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1:13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나요?

조회 수 1421 추천 수 11 2011.10.28 1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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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나요?

[질문]


누가복음 11장13절 말씀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싶고 하나님이 계심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가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두 축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언뜻 서로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두 질문 안에 이미 정답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가장 첫 걸음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선 그분을 개인적, 체험적,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고 또 그러려면 간절히 기도한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을 해주시는지 실제로 겪어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 응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자칫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말씀을 병행해서 읽고 성경에 객관적으로 계시된 영적 진리에 따라 기도의 응답과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험하는 핵심적인, 사실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두 축(軸)에 해당됩니다.

간혹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신자가 있는데 반쪽의 기형적 신앙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에만 집중하는 자는 체험, 신유, 이적 등을 맛보지 않으면 믿음의 강도가 현저히 떨어져 버립니다. 심지어 믿음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또 체험에 대한 판단은 자칫 자신의 감정과 당시 상황에 따라 곡해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단도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해 사람을 속이므로 오류 내지 이단으로 흐를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반면에 말씀에만 집중하는 자는 이론적, 지식적, 율법적, 형식적 신앙이 됩니다. 매사를 도덕적 종교적 잣대에 따라 판단하려 듭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골라내려 듭니다. 다른 이의 허물을 참아주지 못하기에 사랑은 실종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기도는 많이 했지만 기도 자체부터 겸손, 진심, 열정, 소망, 참 믿음과는 거리가 멀고 메마르고 형식적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흔히 비유하듯이 머리와 가슴 한쪽에만 충만해선 안 되며 양쪽 다 그래야만 합니다. 매사에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원하신 뜻에 대한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향한 자신의 반응인 기쁨이 공존해야 합니다. 그런 깨달음과 기쁨이 가장 커지고 그래서 신앙이 성숙되는 첩경이 무엇입니까? 바로 고난과 문제들을 기도해서 이겨내는 경우입니다. 신자에게 하나님이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입니다.

머리와 가슴이 작동하는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하나님을 만나 그분을 알아가는 데는 먼저 혹은 항상 행할 일은 기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임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하나님의 실재(實在)와 그분이 상주시는 것을 확신하려면 기도를 통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후에 그분이 어떤 분인지 더 깊이 알려고 말씀을 깊이 연구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용하신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간략하게 또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조로 성경 문답 사이트의 # 55 “안 보이는 하나님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와 # 109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지체가 있습니다.”의 두 글도 유사한 주제이므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하는 법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인용하신 구절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 요청에(11:1) 예수님이 답변한 내용의 결론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따라서 2-12절까지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아야만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2-4절은 기도할 내용을, 5-10까지는 기도하는 방법, 11-13은 기도의 결과 내지 응답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려면 무엇을,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나아가 기도로 맺어지는 열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은 이 짧은 가르침 안에 기도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기도에 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중에 기도에 관한 해설서가 아무리 좋고 많이 있어도 예수님의 이 가르침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1. 기도할 내용

먼저 교회에서 자주 고백되는 주기도문 안에는 신자가 반드시 기도해야 할 항목이 다 들어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이 마태의 그것(마6:9-13)에 비해선 조금 축약되긴 했지만 세 가지 핵심은 동일합니다. (주기도문에 관해선 이미 마태복음 강해에서 상세히 밝혔기에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영성의 동산의 주기도문강해 사이트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2절)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3절)에선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탐욕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들, 구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4절)고 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부터 회개하고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숙한 신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꼭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내용은 통상적인 이해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과 같은 현실의 고난에서의 구출은 당연히 기도해야 하지만 신자 개인의 세속적 성공과 출세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해달라고, 또 자신부터 거룩하게 변하여서 그 일에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2. 기도하는 태도

2.1. 강청하는 기도


기도자가 취할 태도에 대해선 주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강청(强請)하는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5-8절) 주님은 밤중에 떡을 얻으러 온 벗을 비유하며 “비록 벗 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고 했습니다.    

