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23-25 한국에 전쟁이 날 것인가?

조회 수 460 추천 수 25 2010.08.18 17: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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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쟁이 날 것인가?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2:23-25)


출애굽의 소명을 주려고 모세를 부르기 직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상달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은 그 전에는 그들을 까마득 잊고 계시다가 그 소리를 들으시고 비로소 그들을 구출해 내려고 결심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불러냈습니다. 밤을 새운 얍복 강가의 씨름에서 당신께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에게 창대한 민족의 선조가 되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언약을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걸고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래는 자신들의 노력과 형편과 상관없이 그 언약대로 진행되게끔 이미 정해졌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아브라함이 그 언약대로 따르지 않아도, 심지어 제사와 기도에 등한해도 그러합니다. 아니 온갖 죄를 지어도, (실제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언약대로 실행하십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출애굽 시켜주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걸고 언약을 세웠기에 당신의 이름 때문에라도 언약은 반드시 완성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부르짖어서 구원된 것처럼 기록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해 수준을 고려한 것입니다. 성경 독자는 신자입니다. 만약 성경에 하나님의 세세한 뜻까지 다 밝히면 이해가 안 되어 아예 읽지도 못할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신자의 기도와 함께 시작하는데 당신의 역사에 신자를 동참시키려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는 신자의 기도와 상관없이 당신의 일을 이룬다고 해놓고 이젠 또 기도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조금 혼동됩니까? 하나님은 정말 인간의 온전한 믿음을 보길 원하십니다. 또 그런 믿음을 보일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가시화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말한 대로 그분은 당신의 언약을 얼마든지 혼자서 이루실 수 있지만 그 언약의 상대방도 함께 참여시켜서 이뤄나가기를 오히려 그분께서 더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심으로 언약을 이뤄달라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보여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부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진지하게 따져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아주 미세한 신앙상의 장벽이 가로 막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불신앙으로 떨어지게, 아주 잘 봐주어야 미숙한 신앙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믿음을 보이고 울부짖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니까 문자 그대로 그 역사를 가시화시키려고 울부짖는 경우가 더 많아져버렸습니다. 믿음에 바탕을 둔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내는 종교적 수단이 된 것입니다. 신자가 열심히 기도하여서 하나님께 언약의 시행을 고무, 독촉할 수는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기도란 근본 사고의 바탕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 역사를 앞당기거나 더 풍요롭게 누리기 위해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모르기에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맡겨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인간의 무기력함만 자인해선 안 됩니다.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당신의 때와 방식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을 그분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역사에 내가 모든 것을 바쳐서 동참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자기를 통해 들어낼 그분의 영광이 진짜로 보고 싶어서 설렘과 기쁨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그 영광을 위해 자기는 궁핍하든 환난에 처하든 질병에 걸리든 심지어 순교를 당해도 좋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저의 영광이 된다는 진정한 고백이 따라야 합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는 무슨 일을 만나도 무조건 손해를 입고 핍박을 당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 실존하여 일상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행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배경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고야 만다는 완전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제대로 붙들지 못하는, 아니 제대로 알지도 못한 믿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절대자라는 인식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울부짖으면서까지 기도했는데 왜 역사가 가시화되지 않는지 의심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하신 분입니다. 진선미의 극치입니다. 더럽고 추한 것은 단 하나도 그분과 공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분이 범사를 주관하되 오직 거룩하게만 이끄신다고 믿어야 온당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 진심으로 엎드리는 자의 인생에도 그분의 완전한 거룩하심이 그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 일도 오직 당신의 이름 때문에 당신께서 이루십니다. 그런 신의 성품과 역사에 참예하고픈 열망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열망으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도 반드시 사회, 경제, 문화, 정치, 환경 등의 인간 외적 요소들이 작용합니다. 그 위에 인간의 노력이 가미됩니다. 또 그런 사건들의 연속과 이합집산과 결말에는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범사가 인간의 일로만 여겨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으로 선하신 목적과 계획과 간섭과 인도가 반드시 아주 신비한 모습으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단지 인간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도, 자신의 안목과 이성으로는 그 구체적 흐름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을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이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은혜가 실제로 풍성하게 베풀어지고 있어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할 수 있는 기능은 하나뿐입니다. 비록 모든 일을 직접 우리가 수행 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분의 방식대로 드러나고 만다는 확신과 함께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아니 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믿음으로 자신을 완전히 던져 넣어야 합니다.  
  
