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멕 만큼 치사하고 사악했던 목사

창세기 강해 (4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15 & 23-24)

 

 

당신의 율법을 위반하는 하나님

 

미국사람은 자식 이름을 지을 때 성경의 인물을 많이 인용한다. 그러나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 두 명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구약성경의 가인과 신약성경의 가룟 유다다. 다른 이의 이름을 따라 붙이는 것은 그 사람을 롤 모델 삼아 훌륭히 자라길 바라는 뜻이다. 친동생을 살해한 천하의 패륜아와 스승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이끈 배반의 아이콘을 이름으로 붙일 수는 없다.

 

몇 주간 살펴본 대로 가인은 표면적으로는 동생을 죽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죽인 셈이다. 하나님은 다 아시고도 사전에 경고했고, 일이 벌어진 후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가인은 자기 생각과 감정에 묶여 스스로 하나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럼에도 너무나 뻔뻔하게 사람들이 살인자라고 죽이려드는 것만 제발 막아달라고 부탁했고 하나님은 너무나 자비롭게 그것마저 허락했다.

 

말하자면 15절의 뜻은 가인의 이마에 주홍글씨로 살인자라고 적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 받는 자라는 표식을 하게 한 것이다. 오해는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당신의 자녀라는 표식은 아니다. “살인금지-하나님”이라는 경고의 표일 뿐이다.

 

그런데 이 보호 조치가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고의가 아니라 과실, 예컨대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날라 가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 같은 경우는 빼고 말이다. 그럴 경우는 도피성으로 피신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고 우발적 실수가 분명하면 사형에서 면제 되었다. 그럼에도 도피성으로 가는 도중이나 그곳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살해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피의 보수 즉, 살인자를 죽여도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본문의 가인의 경우는 하나님이 당신께서 제정한 율법을 두 번 어긴 셈이다. 사형이 필수인데도 면제 했다. 또 피의 보수를 금지시켰다. 아무리 지금 율법을 제정하기 전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은 항상 동일해야 하지 않는가? 그럼 하나님이 생각을 바꾼 것인가? 아무리 따져 봐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

 

하나님의 첫 손자이자 장손인 가인

 

가인은 아담의 첫째 아들이었다. 아담은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인간적으로 말해 하나님에게 첫째 아들인 셈이다. 그럼 가인은 하나님에게 장손이자 첫 손자 격이니까 수염을 만져도 그 좋고 사랑스런 할아버지의 마음인가? 혹은 가인에게 피의 보수를 허락하면 아담과 이브 부모가 나서야 하는데 너무 가혹해서인가?

 

아니면 가인에게만 예외 규정을 적용한 것인가? 이를테면 첫 살인자를 죽이지 말고 차라리 살려서 땅에서 유리방황하는 모습을 모든 이로 목격케 하여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끔 시범케이스로 삼은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은 다 “아니다”이다.

 

우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후에 심히 기뻐했듯이 분명 감정적인 분이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으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해 즐거이 노래 부른다고 했다.(습3:17) 하나님은 어쨌든 장손 격인 가인의 실패를 분명 아주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개인적 감정 때문에 공의를 굽게 하는 법은 결코 없다. 가인을 살려준 데는 반드시 당신만의 공의로운 뜻과 계획이 있었다.

 

둘째 피의 보수는 부모가 나설 필요 없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이미 가인의 혈족이 번성하여 누구라도 보수할 자가 있었다. 여전히 왜 가인에게만 피의 보수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셋째 죄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아무리 바늘 도둑의 죄를 지어도 수치와 공포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 구태여 다른 이를 보고 죄의 폐해에 대해 학습할 필요가 없다.

