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조회 수 551 추천 수 20 2010.07.24 16:26:02
이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질문]


그리고 이슬람의 존재와 발전을 하나님께서 묵인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이슬람과 기독교는 철천지원수처럼 서로 싸워왔는데요 이들을 단지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구절로 설명하기엔 이들의 신앙은 기독교인들이 보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단지 ‘알라’라고 부를 뿐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끔찍할 정도로 대단하죠. 게다가 이들의 시조인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로 설명하려고 해도 그 후의 파급효과가 너무 크고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5:38,39)

에 기록된 말씀처럼 된다면 이들이 불교나 힌두교처럼 복음이 없는 지역이 아닌 복음이 융성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융성한 이상 이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면 무너졌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현재 유럽의 기독교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현실과 세계적으로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적대적인 모습을 취하는 그들을 볼 때 이들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정립하고 대처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지식으로 생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정립해야 옳은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답변]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세를 비교하면 현재는 기독교가 우위에 있으나 빠른 시일 내에 대등을 넘어서 역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통상적으로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독교는 약 30%, 이슬람은 20% 정도로 추산합니다.

그러나 최근 50년간의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는 47%만 성장했지만 이슬람은 무려 500%의 급성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교인 증가율에서도 이슬람이 현재 1위인데 연간 2% 이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1%를 약간 상회하는 성장률에 불과합니다. 전체 교인 수에서도 빠르면 21 세기 전반에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 첫째 원인은 기독교 국가의 자녀 출생률이 낮은 반면에 이슬람 국가는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원인은 질문자님이 지적한 대로 이슬람의 알라에 대한 신앙은 끔찍할 정도로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코란 계명의 엄격한 준수를 통한 도덕적 금욕적 삶의 모습이 불신자들의 눈에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슬람은 작금 알게 모르게 기독교 국가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자국 내에서의 복음 전파는 노골적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는 것이 과연 어떤 뜻인지 기독교 신자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전제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질문자님께서 인용하신 성경 구절들의 뜻을 조금 더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이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알라는 하나님이 아니다.

먼저 질문자께선 “이슬람들이 하나님을 단지 ‘알라’라고 부를 뿐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이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끔찍할 정도로 대단하죠.”라고 말했습니다. 자칫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술입니다 .

예수를 안 믿었다는 이유를 빼고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끔찍하다고 했으니, ‘알라’를 이름만 다르지 기독교의 하나님과 거의 같은 대상으로 간주하는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하나님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바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죽이심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참 하나님과 그렇지 않은 신과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불신자를 다루시는 모습을 성경은 분명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이슬람이 융성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즉, 하나님이 융성하도록 만드셨다는 뜻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구절 또한 이슬람 같은 타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특성을 기본적으로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아시는 대로 로마서 1:18-32는 예수님 오시기 전의 이방인의 죄에 대해서, 또 2:1-2:8까지는 예수님 오시기 전의 유대인의 죄, 그래서 3:9-18은 원죄 하에 있는 전 인류의 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죄의 본질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참 하나님을 모르거나, 알고도 배역하여 불화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모르고는 초대 교회 당시까지의 모든 이방인들은 아무리 열렬한 종교심으로 우상을 숭배해도 - 나름대로 신의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간에 - 구원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희생 제사를 지내며 율법대로 살려고 끔찍이 노력했던 유대인들도 십자가 복음을 모르면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원죄 하에 있는 모든 인간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 쪽의 조건, 자격, 능력, 선행, 공적, 어떤 것을 동원해도 누구나 하나 같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당신의 긍휼만 소원하는 자에게 당신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이슬람이 구약의 하나님을 인정해도 예수님을 독생자 구세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이상 참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의 예에서 보듯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오늘날의 이슬람에게 못 미칠 것 없음에도 구원 밖에 있었고 참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모든 종교가 동의 내지 주장하듯이 참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종교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하나님을 가르친다는 진술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면 구원의 길을 여럿으로, 그것도 아주 상반되는 내용으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구원의 길이 다 맞으면 아무 종교나 믿으면 되고, 또 그러면 종교를 안 갖는 것도 여전히 구원의 길 중에 하나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의 길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참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의해 인간 스스로 쟁취하는 구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여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신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의롭고 종교적으로 경건해도 거짓 신이자 인간이 고안해낸 하나님일 뿐입니다. 사단의 속임 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이어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자 하나님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즉, 하나님 본체임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당신 외에는 구원의 길이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15:22,23)고 그 뜻을 더 확고하게 밝혔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과 같으니 심판을 절대 모면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알라’ 또한 하나님이 아니므로 아무리 열렬히 믿어도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는 사탄

