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믿는 불신자들

조회 수 237 추천 수 6 2011.10.28 20:03:49
부활을 믿는 불신자들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마14:1,2)


예수님이 많은 이적을 베풀고 있다는 소문이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안타파스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그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자기가 죽였던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럼 여호와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불신자였던 그가 부활을 믿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대 왕으로서 요한과 예수가 동년배 친척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설령 그런 구체적 인적사항까지 몰랐다 해도 나이만 봐도 다시 태어난 것이, 이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아니라 환생(還生)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부활은 죽기 직전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므로 예수의 외양과 성격과 기질이 요한과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뜻하는 바는 “이런(요한의) 권능이 그(예수) 속에서 운동하는도다”라고 말한 그대로입니다. 쉽게 말해 요한의 귀신이 예수 속에 들어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이 생전에 기적을 일으킨 적이 없으므로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면 신통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생각입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엔돌의 영매를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귀신을 불러달라고 요구한 것과 같습니다.(삼상28장) 그럼 예수는 자신의 능력은커녕 맨 정신으로 그런 이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셈입니다. 무당들도 때로는 병든 사람을 기적적으로 낫게 하거나,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그와 유사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무신자들도 사실은 여전히 헤롯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믿습니다. 또 그 귀신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내는 큰 능력을 지닌다고 여깁니다. 그런 믿음의 단적인 예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점을 치러 얼마나 열심히 다닙니까? 헤롯의 말 그대로 점쟁이들 속에 귀신의 능력이 운동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압니다. 현재 후손이 무사 안일 형통하는 것은 다 조상들의 음덕으로 압니다. 반대로 힘든 문제가 있다면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않아서 그들 기분을 상하게 한 탓이라고 여깁니다. 귀신을 믿는 우상숭배 내지 미신적 사고는 전혀 없이 단순히 선조를 추모한다고 반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사 문제로 종교적 갈등까지 갈 이유가 전혀 없어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는 것이 실상이지 않습니까?

결국 어떻게 됩니까? 크게는 세상만사가, 작게는 자기 인생이 귀신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인정한 셈입니다. 점쟁이에게 복채를 조금 더 주거나, 제사상을 더 근사하게 차리면 자기 인생이 형통 행복해진다고 믿은 꼴입니다. 그럼 어느 누군들 성공 출세 못하겠습니까?

또 만약 정말로 그런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이런 결의대회를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절대로 후손이나 평소 원한을 갖고 있던 자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기일마다 성묘하러 오려면 자식들이 고생할 것이라고 미리 염려하여 화장하여 도시 안의 납골당에 안치하라고 유언까지 하는 마당에 마땅히 그런 결의대화를 열거나, 최소한 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후손들이 선조귀신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하는 법이 없어 안심하고 또 오히려 형통할 것이라고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모든 제사에서 해방은 될 것 아닙니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불신자들의 생각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그들의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도덕적, 영적인 문제에 한해선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상하게도 뒤죽박죽의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타당한 논리적 변별을 들어도 자기들이 옳다고 끝까지 우기니까 어리석다 못해 어떤 때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목석(木石)처럼 여겨집니다. 성경은 그래서 그런 상태를 “견고한 진”(고후10:4)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전도를 하다보면 마치 바위에다 계란을 치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헤롯이었지만 요한에게 제수와의 불륜의 죄에 대한 지적을 받자 마음에 찔림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옥에 가두지만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을 것입니다.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심에 불탄 불륜녀 헤로디아가 신하들이 다 모인 파티 석상에서 헤롯을 죽이기를 요구하자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서슴없이 살인을 감행합니다. 도덕적으로 틀린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저촉되면 얼마든지 죄악을 저지르고 즐기기까지 하는 것이 인간의 생래적(生來的)인 영적 실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도 빌라도가 유대를 관할하는 헤롯에게 재판을 떠넘기자 처음에는 기뻐했습니다. 본문의 설명대로 그의 소문을 익히 들었고 혹시라도 “이적을 행하심을 볼까”(눅23:8) 크게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묵묵부답으로 그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자 거꾸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요한의 권능이 그 속에 운동하지 않으니 별 볼일이 없다고 치부한 것입니다. 이전에는 혹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제 귀신이 떠났는가보다 여긴 것입니다. 귀신의 능력을 두렵게 여기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만사를, 최소한 인생 중대사는 귀신들의 손아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이방인)들의 이런 영적인 어리석음이 단순히 어리석음으로만 끝나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자기 인생이 귀신들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고 큰 소리 치며 자랑까지 합니다. 제사 지내지 않는 자들을 크게 비난하니까 역으로 자신들의 옳음을 크게 자랑한 셈이지 않습니까? 반면에 정작 하나님은 경배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나아가 거부, 분노, 저주까지 하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세상이 자기 기분에 따라 제 멋대로 농간하는 사단에게 붙들려 있는 것은 용납되어도, 아니 그것이 옳다고 여겨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는 절대 받아선 안 되고 받기 싫다고 끝까지 버팁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피할 가능성을 스스로 완전히 차단해 버렸습니다. 선행과 공적을 아무리 쌓아도 하나님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찌 그분의 호의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그분의 심판이든 구원이든 관심 없다고 반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대로 옳습니다. 틀린 말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믿는 바대로 그 인생이 진행될 뿐입니다.