 

한 번 생각해보라. 다른 이의 선행을 보고 따라한 적과 악행을 보고 따라 한 적 어느 쪽이 더 많았는가? 모든 이의 답은 후자다. 거기다 살인자 가인이 멀쩡히 살아 돌아다니면 가뜩이나 원죄로 타락한 후손들이 살인을 해도 하나님에게 뻔뻔히 살려달라고 요구하면 살려주나 보다 살인해도 죽지 않네 식의 학습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하나님이 또 그런 부작용이 있음을 모를 리도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하나님이 가인을 살려준 까닭을 단지 당신만의 무한한 긍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또는 하나님 하시는 일은 무조건 다 옳은 것이라고 여기기는 아무래도 미흡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대체 그를 왜 살려주었을까?

 

하나님은 왜 가인에게 관대했는가?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다시 무조건 그분이 옳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니다. 가인은 누가 봐도 천하의 죄인이다. 어쩜 유다보다 더 후안무치하며 인간으로서 기본 양심도 없다. 유다는 그래도 나중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자살로 자기 죄 값을 스스로 갚으려했다. 가인은 하나님을 죽이려 들어놓고 시쳇말로 하나님께 단물만 빼먹고 자기 할 짓은 다하려는 심보이지 않는가?

 

성경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류의 장손이 성경전체에서 최고로 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선포하는가? 인간의 흉포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오해한데서 부터라고 한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은 시작하자마자 하나님과 등을 지고 있는 모든 인간이 그럴 수 있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아무래도 하나님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주장 같다. 인간이 쉽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까 더더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이다. 인간이 성경을 저작했다면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인격과 성품을 갈고 닦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또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아예 대놓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인간이 그렇게 의롭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선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그분 없이는 어떤 선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드는 선은 겉으로는 의로워 보여도 실은 자기 자랑과 교만과 위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인간의 영적 실상을 솔직히 인정하라는 것이 가인의 사건이다. 예수를 믿어보려고 성경을 펼치자마자 천하 패륜의 범죄가 나오니까 대부분 질겁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그 불쾌함을 참고 이 자리에까지 온 여러분은 대단하다. 정확히 말해 정말로 부인하고 싶고 불쾌한 기사였다. 예수 십자가의 사랑을 성령의 내주 교통 간섭함으로 솔직히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또 그래서 예수 십자가 구원의 너무나 큰 은혜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기에 가인을 살려주었다는 뜻은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뜻이다. 아무리 살인자라도 다른 사람이 그를 정죄, 심판,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나중에 율법을 따라 피의 보수를 하게 된 것도, 그와 동시에 도피성 제도로 억울한 자를 구원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정해준 그대로 따른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대행한 것뿐이다.

 

모든 세대를 위한 성경기록

 

앞에서 하나님이 가인을 살려 둔 것이 죄의 경각심에 대한 학습효과를 감안한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뜻이 있다. 가인 당대로는 그를 만날 사람이 얼마 안 될 것이고 반대 폐해도 생긴다. 그러나 지금 어떤 이도 가인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성경을 보고 이 사건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인을 살려준 것은 구약성경에 기록케 해서 모든 세대의 성경독자들로 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다.

 

지난주에 성경의 의문은 성경 안에서 해답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본문에서 15절은 23,24절과 대조해야 하나님이 가인을 살려준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라멕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후처나 첩을 두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유대인들 특별히 구약성경에선 인물의 이름의 뜻이 그 인생을 대변해준다. 라멕은 힘 센 자, 아다는 꾸미는 자, 씰라는 애교떠는 자라는 뜻이다. 취하였다고 했는데 강제로 빼앗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라멕은 예쁘고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여자라면 남의 아내도 서슴치 않고 빼앗은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해석한다. 또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기에 라멕도 그들을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가인과 라멕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 우선 라멕 본인의 말 대로 죄의 질과 양이 아주 크게 확대되었다. 가인은 비록 피를 나눈 친동생을 죽였지만 그 원인은 하나님께 나름대로 경건과 열심을 바치려는 종교성 때문이었다. 라멕은 나의 창상과 상함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자기는 부상만 당했는데 아예 죽였다. 수십 배의 복수를 했다. 그것도 기껏 자기를 우습게보았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경찰도 들어가길 꺼려하는 우범지대가 있다. 일반인이 지리를 몰라 잘못 들어가면 자기들을 우습게 봤다고 큰 곤욕을 치른다. 라멕은 일부다처제 위에 표현이 이상하지만 조폭을 창시한 자다. 자기를 최고로 높였던 아담의 원죄가 모든 인간에게 얼마나 가공할 정도로 오염 확장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가인은 그래도 자기 잘못을 심중에 인정했다. 뻔뻔하게 하나님께 돌아와 목숨을 구걸했다. 인생에서 궁극적인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까지는 인정한 것이다. 반면에 라멕은 모든 것을 오직 자기중심으로만 판단 시행했다. 자기가 부상당한 것을 죽음으로 갚았다. 선악의 기준 자체를 자기에게 두었고, 판결도 자기가 했고, 집행도 자기가 했다.

