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작은아이는 처음에 무척이나 걱정스러워했다. 전화로 한 사람씩과 대화를 하여야하는데 자신에게 학생들과 대화하며 저들의 영어실력을 향상시켜 줄만한 실력과 순발력이 과연 있기나 하는지 염려하였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곤 그 일이 참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까르르 넘어갈 듯 웃는 아이의 음성을 듣노라면 염려하며 근심하였던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젠 제법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렀는가 싶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나오며 학생이 너무나 귀엽다고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일이냐 물어봤더니 대화하는 동안 한국말은 전혀 쓰지 못하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한국말을 모르는 듯 대화를 시작했기에 상대들은 딸아이가 미국인인 줄로만 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회화가 서툰 학생들이 생각처럼 영어가 쉽게 나오질 않으면 한국말로 끙끙거리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한국말을 못알아 듣겠거니 생각하며 맘껏 자신의 어눌한 말에 스스로에게 못마땅하여 중얼 중얼 거리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며 그게 그렇게도 귀엽다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언뜻 생각이 났다. 늘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한다고 맘 아파하며 어떻하냐고 웅얼 웅얼거리는 나의 모습을 하나님 아버지는 곁에서 괜찮다며 힘내라시며 미소지으실 것 같다. 나는 수준이 아직 이것밖엔 되질 않으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아버지께 부끄러워서 숨고싶다고 또 중얼거릴 때도 그렇게 곁에서 괜찮다며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는 것이라며 미소지을실 것 같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로서 십자가 아래에 우리의 허물어진 모습, 때론 쓰러져 아파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 보여드릴 때에 주님의 사랑은 늘 또 덮어주시며 다시 힘을 내라시며 응원해 주신다. 영차, 영차 힘을 내라시며... 그 아들을 보내시어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지속 가르쳐 주시는 주의 종님들께도 다시한번 감사를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