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여러 의문들

조회 수 995 추천 수 0 2016.06.22 04:21:37

 

 

질문 (1)

 

민 18:21에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준다고 되어 있는데 신 14:23 에는 같이 나눠 먹어라? 십일조는 레위인의 것인가요? 백성 모두의 것인가요?

 

답변 (1)

 

십일조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매년 소산의 1/10을 바치는 것으로 기업을 받지 못하는 레위인의 생계를 위한 목적입니다. 둘째 십일조는 축제십일조(Festival Tithe)라고 부르는 것으로 유대인들은 레위인 공양을 위한 십일조를 바치고 남은 나머지(9/10) 중에서 또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중앙 성소에 가져가서 백성들과 레위인이 함께 나눠먹는 것으로 추수감사축제 용도였습니다.(신12:5-19) 셋째 십일조는 성중에 거하는 나그네,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등을 위한 구제 목적입니다. 안식년에는 소출이 없기에 십일조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셋째 십일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3년째와 6년째에 낸 둘째 십일조로 구제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신명기14:22-27은 둘째 십일조를, 14:28,29절은 셋째 십일조에 관한 규정입니다.

 

질문 (2)

 

민 18:19 에는 처음 난 소가 레위인들의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신 15:20 에는 먹으라고 되어있어요?

 

답변 (2)

 

초태생은 소는 “그 피는 단에 뿌리고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민18:17)드려야 했습니다. 절대로 피 채로 먹지 말아야 하며 기름은 인간의 몸에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흔든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민18:18)만 제사장 몫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성소에서 소의 주인과 그 가족들이 레위인과 함께 먹었습니다.(신15:20)

 

질문 (3)

 

신 33장 모세의 축복에 왜 시므온 지파는 빠져있나요?

 

답변 (3)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합니다. 첫째는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영토 내에 함께 거주할 것이기 때문에(수19:1,9)에 유다 지파의 축복에 포함된다는 의미로 생략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야곱의 저주(창49:5-7)을 받은 후에도 그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죄악을 더 저질렀기 때문(민25:14)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중 둘째가 더 설득력이 있는 해석입니다.

 

질문 (4)

 

수 15:8, 15:63 <-> 수 18:28, 삿 1:21 예루살렘은 유다지파 땅인가요? 베냐민 지파 땅인가요?

 

답변 (4)

 

상반되어 보이는 성경의 이 두 진술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그대로 맞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이라고 말할 때는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선을, 베냐민 지파의 땅이라고 할 때는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선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그 경계선의 양쪽에 걸쳐 있는 성읍이었고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양쪽 지파 사람들이 다 거주했다고 쉽게 이해하면 됩니다.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편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편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편 끝이며.”(수15:8)에서 남편 어깨, 북편 끝이라고 말하는 표현이 바로 그런 뜻을 나타냅니다.

 

질문 (5)

 

신12:14 번제 드리는 곳은 한 군데인가요? 그러면 왜 레위 사람들은 각 지파마다 흩어져 살았나요?

 

답변 (5)

 

레위 지파가 하는 일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원래 목적은 이 땅에 당신만을 왕으로 섬기는 신정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사장 지파는 이스라엘 국가 전체의 정치, 군사, 경제, 사회 전반을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여 백성들의 실제 삶에 적용시키고 백성들의 송사를 재판하는 역할도 당연히 맡았습니다. 심지어 전쟁을 치를 때에 앞장서기도 했는데 예컨대 가나안 땅을 진군할 때에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을 제일 먼저 건넜습니다.(수3:1-9) 하나님은 번제를 드리는 곳은 중앙 성소인 성막이나 성전 한 곳으로,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 가문이 주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위 지파는 이처럼 백성들의 지도자였기에 열두 지파가 분배 받은 땅 곳곳에 흩어져 살게 했던 것이며 또 그래서 기업을 얻지 못하고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활을 꾸려가게 한 것입니다.

 

질문 (6)

 

민27:8 시집 간 여자도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나요?

 

답변 (6)

 

이스라엘의 모든 기업은 아들에게 물려집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소유물로 여겨지고 그 결혼에서 난 아들이 그 집안의 기업을 잊게 됩니다. 시집간 여자는 따로 상속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민27장의 슬로보핫의 딸들은 성경에 명시적 표현은 없지만 미혼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미 다들 시집을 갔었다면 슬로보핫의 가장 가까운 인척인 형제에게, 또 그 형제의 아들들의 순서로 기업이 이어지게 됩니다. 땅은 처음 분배 받은 지파와 가문에, 다른 말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히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시집을 간 여자라면 성경은 남편의 이름이나 가문을 반드시 밝혔을 것입니다.

