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하나님의 해결책

조회 수 447 추천 수 15 2009.11.11 1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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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하나님의 해결책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11:6-8)


인간이 바벨탑에서 범한 죄는 언어가 하나인지라 “한 무리가 되어서” 하나님께 직접 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고 지면에 흩어서 여러 족속으로 나누었습니다. 당연히 성 쌓기를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 쌓기는 그쳤을지라도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습니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께 대적한 것이며 성 쌓기는 그 죄의 결과라고 본다면 사실상 문제의 핵심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방식만 다르다뿐이지 사람들이 힘을 합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즉 바벨탑을 쌓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나아가 비록 여러 족속으로 흩어졌어도 한 족속 안에선 언어가 같습니다. 이전처럼 세계적인 제국을 이루어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은 없어졌다 해도 개별 족속 전부가 하나님과 대적하는 경우가 많고 또 족속들 간에 다툼이 끊어지지 않아 죄악은 더 넘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단지 성 쌓기만 금지시키려 했다 쳐도 현대의 마천루는 바벨탑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결국 성 쌓기나 당신께 대적하는 것이나 둘 다 이전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의 구음을 다시 하나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오순절에 나타난 방언은 예수님의 유대인 제자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복음을 전한 것(행2:11)이었지 구음을 통일시킨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영어가 국제적 통용어가 됨으로써 언어가 하나가 되어가는 셈입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언어를 혼잡케 하여 죄를 방지하겠다는 하나님의 해결책은 효력이 없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십니다. 나아가 신구약 시대를 이어서, 아니 영원토록 그 뜻은 변치 않습니다. 언어를 혼잡케 한 것이 단순히 인간끼리의 의사소통 자체를 불편하게 하거나 막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족속들이 나오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이 있는 반면에 그분께 순종하며 경배하는 민족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으로 하여금 여타 민족들이 힘을 합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막는 당신의 일군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바벨탑의 고장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그 후손을 창대케 하신 후에 드디어 시내 산에서 당신의 그 뜻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오순절에 방언을 주신 것도 동일한 뜻입니다. 유대 민족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소명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을 막아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새 족속이 다시 필요했습니다. 꼭 방언을 하는 신자만이 새 제사장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에서 어떻게 선언했습니까?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17-21)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린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로 세상 족속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즉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소망하는 신자로 하여금 세상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을 막도록 만드셨습니다. 신자는 빛으로서 사람들로 죄를 죄로 인식하게 하고 소금으로서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럼 세상에 아직도 바벨탑 쌓기가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이 빈번한 이유가 결국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실패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시대엔 하나님을 아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신약시대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줄 아는 신자들이 실패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아는 자로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을 책임지게 한 그분의 계획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죄를 범한 자들을 직접 그것도 죄를 범할 때마다 회개할 여유를 전혀 주지 않고 일일이 벌하라는 뜻 아닙니까? 그럼 과연 이 땅에 인간이 지금껏 남아 있겠습니까? 바벨 탑 때에, 아니 그 이전에 아담과 이브만 잠시 출현했다가 바로 완전 멸종되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바벨탑에서 언어를 혼잡케 하신 뜻은 궁극적으로 아담에게 문화 명령과 선악과를 주신 것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기쁘게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죄악과 환난이 있더라도 심지어 세상을 한시적으로 사단의 조종 아래 있게 하더라도 당신께선 신자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또 신자에게 모든 일을 전적으로 의뢰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그런 의도에 맞추어 신자도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맡긴 소명에 죽기까지 충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오히려 핍박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더라도” 말입니다. 그것도 대적이 곧 쳐들어 올 것을 알고 무서워 떨면서도 말입니다.  

신자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즉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세상은 썩어가고 바벨탑은 곳곳에 계속해서 세워질 것입니다. 바벨탑을 직접 쌓지는 안했어도 신자가 그 일을 도와주는 형국이 되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께서 세우신 뜻과 계획을 절대로 철회하지 않는 하나님이 그 책임을 반드시 신자들에게 묻지 않겠습니까? 신자는 세상에 죄악이 흘러넘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경륜이 때가 되면 반드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바꿔 말해 신자가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 한 세상은 바벨탑들 더미에 묻힐 것입니다.  

11/1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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