이슬람의 시조인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라는 성경의 설명대로입니다.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엄격히 계명을 준수하며 나름대로 도덕적 삶을 살려고 하는 것과 자기들 믿음의 대상인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이 더 광명한 천사를 위장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만약 기독교 신자가, 질문자님께서 우려하신 대로,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식의 설명을 하면 큰 일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아브라함을 여호와 믿음의 조상으로 따르는 동족 유대인들에게조차 그런 정죄를 서슴없이 내렸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責)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4-47)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했음에도 믿지 않는 까닭은 거짓의 아비에게 속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바로 사탄에게 속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슬람만 유독 사탄의 자식이거나, 가장 악독한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유일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가 사탄에게 미혹되어서 그 진리 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으니까 참 진리를 들어도 오히려 거짓으로 몰아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분명히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사탄의 하수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회교라는 종교와 그 배경에 역사하는 영적 세력을 배격해야지 그에 속아 넘어간 무슬림들은 더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내면적으로는 불신자들이 사탄에 속고 있다는 영적 진리는 확고히 붙들고 있되, 외면적으로는 그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어떤 형태로든 복음도 말로서 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허무는 종교가 있는가?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5:38,39)

이 말씀에 근거하여서 “이슬람이 불교나 힌두교처럼 복음이 없는 지역이 아닌 복음이 융성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조차 오히려 융성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운 것이라고 해석할 필요나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이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면 무너졌어야 한다고 쉽게 단정 지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세대에게 적용되는 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구절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기에 이 둘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단지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것임에도 그 내용이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처럼 오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경우도 그 대표적 예입니다.

언뜻 보면 상기구절의 내용은 아무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 같습니다. 이 말씀을 정확히 해석하려면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로 인해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점차 늘어나자 유대관원들이 사도들을 없애려고 모였습니다. 교법사 가말리엘이 이전에 구세주라 자칭하며 일어났던 이단들이 결국은 소멸했던 예를 상기시키며, 나사렛에서 난 한 젊은 랍비를 추종하는 이 세력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테니까 그냥 가만 두고 보자고 공회원들을 설득시켰습니다. 또 정말로 이 신흥종교가 하나님이 세운 것이라면 자칫 우리가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있음도 주지시켰습니다.

그의 진술은 분명히 옳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초기 기독교의 상황에 한해 적용될 수 있는, 그것도 한 개인이 제시한 의견에 불과합니다. 어떤 진술이 객관적 진리가 되려면 실제로 그 결과가 모든 시대와 상황에서 그 진술대로 되는지 검증해 봐야 합니다.  

물론 그 진술 가운데 하나님께로 난 것을 사람이 무너뜨리면 그분을 대적하게 된다는 부분은 분명히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께로 난 것이기에 기독교를 핍박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기독교인을 잔해하려 갈 때에 예수님은 왜 내 백성을 핍박하느냐고 말하지 않고 당신을 핍박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행9:4)

그러나 사람에게서 났다고 해서, 특별히 나쁜 것이라도, 다 소멸되지도 않으며 또 하나님이 무너뜨리지도 않습니다. 역으로 말해 어떤 사상이 융성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는 더더욱 말을 못합니다. 너무나 이상한 사람의 사상과 소행이 얼마나 많은 추종자를 모으며 계속 융성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그냥 묵인하는 것이지 그 일이 옳아서 하나님이 융성하게끔 이끄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슬람을 만들거나 적극적으로 융성하게 이끄신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도 인간의 사상과 소행에 불과하지만 다른 모든 종교처럼 하나님이 묵인하셨기에 인간에 의해서 융성해진 것입니다. 마치 죄가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니지만 인간에 의해서 만연해졌듯이 말입니다.    

