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목이 되고 싶었다. 성전 지을 때 사용되었던 그 우람하고 늠름한 백향목으로 세상 가운데 우뚝 서고 싶었다. 천국의 확장,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함,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이런 말씀들은 내가 거목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 영광을 위해 힘써 이루어 드릴 일이라 여겨왔다. 또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아닌 거목으로의 자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자들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상급이며 보상이라 배워왔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것 쌓아놓으려 바둥거리지만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백향목이 됨이 너무도 자연스런 모습이라 여겨왔다. 때문에 가여운 이웃들의 쉼터도 되어주며 가여운 이들의 필요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거목이길 소원해 왔었다.
삶이 엉클어지며 나의 비전은 조금은 겸손(?) 하여져 갔다. 높디 높은 백향목엔 독수리만 모일 뿐, 그 밑둥이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서로 저 살겠다고 으르릉 거리며 싸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며 나물보다 조금 큰 겨자나무로 만족하기로 했다. 비록 키는 작지만 수 많은 가지엔 갸녀린 작은 새들이 모여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에 젖어 떨고 있는 작은새를 위해 넉넉히 나뭇가지 한 자락 내어주고 싶었다. 사나운 짐승들이 꼬이는 백향목 보다는 그저 소담스런 나무로 누구나 부담없이 찾을 수 있기에 더 좋을 것 같이 여기기로 작정하였다. 특히 가난하고 삶이 힘에 겨워 지쳐 쓰러질 듯 괴롭고 외로운 이웃들의 쉼터로 서 있기 그지없이 좋을 성 싶은 나무라 여기기로 작정하였다. 백향목이 아님의 아쉬움을 그렇게 나의 겸손(?)은 나를 달래가며 나물 보다 조금 큰 겨자나무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 짝에도 쓸데 없을 꼬부라지고 비틀어져버린 광야의 조각목, 땔감으로 조차 사용하기 참 어설픈 그 나무를 하나님은 성막을 지을 재료로 지정해 주셨다. 백향목만이 재료가 되리라 여겼었는데, 조금 겸손해져서 나물 보다 조금 큰 겨자나무라도 재료로 사용하여 주시리라 여겼었는데 나무라 부르기도 참 부끄러운 나무, 내리 쬐는 태양볕에 물은 턱없이 부족한 그 척박한 곳에서 살아나려 몸부림치고 발버둥 치느라 꼬부라지고 휘어져버린 그 나무를 성막의 재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참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타다남은 거멓게 그슬린 조각목이다. 이 조각목이 백향목이 되려했다. 이 조각목이 나물보다 조금 큰 겨자나무가 되려했다. 타다남아 시커먼 재 투성이인 이 나무, 그런데 휘어지고 꼬부라져 모양조차 흉물스럽건만 더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불로 메퀘한 냄새마저 풍기는 이 나무를 가지고 성전을 지으시겠다니...
이젠 비전이란 말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나의 비전이라함은 자아발견이라함이 어울릴 것 같다. 타다남은 조각목으로 메퀘한 냄새마저 피우고 있는 나임을 발견하기, 그것이 나의 비전이다. 어느분의 말처럼 " 공사 중 불편을 드려 너무나 죄송합니다." 라는 팻말이라도 붙이고 다니면 딱 좋을 성 싶은 나의 모습을 발견함이 바로 내가 가져야할 비전이였음을 깨닫는다. 메퀘한 냄새로 이웃에게 눈물을 쏟게하고 검은 재는 흩날려 이웃들에게 먼지로 불편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오늘도 이 메퀘한 나의 연기에 콜록거리시며 행여 내가 기침할세라 당신의 몸으로 덮어주신다. 그리곤 검게 그스린 나무를 호호 불어가시며 그 부드러운 손으로 성전을 지어가신다. 이 비틀어지고 꼬부라진 조각목을 우리 주님은 그렇게나 사랑하시어 덮어주시며 지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