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53 32:1-8 사팔뜨기가 된 신자들

조회 수 82 추천 수 0 2018.06.07 08:27:41

 

사팔뜨기가 된 신자들

출애굽기 강해 (53)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32:1-8)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지도자 모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섬긴 사건으로 우리 모두 익히 잘 아는 내용이다. 모세가 개인적으로 휴가를 간 것도 아니고 직무를 태만히 수행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산 위에서 하나님과 대면해서 율법을 계시 받는 중에 백성들은 배교를 했다. 이스라엘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우리가 다 화가 치밀 지경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성경 속의 인물들이 현대인과 비교해서 지성적, 도덕적, 영적으로 훨씬 미개할 것이라고 간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신자와 그 성정이 똑 같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본문 사건은 하나님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결코 범해선 안 되는 엄청난 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우리와 닮은 모습을 찾아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쉽게 말해 내가 그 시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가정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세밀하게 살펴 나가야 한다.

 

모세가 어찌되었는지 모른다.

 

먼저 1절에서 모세가 어찌되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다고 올라가선 40일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먹고 마실 것이 없는 광야의 돌산에서 혹시 죽었는지 모른다는 뜻이지만 이는 듣기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들 중에 모세만한 광야 생활의 전문가는 없다. 또 먹고 마실 것을 수발들기 위해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올라간 것까지 알고 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피의 언약식을 체결한 직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산 위로 불러올렸다. 당신께서 직접 십계명을 새긴 두 돌 판과 나머지 율법을 주시겠다고 했다. 모세는 아론과 훌에게 자기 대신에 백성들의 사무 처리를 위임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첫 엿새 동안은 구름이 산 정상을 가렸다. 칠일 째에 맹렬한 불길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 하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으로 목격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출24:7)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해서 율법을 받고 있다고 확인한 것인데 그로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너무 조급히 여호와를 잊었는가? 여전히 여호와에 대한 의심 불만이 많았는가? 그렇게 단순히 해석할 계제가 아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본문에 우리를 대입해보면 여호와의 그 엄청났던 권능을 그렇게 빨리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의 생수를 마시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8절에서 어떻게 한탄하셨는지 다시 자세히 보라. 그들이 “나를 속히 잊었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났다”고 한다. 여호와의 길에 뭔가 이스라엘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있었다. 더 좋다고 여겨지는 다른 길이 생겼다. 분명히 의도적으로 자의적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정죄했다.(9절) 완악하게 자기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잠시 여호와를 망각하거나 시험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고집이란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에 지금 긴급한 일이 생긴 것이 전혀 아니다. 대적이 다시 쫓아오는 것도 아니요, 광야의 풍토병 같은 염병이 도는 것도 아니요, 천재지변이 생긴 것도 아니다. 먹고 마실 것이 고급하거나 풍요롭지는 못해도 부족하지는 않다. 지극히 평온한 상태이다. 조용히 안식할 수 있는 여건이다.

 

구태여 특정한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신탁할,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성경은 인간이 환경이 궁핍하거나 고난이 닥쳐 죄를 짓는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반대로 부유하고 형통할 때에 그런다고 한다. 결국 인간 자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고 뜻이 된다. 죄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유일한 종교 경전이다. 또 그래서 예수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된다.

 

여호와는 무용지물이다.

 

이스라엘이 고집이 세었다면 그들의 속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파악해봐야 한다. 우선 1절에서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가?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해낸 모세”를 모르겠다고 한다. 출애굽을 여호와가 아니라 모세가 이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깡그리 무시하고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 말의 뜻은 여호와가 모세만의 신일뿐이거나, 모세만이 여호와의 권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우상숭배 종교에 참여했기에 그들의 관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종교 교육을 애굽 방식으로만 받은 셈이다. 여호와는 아주 오래 전의 선조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약속을 해놓고는 그 후손인 자기들은 애굽 땅에서 사백년 넘게 노예로 살아가도록 방치해 놓은 신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그 반대로 사백년이나 지났음에도 때가 차매 그 약속을 꼭 지키려고 모세를 보냈다는 점은 인식하지 못했다.

