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베뢰아 사람들의 영성

조회 수 1872 추천 수 62 2006.09.03 10:54:30
♣ 본문 :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 들어가기

  ▲ 성도들은 목사님들로부터 “목사의 말(설교/교육 등)은 아무 의심하지 말고 다 받아들여라.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라는 권면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무척 은혜롭고 타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하나님 말씀)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엡3:19)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 위와 같은 목사님들의 권면을 접할 때, 성도는 일정 부분의 여유를 반드시 남겨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거부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또한 목사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경에 부합되는 말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건전한 의문(의심과는 다른 것입니다)을 제기하는 것이 평신도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따라서 목사님들의 가르치는 내용에 약간의 의구심이 들 때는 반드시 성경과 비교하여 확인받아야만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의구심이 생길 때뿐만 아니라, 목사님들의 모든 설교에 대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 그렇다면 위의 권면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슬기롭게 적용해야 할 요구일 것입니다. 즉, 평신도들이 올바르게 설교 듣는 것을 방해할 위험성이 내재된 묘한 말일 수 있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가르침은 반드시 성경과 비교 검토하여 그 진위를 확인받는 것이 평신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간 들어온 권고와 많이 달라서 혼란스럽겠습니다만, 본문을 중심으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베뢰아 사람은 왜 신사적이었나?

  ▲ 베뢰아 지방은 그리스 반도 북동쪽 산간지역으로서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 75 km에 있는 도시입니다.

  ▲ 여기서 ‘신사적’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헬라 원어로 유게네스(eugenes)라고 하는데, 이는 eu(좋은)+ginomai(그렇게 되다)의 합성어로서, ‘좋은 가문에 태어난, 계급이 높은, 대범한, 더욱 귀한, 귀족’의 의미라고 합니다. 영어로 하면 ‘고귀한(noble), 귀족(noble man), 마음이 고상한(noble-minded)’ 정도의 뜻이라고 합니다(존경하는 목사님께 여쭈어 배운 것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 또 다른 어떤 목사님은 헬라어 원어의 의미에는 ‘마음이 트여있다.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

   ○ 한편, 대표적 영어 성경인 신국제역(NIV)은 ‘고상한 성품(noble character)’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흠정역(KJV)은 ‘공정한 마음(fair-minded)’으로 번역하였습니다.

   ○ 한글사전은, ‘신사다운’이라고 하면서, 신사란 ‘사람됨과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는 예의바른 남자’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상 헬라어와 영어와 한글의 의미를 종합하여 판단컨대 ‘신사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고상하면서 공정한 마음가짐”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NIV와 KJV의 번역은 상당히 근접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확대한다면, 신사적이라는 의미에는 ‘어떤 가르침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나서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신중한 태도’라는 뜻도 포함된다 하겠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사적’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비추어 판단하는 자세’라는 의미로 받아도 무방하다 하겠습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오늘 본문의 상황을 조금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 여기서 복음 전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거주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베뢰아로 옮겨온 상황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기간입니다.

   ○ 어쨌든,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복음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은 사도입니다. 복음전파의 열정은 따를 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직접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하늘나라(삼층천)까지 갔다 온 사람입니다. 오늘날 그 어떤 목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체험을 하신 탁월한 사도입니다.

   ○ 사실, 오늘날의 성도들은 바울 사도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아멘’으로 화답하리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가르침까지도 무조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 도대체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였을까요? 오늘 묵상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이 목사님들의 설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 답변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베뢰아 사람들의 말씀을 받는 자세입니다.

   ○ 먼저, ‘간절한 마음’입니다. 신국제역(NIV)은 ‘커다란 열망/열심으로’(with great eagerness)라고 번역했습니다. 흠정역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with all readiness)라고 번역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자세입니다. 말씀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살피지는 않겠습니다.