또 복음이 융성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슬람이 융성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역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복음이 융성한 지역이니까 방해 세력도 더 큰 기세로 융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열두 제자 안에도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이미 묵인하신 바탕에서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낙원에서마저 최초의 범죄가 자행되었지 않습니까? 대신에 복음이 가는 길은 항상 좁고 협착하며 하나님이 남긴 자도 항상 소수라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

위에서 이슬람에 대해 몇 가지 성경 구절을 다시 적용해 보았습니다. 우선 알라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며 아무리 이슬람이 그에 대한 열렬한 신앙을 갖고 있어도 사탄의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모습에 불과합니다. 또 작금 이슬람이 융성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난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융성하도록 놓아두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뜻은 아주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묵인하시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요컨대 사람들의 죄로 인해 나쁜 일은 자꾸 더 생긴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이 악을 적극 조장하지는 않았어도 적극적으로 막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막으려면 사람이 악을 저지를 때마다 벌을 주셔야 하는데 그러면 무서운 정죄의 하나님만 부각됩니다. 사람들이 두려워서라도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믿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도 아니며 또 그렇게 믿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백성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믿고 따르기를 원할 뿐입니다.

세상의 악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악을 향해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단의 꾐에 넘어갔다고 했지만 아담이 자유의지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했듯이 말입니다.    
    
그럼 세상의 악이 제거되는 방안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악의 근원인 사탄을 지금 당장에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공중 권세를 사탄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그 때까지 세상에서 흑암의 세력이 융성할 것입니다. 마지막 재림이 다가오면 사탄은 자신의 멸망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기에 최후의 발악을 하여 더 크게 번성할 것이며 신자에게는 대환난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국을 비유하면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리지를 덧뿌리고 갔지만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24-30)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30절) 좁게는 교회 안에 참 성도와 거짓 성도가 혼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넓게는 세상 안에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로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심판 때까지 함께 살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나님의 묵인 하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융성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핍박하도록 무한정 방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예비 되어 있기에 오히려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아가 알곡은 더 알차게 영글게 하여서 천국 시민에 합당하게 키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슬람만이 사탄의 자녀이거나 더 사악한 악의 세력이라고 단정 지어선 절대 안 됩니다. 그들도 사탄에게 속은 피해자의 한 부류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모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 안에 버젓이 중직이나 사역자로 섬기는 자들 중에도 있음, 하나님의 긍휼이 절박한 너무나 불쌍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지 못하여 여전히 갈급하며 허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참 만족, 행복, 평강,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모든 불신자들은 신자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야할 대상입니다.

간혹 이슬람을 신자가 마지막으로 대적할 적그리스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최후 결전이라고 예상하는 것입니다. 여러 정황을 보아서 상당히 개연성이 높기는 하지만 섣불리 단정 지을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종말 시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성경의 여러 진술들로 보아서 기독교의 이단에서 출현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3,4)