 

애굽 같은 우상종교에선 제사장과 주술사들이 신탁을 독점한다. 그들만이 신과 대면할 수 있다. 또 워낙 신들이 많아서 각자가 맡은 신들이 다르다. 심지어 그들은 요술 같은 눈속임으로 신기한 능력을 보여서 살아 있는 신 내지는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 받았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에 여호와가 모세가 말하는 대로 역사하는 것을 보았다. 모세와 여호와의 관계를 애굽의 제사장과 그 신들과의 관계와 같은 방식일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모세가 없으면 여호와의 권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럼 여호와는 그들에게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가 만들자고 한 것이다. 우리 신탁을 잘 들어주는 신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지난 4백년 간 익숙한 애굽의 최고 황소 신 Apis가 좋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나아가 이 황소 신이 애굽에서 자기들을 구출해낸 신이라고까지 말했다.

 

금 고리는 어디서 났는가?

 

아론이 너희 아내와 자녀들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오라고 했다. 그 금 고리는 어디서 난 것인가? 애굽에서 노예로 있으면서 공짜로 강제 노역에 혹사당했다. 생존이 급급한 마당에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장신구를 마련할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이미 배운 대로 출애굽하는 당일 날 밤에 반죽이 발효가 안 된 상태로 황망하게 나오는 와중에 모세가 지신한 대로 애굽 사람에게 요구해서 취한 것이다.(출12:35,36) 모세는 또 그 전에 하나님이 지시한 그대로 백성에게 전했다.(출11:2) 금 고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은금 패물을 들고 나온 것에는 출애굽기는 물론 모세 오경을 바르게 해석하는데 힌트가 되는 심오한 의미가 많이 숨겨져 있다. 차츰 알아보겠지만 오늘의 본문과 연결하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모세는 지금 산 위에서 십계명에 이어지는 율법에 관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있다. 그 첫 부분 즉, 피의 언약식을 거행한 것이 24장이었는데 25장부터 하나님은 성막과 성소에 관련된 규정을 지시했다. 그중에 가장 강조한 내용은 바로 25:10에서부터 시작되는 언약궤를 제작하는 방안인데 언약궤 전체를 순금으로 덮으라고 했다.

 

언약궤는 알다시피 일 년에 한 차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양에게 전가하고 그 양을 죽여서 그 피를 궤 위에 부어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속죄소, 또 구원의 은혜를 베푼다고 시은좌(市恩座)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렇게 용서 받을 죄 중에는 하나님을 잠시 멀리한 죄, 일시적으로 우상의 유혹에 넘어간 죄들도 포함된다. 인간의 자격과 공로로는 도무지 씻을 수 없기에 죽어 마땅한 죄들을 양의 피로 대속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어떤 흉악한 죄를 지었어도 진심으로 통회 자복 회개하면 아무 조건 없이, 양이 죽어 그 죄 값을 이미 감당했으므로, 긍휼을 베푸는 곳이 언약궤이다. 바로 골고다 언덕의 예수 십자가이다.

 

왜 언약궤를 꼭 금으로 둘러싸야만 했는가? 이스라엘을 향하신 당신의 사랑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는 정말로 순전한 사랑이다. 또 당신께서 임재 하심을 상징하는 최고로 거룩한 장소이다. 하나님의 사랑, 아니 하나님 그분을 상징하니까 최고로 좋고 영원토록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의미인 금으로 둘러싸는 것이다.

 

하나님이 절대 용서 못하는 죄

 

구약성경에서 반드시 심판이 임하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죄는 우상숭배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다른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아도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사탄이 배후에서 예수를 못 믿게 방해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가는 죄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창성케 하려는 당신만의 완벽한 섭리에 따라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에 종으로 사백 년간 살게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곳에 방치해둘 수는 없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때가 차매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거꾸로 애굽의 우상을 만들고 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차원을 넘어선다. 아예 말로 설명조차 안 되는 엄청난 죄악이다.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전 우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한갓 우상과 동격화 했다. 황소 즉, 금수(禽獸-짐승) 수준으로 비하했다.

