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피부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 강해 (59)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이었더라.”(창10:6-20)

 

 

남침례교단의 치명적 잘못

 

저희 교회가 소속한 미국 남침례교단은 세계 최대 교단이자 정통보수주의 신학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치명적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비록 1995년에 총회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사과를 했지만 흑인 노예제도를 지지 내지 적극 시행한 자들이 우리 교단의 선조들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한 양심만으로도 잘못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게 된 나름의 성경적 근거는 있었다. 지금 따져보면 너무나 어이가 없고도 초보적이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노아가 아들 함의 잘못을 꾸짖으며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 오늘 본문 6절의 함의 아들 ‘구스’의 뜻은 ‘검다’는 것이며 에디오피아 지역과 그 지역의 주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함과 가나안을 흑인들의 선조로 판단하고 성경이 저주를 했으니 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노아의 세 아들을 좇아 백성들이 온 땅에 퍼졌으니까(창9:19) 야벳을 백인종, 셈을 황인종, 함을 흑인종의 선조라고 교회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가르쳐왔다. 어는 정도 일리는 있지만 실은 본문만 제대로 살펴보아도 그 설득력과 타당성이 부족한 해석이다.

 

함의 후손에는(10-14절) 앗수르, 니느웨, 블레셋이 거론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이라크, 이란, 팔레스타인인데 조금 검긴 해도 중동계 아시아인이다. 또 가나안의 후예는(15-20절)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혀 온 가나안 족속들로 이 또한 인종적으로 흑인은 아니다. 만약 구스 때문에 흑인이라고 판단하려면 셈의 후예에도 최소한 황인종의 대표인 중국의 지명이나 종족 이름 한두 개는 인용되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성경은 과학적 논문이 아니다. 노아 일가족 외에는 다 진멸 당했고 그의 세 아들이 신세대의 선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흑백황의 세 인종이 언제 어떻게 출현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기후, 환경, 음식, 생활습관에 따라 변화된 것이라고 과학자들도 추측할 뿐이다.

 

신자들이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관한 기본적 개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계시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통치하고 대우하는지, 특별히 죄에 빠진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그 진리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구원의 구체적 방안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해서 때가 차면 유다 지파의 다윗가문을 통해 처녀에서 잉태한 독생자 예수를 메시아를 보내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함으로써 구원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은 유대인 중심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어떻게 개입해서 어떤 은혜와 권능을 베푸셨는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예컨대 성경의 족보도 인종의 유전학적 생물학적 계통도가 아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며 그 선민과 하나님과 어떤 특수한 관계였는지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족보가 단순히 출생의 계보를 객관적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족보 안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인류의 역사를 이끄는 가운데 당신이 어떤 분인지에 관해 신자가 깨닫도록 계시해 놓았다는 뜻이다.

 

족보 저작의 목적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10장의 족보에 당장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의 언어가 나뉘고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은 11장의 바벨탑 사건 이후다. 그런데 본문 10:5, 20, 31에는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기록순서가 사건의 발생순서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럼 저자가 순서를 바꿔 기록한 의도가 반드시 있다는 뜻도 된다.

 

창세기는 노아는 물론 아브라함 때보다 훨씬 후대 사람인 모세가 기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 모세가 사건의 순서를 다르게 저작했다는 것은 11장의 서론 격으로 10장을 삽입한 셈이다. 즉 바벨탑 사건의 발생한 경위와 사건의 주역이 누구인지의 힌트를 10장은 물론 지난주에 살펴본 9:18까지 사전에 심어 놓았다는 뜻이다.

 

본문 10장에서 함의 후손을 통해 강조하는 내용은 레센(큰 성)을 사날 땅 바벨에(10절)에 건축했다는 것이다. 또 가나안족의 족보에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언급(19절)되어 있다. 그렇다면 10장의 족보는 노아 세 아들이 인간 피부색깔이 세 가지로 나뉜 이유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뜻이다.