배도하는 자가 바로 불법의 사람이 된다는 명시적 진술은 없으나 배도와 멸망의 아들을 연결시켰습니다. 배도(背道)란 동일한 도를 따르다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 내의 이단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 보좌에 앉아 온갖 능력을 발휘하는 바람에 기독교인들마저 속아 넘어갈 것이므로 기독교 아류가 되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슬람의 출현 과정과 그 배경을 보면 광의의 뜻으로는 기독교에서 배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가르치는 내용을 따져보면 기독교의 이단이라고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멸망의 아들이 과연 어떤 종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의 예언은 막상 닥쳐 봐야, 그것도 한 참 지나서야만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수난의 종의 모습으로 왔어도 사람들은 아무도, 심지어 제자들마저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 않습니까? 멸망의 아들의 경우도 신자들마저 대환난을 겪는 중에도 잘 모를 것이며, 재림 때에는 순식간에 심판이 끝나버릴 것이므로 미리 짐작했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다시 말하지만 이슬람이 작금 융성한 까닭은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하시는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신 뜻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비로소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만물은 예수님으로 인해 창조되고 운행되며 심판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9,20)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로 인한 최후의 완성에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잇는 것 모두가 예수의 피로 당신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완전히 멸망되고 예수의 피로 의롭게 된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당신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 역사도 이런 목적이 달성되도록 이끄십니다. 쉽게 말해 마지막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이 땅에 당신의 백성들로 천국시민에 합당하게 자라게 할 것입니다. 또 그렇게 훈련 받은 백성에 의해 당신의 나라를 세상 끝날 까지, 땅 끝까지 번져나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수적, 양적으로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압도적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반대로 이야기 합니다. 끝까지 참고이기는 자는 아주 적은 숫자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권능과 은혜는 오직 그들 위에만 머물 것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신자에게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완전히 방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를 통해서 불신자들 섬기게 만들고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키기에 아무래도 중점적인 은총이 신자에게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신자를 더 순수하고도 굳건한 믿음 위에 세우시기를 가장 원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 대해선 그 상한 마음대로 그대로 두십니다. 그보다는 교회 안에서 배교하는 자들을 가장 저주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상에는 우상 숭배하는 타 종교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 내에는 만신전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도 여전히 바알과 앗세라의 잔재가 토속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곳마다 우상들이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아테네에는 이름 모를 신들에게 바치는 제단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타 종교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당신께로 나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라고 초대했습니다. 인종, 지위, 문화, 종교 등 세상의 모든 벽을 당신의 피로 허무셨습니다. 모든 종교를 다 인정해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항복하는 자는 인간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대신에 동일하게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믿으면서도 복음과는 등을 진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을 저주하면서까지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무시한 채 인간들이 만든 유전으로 백성들에게 멍에를 매게 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어 참 진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거역하고 다른 이들마저 멸망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오로지 교회 내에 배도하는 자들을 크게 야단치며 정죄했습니다. 그분의 관심은 자기 백성들이 거짓 교사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교회 밖의 불신자들은 신자가 온전한 진리 가운데 서서 성숙하여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복음으로 인도케 하려는 것입니다.  

작금 이슬람은 참 하나님의 구원진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실제 삶에서 절대적인 신앙의 모습을 띔으로써 교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신자가 단순히 그들을 대적 내지 전도하려 들기 이전에 필히 먼저 행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자 또한 절대적으로 참이자 유일한 진리를 온전히 붙들고 삶에서 그 진리에 목숨까지 기꺼이 거는 절대적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배도와 멸망의 아들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더더욱 배도하지 않은 참 진리가 신자를 통해 구현되어져야 합니다.

사단과의 싸움은 절대 교세를 확장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능력 대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슬람이 융성하고, 또 기독교를 대적하며 핍박한다고 해서 그들과 똑 같은 전략으로 맞서선 안 됩니다. 거짓에 대해선 진리라야만 승리가 가능합니다. 악은 선이라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자기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일차로 신자에게 집중되므로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은 기독교 내의 이단입니다. 그들의 교리는 철두철미하게 배척하는 동시에 온전한 복음의 진리를 끝까지 수호하여야 합니다. 반면에 교회 밖의 이슬람을 필두로 모든 불신자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 기도하고 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이 세대의 영적 조류를 분별하며 역사의 흐름도 주의 깊게 살펴서 성경이 말하는 바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모든 인간은 그 심령이 항상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처럼 공허 허망 갈급합니다. 알게 모르게 뭔가 절대적인 진리를 붙들려고 추구합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리는 회교도들이 현대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슬람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태도는 무엇보다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필하고 있는 점의 허구성을 밝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 그러려면 무엇이 참 진리인지 온전히 드러내어야 합니다. 교리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이 모든 악을 물리치는 능력이자 죄 중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그 은혜를 직접 체험한 신자들이 삶에서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슬람 신앙은 철저히 배격하되 무슬림은 정말 안타까이 여기며 십자가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는 당신의 목숨을 걸만큼 철저하게 저주하되, 죄인은 당신의 목숨과도 맞바꾸어 끝까지 사랑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자부터 거짓 복음을 가려내고 굳은 마음으로 참 복음 안에만 거해야만 합니다.  

7/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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