무조건 강청하기만 하면 응답된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 밤중에 찾아가 강청할 만큼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여야 합니다. 꼭 없어선 안 될, 해결되지 않고는 안 될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했습니다. 신자가 자기 욕심이나 계획에 따라서 소원하는 대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해결되든 안 되든 크게 상관이 없는 기도 제목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라면 강청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응답이 되던 하나님의 간섭을 확실히 받았다고 스스로 인정될 때 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은 절실한 문제 뿐 아니라 모든 기도가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렸고 진짜로 그분의 은혜와 권능만이 절실하다는 겸비한 심정에 바탕을 두지 않는 기도는 기도라고 할 수조차 없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밤중에 찾아가서 강청할 만큼 평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져야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문제를 들고서라도 담대히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급할 때만 기도하고 평소엔 모른 척하는 그런 응급처방 식의 기도가 아닙니다. 당연히 신자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단순히 기독교의 종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여러 깊은 뜻 가운데 하나는, 당신께서 십자가의 완전한 제물로 바쳐져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기에 신자로선 어떤 난감한 형편에 빠져 있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지금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히10:19,20)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밤중에라도 무엇이든 강청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밤중에 찾아간 이유가 본인의 필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찾아 왔는데 먹일 것이 없어서 다른 친구한테 밤중에 찾아간 것입니다. 먹을 것을 나눠주어야만 할 자의 입장에선 친구의 친구를 위해 도와주어야 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주님의 궁극적인 뜻은 남을 위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반복한 셈입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의 시대적 여건상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곧바로 위급한 상황에 빠지는 자들을 대변합니다. 이웃의 필요를 보고 절대 외면하지 말고 돕되 또 그러는 자를 하나님도 반드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2.2. 기도하는 사람이 먼저 되어라.

기도를 하는 두 번째 자세로 주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도 매번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끈질기게 기도해야만 그분의 뜻을 겨우 짐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신자는 언제, 어디서든 받고 싶고  찾고 싶고  열고 싶은 것 모두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컨대 기도는 바로 신자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호흡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신자라면 당연히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구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마음에 상처, 고민하는 일, 잘못한 일 모두를 솔직히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우리의 기대와는 조금 어긋나는 말씀을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구하는 ‘것마다’ 받고, 찾는 ‘것마다’ 찾고, 두드리는 ‘것마다’ 열린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마다’, 두드리는 ‘이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내용보다 기도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무엇을 기도하느냐 고민하기 이전에 무엇이든 항상 기도하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내용보다 기도자가 먼저 되라는 것은 기도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응답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절대적 주권에 따라 신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응답되는 때와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때와 방식과 신자의 그 셋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즉시 응답될 것이지만 그런 법은 거의 없습니다. 바로 그래서 쉬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내가 바라는 때와 다르다면 응답은 더디 나타나고 신자로선 인내하며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의 방식이 다르다면 기도한 후에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도했던 내용에 비추어서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맞지 않다면 아예 응답되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신자가 진심으로 겸비하게 계속 기도하다 보면 기도 중에 그 기도가 잘못된 줄 깨닫게 해주십니다.

기도가 잘못되었다고까지 깨우쳐 주듯이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기도에 당신만의 때와 방식에 따라 반드시 다 응답해 주십니다. 비록 기도 응답이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은 응답하셨기에 그 기도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무엇이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자로선 그분의 뜻을 아는데 초점을 맞추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분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나면 응답의 때와 방식은 부차적 문제가 될 뿐입니다. 기도는 그래서 고집스럽고 때로는 탐욕스런 나의 뜻을 그분의 거룩한 뜻에 맞추어 뜯어고쳐 나가는 씨름입니다. 다른 말로 기도는 그분의 뜻을, 실제로는 그분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도자가 먼저 되라는 또 다른 뜻은 누차 강조하지만 신자는 하나님과 진짜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요구를 들어주는 첫째 이유는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비유의 문자적 의미대로 요구하는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도 끈질기게 강청만 해도 때로는 들어주지 않습니까?