단지 그분의 역사를 실체화시키려고 뜨거운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추구하는 대상도 그분의 “역사가 가시화되는 것”뿐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당신의 역사를 가시화시키는 것은 신자의 기도 없이도 지금 당장에 말씀 하나로 가능한 일입니다. 역으로 이 땅을 순식간에 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바는 신자가 구하는 궁극적 대상이 당신의 역사조차도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로 신의 성품에 참예 시키어 당신과 진정한 교제를 이어가기만 소원하십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신자 자신을 바라는데 반해 신자는 하나님 그분을 소원하지 않고 그분의 역사만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먼저 바꿔 놓고 그 주위를 바꾸시길 원하는데 신자는 자꾸만 자기 주위를 먼저 바꿔 주시면 자기도 바뀌겠다고 고집하는 셈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역사는 신자를 통해서 일어나지 신자의 주변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믿음의 아주 미세한 차이라고 말한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언약을 자주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 언약을 상기시켜드리기 위해서 울부짖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기억상실증 환자는 신자 쪽입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언약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언약은 잘 기억하며 너무 철저히 믿습니다. 어떻게 하든 그분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니까 말입니다.

대신에 그분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을 거의 매번 잊습니다. 신자에게 일어나는 범사에는 그분의 능력보다는 그분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이 더 풍성히 담겨 있는데도 눈치를 전혀 채지 못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아무리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어도 당신의 거룩하심에 위배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조차 모릅니다. 나아가 그분의 언약은 오직 그분의 거룩성에만 바탕을 두었기에 절대로 변개, 타협, 취소되지 않음도 미처 모릅니다.

최근 한국에선 전쟁이 곧 날 것이니까 한국교회들은 회개하라는 한 흑인 목사님의 설교로 인해 찬반 논쟁이 분분합니다. 자연히 그 예언(?)의 증험과 신학적 정통성이 토론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특이한 반응을 접했습니다. 은퇴하신 한국목사 한분이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외칠 때는 꿈적도 안 하더니 지금 외국 목사가 그러니 이 난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물론 전쟁이 난다니까 큰일 났다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평소에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왜 회개해야만 할 일을 했습니까? 물론 신자나 교회가 잘못을 범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로 전쟁이 날만한 잘못과 죄악은 저지르지 말았어야 합니다. 지금 그분의 예언이 옳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따질 때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왜 그런 쇼킹한(?) 이벤트에만 이리 난리법석을 떱니까? 그냥 그분 설교의 성경적 원리만 새겨들으면 될 것 아닙니까? 평소에 믿음이 성경 말씀 위에 온전히 서있다면 전혀 그런 예언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장래 일을 구체적으로 계시하는 일은 극히 드물고 대신에 신자가 그분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라는 경고를 자주 발하실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를 대하는 신자는 설령 전쟁이 나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으며 반드시 선으로 이끄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 자체가 선하다거나, 전쟁이 일어나야 북한이 해방된다거나, 얼마든지 일어나도 좋다거나, 다시 말하지만 그분 예언이 신빙성이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에 하자가 절대로 없다는 절대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그분은 만사를 거룩하게 이끄실 뿐입니다.

한국교회와 신자는 여러 잘못을 두고, 지금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방도도 없지만, 마땅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분 예언의 진위를 논하기 전에 그런 경고를 들었기에 늦게나마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이 나면 큰일이니까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만 울부짖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방식으로 한국교회는 물론 한반도 전체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또 그러기 위해선 신자들부터 정말로 거룩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기도를 할 마음이 생긴 신자부터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위에서 자신이 거룩해지도록 기도하고 또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 이웃에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실상은 어떠합니까?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어서 빨리 구출해달라고 그저 울부짖기 바쁩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는 신자의 기도로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신자가 거룩한 바탕 위에 그분의 거룩이 부어집니다. 신자의 열성 위에 그분의 능력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진리를 신실한 신자들마저 너무 자주 잊고 있습니다. 신자는 오히려 자신의 이런 영적 기억상실증을 없애기 위해서 울부짖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8/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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