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9-11 달 착륙과 성육신

조회 수 671 추천 수 88 2010.08.18 17: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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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과 성육신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인간의 달 착륙은 과학기술의 엄청난 쾌거였습니다. 그 후로 인류 문명은 급속도로, 어쩌면 그전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르네상스가 인간 이성의 혁명이라면 달 착륙은 과학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이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을 어떤 결정적 힘이나 계기로 단번에 바꾸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으로 인간의 사고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면에서 혁명입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이성이, 달 착륙 이후에는 과학이 인간 사회의 어떤 문제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거의 모든 이에게 생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맹신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세계가 당면한 고통과 골칫거리는 두 사건 이후 더욱 많아졌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인간은 그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몽은 자기 사고의 틀에 묶여서 그 틀의 바깥은 전혀 보지 못할 때 생깁니다. 말하자면 인류는 이성과 과학만능주의라는 틀 안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혁명은 이전의 견고한 틀을 깨트리는 일인데 혁명으로 그보다 더 깨기 힘든 새로운 틀을 덮어썼으니 말입니다.

어떤 일에 한참 몰두해 있는 자는 정작 그 일의 실상과 전후사정을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바둑은 곁에서 훈수 두는 자가 수를 더 잘 보듯이 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묶여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 자신과 그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달 착륙의 의미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 전에도 제트여객기를 타고 고공에서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에베레스트 산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차원일 뿐입니다. 대기권 밖에서 둥근 공 모양의 지구를 보는 것은 훨씬 다른 것입니다.

우주에선 공 같은 지구를, 또 달에선 오히려 지구가 달 모양으로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차원을 초월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이 그 영역을 벗어나면 죽으니까 사실상 죽음 너머에서 살아 있는 자기를 바라본 셈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익히 알고 있듯이 우주에서 지구를 본 관점은 명확히 둘로 나뉘었습니다. 우선 우주의 비밀을 당장 손에 다 쥔 듯 여기는 태도입니다. 창조주의 영역도 인간이 간섭하지 못할 리 없다고, 아니 인간이 대신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한 소련 비행사는 우주에 나와서 봐도 신은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 큰 소리쳤지 않습니까?    

미국의 제임스 어윈 대령 같은 분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달에서 초승달 모양의 지구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또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비행했고, 자칫 영원히 우주 미아가 되거나 불에 타죽을 위험을 이겨내며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극적 경험을 했습니다. 지구를 벗어난 여행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이 처한 곤경을 동시에 절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귀환 후에는 단지 유명인사로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가장 부족하고 절실한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종으로 헌신했습니다.

둘 다 컴컴한 우주의 빈 공간을 비행했습니다. 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여 이 광대한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텅 빈 흑암의 바다에 인간이 만든 정밀한 달로켓뿐이더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다른 이는 아무리 캄캄해도 너무나 광활하고 신비한 우주의 질서 앞에 한 없이 겸비해져 창조주 절대자를 더 가까이서 뵈었던 것입니다.    

이와 정반대의 방식이지만, 그 내용은 동일한 사건이 이천년 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하강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당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당신의 영역에서 탈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완전하신 절대자이기에 스스로 후회, 반성, 수정하는 것과는 영원토록 아예 무관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분 거룩한 하나님이실 뿐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인간의 달 착륙과는 비교도 안 되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수명이 길어야 백년 미만, 또 신장도 2미터 미만에,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죽고 마는 인간이, 광속으로 1광년은커녕 기껏 2.5초 만에 왕복이 가능한 거리의 달에 간 것이 위대하다고 합니다. 그럼 우주 전부를, 현재의 과학적 탐구 수준으로는 200억 광년의 거리라고 함,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직접 오신 위대함은 어떠합니까? 인간의 말로는 도무지 그 위대함을 표현할 재간조차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작은 지구에 오신 목적은 달 착륙에서 어윈 대령이 깨달은 의미와 동일합니다. 인간더러 자신의 이전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자기를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갇혔던 견고한 틀을 완전히 깨트리라는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단의 흑암의 세력에 묶여서 참 하나님을 전혀 볼 줄 모르는 장님 된 인간의 눈을 열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존재의 기원과, 현재 처한 고통의 원인과,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러 오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선하고 의로우신 모습을 직접 인간의 눈앞에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구 속에 있던 인간을 지구 밖 우주에 떠올려서 지구를 보게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고의 틀을 완전히 뒤집으라는 것입니다.

