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9:61,62 쟁기도 잡지 않고 뒤만 돌아보는 신자

조회 수 880 추천 수 23 2009.09.19 15: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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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도 잡지 않고 뒤만 돌아보는 신자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 하시니라.”(눅9:61,62)


오래전 세계 육상계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로저 배니스터가 1954년 5월에 1 mile을 4분 안에 달려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후 두 달도 안 되어 존 랜디가 그 기록을 1.4초 단축시켰습니다. 그 해 8월에 드디어 두 선수의 역사적 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 놓고 랜디가 앞서고 있었는데 마지막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배니스터 선수가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만큼 템포가 죽어 바로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랜디는 “내가 뒤만 돌아보지 않았다면 이겼을 것”이라고 후회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지만 가족과 먼저 작별하겠다는 사람에게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가족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기에 다른 모든 일은 제쳐두고 오직 그 일에 당장 전념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자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사단과의 영적 전투이며 평생을 통해 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장거리 경주를 뛰는 선수처럼 그 소명을 주님 나라 가는 날까지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합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그래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히12:1)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의 육상경기처럼 0.1초를 다투는 경우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되지만 평생을 통해 하는 경주라면 때로는 뒤를 돌아보며 고칠 것은 고치고 헌신할 것은 더 새롭게 다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가족도 만나지 않아야 할 정도로 뒤를 전혀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좀 심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말씀도 쟁기 잡은 농부에 비유한 것에 불과하지 그렇게까지 엄격한 뜻은 아닌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에서 비유를 드는 이유는 비유에 나타나는 내용에 비추어 뜻을 쉽게 이해하여 참조만하라는 경우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 강조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본문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말하자면 “쟁기를 잡은 농부가 뒤를 돌아보지 않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전자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신자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쟁기를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쟁기를 잡은 것과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쟁기를 잡은 농부는 뒤돌아보는 법이 없습니다. 앞에서 소가 끌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면 전진이 안 될 뿐 아니라 고랑이 똑 바로 갈아지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면 오직 전진이 필요하며 그것도 올바른 전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갈아야 할 밭고랑을 정확히 알아야 즉 소명감에 온전히 헌신된 자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성실하게 충성하려는 의지적 노력이나 믿음에 앞서 가장 먼저 소명이 구체적으로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과 열정이 뜨거워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가족과 작별하는 것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잘 아는 내용이자 그렇게 실천하려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지치고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핍박과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면 때로는 그 일을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는 엘리야처럼 탈진해서 아예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또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쟁기를 잡았으니 가족마저 만나지 말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솔직히 너무 일방적인 요구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신자에게 어떤 요구, 권면, 명령을 하실 때는 반드시 신자가 그럴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벌써 다 마련해 놓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신자가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고픈 마음의 소원과 열정까지 채워주십니다. 도저히 지킬 수 없어서 아예 불가능한 계명을 신자더러 단지 분발하라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경우는 세 가지뿐입니다. 첫째는 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많이 생길 때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지은 한국 모 재벌의 K 회장은 평생을 회사 내에서도 뛰어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로선 그만큼 할 일이 많으니까 다른 것에 한눈 팔 겨를이 없으며 단 일초의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도 흘러넘칩니다. 그들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이 가족을 만나 즐겁게 보내는 일보다  정말 훨씬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십니까? 또 그런 소원과 열정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일상사를 무시하고 전도와 선교에만 열심을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각자가 서있는 장소에서 맡은 바 일을 진정한 감사와 기쁨으로 선하게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그것도 겨우 한 번 뿐이지 않습니까?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지 않습니까? 정말 후회 없이 내 인생을 예수님을 닮아 아름답고 거룩하게 가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뒤를 돌아보는 만큼 시간과 자원 나아가 믿음과 소원마저 낭비될 뿐입니다.

신자가 진정으로 이런 소원들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전도할 영혼을 부쳐 주시고 선한 일을 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범사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니다. 신자가 예수를 모르는 영혼을 만나게 해주고, 자신의 품성이 거룩하게 변하며,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아니 예수를 모르는 영혼은 기도할 것도 없이 그냥 문 밖에만 나가면 문자 그대로 수두룩합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후회와 반성을 하는 것인데 이전에 했던 일이 실패했다는 의미입니다. 성공한 자는 구태여 뒤를 돌아 볼 필요가 없으며 항상 더 큰 성공을 소원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무슨 뜻이 됩니까? 예수님만 바로 따르면 뒤를 돌아 볼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다른 말로 실패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뜻 아닙니까? 안 믿어지십니까? 아니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이 시킨 일을 예수님과 함께 하는데 실패할 리가 있습니까?

설령 신자의 눈에는 실패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만의 너무나 큰 성공을 그 안에 숨겨 둡니다. 엘리야는 세상에 여호와를 따르는 선지자가 자기 혼자 밖에 남지 않았고 이제 자기마저 생명이 날아갈 판이라 완전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칠천 명의 남은 자를 예비해 놓으셨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무려 칠천 배의 성공이었지 않습니까?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세 번째 경우는 장님처럼 앞 사람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따라갈 때입니다. 장님이 앞 사람이 든 작대기를 붙들고 가면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 간단한 예로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서 앞차가 가는 대로 따라가는 뒤차가 옆이나 뒤를 볼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신자는 오직 그분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그분께 의탁하며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까닭은 자기 실적이 얼마나 쌓였는지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일을 하나님의 인도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기 힘으로만 했다는 증거입니다. 주인이 시킨 일을 오로지 주인의 돈과 수단에 의지해서 한 종이 자기가 한 양 자랑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주인을 자랑하는 종은 있어도 주인을 대신해 자기가 주인인양 하는 종은 당장 쫓겨나가거나 아예 일을 맡기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정말로 충성되게 하고 있는 종은 이 세 경우를 모두 경험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인지라 실망하고 힘들어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고 하염없이 한탄하고 있을 여가는 없습니다. 설령 일시적으로 사단에게 시험 받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오히려 하나님이 절대로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권면은 당신께서 충분히 그럴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신자를 무조건 부려먹고 쥐어짜겠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또 진정으로 헌신된 자는 그럴 마음도 틈도 없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니라.”(빌3:13-16)

여러분은 어떤 각오와 헌신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정말 가족과 이별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더 소중하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래서 평생을 두고 주님을 위해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 쪽의 결심만 재촉하고 따져 묻는 말이 아닙니다. 위의 세 경우가 나에게 넘치는 은혜 가운데 이뤄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가 묻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주님이 하고 있고 나는 단지 그 일에 기꺼이 쓰임 받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직접 맡긴 일이 많기에 짧고 한번 뿐인 인생을 주님과 함께 정말로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꾸며나갈 소원이 있어서 뒤돌아볼 겨를이 없으며 또 그분이 그 일을 다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까? 나아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래서 범사를 주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온전히 의뢰하고 있습니까? 혹시 쟁기를 잡고도 자꾸 뒤만 돌아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쟁기를 잡고 있기나 합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일이 없고, 아니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고 싶은 생각마저 없는 것은 아닙니까? 말하자면 쟁기도 잡지 않은 채 뒤만 돌아보는 것은 아닌지요? 풀어서 설명하면 스스로 욕심내어 자기가 결정한 일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도무지 안 이뤄준다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지요?

1/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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