 

문제는 미혼의 딸들에게 기업을 물려준 후에 그 딸에게 장가오는 경우입니다. 이때도 그 기업은 여전히 슬로보핫 가문에 속하게 됩니다. 계대결혼 즉, 형수가 아들이 없을 때에는 시동생이 결혼하여 난 첫 아들로 형님의 이름으로 가문을 잇게 하고, 차남부터 자신의 기업을 잊게 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또 룻에게 기업 무를 첫째 자격이 되는 자가 룻과 결혼해 봐야 그 땅이 자기 소유가 되지 않기에 포기했던 것입니다.(룻4:5,6)

 

질문 (7)

 

엘리멜렉의 기업이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가야 하는데 왜 나오미는 기업을 받으려고 하죠?

 

답변 (7)

 

질문자께서 오해하셨습니다. 나오미는 처음에는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각자 자기 갈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룻1:6-13) 그 말은 자기에게 아들 자손이 없기에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기업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어가는 것을 각오한 것입니다. 본인이 이미 늙어서 자식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룻1:12) 그런데 모압 여인임에도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여호와 신앙에 감동하여 시모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시고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룻1:16,17) 나오미로선 아직도 젊은 며느리 룻이 고향 친척과 자기 민족의 우상 신을 버리고 자기를 쫓아 그녀로선 이방인 유대 땅으로 가겠다는 것에 감사해서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또 나오미가 재혼하게 되면 자동으로 그 남편과 아들이 엘리멜렉의 기업까지 잇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유다지파에서 나되 특별히 선조의 족보에 죄 많은 이방여인도 포함시키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였습니다.(룻4:18-22, 마1:5)

 

질문 (8)

 

삼상 2:18 사무엘은 에브라임 사람인데 왜 에봇을 입나요?

 

답변 (8)

 

상기 질문 (5)의 답변에서 밝혔듯이 레위 지파는 각 지파들의 땅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사무엘더러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묘사한 것은 에브라임 지파가 살던 지역에 살았다는 뜻일 뿐입니다. 역대상 6장의 레위지파 족보에 사무엘과 그 아들들의 이름이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 그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 아들은 여로함이요 그 아들은 엘가나며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며”(대상 6:1, 27,28)

 

질문 (9)

 

삼상 3:8 언약궤 앞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요?

 

답변 (9)

 

언약궤가 비치된 지성소에는 당연히 대제사장이 일 년에 대속죄일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막(나중에 동일한 구조로 성전이 됨)은 향로와 금 등대와 진설병을 놓는 상이 있는 성소와 언약궤가 비치된 지성소로 나눠집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3:3) 단순히 “여호와의 전 안”이라고 했지 “지성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있던 곳은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전은 언약궤가 비치된 성막 전체는 물론 그 주변 뜰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지성소와 휘장으로 가려진 성막 안의 성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여호와의 궤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통계시로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뜻일 것입니다.

 

질문 (10)

 

신 12:5,6 에는 제사지낼 곳을 정해주셨는데 삼상 7:17에는 왜 다른 제단을 쌓나요? 실로에 있는 성막이 파괴되어서 다른 곳에다 제단 쌓고 예배드렸나요?

 

답변 (10)

 

당시는 아직 중앙 성소가 확정되지 않았으며 지적하신 대로 실로의 성막은 언약궤도 없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질문 (11)

 

삼상 10:3 성막은 실로에 있는데 벧엘로 왜 가나요?

 

답변 (11)

 

실로의 성막에는 아직도 법궤는 안치되지 않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까지(삼하6:12)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삼상7:1) 반면에 벧엘은 이스라엘의 선조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곳이며(창12:8),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도 그곳에 단을 쌓았던 곳이라(창28:19,35:1-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성역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상기 질문 (10)의 경우처럼 사무엘 당시에까지 라마에서와 같이 별도의 제단이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진 것이 분명하다고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질문 (12)

 

삼상 10:5 하나님의 산은 뭔가요?

 

답변 (12)

 

본문에서 “하나님의 산”의 원어는 “기브아트 하엘로힘”으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기브아”입니다.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인 사울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그곳에 산당이 있었기 때문인데 사울이 왕이 된 후로는 “사울의 기브아”로 불렸습니다.(삼상11:4, 15:34, 삼하21:6) 사울이 고향 기브아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그곳 산당에서 제사 드리고 내려오는 선지자 무리와 만났던 것입니다.

 

질문 (13)

 

삼상 13:21 KJV와 NIV 내용이 다릅니다.