성육신을 보는 관점은 죽음의 목전에까지 다다른, 아니 사실상 죽음을 맛본 자가 인생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에도 비견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틀에 갇혀서 자신의 진정한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하는 인간에게 그 영혼을 그 육신 밖으로 이끌어내어서 육신의 틀을 보게 만든 셈입니다. 죄의 삯인 죽음의 틀을 깨고서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제 2의 창조를 겪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해와 달만이 인간 사회의 밤낮을 주관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서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121:6)라고 찬양은 할 줄 알아도 속마음은 따로 놀았습니다. 자기들 뜻대로 따라주는 하나님만 찾고 있었습니다. 빛을 만드신 이가 바로 곁에 왔어도, 그래서 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었어도 못 알아보는 정도를 넘어 멸시, 비방, 핍박했습니다.  

비유컨대 그 때부터 인간은 달 정복의 꿈을 꾸었던 셈입니다. 그 전에 바벨탑 사건, 아니 선악과 범죄 이후로 인간은 오직 하늘 높이 올라가 그 꼭대기에 닿으려고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고앉아서 최초의 선조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 결코 죄도 아니요, 너무나 잘한 짓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안간 힘을 쓴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달 착륙으로 바로 그 일을 통쾌하게 이루었다고 너무나 어리석은 착각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빛의 속도로 2.5초면 갖다 올 거리를 다녀와서는 빛을 만드신 이는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빛의 창조자이자,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인간더러 진짜 빛이 어디에 있는지 진짜로 진지하게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서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인간의 실상을 정확히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요구마저 당신의 몸으로 구현하여 완성시키시고 온전한 선을 행하신 예수님은 정말로 하나님을 아주 선명하게 하나 모자람 없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단에게 미혹된 수천 년간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빛을 보지 않으려한 정도를 넘어서 아예 빛을 꺼서 없애버리려 했습니다. 흑암이 더욱, 아니 너무나 좋았던 것입니다. 죄가 주는 쾌락의 단 맛을 조금이라도 잃을까 염려한 것입니다.

그럼 그 참 빛이 십자가에서 꺼져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더욱 찬란하게 비추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사망 아래 놓인 인간의 영적 실상만 알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거룩하신 생각도 완연히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심어준 미몽 가운데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인척 착각하며 당신과 원수 되었음에도 당신의 생명과 바꾸면서까지 사랑하신다는 바로 그 생각을 말입니다.

또 이제 그 놀랍고도 무한한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라도 달 착륙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너무나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주신다고 십자가에서 선언하셨습니다. 실제로 우주의 근원에 계시는 당신과 언제 어디서나 순식간에, 달까지 왕복 몇 주가 걸리는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교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떤 모습과 형편에 처해있던 그분의 사랑과 권능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는 신분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작금의 인류의 사정은 예수님 오실 때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의 혁명이 가져다준 달콤한 맛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참 빛을 부인하면 할수록 자기 소견대로 행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신나고 재미있어 합니다. 어둠이 너무 좋아서, 어둠 속에선 무슨 짓을 해도 남들이 모르니까 참 빛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어떤 일도 다른 인간에게 피해만 안 주면 죄가 아닌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둠에 묻혀 서로가 아무리 시커멓고 추해도 전혀 모른 척 하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뜻이 바로 그런 죄인조차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당신이 택한 소수의 남은 자들을 세상에 두셨습니다. 지금도 그 뜻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어윈 대령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흑암 가운데 있는 자들을 참 빛으로 인도하는 일을 맡길 사람을 예비해두실 것입니다.

정말 아무 소망 없는 흑암 가운데서 참 빛을 본 자가 신자입니다. 이전의 사단의 틀을 완전히 깨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의 새로운 틀 안에 이미 들어온 자입니다. 옛 자아가 죽었다 다시 사는 체험을 하면서 새롭게 된 영혼이 더러웠던 육신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직접 우주에 갔다 오지 않았어도 자신이 속한 영역을 벗어나 인격적 하나님을 가까이서 뵌 자입니다.  

이제 할 일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 중의 한 명으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어윈 대령처럼 인생의 참 소망을 주위에 나눠주는 일로 남은 생을 온전히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사역자로 봉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 빛을 봄으로써 자신이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뒤집어진 사건이 달 착륙과는 도무지 비교도 안 되는 혁명적 사건임을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달 착륙만한 너무나 엄청난 현실적 진보보다는 참 빛과 거리가 멀어지는 일을 더 안타까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져도 하늘에는 그와 비교조차 안 되게 아름다운 거할 곳을 예수님이 마련해 놓으셨다는 사실 때문에 나그네 같은 인생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참 빛을 이미 보았고 또 지금도 그 빛과 항상 교통하고 있기에 그 빛을 반사해서 비추는 거울로 세상과 사람들 앞에 서있으면서 말입니다.

8/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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