 

거기다 남들 앞에 떠벌리며 자랑했다. 신학용어로 본문을 라멕의 칼의 노래라고 별칭한다. 그보다는 최초의 최고의 적그리스도의 노래라고 바꿔야할 것 같다. 자기가 정죄하고 심판하고 집행했다. 떳떳하게 잘 한 일이라고 자랑했다. 너무나 가공스런 죄다.

 

한 명을 죽인 가인을 죽이면 벌이 칠 배라면 자기를 죽이면 벌이 칠십칠 배라고 한다. 칠십칠은 칠의 11배다. 물론 7이 실제 숫자가 아니라 완전 숫자의 의미로 쓰이긴 했지만 틀림없이 사람을 그만큼 많이 죽여 놓고도 자기는 거꾸로 그만큼 의롭다고 우긴다. 가인보다 벌을 열한 배나 더 받아야 할 자가 자기를 죽이는 자를 열 한배로 갚아 죽이겠다고 한다. 하나님도 가인을 죽이는 자는 7배만 벌준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런 판결은 세상 아니 우주에도 없다.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탄의 판결이다.

 

너무나 치사하고 비겁한 라멕

 

성경은 참으로 흥미롭다. 라멕은 그 노래를 아내들 앞에서 불렀다고 한다.(23절) 어쩜 너무 치사하고 비겁하지 않는가? 여자들 앞에 힘자랑하는 남자는 남자 축에도 못 끼인다. 조폭의 창시자가 아니라 동네 양아치 수준이다. 겁이 나서 밖에 나가서 부르지 못한 것은 어쩜 라멕보다 더 흉악한 악당들이 들끓을 수 있다. 노아 심판의 당위성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가?

 

논외의 주제이긴 해도 율법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수하라는 규정이 있다. 오늘날의 신자에게 곤혹스러운 계명이다. 너무나 가혹해 수긍이 안 된다. 성경에서 답을 구하라는 것이 바로 이 경우인데 라멕처럼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다. 율법을 수여할 당시로선 가혹한 형벌이 아니라 아주 인자한 벌에 해당된다. 동해보복법이라고 부르는데 받은 것과 똑 같이만 청구해야지 넘치게 요구 내지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다.

 

라멕은 살펴본 대로 성경전체에서 최고로 흉악하고 치사하고 교만한 적그리스도의 시조였다. 그런데 그 라멕이 바로 예수 믿기 전의 바로 저의 모습이었다. 라멕의 노래를 현대말로 알기 쉽게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를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이다. 바로 제가 심심찮게 그렇게 큰소리쳤는데 라멕처럼 마누라 앞에서 그랬다. 예수를 믿으라고 그렇게 권면하고 새벽마다 눈물로 7년 넘게 기도한 아내에게 말이다. 이 얼마나 치사하고 비겁하며 교만이 하늘 끝까지 치달았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벼락 맞아 죽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인가 싶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너무나 착하고 배려가 많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라멕과 사실상 같았던 이유는 오직 하나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몰랐던 것이다. 본성 자체가 흉악한 것이 아니라 본성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어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바로 죄이며 예수님은 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본문 16-18절의 기록만으로는 아담 이후 5대 만에, 장수해서 시간은 꽤 되었어도, 인간은 이런 꼴이 되었다. 하나님이 예언한 대로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되었다.(창3:22) 선악의 통찰력이 높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선의 기준이자 판단하고 집행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라멕도 그런 하나님처럼 선악 기준이 자기였고, 자기가 판결하고, 자기가 집행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지금껏 남아 있는 대표적 예가 예수를 모르는 이들이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에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라멕처럼 자기 혼자 다 알아서 한다는 뜻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왜 방치했는가?

