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2:1,2 & 9,10 하나님은 왜 미리암에게만 벌을 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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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미리암에게만 벌을 주셨는가?


[질문]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 여호아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민12:1,2 & 9,10)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함께 비방했는데 왜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나요?”

[답변]

행간(行間) 해석의 원리

질문하신 대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그 근거나 이유를 명확히 기술하지 않은 구절들이 꽤 있습니다. 성경도 인간의 글로 기록된 문학적 작품이기에 전체 문맥에 비추어 행간의 의미를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간을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임의로 가정, 추측할 수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적용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먼저 본문 속이나 앞뒤에 깔려 있는 복선, 암시, 상징, 은유 등을 전체 스토리와 연결해 보아야 합니다. 또 반드시 합리성과 개연성을 갖춘 유추여야 합니다. 현실에서 일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야지 비정상적, 초자연적, 비논리적인 가정은 제외해야 합니다.

나아가 아무리 문맥에 맞춘 합리적 분석이라 해도 전체적인 주제와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선 안 됩니다. 이 측면은 성경에선 반드시 하나님의 품성과 상충되지 말아야 하며 또 전체 성경이 말하는 일관된 진리와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 해석에서 쉽게, 특별히 이런 행간 해석에선 더 자주 범하는 오류는 제거해야 합니다. 자꾸만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영적으로 심오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입니다. 문맥 전체나, 저자의 의도나, 당시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단어 하나에서라도 희미한 연결 고리를 발견하면 영적, 초자연적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자칫 무리하고 과장된 해석이 되거나, 본문과는 전혀 엉뚱한 뜻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행간의 추측은 필히 개연성과 합리성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개연성은 단순한 가능성과는 다릅니다.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야, 최소한 50%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단 0.1 %의 가능성도 전혀 발생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우기면서 합당한 해석이라고 제시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합리성은 그 해석이 이치에 닿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간의 능력 밖의 사안을 인간이 행한 것으로, 혹은 하나님의 품성이나 구속 원리에 전혀 어긋나는 일마저 하나님이 하신 양 해석해선 안 됩니다. 한마디로 행간의 유추는 인간 지성과 이성을 적절히 균형 있게 적용하여서 책 전체와 조화되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공평하시다.

주신 질문에는 하나님이 혹시라도 불공평한 심판을 내린 것은 아닌지, 여자를 무시하고 남성우위 사상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라는 의아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행간 해석의 원리에 비추면 그런 의아심은 일단 배제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불공평성이나 남성우위 여성비하의 사상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공평하시다는 것이 어떤 성경 해석에도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미리암만 벌 받고 아론이 벌 받지 않은 것에도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일어난 결과 자체가 그 원인에 대한 힌트를 충분히 제공하기에 개연성과 합리성을 갖춘 유추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미리암이 더 중한 죄를 범했거나, 아니면 아론도 동일한 죄를 범했지만 벌을 주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는 절대 전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기본적인 해석이 도출됩니다. 우선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함에 앞장섰거나 더 중하게 비방했을 것입니다. 아론은 미리암의 충동에 넘어가 소극적으로 동조만 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사전에 입을 완전히 맞춘 듯이 동시에 똑 같은 세기로 비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도 가장 타당한 분석입니다.  

또 동시에 똑 같은 혹은 비슷한 세기로 비방했다 치면 이미 말한 대로 아론에게만 벌을 면제해 주어야 할 하나님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적 편애를 적용했을 리는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아론이 대제사장 직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직분에 따른 특혜를 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정결해야 하는 대제사장이 부정한 병의 대표인 문둥병에 걸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대제사장은 일반 백성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에 치료와 감독을 해야 하고, 다 나았을 때에는 결례를 집행해주는 위치입니다. 그런 자더러 문둥병에 걸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이 진행된 면면을 보면 그러합니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것을 보고는 아론이 모세에게 용서를 빌며 그 소임을 다했습니다.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9,10절) 하나님과 대면해서 말하는 선지자 모세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중보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뜻

물론 이런 쉽게 유추되는 뜻 외에 전체 문맥 속에 숨어 있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론과 미리암을 야단치는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이 다른 선지자들의 그것과는 훨씬 다르다는 데에 야단의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또 그렇게 야단쳐야만 하는 근거도 아론과 미리암의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어서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불평을 가장 큰 잘못으로, 아니 그들이 범한 죄의 본질로 간주하셨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비방한 일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을 주신 일차 이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이 모세만 따로 시내 산이나 회막에 불러서 직접적인 계시를 주는 것에 불평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 불평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하다가 구스 여인 사건이 나자 그것을 구실로 모세의 지도자 자격을 회중들 앞에서 문제 삼은 것입니다.  

