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1:4 주께만 범죄 했다면 사람에게는?

조회 수 1908 추천 수 7 2009.09.18 00: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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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만 범죄 했다면 사람에게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51:4)


성경(롬1:18-23)은 예수를 모르는 자연인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선 사람마다 갖고 있는 양심은 인간이 물질에서 우연히 진화되었다면 절대 생길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너무나도 웅장하고 정미한 자연계를 관찰해보면 반드시 그 배경에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을 스스로 찾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 왕이 심복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마저 전쟁에서 죽게 만든 죄를 나단 선지자로부터 지적당한 후에 참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윗은 “하나님께만” 범죄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고의건 무지건 끝까지 외면하는 자가 한 쪽 극단이라면 다윗은 하나님께 너무 아부(?)하는 또 다른 극단처럼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부하를 죽였고, 그 부하의 가정을 파괴했고, 또 불륜의 씨앗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는 그래서 이중의 살인을 범한 엄청난 죄를 지었으며,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부하들이 받은 상처 또한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이 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은데도 왜 하나님께만 범죄했다고 했을까요?      

미국에서 12살 소녀의 강간살인범을 잡고 보니 그동안 해결되지 못한 다른 여러 범죄의 용의자임도 밝혀졌습니다. 본인이 자백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컴퓨터에서 ‘my sins'라는 파일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암호해독전문가를 동원하여 16시간 만에 수십억 가지의 조합으로  파일을 열어봤더니 살인 강간을 포함해 6가지 중범을 저지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파일을 여는 패스워드가 ‘Godhelp'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최고로 흉악한 연쇄살인범도 자기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는 죄인임을 은연중에 실토한 것입니다. 자기 심령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호소를 외면할 길은 없었고 그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용서를 갈구했다는 증거입니다.    

최대의 불신앙과 배교를 저지른 자가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소원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God help me!"를 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만 범죄했다는 표현이 사람에게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어지간한 범죄는 사람에게 충분한 손해배상을 하면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면 어느 정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아무리 용서를 받아도 끝까지 심령에 남아 있는 죄책감은 스스로는 또는 인간끼리는 절대 지울 수 없는 법입니다.  

예의 강간살인범은 아마 어렸을 때 받은 큰 정신적 충격으로 이상성격자가 되었거나, 부모나 사회로부터 냉대 받은 것을 복수하려는 동기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것입니다. 나아가 죄에 중독되고 사단의 조종에 놀아나 범죄 충동을 자제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피해자인 사람에 대해서 별로 미안한 감을 못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심령은 “God help me!”'라고 부르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도 다윗처럼 저는 “하나님께만 범죄”했다고 자백한 셈입니다.

신앙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죄를 짓고 나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도덕교육이나 사회관습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원시사회의 미개인이나 교육을 미처 받지 못한 어린이도 죄를 지은 후의 반응은 동일하지 않습니까? 또 도덕률을 최초로 세운 사람은 따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의 호소를 따랐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범죄자는 방구 뀐 사람이 먼저 화를 낸다고 막상 사람들 심지어 그 피해자 앞에서조차 오히려 아주 당당한 것처럼 행세합니다. 반면에 혼자 조용히 떨어져 있으면 어김없이 죄책이 자기를 괴롭힙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죄의 근본적인 발생과 그 미치는 궁극적인 결과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 즉 하나님과 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기준과 궁극적 심판자가 없이 인간끼리 있으면 서로 많이 차지하려는 탐욕으로 자연히 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엄격하게 따져서 죄가 죄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없는데 무슨 짓인들 못합니까? 어떤 수를 쓰더라도 감옥에만 가지 않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신 세상이 온갖 죄를 법률로 규정하여 벌을 주는 이유는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차원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사회나 사람이 한 사람의 양심의 가책까지 책임져 줄 수는 절대 없습니다. 죄책을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오직 본인의 양심뿐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심이 하나님의 존재뿐 아니라 모든 죄가 하나님께 짓는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입증하는 셈입니다. 나아가 죄의 궁극적 용서도 당연히 오직 하나님께만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신자와 불신자의 명확한 구분이 생깁니다. 누가 죄를 많이 짓는지 여부가  아니라 죄와 하나님의 상관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의 차이입니다. 불신자는 죄를 짓게 되면 분명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연관을 시키지 않거나 못하는 자입니다. 신자는 그 반대로 모든 죄를 반드시 하나님께 갖고 나와 회개를 구하는 자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에 그 처에게서 간음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윗의 경우와 완전히 정반대이지만 죄의 성격은 동일했습니다. 그 때에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면서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간음을 하면 그 주인인 보디발에게도 득죄가 되는데 그도 하나님께 득죄한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사람이 짖는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게 지은 것이라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불신자이든 신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는 그 사실을 몰라서 그분의 용서의 은혜 밖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자라면 언제 어디서든 그분께 득죄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인간에게도 득죄하지 않게 됩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정죄했을 때에 그가 그 숨겨진 범죄를 성령의 깨우침으로 알았을지, 아니면 우리야의 살인음모에 가담한 요압의 발설로 알게 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윗으로선 심복 중의 심복 요압이 침묵하고 있는 한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러 허물을 가릴 수 있어서 설령 죄의식이 생겼더라도 짐짓 무시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밧세바의 배가 점차 불러와 간음한 사실이 천하에 공개되었고 나아가 나단이 살인한 죄까지 추궁하니 도무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두렵고 떨리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기 양심에서 들려오는 추궁마저 귀를 막았다는 죄책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까뒤집어 반추(反芻)해 보니 도덕적 책임감과는 별도로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하며 흉악한 자였음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죄인 중에 최고의 괴수이니까 사람에게보다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더 급선무였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은밀하고도 부끄러운 죄를 다 갖고, 아니 계속 저지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신자라고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죄란 결국 하나님께만 범죄한 것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은밀한 죄라서 그 과정과 결과를 다른 사람 심지어 자신조차 몰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모든 인간은 그 심령이 항상 두렵고 떨린 상태에 처합니다. 다른 말로 심령의 소생으로만 죄가 용서되지 행위의 보상으로는 결코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죄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서 발생하기에 궁극적인 용서는 그분께 달렸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그분께로 온전하게 돌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그 죄를 씻어주지 않는 한  죄는 죄로서 또 그 심령은 항상 부끄럽고 두려운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다윗의 “하나님께만 범죄했다”는 고백은 왕으로 사람을 무시했다는 뜻이 아니라 비록 그가 구약시대에 살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이어지는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나에게 거두지 마소서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라.” 그는 영원히 살아계신 구세주 예수님을 심령으로 만난 것입니다.

당신은 신자임에도 혹시 지금 남이 모르는 은밀한 죄를 짓고 있습니까?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여전히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녀임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 “제가 하나님께만 범죄 했으니 God help me!"라는 눈물의 통회가 나오는 한에는 말입니다.

1/1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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