 

가인과 라멕의 사건에서 하나 더 따져볼 문제가 남아 있다. 하나님은 그 동안에 그럼 무엇을 했는가? 왜 그렇게 되도록 방치했는가? 그 대답 또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절대로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의지를 주실 때부터 스스로 기꺼이 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만을 당신께서도 찾으신다.

 

단신의 권능이 얼마나 광대하고 오묘한지 맛본 자, 예수 십자가로 구원하는 사랑만이 하나님이 제시한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체험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린 자만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그 외는 아무리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롭고 경건해 보여도 받으시지 않는다. 바로 그 뜻을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을 때부터 명확히 드러내셨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으로 따지면 악인의 잘못도 일일이 벌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모두 겁이 나서라도 믿게 되고 그 안에는 진정한 믿음이 형성되기 힘들다. 벌 받지 않기 위해 믿는 척이라도 한다. 교회에 나와서 큰 화를 면케 해달라는 목적이거나 천국을 보장해 준다니까 믿는다면 믿음도 아니요 구원도 없다.

 

하나님이 악인을 다루는 원칙은 선악과 금령에서부터 예수님 십자가까지 일관되게 동일하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 자체가 정녕 죽음이다. 죄를 짓자마자 수치와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따로 더 벌이 없고 줄 필요가 없다. 다. 최고로 흉악한 조폭두목도 자식에게 그 직업을 물려주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조폭이 아니라 정신병자다. 스스로 자기 직업이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이미 큰 벌이지 않는가?

 

바울 사도도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떠나는 자는 그 부끄러운 욕심과 상실된 마음 상태 그냥 그대로 둔다고 했다. 지금 가인을 보라. 평생을 땅에서 유리방황하면서 어떤 의미와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결국 17절 이하에서 보듯이 짐승처럼 기껏 후손 번식하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도 라멕 같은 자의 선조가 되었고, 또 라멕은 최고로 치사하고 부끄러운 삶이었지 않는가?

 

솔직히 가인과 라멕이 얼마나 불쌍한가? 현실적으로 라멕은 떵떵거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한다면, 부러워하면 벌써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신자는 믿음에서 이미 졌고 심지어 그 악인에게도 진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신자가 부러워하는 것은 악인이 아니라 악인이 누리는 현실적 쾌락, 안일, 사치, 풍요이지 않는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따지는 것도 성경적으로는 경건 심오한 질문이 아니라 사실은 아직도 죄의 본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증거일 뿐이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

 

악인을 그 상실한 대로 그냥 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보호 인도하는 이는 오직 당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신자뿐이라는 것이다. 가인을 너무 쉽게 용서하고 라멕이 설치도록 방임한 것은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이 근본 이유다. 아무리 살인자라도 인간에게 심판의 집행권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신자더러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도피성을 둔 것도 억울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지만 잘못된 피의 보수를 하게 되는 친족이 범할 이차적 살인죄를 막는 것도 묵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소수만 이 땅에 남게 되더라도 그들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또 그들로 이 땅도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가꾸게 하려는 목적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우선 큰 위험에 빠질 것을 건져 주시고 실패하지 않게 막아주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는 죄를 짓게 되는 기회와 여유를 차단해주신다. 하나님이 그렇게 간섭하시는 것을 다들 체험했을 것이다. 예수 믿고 교회 출석하자 그렇게 신나게 같이 놀았던 세상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지 않는가?