 

대신에 전 지구적인 지각변동을 불러온 그 큰 홍수 심판을 겪고도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패괴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려고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민족들이 함 특별히 가나안의 후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어떻게 생성하여 어떻게 인도하셨는 지만 기록한 것이다. 평생을 동족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구원하려는 소명에 헌신했던 자였지 흑백황 피부 인종학에는 전혀 관심조차 아니 아예 알지도 못했다. 당시에 흑인 백인을 쉽게 많이 만나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저자가 전혀 의도치도 않았던 내용을 후대 독자가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노아보다 훨씬 후대 사람 모세가 저작했다는 점과 연관해서 또 다른 성경해석상의 문제가 하나 있다. 노아가 정작 잘못은 아들 함이 했는데도 대뜸 가나안을 저주한 것은 후대의 저자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대적이 가나안 족속이었음을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함 대신에 가나안으로 바꿔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을 인간이 저작했지만 그 배후에서 성령이 어떻게 어디까지 영감을 주느냐는 신학적으로 복잡한 과제가 제기 된다. 짧은 설교 시간에 설명하기엔 합당하지 못한 주제다. 한 가지만 주지할 사항은 성령이 성경의 저자에게만 영감을 준 것이 아니라, 성경 속의 인물에게 더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워서 당신의 일을 수행시킬 당신의 종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이 역사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노아가 아들 함 대신에 손자 가나안을 저주한 것도 성령의 영감이었다.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흉을 본 것은 분명히 잘못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한 번뿐인 해프닝이었다면 아무래도 자기 자식인지라 그렇게까지 심하게 저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 노아는 함과 또 함보다 가나안을 너무나 걱정하고 있었다. 여호와 신앙교육을 시켜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했다. 저들이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믿는 척 하다가 죽고 나면 당장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을까, 또 저들을 통해 앞으로 틀림없이 하나님의 대적이 나오지 않을까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에 그런 고뇌를 하고 있던 참에 적당한 계기에 성령이 역사하자 그런 저주를 선포하게 된 것이다.

 

성령의 크고 오묘한 역사

 

그럼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하나님은 노아가 술에 취해 큰 실수를 했지만 당신에게 겸손하게 순종하고 동행하기에 의인이자 완전한 자라고 인정했다.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아의 잘못과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 당신의 역사는 단 한 치의 착오 없이 완벽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아가 손자 가나안을 저주할 때와 나중에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적대하기 까지는 최하 수천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노아로선 도무지 알 수도, 아니 상상도 못하는 일을 미리부터 예언했다. 아무리 하나님과 동행해도 수십 세대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까지 미리 알려 주시지는 않는다.

 

노아는 자기가 처한 여건과 겪은 체험들과 아들 손자들과의 매일 부대끼며 살았던 인간관계에 입각해서 평소의 자기 생각대로 말한 것뿐이다. 자신의 지정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어떤 외부적 강요나 구속이 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말한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역사에도 개입하지만 노아 한 개인의 생각과 입술의 말을 알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관하셨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노아를 로봇처럼 작동시키거나 녹음기처럼 할 말을 재생시키지는 않는다. 노아는 지극히 일상적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자신의 한마디 말이 수천 년 뒤의 하나님의 역사의 시초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역사를 절대적으로 당신만의 일정과 방식으로 이뤄나가신다. 노아가 술에 취해 큰 실수를 범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신다. 완전한 의인이라는 노아는 우리가 보기에도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했음에도 하나님의 선한 역사는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오묘하고 신기하고 완전하지 않는가? 아니 하나님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손쉬운 일이다. 그보다 신자가 그런 큰 역사에 자기도 모르게 쓰임 받고 있다니 너무 과분한 은혜이자 너무 큰 사랑이지 않는가?