   ○ 오늘 묵상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받은 후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그런가 하여”라는 말씀이 있는데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흠정역(KJV)은, ‘이런 일들이 정말 그런가 하여’ 정도의 의미로 번역함으로써 다소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국제역(NIV)은 아주 확정적으로 번역했습니다. 즉, ‘바울이 말한 것이 진실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로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이 옳다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성경에 일치되는 진리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것입니다. 말씀 받는 자의 참 모습입니다.  

   ○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이러한 자세를 언제나 견지하였습니다. 즉,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찾아보고(KJV : to find out), 조사 및 검토했던(NIV : examined) 것입니다.

   ○ ‘신사적’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의미까지 포괄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목사의 말은 무조건 믿어라.”는 무리하고 비성경적인 요구를 접할 때, 평신도들은 반드시 본문을 상기하면서 심사숙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 바울의 말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덥석 믿지 않고 성경의 보증을 받은 후에야 수용했던 베뢰아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사’ 즉 ‘공정한 마음을 지닌 자’라 할 것입니다.

  ▲ 왜 베뢰아 사람들의 자세가 칭찬받을 만하며 오늘날의 평신도들이 본받아야 하는지 좀 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목회자와 평신도 서로가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에스겔서 14장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에스겔서 12장부터 24장까지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시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14장도 이에 속합니다.

  ▲ 아무튼, 14장 전반부의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 유다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 앞에 나옵니다(1절). 하나님께서 장로들의 숨은 목적을 알려주십니다. 장로들의 마음에는 욕심(죄악/우상)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으며(2-3절), 혹 대답하더라도 그들의 우상에 부합되는 답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4-5절). 묻는 자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답변은 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 그러시면서 에스겔에게 유다백성으로 하여금 우상과 가증한 것을 떠나도록 경고하라고 하십니다(6절). 이어서 그래도 욕심을 품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직접 대적하시겠다고 하십니다(7-8절).

   ○ 이제 9-11절을 유의해 보아야 합니다. 귀한 영적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묵상구절인 행17:11절과 맥이 통하는 구절입니다.

    - 우선 9절에서 선지자가 유혹을 받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 유혹 역시 선지자 자신의 욕심입니다. 아무튼 유혹을 당한 선지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망당한다고 선포하십니다.

    - 10절입니다.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라고 하십니다! 9절에 정해진 것처럼 선지자만 멸망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선지자에게 묻는 자도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죄악은 ‘자기들의 욕심’입니다. ‘담당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뜻인데, 욕심을 숨기고 와서 역시 욕심을 숨긴 답변을 듣고 감으로써 다 함께 속는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선지자와 백성이 서로 속이고 속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끼리끼리 모인다.’ 또는 ‘유유상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지닌 자들끼리는 자연스레 교감을 지니게 됩니다. 선지자와 백성이 같은 생각을 지녔으므로 쉽게 통합니다. 그 생각이 무엇입니까? 욕심(죄악과 우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에 속지 않으시고 그 죄악을 각자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 왜 이래야 되는지의 답변은 11절에 나옵니다. 추가적인 미혹과 범죄를 방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백성(평신도) 입장에서 말하면, 거짓 선지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즉시 얼른 속 차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직 참 선지자(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만 해당되며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극히 조심해야 함)의 인도만 따라야 하며, 거짓 선지자에게는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 12절부터 23절까지는 하나님의 징벌 의지가 얼마나 강력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즉, 기근과 짐승과 칼과 온역의 4가지 중벌로 다스리실 텐데, 노아와 다니엘과 욥 세 사람이 거기 있다 하더라도 아무 효과도 없이 자신의 생명만 건질 수 있다 하십니다.  

  ▲ 사실 이렇습니다. 유다의 장로들은 솔선수범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먼저 타락하여 백성들에게 타락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결국 지도자와 백성 모두의 총체적인 타락을 초래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14장의 요지입니다.

