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생각한 마지막 때는 언제인가?

 

[질문]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2:18) 요한이 말한 지금이 거의 2000년 전인데 저때부터 마지막 때였나요? 아니면 요한은 저때가 마지막 때라고 생각한 건가요? 요한이 어떤 생각으로 저 구절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 저자의 생각을 후대 사람이 정확하게 완전히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저작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고 앞뒤 문맥에서 뜻을 파악한 후에 성경전체가 계시하는 바에 비추어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먼저 요한이 활동하던 초대교회 시절, 특별히 그 초기에는 사도들마저 예수님이 그 당대에 다시 오신다고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그들에게 가르치신 말씀들 때문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성경 원문에는 장절의 구분이 없기에 죽 연결해서 읽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바로 다음에 변화산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정말로 주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주님과 함께 산에 올라 주님의 왕권을 목격한 요한이 나중에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그 뒤에서 큰 음성을 듣고 돌아보니 인자 같은 이가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얼굴은 해 같이 빛났습니다.(계1:10-16) 부활 승천하셨던 주님이 요한이 죽기 전에 그에게 다시 오셔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를 받아 적게 했습니다.

 

주님은 또 마지막 때와 그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24:34)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세대 즉, 자기들이 살아 있을 때나 가까운 장래에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 여겼습니다. 히브리어 용법에서 ‘세대’에는 아비와 아들이 구분되는 일반적 뜻 말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특정 기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님이 이 세대라고 말할 때에 꼭 제자들이 살아 있던 그 세대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도 문자적으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24:4-9와 15-20의 예언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잔혹하게 멸망시킬 때 그 말씀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예언들은 가까운 미래, 먼 미래, 마지막 때 모두에 해당되는 이중 삼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세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 마24:4-41의 설명을 잘 살피면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때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가 주님 승천하신 후 한 세대가 지나지 전의 의미도 되지만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마지막 끝(마24:4)도 뜻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나, 요한이 계시 받은 밧모 섬에서나, 예루살렘 멸망 사건에 비춰보면 주님은 당신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어김없이 행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재림하시는 날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있을 특정 사건이었습니다.

 

살펴본 대로 사도들마저 당시로선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탓에 또 스승이 어서 빨리 다시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당대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주님 재림 시기에 대해 오해를 하고 개인 의견이라고는 밝혔지만 미혼인 자들은 주님 재림을 대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면했던 것입니다.(고전7:25-40)

 

요한의 생각은?

 

요한도 사역 초기에는 다른 사도들처럼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속한 앞뒤 문맥을 살펴 볼 때에 조금 다른 내용입니다. 서신의 전반부에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주님과 교제 동행하고 있는(1:6) 중요한 증거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죄를 짓고도 자복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1:10) 둘째,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2:4) 셋째,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고(2:11) 그 말이 거짓이라고 합니다. 넷째,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아버지 대신에 세상에 속한 탓이라고 합니다.(2:16)

 

여기까지는 신자의 삶에서의 증거들이었습니다. 본문이 속한 2:18 이후는 근본적으로 그 믿음을 보고 주님과의 사귐을 판단하라고 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지 여부로 그 믿음을 알 수 있는데, 그분의 그리스도 됨을 부인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당연히 그분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2:22)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우리에게서 나갔고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2:19) 반면에 너희들은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성령)을 받아 진리를 알게 되었고(2:20) 그 안에 거짓이 없으니 배운바 진리 안에만 거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2:27)

 

따라서 인용하신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요한 당시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 의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아닌지 여부를 설명하는 중에 요한 당시에도 많은 이단들이 출현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입니다.

 

사도가 이 요한일서를 저작한 시기를 AD 90년경으로 봅니다. 주님 돌아가신지 벌써 두 세 대가 지났습니다. 주님에 의해 지명되었고(눅6:12) 신약성경을 저작한 다른 사도들은 이미 다 순교했습니다. 그 사도들도 죽기 전에 주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더딜 수 있다고 즉, 자기들 당대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벧전 3:9-12, 딤후4:6-8)

 

요한은 그들보다 훨씬 오래 살고 마지막까지 순교하지 않고 유배되었던 밧모 섬에서 자연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인류 역사의 진행이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 계시 받았습니다. 계시 받은 내용들은 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주님이 강조하는 내용은 “끝까지 견디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사역 말기에 주님의 재림시기에 대해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 서신이 전통적으로 인정하듯이 AD 90년에 기록된 것이 옳다면 당시에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 믿지 않았기에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이해해야 타당합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대신에 요한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을 정확히 이해한 것 같습니다. 때를 모르면 언제든 오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럼 언제든 마지막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런 의미이며 특별히 적그리스도들이 설칠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방불한 큰 능력으로 역사의 마지막에 대환난을 일으키는 존재만을 적그리스도라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부인하는 자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자들이 극성을 부릴 때에 성령 안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서 진리만 붙들고 있으면 어떤 극악무도한 적그리스도가 설쳐도 두려울 것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사도들은 오순절에 초대교회가 설립된 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부터 주님 재림의 때가 훨씬 뒷일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에 거짓이 횡행하고 죄악이 관영하는 것을 보고, 사실은 인간이 모인 모든 사회 모든 세대에 다 그러하지만, 주님 어서 빨리 오시길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2)고 권합니다. 바울도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고 마지막 날에 대한 자신의 소망에 성도들도 동참할 수 있다고 위로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 사도 또한 계시록을 마감하면서 주님의 조속한 재림을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도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당장 바로 오늘일수도 있기에, 성령 안에서 진리대로 살고 있어야 합니다. 날로 사악해져가는 세태를 바라보며 이 땅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되 주님 빨리 다시 오심을 소망해야 합니다.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 때는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는 항상 마지막 때입니다. 특별히 지금은 기독교교회 안에서조차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이, 독생자의 십자가 대속죽음이 변색 왜곡 부인 포기 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11/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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