 

세상에서 불려나온 신자

 

신자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불려나온 자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제멋대로 행한 죄에서, 윤리적 죄도 당연히 포함하여, 구원 받은 자다. 특별히 살아 있을 동안에 나라는 존재 전부가 하나님께 용납되어 그분의 자녀가 되었음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인간 그중에서도 자기중심으로만 살았다. 오직 내가 최고라는 가치관이 그분 중심으로 완전히 전도되었다.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 헌신했다. 이미 우리 모두는 창세기의 노아처럼 의인이요 완전한 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노아는 인생 후반기에 단 한 번 실수했다. 우린 수시로 쓰러지고 넘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는 법은 없다. 수시로 쓰러지긴 해도 그래도 우이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회개한다. 아침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주일에 성경공부하고 예배를 드린다. 이 또한 그분 보시기엔 대단한 일이다.

 

그러다 또 넘어진다. 심지어 예배가 끝나자마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부부끼리 싸우고 자식을 야단친다. 예배 후에 누가 가장 잘 싸우는지 아는가? 바로 목사와 사모다. 오늘 설교가 어떠했고, 사모 몸가짐이 어떠했는지 서로 비평하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서 분을 참지 못하고 싸운다. 쉽게 다른 성도들을 시기 질투한다. 목사인 내가 내 자신을 봐도 너무 치졸하고 한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생으로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는다.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신은 상상을 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품 안에는 남아 있으려는 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다. 수십 년 간 교회 생활하여 쌓은 것이라곤 겨우 그것 하나 남았다.

 

성경은 지금 겨우 그 정도의 우리조차 하나님이 들어 사용한다고 선언한다. 우린 알 수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리 당대의 일만 아니라 수천 년 뒤의 원대하고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말이다.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통해 극히 일상적 가정사 안에서, 그것도 때로는 실패와 잘못을 통해서도 이루신다.

 

신자로 불려나온 뜻이 인류 역사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성경의 속편을 우리더러 매꾸어 넣으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것 같아도 힐러리나 트럼프가 미국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시적 물질계 안에서 물질의 생산 유통 분배하는 일만 담당할 뿐이다. 엄밀히 말해 짐승 수준의 일이며 돈과 그 배후의 사탄의 노예일 뿐이다.

 

이 미국 땅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고 그분의 사랑과 권능을 실현하는 일은 오직 신자의 몫이다. 신자가 세상에서의 위치 소속 신분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스스로 부끄러운 실수나 잘못을 범해도 하나님은 우릴 통해서만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그러니까 우릴 죽은 후에 심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의인으로 칭하여 당신과 동행시키는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

 

별로 실감나지 않는가?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b) 전도를 하다보면 종종 불신자들의 반발에 말문이 막힌다. 제대로 성경구절을 인용해 설명할 수 없다. 일단 우리 교회에 나와서 목사님 설교 들어보라고만 권한다. “목사도 똑같은 인간인데. 알고 보니 돈과 여자를 더 밝히던데 그런 인간에게 따로 배울게 뭐가 있어!”라고 하면 힘이 빠진다.

 

예수 믿으면 얼마나 좋은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먹는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자기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도 그러니 갑갑하기만 하다. 나중에는 논쟁을 벌이다 예수님까지 싸잡아 비난하니 속으로는 너는 지옥 가도 싸다는 미운 감정까지 든다. 그런 전도가 얼마나 미련하고 갑갑하게 여겨지는지 분노가 치민다.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도 오묘하고도 신비하게 역사한다. 신자가 그러지 않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

 

바울 당시에도 전도자는 욕을 먹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려 하나님께 저주 받은 죽음을 당한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느냐고 외면했다. 헬라인들은 착한 일을 해야지 어떻게 아무 공로 노력 없이 예수만 믿었다고 구원 받느냐고 반발했다. 인간의 눈에는 예수 십자가가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앞에 항복하지 않는 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전하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신자는 일단 전하고 전한 대로 살면 된다. 구원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신자더러 지혜의 권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구원자체가 그런 것으로 일어나는 것는 아니지만 신자는 최선을 다해 지혜의 권하는 말을 해야 한다. 불신자가 반발 비난 멸시 핍박해도, 그 자리에서 거절당해 상처 받고 탈진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선 성령이 역사한다. 하나님이 구원 할 자는 반드시 당신의 때에 구원해주신다.