나아가 단지 자녀가 아무리 어렵고 부끄러운 문제라도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의논을 해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기뻐하지 않습니까? 설령 잘못된 기도라도 신자가 미처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갈망하며 꿇어 엎드리기만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열매

비록 신자가 기도하는 내용대로, 또 그 때와 방식대로 응답이 되지 않더라도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기도의 열매로 신자가 기도하는 것보다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기도 응답을 부모와 자식 관계에 비유했지 않습니까? 육신의 부모도 자식이 요구하는 일에 좋은 것으로 마련해 줍니다. 때로 거절을 해도 오직 자식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부모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부분에서 단순히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했는데 누가는 특별히 그 좋은 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신자가 기도하여 궁극적으로 구할 것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또 조금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신자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또 다시 새롭게 구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상기에 설명 드린 내용에 이미 대부분 나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과 때와 방식이 신자의 그것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도하면서 그 응답에 대해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령의 도우심으로라야 그런 분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다면 심령에 기쁨과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이 우울하고 눌린  상태가 될 것입니다. 신자의 심령 속에 계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신자에게 힘든 일이 생기게 해서라도 그 기도를 당신의 뜻에 맞게 거룩하고 신령하게 고쳐나가는 것도 성령의 역할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개인적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며 기도자가 먼저 되려 해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또 성령의 사람이어야 있는 모습 그대로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 이뤄지고 성숙한 신자로 자라가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이웃을 돕는 기도를 하는 데도 자연적 본성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신자는 성령이 시키는 기도를 해야 하며, 기도 중에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 하며, 기도 후에도 성령에게서 영적 지혜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매사를 기도한 것과 비교하고 성경의 객관적 진리와 대조해 봐야 할 때도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이 땅에서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인도하는 일은 삼위 하나님 중의 성령 하나님의 몫이기에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을 주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주심은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없던 것을 새로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주하신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와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만듭니다.(고전12:3)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만듭니다.(요3:5)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순전히 성령의 초자연적 간섭과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따른 선물입니다.

구원 후에도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 사람은 몰라봐도 오직 성령이 임한 신자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고전2:6-16)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성령은 한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한 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어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기도자로 변화시킵니다. 성령에 의한 기도를 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대로 살게 하여서 성령의 열매(갈5:22-24)를 맺게 만듭니다. 신자가 기도한 응답으로 좋은 것으로 받는 것은 성령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마태도 기도하여 받는 좋은 것이 성령이라고 명시는 하지 않았지만, 같은 맥락에서 결론을 맺고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해놓고 바로 이어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한 것이 바로 그 두 계명을 뜻합니다.(마22:40) 무엇이든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맛보았다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로 그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며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해 간략하게 가르친 내용을 그야말로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신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면서 진정으로 겸손하게 자신의 모든 소원과 잘못을 하나님 앞에 토설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구하되 끝까지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자녀로서 항상 기도하는 자가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기도하고 그 결과도 성령에 의해 분별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알아가려면 반드시 그 사람과 개인적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함께 생활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동일합니다. 그분의 실재는 물론 어떤 분인지 알려면 기도를 통해서 실제로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응답을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해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필 문제는 단순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께 간구하면 상을 주신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자칫 상만 받으려는 욕심으로 그분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는 타종교인들도, 심지어 불신자들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말하듯이, 잘 알고 있습니다. 복만 받으려 들면 하나님 그분을 깊이 알아갈 방도는 전혀 없으며 오직 기계적 하나님으로 전락됩니다. 자동판매기처럼 지성으로 기도만 하면 문제 해결 받는다는 식의 기복주의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기본적인 뜻은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만드는 것입니다. 신자의 주변 환경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거룩하게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실현 확장하는 일군으로 삼아 당신의 통치에 동역자로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 모든 뜻과 계획은 성경에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계시되어 있으며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4-46)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을 보여 알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 사역, 특별히 십자가 대속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졌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3-55) 예수님과 개인적,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기도와 말씀이 하나님을 바르고도 깊게 알아가는 두 축인 것은 분명하지만 먼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자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구원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을 얻는 주제는 성경문답 사이트에 가장 빈번하게 다룬 주제이므로 관련 글들을 찾아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신자의 모든 기도와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권능을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 실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행해져야 합니다. 또 그래서 기도의 응답으로 받는 좋은 것이 성령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라고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이미 만난 자라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분과의 더 깊은 교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아직도 십자가를 잘 모른다면 성경을 깊이 공부하되 그와 동시에 구원의 은혜를 달라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9/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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