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중에 범한 어떤 죄도 속죄제를 드리라신다. 부지중에 지은 죄를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삐 살아온 것 같다. 상황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애를 쓰며 상황 속에서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석하고 그리고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그렇게 밖엔 살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샅샅이 살펴볼 겨를이 없었음은 물론이며 자신의 어떤 모습이 죄악인지 아니면 자연스럼인지 구분을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회중들은 부지중 지은죄가 뒤늦게 생각이 나면 속죄제를 드리라신다.
예수님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부지 중 저지르는 죄악이다. 나의 자잘한 어떤 부분 조차도 다 더럽고 추하고 너덜거리는 걸레조각 같음을 알고는 있는데 그 중에서도 또 미세하게 내가 속아 넘어가는 어떤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을 예수님과는 별개로 여겨왔고 그저 나의 어떠함이라고 따로 떼어 생각하고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 작은 부분이라도 토설해내고 회개해야함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들꽃으로 피어나게 하시어 가끔 찾아주는 산자락 그림자가 고맙고 아침마다 이슬들이 찾아와 입마춤 해 주는 것만으로 좋았다. 외롭게 피어 외롭게 지는 삶일지라도 하나님 지정해 주신 그 자리에 오롯이 피어 조용히 지고... 수려하고 자태 고운 꽃들 주변엔 너무도 많지만 그 꽃들과 비교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저 자그마한 꽃망울로 오롯이 피고 조용히 지는 삶으로 넉넉히 감사하였다.
그런데 이 작은 들꽃이 수려한 꽃이라 착각을 할 때가 많은 듯 하다. 너무 작아 누추한 꽃이라 지나던 걸음이 흘끗 보아 준 것이 그만 수려한 꽃이라 여겨 자신에게 꽃단장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꽃이 꽃단장을 하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생각만은 지정해 주셔서 세워놓아 주신 그 곳에서 조용히 피고 진다라 여길 뿐. 몸은 또 열심히 연지곤지 찍으며 꽃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꽝스런 모습인 것 같다.
자주 범하는 죄이다. 부지 중 범하는 죄이다. 자족함을 배웠노라 자족함의 기쁨이라 여기면서도 그 위에 덧칠을 한다면 그건 자족이 아니다. 지나는 나그네의 시선에 흐믓하여 연지곤지 찍는 들꽃이 자신임을 발견한다. 그저 가끔 찾아 주는 산자락 그림자가 고맙고 아침이슬들과의 만남만이 그리운 들꽃이 되어지길.... 시선, 시선들. 시간 시간들 속에서도 오로지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만 앉으나 서나 읊조리는 들꽃이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