 

답변 (13)

 

이는 각각의 영어번역본이 택한 히브리원전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입니다. 삼상13:19-22까지의 내용은 당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정치적 군사적으로만 통치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지배 수탈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철공은 물론 벼리는 기구도 없어서 블레셋의 철공소에 내려가 실제로 그만한 돈을 주어야만 연마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은 무기는 소지하지 못하고 블레셋이 만들어주지도 않았습니다. 번역이 다르다고 해서 전체적 의미와 성경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줄이 있어서 곡괭이와 날과 쇠스랑과 도끼와 가시 채를 벼렸더라.”(킹제임스흠정역) “Yet they had a file for the mattocks, and for the coulters, and for the forks, and for the axes, and to sharpen the goads.”(KJV)

 

“보습이나 곡괭이를 벼리는 데는 삼분의 이 세겔이 들었고, 도끼나 낫을 가는 데는 삼분의 일 세겔이 들었다.”(히 '2/3핌' =1 4온스, 약 8그램 히, 1/3핌=1 8온스, 약 4그램) (표준새번역) “The price was two-thirds of a shekel for sharpening plow points and mattocks, and a third of a shekel for sharpening forks and axes and for repointing goads.”(NIV)

  

질문 (14)

 

정말로 요나단 때문에 기도 응답이 없었고,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인가? (삼상14:37)

 

답변 (14)

 

우선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버리고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로 했기에(삼상13:13,14) 사울의 기도에 응답할 리가 없습니다. 또 사울의 맹세 자체가 악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요나단을 살리려고 기도 응답이 없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살리려면 어떤 방안으로도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당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간섭하시고 당신의 뜻을 계시해 줍니다. 실제로 그 후에 전개된 그대로 백성들의 탄원으로 요나단을 살리셨습니다. 또 그 일은 헛된 맹세의 장본인인 사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안이었습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가장 보편적인 방안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에봇에서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도 실은 그 두 보석에서 하나를 고르는 즉, 제비뽑기 방식이었습니다. 제비뽑기는 인간의 뜻, 계획, 취향, 선호도, 편애, 편견, 선입관, 고집 등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제비뽑기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었습니다. 신약시대 이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원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확정되었고 또 그 진리는 성경으로 계시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이 믿는 자 누구에게나 내주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를 대체할 사도를 뽑는 일(행1:26)을 끝으로 더 이상 제비뽑기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질문 (15)

 

삼상 16:14 성령도 떠나나? 하나님이 악을 심어주시나?

 

답변 (15)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사건에서만 일시적으로 머물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의 지위에서 버리는 순간 사울에게서 성령은 떠난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시대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거듭나는 신자에겐 성령이 내주하여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한 죄인에게 성령이 임재 하여 그 영혼을 새롭게 해야만 순전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욜2:28-32, 렘31:31-34, 고전 3:2, 6:19, 12:1-3 등)

 

하나님은 악을 계획하지도 만들지도 않으며 악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악을 심어주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사탄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을 미혹시켜도 되도록 한시적으로 허락해놓았을 뿐입니다. 비록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세상을 농간해도 하나님은 범사를 합력해서 선으로 이끄시어 당신의 뜻과 계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달성하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악신이 사울을 야료하도록 놓아두었지만 그로 인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당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훈련 연단시켜서 왕으로 세울 일들을 당신만의 방식과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16)

 

삼상 17:54 아직 예루살렘이 점령되지 않았는데요?, 예루살렘이 도시 묶음인가요?

 

답변 (16)

 

예루살렘은 도시 묶음이 아니고 한 성읍을 말하며 골리앗과 싸울 당시 여부스 족속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성경의 진술과 상충되기에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여부스 족의 지배가 느슨해 일부 이스라엘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수15:63, 삿1:21) 다윗이 싸움 직후에 골리앗의 머리를 가까운 그곳에 가져갔다고 봅니다. 둘째는 여부스 지배가 아주 강력해 싸움 직후에는 골리앗의 머리를 다른 곳에 일시 보관했다가 나중에 예루살렘 정복 후에 옮겨갔다고 봅니다. 즉 사무엘서를 후대에 기록하면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적장의 머리를 가져감으로써 블레셋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강조하려는 뜻입니다. 사울이 임시로 장사되었다가 나중에 아비의 매장지로 옮겨서 안장되는 경우(삼하21:12-14)에서 보듯이 후자가 더 타당한 해석입니다.

 

질문 (17)

 

삼상 18:55 사울이 다윗을 왜 모른척?

 

답변 (17)

 

다윗이 이미 사울의 궁중 악사로 일했던 적이 있는데도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라고 물었으니 의아합니다. 이 또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사울이 정신병을 앓았고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 다윗을 잊어먹었다고 봅니다. 둘째, 다윗을 개인적으로 알아봤지만 “뉘 아들이냐?”고 물었듯이 엄청난 전공을 세웠기에 어떤 가문 출신인지 그 배경이 궁금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 다 일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후자가 더 합당한 해석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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