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정작 가진 것은 무엇인가?

조회 수 424 추천 수 30 2009.11.12 02:02:53
당신이 정작 가진 것은 무엇인가?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3:4-8)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며 살던 나면서 앉은뱅이를 베드로가 말 한 마디로 고쳐준 유명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성경의 이런 이적 기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에만 먼저 관심을 가지고 자신도 그런 능력을 맛보았으면 소망합니다.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훨씬 다른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의 평생소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비록 일어나 걷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부러웠을 것은 틀림없지만 나면서 앉은뱅이인지라 당시의 의료 기술로 보나 아예 체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가장 사람의 왕래가 번잡한 곳, 소위 명당에 자리 잡고 구걸을 하고 있었고 당시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경건한 유대인들은 구제에 열심이었던지라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낫고 나서 이 앉은뱅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명시적으로는 불구자는 단지 제사장이 되지 못한다는 규정만 있는데도 그는 성전 예배에 전혀 참석하지 못했고 입구에서 평생 구걸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선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희생 제사나, 율법 강론 등을 단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배에 참석 못할 잘못을 스스로는 전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이미 앉은뱅이였던 것뿐입니다. 걷고 뛰지 못하는 것보다 나면서 죄인 취급당하고 하나님의 구원과는 아예 거리가 먼 자로 여겨진 것이 얼마나 천추의 한이 되었겠습니까? 그런 차에 생소한 두 사람이 나타나 은과 금 대신에 진짜로 더 좋은 것을 자기에게 준 것입니다. 이제는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회복되었고 사람들로서도 그를 막을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결코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니까 저절로 그분을 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성전을 들락거리며 은과 금으로 도와준 경건한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손을 잡고 일으켜서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과연 이 앉은뱅이가 은과 금을 받는 것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중에 어떤 일을 더 고마워하고 기뻐했겠습니까?

은과 금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교회 사역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 밖에 있던 자들을 그 안으로 초대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초대에는 불구자, 이방인, 걸인, 노예, 노인, 등 제한을 두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어떤 현실적 차이에도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 소원하는 모든 자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경우를 보면 그 하나님의 사랑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해서 역사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으니까 이적이 일어났습니까?

“세 왕의 이야기”라는 책에서 진 에드워드는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베드로를 올려다보는 거지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베드로의 주머니에 금과 은이 넘쳐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빈 호주머니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권능을 얻길 원한다면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에 하나님이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돈으로 따지면 오히려 지금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사도들 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거지에게 줄 푼돈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은 갖고 있었습니다.  

신자는 예수를 소유하지 못한 자에게 예수를 나눠주는 자입니다. 그러려면 본인이 예수를 분명하게 소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주 자신 있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고 말했습니다. 은과 금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예수는 확실히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은과 금이 가장 소중하겠지만 사도들에게는 거지보다 더 가난해져도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만으로 충분히 차고 넘쳤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주일 예배시간은 임박한데 교회 정문 앞에서 걸인이 한 푼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십중팔구는 급하게 동전을 몇 개를 던져주거나 아니면 이 거지가 지금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러 가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감히 앞길을 막느냐고 불만이 가득 차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만약 돈이 하나도 없었다면 싫고 귀찮은 마음이 더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게 여유 있는 것으로만 남에게 인심을, 그것도 아주 가끔 씁니다. 차고 넘쳐야만 그 부분 중에 일부를 갖고 생색낼 수 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넘치지 않으면 남에게 잘 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 원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주는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작은 일에 나타났어도 그 본질상 이 세상을 뒤덮을 만큼 크고도 귀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본인이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 사랑을 충만하게 받았다고 확신하지 않고는 남에게 나눠줄 수 없는 법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예수를 잘 나누려면 오히려 은과 금이 없어져야 합니다. 은과 금이 충분한 데 예수님을 갈급하게 찾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가 정말로 은과 금보다 더 귀하다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한 예수를 찾지 않습니다. 신자가  가진 것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예수님은 그 만큼 더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신자를 때로는 세상 사람보다 더 가혹한 환난과 비참한 환경에 밀어 넣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어야 예수를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또 예수를 더 많이 소유해야 주위에 나눠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예수를 더 나누어주고 싶다고 소원하는 자는 자기에게 은과 금이 없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고 나아가 그것들이 없는 것이 더 도움이 되며 좋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진 것이 혹은 가지려고 하는 것이 진정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주위에 나눠주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니 정말 나눠주고 싶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주위에 예수 대신에 은과 금이라도 나눠주려 했다면 그나마 아주 큰 다행입니다. 신자는 은과 금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나눠주어야 하는데도 혹시라도 도리어 은과 금을 자기 손 안에만 움켜쥐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참 신자와는 너무 거리가 먼, 아니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2/1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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