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으키는 신자가 되려면?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나이다.”(단2:28)
많은 신자들이 다니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해주는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크신 능력을 가졌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치웁니다. 또 기도하면 이런 신비한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마치 어린이가 이웃집 아이에게 우리 아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잘 알다시피 왕은 모든 술객과 박수와 점쟁이들에게 자기 꿈의 내용부터 스스로 파악해서 해몽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무리 왕이지만 너무 억지 같아 보입니다. 아마 뭔가 굉장히 중요한 꿈을 꾸긴 꾸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꿈자리가 아주 뒤숭숭해서 분명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상 숭배하는 바벨론 술사들로선 당연히 단 한명도 꿈을 알 수 없었고 화가 난 왕은 당장 모두 죽이라는 또 다른 억지 명령을 내립니다. 꿈자리가 너무 사나웠기에 왕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초조했거나 공포에 떨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반면에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다니엘은 당연히 꿈의 내용을 계시 받아 정확히 해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에는 크기의 대소가 없이 모두 크십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로 전쟁에 승리케 하거나, 유황불로 소돔을 멸망시키거나, 태가 닫힌 여종에게 아들을 주는 등의 역사보다 더 오묘하고, 어쩌면 더 큰 능력 같지 않습니까? 혼자서 꿈꾼 내용을 어찌 제삼자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중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가 기도한들 알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기도하면 이뤄주신다는 진술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문의 해석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단지 그런 메시지뿐이라면 왕의 꿈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벌어졌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기도하자 하나님은 과거에 왕에게 일어났던 일을 조사해서 꿈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떻게 말합니까? 왕의 꿈을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꿈은 왕의 잠재의식적 상태 즉, 평소의 소망이나 간구나 생각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꿈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했음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왕더러 그런 꿈을 꾸게 했고 또 그것을 다니엘더러 해몽케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육안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영역에서만 일련의 일들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시적 현상이나 사건을 바꾸는 통상적 기적이 아니라 인간 영혼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관하셨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먼저 이상을 보이고 난 후에 전혀 다른 이에게 동일한 이상을 보였습니다. 지금 같이 비디오 녹화한 것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영혼에 동일한 이상을 시차를 두고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일이 기도한다고 쉽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못한 첫째 이유는 대부분의 신자가 이런 기도를 평생을 두고 거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개 자기 주변의 여건과 사건만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꿔달라는 즉, 일상적인 기적 내지 은혜만 간구하지 않습니까? 다른 이의 생각이나 영혼의 상태를 정확히 헤아려서 그들의 슬픔이나 고뇌에 동참하여 함께 짐을 지고자 하는 기도는 거의 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통케 하는 능력을 내 삶에 실현시키려는 ‘욕심’과, 다른 이의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 씻어주려는 ‘긍휼’이라는 기도의 두 동기 중에 하나님이 어느 것을 기뻐 받으실 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습니까?
또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벨론의 우상 숭배하는 술사들의 목숨마저 소중히 여기어 하나님께 그들을 구해 달라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탄의 종일지라도, (따지고 보면 모든 불신자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왕의 독선적 명령에 개죽음 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비유컨대 회교 국가의 종교지도자나 김정일의 부하들이 다 죽게 되었는데도 현지 선교사가 그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한 셈입니다.
다니엘로선 비록 그들의 종교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사람들마저 미워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가 설령 바벨론 술사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해도 그냥 방관해선 어떤 선한 결과도 나오지 않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도 왕의 마음부터 바꾸는 것이 급선무인줄 확신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평소에도 하나님의 일이라면 자기 목숨을 거는 자였습니다.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넣는다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저에 행하던 그대로 할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단6:10)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왕께 바로 고발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께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일을 그만 둘 수는 결코 없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곧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만도 자신의 죽음과도 바꿀 만큼 귀하며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다니엘이 이럴진대, 단순히 기도하면 무엇이든 하나님이 이뤄주신다고 섣불리 말할 수 있습니까? 또 너무나 힘든 고난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료 신자더러 기도의 양이 차지 않아서 그렇다고 함부로 충고할 수 있습니까? 앞에서 말한 대로 그들의 마음의 상처와 슬픔에 동참은커녕 제대로 헤아려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무조건 기도가 성도가 겪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떠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가 그렇지 않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 기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범사를 하나님이 당신만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이끄신다는 확신은커녕 인식이 정말 없다는 것입니다. 범사를 그분께 의탁하며 소망 가운데 잠잠히 인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열성은 그리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7)라는 고백을, 그것도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면서”(46절) 하게 했지 않습니까? 이방 왕궁에 당신 이름을 스스로 높이셨습니다. 왕이 이상을 받되 제대로 기억치 못한 것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결과가 또 있습니다. 다니엘로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48절)이 되게 한 것입니다. 바벨론 총리가 된 개인적 입신양명은 문제가 아닙니다. 바벨론 박사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상 숭배하는 술사와 박사들을 다 죽이기보다는 다니엘의 지도를 받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비유컨대 이슬람 지도자들이나, 김정일 부하들을 기독교 선교사에게 성경공부 받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 아닙니까? 그들을 죽여 없애는 것은 하나님께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대신에 살려서 당신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이 큰 기적을 우상 숭배자마저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는 충성된 종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이었습니다. 요컨대 우리더러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뤄주신다는 교리에 목숨 걸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목숨 거는 자가 먼저 되라는 뜻입니다. 단 불신자, 아니 우상숭배자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말입니다.
2/12/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