 

거기다 6절은 송아지 상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어 놀았다고 말한다. 우상 숭배도 일단 경건하게 희생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지낸다. 그 다음에 사치스런 산해진미를 쌓아놓고 맘껏 먹고 음주 가무를 즐긴다. 마지막에는 꼭 음란한 성행위로 그 의식을 마치는데 바로 그런 절차를 행했다는 뜻이다. 우상은 자기들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 이 땅의 풍요, 형통, 쾌락을 채워주는 것이 그 유일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전수 받을 때에 언약의 피로 자기들 몸에 뿌린 뜻은 죽기까지 그 계명을 준행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죽기까지란 평생을 의미하고 또 당연히 하루도 빠짐없이 순종하겠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처지에 처해지더라도 여호와 하나님만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첫 계명과,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새겨서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위반했다. 가장 중요한 첫 두 계명을 위반한 것은 십계명 전부를 위반한 셈이다. 십계명을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꼴이다. 순종 서약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랬다. 하나님으로선 이스라엘 전부를 진멸하겠다고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다.(10절)

 

나름대로 성의를 다 보인(?)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스라엘더러 십계명을 준행하라고 명하신 뜻은 무엇인가? 당신을 따름이 우상 종교와 전혀 다름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상 숭배의 본질을 정확히 아셔야 한다. 단순히 조각한 신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조각한 돌덩이는 실존하지도 않는 신이므로 아무 능력이 없음도 인간은 잘 알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들을 위로하려고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가 사실은 우상숭배다. 이 땅에서 인간을 최고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현실적 풍요를 보장할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도덕적 성결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간끼리 서로 관용하고 사랑하라는 아주 고상하고 경건하게 가르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인간을 높이는 종교다. 그래서 끝까지 완악하게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거역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이 땅의 풍요를 보장하지 않는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지라는 것이다. 당신의 거룩을 닮아가기 위해선 당연히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을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이 절대적 전제다.

 

오직 당신과 함께 기뻐하고 당신이 보장하는 보람과 의미와 가치 있는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또 그래서 오직 당신만을 경배 감사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의 사랑의 품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복의 근원으로서 열방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본을 보여서 그들도 거룩하게 변화시켜야 할 제사장 나라로 세워졌다. 십계명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적 지침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한 그 길을 속히 떠났다. 솔직히 그렇게 사는 것이 싫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문제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그랬다. 황량한 사막에 아무 맛도 없이 밋밋한 만나와 메추라기는 너무 지겨워졌다. 매일 들판에 넘치도록 늘렸지만 공짜로 먹다 보니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혹은 원래부터 그곳에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착각했다. 우리도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께 공짜로 넘치도록 받았으면서도 전혀 감사치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듯이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도 지금까지의 경과로 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지금 너무 심심하다. 뭔가 화끈하고 재미있고 풍요한 것들이 아주 아쉽다. 차라리 애굽 땅이 그리워진 것이다.

 

사십일이나 지났으니 모세를 기다릴 만큼 기다려 주었다. 지도자에게 보일 성의도 웬만큼 보였다. 지금 그 모세가 없다. 그러니 모세의 신도 구태여 따를 필요가 없다. 또 그 신과 맺은 피의 언약도 무효가 된 셈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전 과정과 그 후 지금의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이 행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다 모세가 주관했다. 바꿔 말해 자기들 뜻과는 무관하게, 그 결과가 좋았던 말았던, 진행되었다. 모세가 믿는 신의 일방적인 뜻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렇게 자기들을 이끌고 왔던 모세가 지금은 없다. 그러니 이젠 우리말을 잘 듣는 신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날 우리도 좋은 일이 생기면 일단은 하나님에게 감사하듯이,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이 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갈증과 허기를 면할 때까지는 여호와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양을 드렸다. 반면에 지금 40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극악무도한 죄악을 범했다. 그들 모두가 이중인격자인가?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간단하다. 자기들 말대로 따르지 않는 모세가 없어졌으니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의 것이니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눈에 보이는 축복이 임할 때만 모세의 신 여호와를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즉, 눈에 보이는 축복을 제공해 주는데 금송아지 신인들 어떠한가, 아니 더 좋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축복이 임하지 않으면 모세의 신이 세계 최강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킨들 아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여호와 그분이 아니다. 여호와가 주는 축복일 뿐이다. 거룩하게 살라는 여호와는 싫고 형통과 쾌락과 풍요를 약속하는 황소 Apis가 훨씬 좋다는 것이다.