  ▲ 이러한 개괄적인 교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여러 가지 교훈과 깨우침을 도출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교훈을 얻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에게 속으면 속는 자의 책임이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속이는 거짓 선지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속은 자도 책임을 면제받지는 못합니다. “각각 자기의 죄악을 감당” 해야 한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 나가기.

  ▲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 어려운 평신도들은 전문가인 목사님들의 가르침과 인도에 크게 의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잘못되지 않은 현상입니다.

  ▲ 그런데 이 잘못되지 않은 현상이 왜곡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 왜곡의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목사 말에는 이의제기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는 요구입니다. 이 주장을 펼칠 때 신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조리있게 설명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평신도는 이의제기할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럴듯합니다.

  ▲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허황된 짓입니다. 목회자를 신적인 존재로 오해케 함과 동시에 평신도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취급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결코 이러한 극단적 오해를 옳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오늘 살펴본 행17:11절과 겔14장입니다.

  ▲ 그렇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목회자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평신도에게도 매우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바로 오늘 묵상한 것처럼 ‘비록 목회자의 말일지라도 반드시 성경과 비교하여 올바른 가르침만 선별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성경대로 따르려 한다면 평신도 노릇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의 가르침이 성경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려면 목사님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성경 지식과 영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 정말로 그렇습니다! 평신도가 자신의 신앙 전체를 목회자에게 일임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성령님께 붙잡힌 참 목회자를 만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만약 이단을 만나서도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 결과는 전율스러울 뿐입니다. 비단 이뿐 아니라 아무리 목회자라 하더라도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목회자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자신의 고백과 믿음이 아니면 그 무엇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킬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 목회자라면 평신도의 신앙을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만용을 부리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를 통해 평신도가 바른 신앙을 유지 발전(성화)시킬 수 있도록 안내역할하는 것에 만족할 뿐이며 한계를 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목회자분들은 “목사의 말에 무조건 맹종하라.”는 무지한 말(욥38:2)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으십니다.

  ▲ 이제 한국교회도, 목회자에 버금가는 영성과 지식과 사명감을 지닌 평신도들이, 목회자와 함께 협력하여 참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의 내려놓음과 평신도들의 위상 제고(참여)가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더 깊이 연구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샬롬! ♥

김문수

2006.09.03 12:49:50
*.75.104.245

우리가 왜 네이비씰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정순태 중사님께서 브리핑 해주시는것같습니다.
인간적 측면에서는
엄청 이해가 안되고 억울한 내용이지만,

모르고 따르고 따라간 자들도,
같이 죽는법이 성경적이니,

우리가 할일은 포로로 잡혀있는 분들을
발견하면 발견즉시, 결박을 풀어주는 사명일것입니다.

그런데 결박을 풀어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비트랩이 설치된 진입로를 통과할수도있으니,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관점의 이론과 실전교육을,
병행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포로 구출임무가 하달되면,

바로 결박을 풀어줄 자세로 임하고, 우는사자를 제압할 사냥꾼역할이,
우리 씰의 임무라 생각됩니다.
필승!! 훈련은 전투다!!!!!!!!!!!!!!!!!!!!!!!!!!!!!!!!!!!!!!!!!!!!!!!!!

김형주

2006.09.04 06:01:31
*.173.42.18

아멘!!!
공감합니다. 그리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순태 형제님께 꼭 하나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허락해 주실런지요?
샬롬!!!

정순태

2006.09.04 07:42:53
*.75.152.51

김형주 형제님!
아마 신앙관련 질문이라면 영성의 대가(김문수 형제님 표현으로는 내공 고수)이신 목사님께 드릴 것이고
제게 하시겠다면 분명 개인적인 내용이겠지요?
아울러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응당 가벼운 것이리라 짐작됩니다.
얼마든지 하십시오. 성의껏 답안지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0^

김형주

2006.09.04 14:16:41
*.173.42.18

제가 여러 사이트 중에 이 사이트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목회자냐 평신도냐를 떠나서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한 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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