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으로 찾아가지 말라.

조회 수 4529 추천 수 38 2009.11.12 01:59:19
땅 끝으로 찾아가지 말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0,31)


페루의 성경학교 학생 프란시스코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서원했습니다. 어느 날 왕궁 앞을 지나가는데 자동차 한 대가 박격포로 왕궁을 향해 발사하고 도망갔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그를 테러리스트로 오해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재판을 기다리는 1년 동안 그는 60명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자기가 서원한대로 응답이 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직접 그들의 캠프로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선 안전을 도저히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혹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으면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만에 하나 그들 캠프에 거주하도록 허가를 해주어도 오히려 자기들 노선에 동조하라고 설득시킬 것입니다. 최소한 자기들 일에 바빠 마음을 열고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 것은 빤합니다.

반면에 감옥 안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선 너무나 안전 합니다. 죄수들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따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난 잘못을 조용히 되돌아보거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들 또한 많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으로는 캠프로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합니다.      

사도 바울의 평생의 꿈은 스페인으로 가서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성경의 배경은 지중해 연안이 전부였던지라 스페인이 땅 끝인 줄 알았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서 요나가 땅 끝까지 도망가려 했던 곳이 바로 스페인 최남단의 항구 다시스(욘1:3)였습니다.

요나와는 정반대로 바울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 했습니다.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곳곳에 교회를 세운 그로선 스페인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롬1:23,28)

감히 추측컨대 바울은 평생에 걸쳐서 두 가지 제목을 가지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대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할 때에 예수님에게 받은 소명인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행9:15) 잘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바나는커녕 로마의 감옥에서 쓸쓸히 최후를 마치게 했습니다. 땅 끝에도 가보지 못하고 또 이방인 임금들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그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것입니까? 땅 끝은 그렇다 쳐도 당신께서 직접 소명을 주어놓고 응답을 해주지 않으면 순전히 주님이 그에게 열심을 내라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한 빈말입니까? 어느 것도 아닙니다.

그는 생활의 염려는 전혀 할 필요 없이 핍박 하나 없는 가장 안전한 상황에서 만 2년을 꼬박 오직 복음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로선 그가 직접 이방인의 왕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을 알현할 수 있는 요건이 되어야하지만, 모든 격식을 갖추어 정식으로 면접을 신청해도 만나줄지도 의문입니다.

나아가 당시의 로마 제국은 각 지역의 고유 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게 허용했지만 먼저 로마 황제를 주라고 시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공인 된 종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인 황제를 신으로 모실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바울이 이방의 왕들에게 모든 수를 다 동원해 복음을 전하고자 해도 오히려 그들 쪽에서 로마법에 위배되는 기독교 신앙은 피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여건에서 하나님은 주로 로마와 이방의 높은 사람들로 바울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같은 기독교인으로 오인되어 박해를 받을 것이 빤하므로 감히 오기 힘듭니다. 비교적 법적 제한과 오해를 받을 염려가 없으며 또 새로운 도에 대한 흥미를 가졌던 귀족 내지 왕족들은 얼마든지 바울을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변화된 자들로 그 대신에 땅 끝까지 가서 이방 왕들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8,9,11) 주님은 당신께서 뜻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시는데 바울에게 직접 소명으로 주신 일이야 새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결례를 하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까닭입니다.(행21:27-36) 그로선 얼토당토 않는 죄명이었습니다. 나아가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많은 동료 성도들이 성령의 경고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할 것이니까 가지 말라고 한사코 말렸습니다.(21:1-16)

그러나 역으로 따져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와 죄수의 신분이 되지 않았다면 자기가 기도한 대로 응답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그도 서바나로 갈 길이 바쁜데 왜 이런 핍박으로 지체가 생기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 어디서 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주의 뜻대로 되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했습니다.(21:13,14)  

인간의 길과 생각은, 아무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나 위대한 믿음의 사도라도, 하나님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또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완전하시며 실수가 없으시며 경영하신 모든 일을 합력하여 반드시 선으로 이끄십니다. 따라서 신자가 할 일은 세 가지 뿐입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받은 소명 뿐 아니라 선하게 생각하는 주를 향한 소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어떤 모습이 되었든 하나님이 그 길로 이끄시는 과정 중의 하나, 그것도 그 길을 거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 가장  최선의 길로 이끄는 중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오직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순간순간 닥치는 바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28장에서 아무 뚜렷한 결론 없이 갑자기 끝나버리는 바람에 사도 이후의 모든 세대 신자들이 그 뒷장을 기록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성령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도 중단 되는 법이 없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면  28장 이후는 천국의 사도행전에 계속 기록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쓸쓸히 일생을 마친 것을 아주 아쉬워합니다. 오히려 복음 전파에 가장 좋은 길이었다고는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들도 땅 끝까지 가서 자기 소명을 아주 완벽한 상황에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실현되게 해달라고만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안 되면 구태여 헌신할 태세를 갖추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오직 성령님이 하십니다. 실제로 땅 끝은 따로 없습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가 항상 땅 끝입니다. 신자는 바울의 말년을 아쉬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받아야 합니다. 가장 안전한 상황에서 오직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신자로서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인생 말년에 이르면 잘 나다니지도 못할 텐데 더더욱 좋은 일 아닙니까?

우리가 구태여 땅 끝을 찾아 나설 것까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그 어디나 땅 끝입니다. 그 길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의아해 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신자는 오직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소원만 흔들림 없이 간직하고 있으면 됩니다. 주님의 길은 우리와 다르지만 완벽한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에게도 가장 유익하고 영광스러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4/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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