모세가 이방인 구스 여자를 취한 이유는 본처 십보라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이방여자와의 결혼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상 숭배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함께 영적으로 타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지, 이방 배우자가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했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이방인과 결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 제사장 딸과 결혼한 요셉과 이방여인이지만 유대인과 결혼해 여호와 신앙을 갖게 된 롯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도 모세가 이방여인을 취하는 데에 도덕적 종교적 하자가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세의 재혼을 계기로 평소의 불만을 겉으로 드러냈습니다. 시쳇말로 모세가 혼자서 너무 설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 재혼도 모세 혼자 결정해 통보만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들 불평의 또 다른 의미는 모세가 선지자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물어봤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같은 선지자 입장에서 이방여인과 재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선지자 자격 내지 권위 타령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이긴 하지만 상당한 타당성을 가집니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들었음에도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기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재혼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아닌 근거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나 회중 앞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두고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고 칭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모세에 대한 불평은 따지고 보면 사실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만 믿고 너무 제 멋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결국 하나님부터 제 멋대로 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이번 구스 여인과의 재혼은 자기들 보기에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뜻 허락했을 리가 아무래도 없고 그랬다면 하나님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이 모세가 일반 선지자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시의 열 재앙이나 홍해 기적이 일어날 때에, 광야로 백성을 이끌면서 온갖 이적을 일으킬 때에, 특별히 시내 산에 혼자 올라가 율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온 백성의 지도자로 삼아서 자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계시를 주는 것을 분명히 목도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모세만 선지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선 더더욱 그들 스스로도 모세가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는 그 부분을 재차 집중적으로 야단쳤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다짐시킨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모세만 편애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권위를 다시 세워주자는 뜻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내뱉은 불평이 내가 세운 모세의 지도자 직분을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흔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았고 그 잘못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가 하자 없이 그 직분을 수행한다면 그에게 순종해야만 그 공동체가 온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설령 지도자가 행한 일이 온전히 납득이 안 가고, 아니 한두 번 분명한 실수를 했다 쳐도 하나님을 보고 또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를 위해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도자가 분명한 잘못을 고의로 계속해서 저지른다면 당연히 순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선 반석을 지팡이로 친 것과, 백성들 앞에선 이번 재혼 사건을 제외하고는, 사실은 잘못도 아님,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하나님과 대면해서 직접 계시를 받는 그를 뒤에서 비방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요, 당신께서 세우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대조하여 모세는 이 사건에 침묵함으로써 “나의 온 집”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 충성했다고 하나님이 칭찬한 것입니다.      

아론도 벌을 받았다.

어쨌든 왜 미리암만 문둥병이 들었을까요? 성경은 참으로 정미한 기록입니다. 이번 경우처럼 직접적인 이유를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았어도 그러합니다. 살펴본 대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는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와도 모세 같은 능력을 주고 또 직접 대면해서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품고 있던 그 불평을 모세의 재혼 사건을 빌미로 터뜨린 것입니다. 구스여자와 재혼을 먼저 비방한 후에 모세의 지도자 직에 대한 불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미리암만 문둥병의 벌을 받았습니다. 뭔가 집히는 내용이 없습니까? 먼저 기술된 구스 여자와의 재혼 사건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힌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에게 누나로서 각별한 애정을 지녔습니다. 히브리 신생아를 다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갈대 상자에 넣어서 나일 강에 띄웠던 장본인입니다. 또 그 상자를 바로의 공주가 주워서 자기 아들로 삼는 것을 다 지켜봤습니다. 모세의 생명의 은인인 셈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모세의 후견인 노릇을 자처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그녀가 앞장서서 모든 백성을 하나님께 찬양토록 했지 않습니까?

자연히 그녀는 모세가 상처한 것을 가장 안타까이 여겼을 것입니다. 또 죽은 시누이 십보라와도 평소에 아주 친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아무 의논도 없이 구스 여자와 재혼부터 한 것입니다.

같은 여자로서, 동생을 각별히 아끼는 누이로서, 또 상처한 모세를 지금껏 후견인으로 자처해 행한 대로, 이제부터 시누이 대신에 보살피려는 각오를 하고 있는 참에, 나아가 같은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이끌어 온 입장에서, 분노와 시기가 생기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아론보다 먼저 더 많은 불평을 터뜨렸을 것이라는 해석에 충분한 개연성이 실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은 하나님이 아론에게도 벌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진짜 죄 즉, 지도자와 하나님에 대해 불평한 잘못을 크게 야단쳤습니다. 당신의 뜻을 다시 깨우쳐 주었습니다. 아마도 아론은 모세의 재혼 사건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단지 미리암에게 동조만 해주었을 것입니다.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안다고 상식적으로 따져도 홀아비의 재혼은, 비록 그 상대가 이방여인이라 해도, 같은 남자로서 크게 마음에 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 처첩을 두었던 당시의 사회 관습에 비추면 사실상 아무 문제 될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모세의 형으로서 평소 동생이 혼자 설치는 것 같으니까 알게 모르게 불평을 지녔을 것입니다. 당연히 모세의 선지자 직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누이에게 동조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번 사태를 선도했을 뿐 아니라 모세의 재혼과 지도자 직분 둘 다를 적극 비방했던 미리암에게는 문둥병과 야단이라는 두 가지 벌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소극적으로 동조하되 모세 지도자 직만 더 크게 문제 삼은 아론에게는 야단치는 벌만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더 깊은 뜻