 

하나님의 역사가 신자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은 역으로 말해 신자가 기도하지 않고 말씀 읽지 않으면, 또 하나님이 신자로 부르신 뜻을 잊는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역사는 더디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에 단 한 명이라도 그런 확고한 인식과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은 엄청난 일을 일으키신다. 노아 한 명을 통해 지구 전체가 뒤집어졌지 않는가?

 

요컨대 모든 신자는 세상 앞에 하나님의 대신에 그분의 전권대사로 서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내주하신 것도 수호천사 역할로 절대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의 광채를 세상에 드러내라는 뜻이다. 수천 년 후의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될 엄청난 역사를 위해서 바로 여러분을 통해 시작하려고 성령을 내주케 하신 것이다.

 

믿음의 지평을 넓혀라.

 

그렇다고 당장 엄청난 일을 계획해 실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실수나 잘못을 얼마든지 저질러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의 내용과 지평을 넓혀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신 분인지 그분을 깊이 알아나가야 한다. 그분을 아는 크기 만큼 그분의 역사는, 구태여 역사가 아니라도 여러분 일상에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늘어나는 법이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부부가 싸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당장 눈앞의 일에 관심이 쏠렸고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미 지나간 과거 일이다. 서로 얼굴 붉힐 필요가 없다. 그러는 자기만 손해다. 솔직히 지나고 나면 꼭 부끄럽고 한심하게 여겨졌지 않은가?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자녀들에 대해서도 제발 당장의 잘못 한두 개 고치려 들지 말라.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먼 미래에 엄청난 일을 준비해 놓고 있다. 노아도 언뜻 보면 함과 가나안의 당장의 잘못을 야단 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하나님만의 절대적 간섭을 소망했다. 자기가 직접 벌을 주고 고치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로 잡아달라고, 아니 어떻게 되든 그분의 역사에 완전히 내어맡겼다.

 

제 개인의 이야기를 순전히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설교를 하게 되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하나님이 시켰다고만 보면 너무나 부족하다. 하나님의 너무나 엄청나고도 풍성한 섭리와 필연이 배후에 있다.

 

쉽게 말해 이 교회를 설립한 S목사님과 저의 친분이 없었더라면, 그 전에 집사람끼리 먼저 친구가 되지 않았다면, 나아가 여러분의 지난 2 년 반 동안의 진통과 눈물이 없었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그 전에 제가 홈페이지 사역을 하게 된 것, 유타에서 목사가 된 것, 하나하나 역으로 추적하면 수 천 수 만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슈퍼컴으로도 도무지 분석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하고도 정교하게 씨줄날줄로 엮여져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그 중에 한 올이라도 빠지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나아가 제가 예수 믿게 된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기적이다. 세상에 없는 확률로 하나님이 제가 나기 전부터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내용의 설교를 하도록 계획되어 있었고 그분이 티끌만큼의 오차 없이 인도하셨다. 저는 오직 제 멋대로 살았고 가나안보다 더 하나님을 거역한 세상의 탕자였다. 저희 아이들 둘은 아빠가 예수 믿는 것 보면 하나님 살아 계신 것 분명하니까 다른 증거가 필요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제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바로 곁에서 보는 아들들로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제가 교만했고 오직 제 중심이었다.

 

그런 저를 하나님만의 크신 긍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완전히 항복케 하시고 지금도 당신의 의롭고 강한 손으로 저를 딱 붙들고 계심을 확신한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너무나 감사하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어떠했는가? 120년의 인생 중에 80년을 허랑방탕하게 보냈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다윗의 예에서 보듯이 양치는 일을 소년들의 일이다. 나이 80에도 양을 치고 있으면 인생 최고의 낙오자다. 혹시 목축업을 크게 했는지는 몰라도 스스로는 자기 소망대로 살지 못해 실패자라고 크게 후회하고 있은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을 상대하고 광야생활의 최고 전문가로 그를 훈련 준비시켜서 결국에는 구약의 최고 위인으로 세웠다. 모세 본인은 그 80년 동안 하나님과 씨름하고 수시로 쓰러지고 넘어지며 그분에 대한 의심 불평 불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끝까지 지탱해 준 것, 딱 두 가지는 있었다. 하나님을 붙드는 힘과 애굽의 동족을 구원하려는 안타까운 소망은 끝까지 절대 버리지 않았다.