 

세상 사람은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고 있을 때에 우리는 찬양예배, 구역예배,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을 정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 다시 튀어나갈지 모른다. 그게 인간이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결코 과장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이상하게 책상 모서리에 발이 찍히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야 목사가 다시 라멕으로 돌아갔네!”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스런 계획을 신자를 통해서만 이루신다. 각자 개인에게도 엄청나게 거룩하고 오묘한 계획이 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여러분이 죽고 난 한참 후에라도 그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를 통해 천국을 이 땅에 실현 확장시킨다. 역사는 그분의 역사지만 그 역사의 주역과 수혜자는 오직 신자다.

 

신자에게 고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신자가 진정으로 거룩하고 의로워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기를 그분이 더 갈망하기 때문이다. 조금 잘못하고 세상에 눈 돌리고 죄에 빠졌다고 당장 하나님은 벌주지 않는다. 진심으로 스스로 돌아오길 기다리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 돌아옴이 지체되면 정녕 죽음의 길로 들어설까 그분이 더 안타까워하신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간구하신다.

 

그런 성령의 내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기도와 말씀에 나태해 있다는 증거다. 뭔가 마음이 원인 모르게 눌리고 참 기쁨이 상실되고 감정의 업 앤드 다운이 심하다면 하나님과 사이의 거리부터 측정해야 한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라는 진심어린 간구 한 마디로 그 거리는 순간적으로 바로 좁혀진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단순히 구원 받은 정도가 아니다. 여러분과 저가 예배드리는 바로 이 자리에 실제로 주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너무나 기뻐하며 함께 하신다. 우리에게 신자가 된 가장 큰 특권을 주기 위해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린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어도 짓지 못하는 신분이 된 것이다. 주님이 막아 주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일에 쓰려고 말이다. 세상 사람은 누리지도 알지도 아니 상상도 못하는 특권이다.

 

믿음이 성숙된 증거도 그래서 “주님 오늘도 무사히”에서 “주님 오늘도 주님의 선한 일에 저를 마음껏 사용해 주십시오.” 최소한 “저를 죄에서 막아주세요!”의 고백으로 바뀌는 것이다. 후대의 성경독자인 우리에게서 그런 고백이 나오도록 하려고 가인을 살려주신 것이다.

 

3/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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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1
  • 조회 수 1001

기독교 원시신앙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목사 (창세기강해 #49-창4:25-5:5) [1]

기독교 원시신앙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목사 창세기 강해 (49)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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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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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고난에 참으로 동참하고 있는가? (눅22:31-34)

주님의 고난에 참으로 동참하고 있는가? 고난주간 설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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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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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는 교회들 (창세기강해 #48-창4:16-22)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는 교회들 창세기강해 (48)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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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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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 만큼 치사하고 사악했던 목사 (창세기강해#47-창4:15&23,24)

라멕 만큼 치사하고 사악했던 목사 창세기 강해 (4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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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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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이성과 상충하는가? (창세기강해 #46 - 창4:9-15)

믿음은 이성과 상충하는가? 창세기 강해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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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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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치다꺼리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강해#45 - 창4:9-12)

뒤치다꺼리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강해 (4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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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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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소원과 죄의 절제 (창세기강해 #44 - 창4:7)

죄의 소원과 절제 창세기 강해 (44)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4:7) 죄에 대한 성경 최초의 진술 인간이 에덴 밖에 저지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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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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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은 진짜 이유 (창세기강해 #43 - 창4:2-8) [1]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은 이유 창세기 강해 (43)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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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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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아벨이 아니라 하나님을 죽였다. (창세기강해 #42 - 창4:2-8)

가인은 아벨이 아니라 하나님을 죽였다. 창세기 강해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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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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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 (창세기강해 #41 - 창 4:1) [1]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 창세기 강해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창4:1) 성경이 말하는 바는?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꼭 알아야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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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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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쇠퇴의 첫째 원인과 그 대책 (창세기강해 #40 - 창3:4-7)

기독교 쇠퇴의 첫째 원인과 그 대책 창세기 강해 (40)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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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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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신자들 (창세기강해 #39 - 창2:15-17)

지금도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신자들 창세기 강해 (39)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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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0
  • 조회 수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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