이런 기사를 볼 때 신자가 반드시 유념해야할 사항으로 하나님의 공평성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보다는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심판은 불신세상에게, 구원은 당신의 자녀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신자에게는 잘못에 대한 징계만 내립니다. 또 징계 자체나 신자로 징계를 견디게만 하는 것이 그 목표가 아닙니다. 그분은 신자의 거룩해짐과 그가 속한 공동체가 온전해지는 일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그런 징계 가운데도 당신의 온전하심과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 내지 징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왜 이런 불공평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날까 의아심 내지 불평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징계라도 당장은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자연발생적 반응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감정 내지 인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그 이유를 따지려 듭니다. 최악의 환난을 당했음에도 입술로도 하나님에 대해 망령되이 행하지 않았던 욥조차 그 이유만은 알려고 몸부림쳤지 않습니까?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 대신에 구원에 관심을 먼저 쏟으면 그 최종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분 역사의 최종 결과는 항상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최종 결과부터 보게 되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의 유추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본 주제처럼 선뜻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그 결말까지 추적해서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최종 결말을 분석할 줄 알게 되면 역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재확인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그분의 더 깊은 뜻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뜻 앞에 진정으로 머리 숙여 순종하게 됨도 물론입니다.  

왜 미리암만 문둥병에 들었는가라는 질문도 당장의 징계에 포커스가 맞춰진 셈입니다. 대신에 그 결말을 보십시오. 미리암과 아론은 회개했고, 모세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미리암을 칠일 간 정결 절차를 거치게 한 후에 낫게 해주었으며, 그 동안 진행을 멈추었던 이스라엘 공동체는 재정비하여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미리암만 문둥병이 들게 된 까닭도 하나님이 바로 이런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즉, 심판이 아닌 구원을 주려고 반드시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또 그 모든 진행이 완벽하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면서 당신의 공평성에도 절대 상충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마다 더더욱 깊이 파고들어서 묻고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성경을 이해 해석 적용하는 관점은 반드시 더 넓고 길게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섭리와 거룩한 품성에 비추어서 잘 분석해보면 그런 의아심이 쉽게 제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가정해 보라.

지금 이 징계 절차를 거치는 데에 하나님은 모세까지 세 사람을 불러 세웠습니다.(4절) 그리고 그 중에서 잘못한 당사자 둘을 따로 더 앞으로 불러서(5절) 둘 다에게 크게 야단을 치고선 당신은 이스라엘 진에서 떠납니다. 그러자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이제 나머지 절차는 너희 삼인이 알아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삼인은 한 형제였을 뿐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동기간 분열이 그 가정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인격에도 금이 가기에 다른 이가 존경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지도자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 이스라엘 공동체에 분파 내지 와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암에게는 그녀가 가장 먼저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문둥병이 들게 하되,  그 치료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7일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벌은 그녀에게만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일에서도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가는 필수적 과정의 첫 단계였을 뿐입니다.

우선 아론이 그녀의 벌 받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또 대제사장직에 대한 소명감을 다시 붙들게 되었습니다. 누이를 위해 가족으로서, 같은 선지자로서, 대제사장으로서, 나아가 함께 하나님 앞에 잘못을 범한 자로서, 해야 할 바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특별히 그녀를 불쌍히 여기며 모세더러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용서를 아뢰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모세의 직분에 대한 불평은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순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 또한 온유했기에 자신에 대한 잘못된 비방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의 독단과 정욕이 앞선 재혼이었다 치면 더더욱,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어쨌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절차를 스스로 거친 셈입니다. 또 누이를 위해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아론에 대한 기도는 없고 그녀의 치유만 간구했다는 성경 기록도 해석의 한 가지 힌트가 됩니다. 아론의 잘못이 그녀에 비해 분명히 적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기간의 우애가 회복되었고, 삼자가 다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써 그 잘못을 씻었고, 또 그들의 인격에 금이 가는 것을 막았으며, 자칫 훼손될 뻔했던 선지자 직분의 권위가 회복되었고, 모세의 특별한 직분은 그대로 유지 발전되었으며, 이스라엘 공동체는 다시 하나로 회복되었고, 그 진을 떠났던 하나님은 돌아와서 그들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대로 세 지도자들 사이와 그 공동체 안에서 영적 소생과 부흥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제기하신 질문을 역으로 가정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아론에게도 똑 같은 벌을 내렸다면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말한 대로 두 사람이 동시에 똑 같은 세기로 똑 같은 잘못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심령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은 누가 더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확하게 아시기에 그에 걸맞은 공평한 벌을 내리십니다. 절대로 완전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에게는 단 한 치도 실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공평성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또 아론은 앞으로 대제사장직을 도무지 수행할 자격과 입장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두 사람의 모세에 대한 불평과 비방이 수그러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짝꿍(?)이 되어서 계속 하나님의 특혜(?) 가운데 있는 모세에 대한 미움을 거두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동기간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분열이 치유될 수도 없습니다. 지도자가 먼저 화목해져야 그 백성들도 화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신자 각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서로 잘못을 용서하고 허물을 품어주며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도 하나님의 그런 목적은 여실하고도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며 궁극적으로는 당신만의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입니다.

7/1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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