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불만(6)-괴로운 하나님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함이니라"(말2:17)
신자들이 어떻게 할 때에 하나님은 가장 괴로워할까요? 죄를 지었을 때일까요? 당신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았을 때인가요? 아니면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 세 경우도 그럴 수 있겠지만 오히려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훨씬 다른 것이라고 지금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로서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셋째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자체를 이상한 별명이나 욕설로 바꿔 부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선 사람의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전존재, 전인격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 품성, 하는 일 등이 잘못되었다고 불평, 왜곡, 비판, 비방하는 것입니다.
물론 말이란 음성을 통해 겉으로 어떤 의견이 표출되어야 하지만, 신자라면 두려워서라도 하나님에 관해 공개적인 비판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특별히 이런 종교적 의견은 반드시 오랫동안 품었던 생각의 반영이지 우발적인 감정의 표현이나 통상적 대화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불신과 불평을 갖는 것도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고 말로 하나님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말이란 크게 보아 단순히 의사 전달을 하는 것과 자기 의견을 주장하여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려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는 것 같은 종교적인 언급은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죄로 물들이려는 아주 큰 죄에 해당됩니다. 설령 남을 설득코자 하는 고의성이 없다 할지라도 주위에 영적인 영향을 알게 모르게 끼치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불평은 모든 세대, 모든 장소의 신자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에 대해 갖는 불만입니다. "왜 행악하는 자가 오히려 현실에서 형통합니까?"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론은 너무나도 간단하고도 쉽습니다. "세상 만사를 내가 주관하는데 너희가 행악하는 자가 형통한다고 불평하는 뜻은 내가 그들을 기뻐한다는 말과 같지 않느냐? 그럼 내가 과연 악인을 기뻐하겠느냐 싫어하겠느냐? 너희가 나를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것 아니냐?"
악인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이유는 그들은 오직 세상만을 목표로 해서 세상에서 통하는 방법으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학벌, 가문, 권력, 사기, 부정, 폭력 등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쉬운 예로 주일날에도 영업하니까 최소한 신자보다 1/8은 일단 더 벌고 들어가는 셈입니다. 세상의 신인 돈에 대해 부러워하면 세상 방법을 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입니다. 신자가 그런 현상을 두고 하나님은 오히려 악인을 두둔하여 공의를 굽게 한다고 불평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도 세상의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닌 다음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훨씬 다르게 나타납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1:28-31) 하나님을 외면한 채 세상에서 세상 방식대로만 살겠다고 고집하는 자들을 그 고집대로 살아라고 가만히 버려 두는 것입니다. 악을 즐기는 자를 악 가운데 있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갖는 유일한 목적은 거룩하게 변화시켜서 당신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형통의 기준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이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를 주관하는 원칙도 오직 이 목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히 되면 그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고, 또 그 목적이 달성되면 당신의 공의는 정당하게 실현된 것입니다. 요컨대 거룩한 자는 거룩하게, 악한 자는 악하게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데 태초부터 영원토록 이 공의는 단 한번도 굽은 적이 없습니다.
돈만 밝히는 자는 사기나 악독으로도 돈을 무조건 많이 벌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당연히 현실적으로 형통해 보입니다. 반면에 그 사실은 하나님 입장에선 악을 악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자마저 오히려 그것을 선으로 보고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하다고 불평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불평입니까?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백성마저 당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니 하나님으로선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괴로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12/26/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