 

모세가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없기에 황소 신을 섬기겠다는 말은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역으로 따져서 모세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눈에 안 보이더라도 어쨌든 그 대언자 내지 대행자 모세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또 아론처럼 백성들의 강요에 순순히 항복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만류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고 크게 화를 내자 자기를 대신 심판하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항변까지 했다.

 

바꿔 말해 지금 이 사악한 배교의 현장에 모세만이 피의 언약식에서 진심으로 맹세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제발 보여 달라고 80년을 씨름했었고 결국은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신 여호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또 그분에게 소명을 받는 중에 하나님에 대한 의심, 불만 등을 일일이 따져가며 답을 얻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확실히 깨달아 알게 된 것이다. 지난 80년간 하나님이 단 한시도 자기를 떠난 적이 없이 바로 곁에서 크신 권능과 사랑으로 보호 인도하셨음을 확인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인격적으로 대면함으로써 성령의 간섭으로 옛 사람이 완전히 죽고 여호와의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주님을 일대일로 만나서 그분이 어떤 분인 줄 알게 된 자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온전히 주님만 죽기까지 따르게 마련이다.

 

흥미롭게도 나중에 이 사건으로 심판을 받은 사람이 “삼천 명이나”가 아니라 “삼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출32:28) 전체 이스라엘 백성이 2백만이지 않는가? 적극 가담자나 주동자만 처벌 했을 수 있다.

 

그럼 나머지 백성들은 무엇을 했는가? 아론처럼 사람들의 눈치를 본 것이다. 자기들의 생각이 반반으로 나뉜 자들이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권능이 없자 다시 그분을 등지고 세속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지금껏 출애굽 경과를 보니까 여호와만한 신이 없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반반이다. 한쪽 눈은 애굽으로, 다른 한 쪽 눈은 가나안 약속의 땅을 향하고 있다. 모든 백성의 눈이 사팔뜨기가 되어 있다.

 

사람은 결국 이 땅의 풍요만 보장해주면 무엇이든지 권력 명예 재물 아니 송아지 상이라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 자와, 세상에서의 어떤 손해 고난 핍박이 닥치더라도 주님의 뜻을 따름에 목숨까지 바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인간 사회에선 스스로를 어떻게 분류하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둘뿐이다.

 

본문을 접하면서 이스라엘의 완악함만 비반해선 안 된다. 우리 역시 사팔뜨기가 아닌지 냉정하게 점점해봐야 한다. 과연 아주 평온한 때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마련해 주어 아무 문제가 없을 때에 나태하지 않고 더 큰 열정으로 하나님을 찾는지 따져야 한다. 고난 중에는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심지어 불신자들도 그렇게 한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그 생각이 돈과 하나님 반반으로 나뉘지는 않는가? 이스라엘처럼 적절한 핑계 거리만 생기면 언제든 세상으로 돌아가 소지는 없는가? 또 많은 사람이 쫓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가?

 

쉽게 말해 축복을 주시니까 하나님을 찾는가? 아니면 거룩하신 그분 앞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빈곤해서 거룩해지기 위해서 그분을 찾는가? 그분 자신이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세상 앞에 그분의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있는가? 오늘 본문이 오늘날의 신자에게 주시는 메시지다.

 

4/2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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