세상만사를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님, 귀신, 인간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의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자칭 아주 과학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나 귀신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는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것 즉, 물질로 이뤄지고 물질에 의해서 운영되는 이 땅이 전부입니다.

이 세 부류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도 그 생각에 따라 정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거룩한 손에, 귀신을 믿는 자는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 후손들의 제사상 앞에 나타나며, 물질에 의한 진화만 믿는 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물론 둘째, 셋째 생각은 성경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과 심판 둘로만 나뉩니다. 단지 그들의 믿음이 그러하고 또 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가 그렇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믿는 자는 후손을 위한 선의의 결의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진화만 믿는 자에게는 도덕적 영적 각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지 말고 짐승 같은 짓에도 가책을 느낄 필요가 아예 없고, 본문의 헤롯 같은 인생도 비난 받을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불신자라도 정말로 중립적 입장에서 냉정하게 성경을 읽으면 헤롯이 옳다고 여기지는 못할 텐데 어찌된 연유입니까? 영적으로 뒤죽박죽된 어리석음의 또 다른 확실한 예이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열심히 믿었던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본문의 헤롯으로 대표되는 불신자의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자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렸다고 비방했습니다.(마12:24) 귀신이 쫓겨나가서 눈 멀고 벙어리 된 자가 보고 듣게 되고 제 정신이 돌아오는 선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예수 속에 귀신의 왕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헤롯과 동일하게 만사가 귀신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도, 예수님의 축사는 귀신이 행한 짓이라고 매도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의롭다고 칭송을 받는 종교 지도자라도 자기들 이해관계가 저촉되면, 아니 자기들 기분을 상하게만 해도 서슴없이 살인죄를 범해버립니다. 그것도 아무 잘못이 없는, 아니 지극히 선한 자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 인간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입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도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자신들의 축사마저 귀신의 왕에 힘입었다고 자인한 셈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집이나 나라는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지 않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우매해졌던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모르고 멀리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진리는 외면하고 인간적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거부 대적하려고 그 생각과 이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아졌던 것입니다.
  
실은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잘못이 그런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이면서도, 나아가 사람들을 깨우쳐주어야 할 영적지도자로서 세상만사를 귀신이 지배 조종 농간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과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절대로 이 땅을 흑암의 세력 아래 지배당하게 놓아두실 분이 아님을 믿기는커녕 알지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 아래 눌려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앞으로는 결코 너희를 흑암의 세력에 그냥 붙들려 있게 두지 않겠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단의 철장권세를 깨트리고 너희를 밝은 빛 가운데로 옮겨놓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귀신이 세상을 조종하고,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깨우쳐 주러 온 것입니다. 또 그 생각이 틀린 것을 안다면 당연히 제사는 지내지 않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종교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거나 기독교 고유의 의식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로 잡으시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단순히 효도를 강조하는 유교적 선한 가르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환생과 귀신같이 영적인 차원을 믿는 종교적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상 불신자들도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심지어 본문의 헤롯처럼 부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의 결정적 잘못은 자기들도 귀신이 되어서 후손들의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자기 멋대로 형통하고 싶은 것입니다. 영원토록 자기가 자신의 주인일 뿐입니다. 죽어서도 하나님의 간섭은 죽기보다(?) 싫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다 못해 무시무시한 생각, 아니 고집입니까? 그 고집을 꺾으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어도, 사실은 그들이 죄 없는 주님을 죽여 놓고도 지금까지도 그 고집을 버리지 않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4,5 - 문맥에서의 뜻은 조금 다르지만 그 영적 의미와 원리는 동일하므로 인용했습니다.)

지금 불신자들의 어리석음을 탓하자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이런 글을 아무리 보여줘도 여전히 눈도 깜짝하지 않을 정도의 어리석고도 견고한 진이 그 심령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저부터도 바로 그랬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자는 것입니다.

나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나는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서 내 멋대로 살겠다는 무시무시한 사고, 철학, 믿음(무엇이라 명하든 간에)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실제로 완전하게 라는 뜻임, 사단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신자가 복음을 전해줘도 콧방귀도 안 뀌었지 않습니까? 스스로 우준하게 되어 자신을 자기의 우상으로 만들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체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를 알고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다행입니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이지 않습니까? 평생을 귀신의 조종에 놀아나다가 죽어서도 그 부하가 되겠다고 설쳤고, 나아가 크게 자랑하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그에 대한 벌은커녕 도리어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역으로 따져서 이젠 십자가 복음을 사람들 앞에 크게 자랑하고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주님의 종이 되어서 죽기까지 비록 머리 둘 곳이 없어도 그분이 가신 좁고 협착한 길을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따라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환생이나 귀신이 아닌 참 부활이 그 종착지에 기다리고 있으니까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9/5/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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