 

인생의 2/3를 실패로 살은 모세를 오늘날의 백세 시대에 대입하면 정확히 제 또래다. 저는 하나님이 앞으로 저를 들어 쓰실 일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정말로 할 일도 많고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여러분과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실 거룩한 역사가 분명히 있음을 믿기에 그것을 소망하면 가슴이 벅차다.

 

당장에 양적성장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여러분 각자의 인생이 하나님의 선하고 오묘한 은혜가 넘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갈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를 통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마다 여러분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게 할 것이다. 최소한 여러분의 아이들이 지금은 부모 따라서 교회 잘 나오다가 대학에 들어가 독립하면 믿음을 버리고 교회출석을 중단하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찌질 하고 실패한다고 하나님이 찌질 하고 실패하는 법은 절대 없다. 하나님에게 시간과 자원의 낭비는 절대 없다. 인간을 흑백황 세 인종으로 만든 것도 그분의 완벽한 계획과 신비다. 언젠가는 흑인을 통해, 아니 지금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끝이 없고 부족하지도 않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광대하신 하나님을 알고 소유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분이 주시는 꿈을 품게 해야 한다. 아니 여러분 자신도 아직 절대 늦지 않았다. 이중에 60을 넘긴 자는 없지 않는가? 한 번뿐이고 짧은 인생에 하나님의 큰 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율법적 종교적 믿음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훼방만 된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 그분을 얼마나 크게 담을 수 있느냐에 따라 여러분 인생의 크기도 달라질 것이다.

 

7/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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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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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는가?(창세기강해 #72 - 창14:16-20)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는가? 창세기 강해 (72)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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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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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뻔뻔해지는 믿음을 가졌는가? (창세기강해 #71-창20;1-18)

하나님 앞에 뻔뻔해지는 믿음을 가졌는가? 창세기 강해 (7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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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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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자의 숙제(2) (창세기강해 #70 - 창13:8,9 & 14-18) [2]

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자의 숙제(2) 창세기 강해 (70)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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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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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자의 숙제(1) (창세기강해#69-창13:5-13)

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자의 숙제(1) 창세기 강해 (69)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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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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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도약하는 단계를 거쳤는가? (창세기강해 #68-창13:1-4)

믿음이 도약하는 단계를 거쳤는가? 창세기 강해 (68)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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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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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판 것보다 더 큰 아브라함의 잘못 (창세기강해 #67 - 창12:10-20)

아내를 판 것보다 더 큰 아브라함의 잘못 창세기 강해 (67)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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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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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성공의 유일한 비결 (창세기강해 #66 - 창12:1-3)

인생 성공의 유일한 비결 창세기 강해 (6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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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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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실상은? (창세기강해 #65 - 창12:1-3)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실상은? 창세기 강해 (6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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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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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어 누리는 최고의 현실적 축복 (창세기강해 #64-창12:1-5)

예수 믿어 누리는 최고의 현실적 축복 창세기 강해 (6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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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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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떠남의 필요충분조건 (창세기강해 #63 - 창12:1-4)

완전한 떠남의 필요충분조건 창세기 강해(6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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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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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 관한 하나님의 뜻 (창세기강해 #62-창12:1-4)

미국 대선에 관한 하나님의 뜻 창세기 강해 (6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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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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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강해#61-창11:10-13, 26-32)

인류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 강해 (61)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 오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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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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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강해 #60 - 창11:1-9)

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 강해 (60)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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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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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피부 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강해#59-창10:6-20)

사람의 피부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 강해 (59)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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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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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강해 #58 - 창9:18-29)

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 강해 (5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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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6
  • 조회 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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