달렸거나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아무래도 노인이 나설 수 없습니다. 또 만약 그렇다면 제대로 잘 알아먹는 젊고 똑똑한 자에게 먼저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에서 구원 받아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는 일에 나이 제한을 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들이 도리어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에 달려있지 않는 대신에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에 대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자가 구원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전하는 자도 지혜 있는 자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전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또 권능을 보여주어도, 예컨대 기도하여 병이 낫는 이적을 보아도 잘 믿지 않으니 사랑으로 섬기는 것과는 별도로 반드시 복음의 진리가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상대의 수용여부에는 전혀 신경 쓸 것 없이 말입니다.

바꿔 말해 아무리 잘 성명해주어도 믿지 않는 자가 많이 나오게 되며 또 그것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많은 경우 전도에 실패했다고, 물론 완전한 인간으로 행하신 전도이기에, 스스로 한탄하셨지 않습니까? 요컨대 전도란 대부분의 경우 실패할 것을 사전에 전제하고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미리부터 너무 힘 빠지고 실망스런 일이지 않습니까?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을 누가 감히 하려고 나서겠습니까? 또 바울이 복음이 첫째 유대인에게 또한 헬라인에게 전해진다고 했으니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부터 전해야 합니까? 바울의 뜻은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택한 백성이라도, 또 철학적 지혜에 능한 헬라인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첫째는 유대인이라고 했으면 “둘째는 헬라인”이라고 말해야 자연스러운데도 “또한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표현부터 벌써 시간적 순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지금껏 유대인들이 오히려 복음에 대해 가장 완강히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구태여 유대인을 첫째라고 말한 이유는 아무래도 바울 자신의 동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작용한데다, 당시 현실 상황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게 되었다는 뜻일 뿐입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이, 아니 대부분의 경우 확실히 예견되는데도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도 바울처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물론 첫째 이유는 바울처럼 복음이 전혀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복음의 내용이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전도해서 거부당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나님의 능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장난하자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된다면 전도에 긍정적 반응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것 같지만 그   반대가 오히려 맞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실패가 더 많아야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란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꼭 구원을 주어야만 할 사람을 당신께서 예정하시고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지당한 말 같지만 전도자는 진짜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기로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가 여태껏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해서 아직도 십자가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정말로 안타까이 여겨야 합니다. 그 지연되는 시간만큼 그 사람이 흑암의 권세에 묶여서 괴로워할 것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베풀어지지 않으면 그 실패하는 인생이 자꾸 더 길어질 것이라고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어져야 합니다.  

구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미리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면 하나님이 전하는 말도 술술 잘 나오게 해주고, 상대의 반응도 부드럽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물론 상대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로 구원을 얻을 때까지, 설령 평생을 두고 가시적 결과가 없어도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성경이 복음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은 훨씬 다른 것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간절히 기도하고 정말로 상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논리정연하게 전했는데도 단숨에 거절할 만큼 인간의 심령이 썩을 대로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복음의 빛이 그 심령을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악의 노예로 묶고 있는 사단의 권세가 우리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온갖 수난과 모멸을 당한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십자가에 그 수치스럽고도 고통스런 죽음을 당하셔야 할 만큼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정반대 편에서 그분의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을 당신의 백성이자 자녀로 바꾸는 일을 어찌 인간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사단이 차꼬를 채우고 쇠사슬로 꽉 묶고 있는 자를 말입니다. 그 영혼을 차지하고 있는 악한 세력을 쫓아내고 당신의 영으로 채워주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구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전지전능성을 믿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어떤 인간도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선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하고 나아가 유일한 대책이 십자가 복음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영적인 실패가 너무나 비참하다 못해 완전히 죽어 있는 시체라는 확신입니다. 단적으로 비유해 예수가 그 안에 없는 인간들은 모두 중국영화에 나오는 강시(殭屍 -영어로는 Zombie)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죽었음에도 이 땅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도하는 신자부터 자신이 오직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그 존재와 삶과 인생이 뒤집어졌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빛으로, 죄에서 의로, 동물 같은 자에서 참 인간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권능에 붙잡혀 있지 않다면 절대로 지금 같은 아름답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확신입니다.

당연히 예수 없는 자에겐 처참한 실패가 바로 눈앞에 기다리고 있음이 자기 눈에 너무나 확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여서 그 반응이 부끄러운 결과로 나와도 전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하게 되는 헌신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정말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렇게 이해하고 확신한다면 어찌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주실 지는 오직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것을 전도자가 자꾸 추측 내지 기대하려면 전도를 주저하게 되고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공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위한 전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전도에서 미리 알 수 있는 사실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자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구원의 과정은 신자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사항입니다. 한 죄인의 영혼을 뒤집어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복음이 부끄럽습니까? 아니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사단의 노예가 되었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그 사실이 확실하다면 전도를 성공시키려는 데에만 너무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실패를 전제로 해서 단지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로 예비해 놓은 자를 찾아 나선다고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로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죽으셨지 않습니까? 인간들더러 그 크신 사랑과 공의 앞에 항복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만 나누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어떤 심오하고 고상한 철학과 도덕과 종교라도 그 앞에는 아무 의미와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십자가의 예수님만 정확하게 전하면 됩니다. 우리의 얄팍한 종교적 도덕적 실력에 상대가 넘어오리라는 착각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11/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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