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0:28 영원을 사모하는가?

조회 수 413 추천 수 4 2009.10.25 2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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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사모하는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으로 전도 여행에 내보면서 여러 가지 사항들을 교육 시키는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스승인 예수님까지 바알세블이라고 비방했으니 그 제자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멸시와 핍박이 따를 것이지만, 그런 훼방은 단지 이 땅에서의 육신적인 것에 불과하니까 두려워할 것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몸과 영혼을 다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오직 천국 복음만 담대하게 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 제자들에게 한 당부치고는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자면 구태여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는 상황도 아니고, 또 예수님이 전도에 열심을 내라고 당부하면서 “잘못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까 알아서 해!”라고 겁줄 리도 없지 않습니까? 천국 상급이 기다리고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꼭 이런 부정적인 표현을 써야 했을까요?

물론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사람들의 핍박과 하나님의 심판을 대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육신적인 위해를 가하더라도 절대 그 영원한 운명에는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인 심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열심히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핍박을 해도 너희에게는 절대자 하나님이 함께 하니까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복음을 전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최소한 초월적 힘을 가진 신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다들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꼭 종교를 갖지 않아도 나름대로 신에 대한 경외감을 갖는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그래서 왜 어떻게 그분을 경배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단지 인생을 살다보니 자기 힘으로 안 되는 일이 많고 뭔가 초월적 힘이 있는 것 같다는 본성적인 두려움을 가진 것뿐입니다.

신자는 다릅니다.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이 실제로 자신의 삶에 반영이 되어야 합니다. 정작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나와의 관계가 어떠하다는 것에 관한 온전한 지식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믿음에 바탕을 둔 온당한 반응을 그분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 반응은 필연적으로 경배(Worship:모든 가치를 오직 그분에게만 돌리는 것=worth+ship) 뿐입니다. 그분의 권능이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엄청나고 오묘하며 또 그 권능으로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귀해서 저절로 감사함으로 무릎 꿇어야 합니다.  

현실의 보상을 바라거나 사후의 심판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것은 아부나 흥정에 불과합니다. 간혹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지만 자칫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만족감을 위해서 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것 또한 따지고 보면 자기가 자신에게 아부하고 흥정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미국 프로야구 투수 터그 맥그로우는 자신의 투구철학을 "얼음 눈덩이(frozen snowball)"라고 표현했습니다. 만루상황에서 상대팀의 최고 강타자가 나오면 던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래도 반드시 던지기는 던져야 합니다. 그 순간 언젠가는 지구가 얼음 눈덩이가 되어 우주 공간을 날라 다닐 때를 가정하면 그 때에는 내가 만루 홈런을 맞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며 또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담대하게 던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원에 비추어 생각하면 아무리 군급하고 황당한 일도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거룩하고 종교적으로 신령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가치를 돌린다는 것은 영원한 가치만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것만 생각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에 관한 관심이 줄이는 것이 기독교적 경배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2,3)

우리가 하는 염려의 대부분이 따져 보면 영원한 가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맥그로우 투수는 지구에 생명체가 다 멸절되고 달처럼 죽은 행성이 된 이후, 일종의 한시적(限時的) 영원이라도 가정하여 세상적인 환난에 대한 염려를 극복했습니다. 신자는 죽음 이후의 영생을 믿고 아니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 나아가 육신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모할 것도 확신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럼 현재 내가 염려하는 일들이 천국에서, 부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과 왕 노릇 할 때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나아가 전도 사역을 떠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에는 이미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하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받는 핍박이 과연 어떤 영원한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그야말로 이 땅에서 사람들끼리 조금 힘들고 지치게, 그것도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신자가 정말 영원을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한다면 인간의 핍박과 멸시가 힘을 발휘할 수는 전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일시적인 것, 즉 이 땅의 것들을 생각하면 영원한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꾸 핍박하는 사람이 두렵고, 남들의 물질적 풍요가 부럽고, 세상의 권세와 사단의 훼방이 두려워집니다. 영원한 가치란 어떤 일시적 가치에 의해서도 그 가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영원을 전한다고 확신하는 자는 일시적인 것에 흔들릴 수 없습니다. 그런 확신이 없는 자만이 흔들리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 전체에서 영원토록 영원한 가치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그 사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경외)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은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기에 그 권위에 순종하면서  사랑하는 법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경외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아부와 흥정일 뿐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그러할진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그분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야 진정으로 경배하는 자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한다면 자연적으로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또 그런 자는 당연히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게 되며 사람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다른 말로 영원을 생각하며 사는 자만이 일시적인 이 세상을 담대하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일생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 신자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 없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역으로 진정한 십자가가 증거되면 사람들이 겉으로는 핍박할지라도 속으로는 오히려 신자를 경외하게 됩니다. 신자가 전하는 영원한 생명과 그것을 이미 누리고 있는 신자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은 십자가 사랑에 비추면 현재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 심지어 죽음마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지금 세상과 사람이 두렵습니까? 십자가 사랑을 잊고 있거나, 전하지 않고 있거나, 영원을 사모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말로 매사를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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