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이면 현행법을 무시해도 되는가? (스5:1-5)

새벽기도 설교 (2)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스 5:1-5)

 

반역을 꾀하는 유대인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바사 왕 고레스의 허락을 받아 성전을 열심히 재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아있던 사마리아인들과 앗시리아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반대하고 음해했다. 기어이 현직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선대왕의 명령을 번복하는 조서를 받아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공사는 중단되었다.

 

그러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과 가르침으로 약 16년간 중단되었던 공사를 재개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현행법을, 당시로선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유효하므로, 어긴 셈이다. 이는 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시도였다.

 

비록 모함이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게 공사 중지를 요청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이므로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해왔던 민족이라 성읍과 성곽이 중건되면 또 다시 독립을 꾀할 것인데 그럼 왕의 건너 편 영지 하나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스4:13-16) 아닥사스다 왕도 그 이유가 타당하다고 여기고 공사 중단을 명령했다.

 

그런 판국에 지금 공사를 재개하면 상소한 세 가지 이유가 옳다고 시인하는 셈이 된다. 공개적으로 반역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이스라엘로선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어도 모든 전후 사정상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아닥사스다 왕의 입장이라면 왕의 명령을 우습게 취급했다고 당장에 군대를 파견하여 그런 시도를 진압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에 그들이 공사를 능히 막지 못했다.(5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공사가 아무 문제없이 무사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성경 기록을 잘못 이해하여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즉, 잘못 가르쳐지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세속의 현행법을 어겨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또 하나님의 일이 최우선이기에 세상의 눈치를 볼 필요도 법을 꼭 지킬 이유도 없다. 그러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 진전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이 성전재건이 주제이므로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교회를 건축할 때에 알게 모르게 이런 가르침을 적용함으로써 세간의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다. 신자들이 그런 가르침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목사는 자신과 교회의 이름만 높이려는 삯군 목자일 뿐이다.

 

오해는 마셔야 한다.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이 당연히 우선인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부모와 원수가 되더라도 교회 일을 해야만 한다는 식은 분명 아니다. 간단하게 그 중요한 이유 셋만 들어보겠다.

 

현행법을 지켜야 할 세 가지 이유

 

첫째로 현행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은 교회와 신자에게도 예외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뜻이 당신의 거룩함을 그들의 거룩한 삶을 통해 열방들에게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방안은 바로 거룩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율법은 영적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법이 더 많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바탕 위에 인간관계를 온전히 유지하라는 것이다. 신약시대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그 뜻은 하나 변함없이 여전히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느냐 마느냐 하는 근본적인 신앙에 관련되지 않는 한에는 신자는 현행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예컨대 로마 황제나 공산당이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무지 따를 수 없다. 그럼에도 이슬람에게 선교하려면 눈치껏 기독교 신앙을 감춰야 즉, 그들 현행법을 가능한 지켜야만 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를 시작도 못해보고 순교 당할 것이다.

 

반면에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선 현지 문화 관습 법률 테두리 안에서만 사역해야 한다. 세상의 것들과 타협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곳 주민들이 오래 동안 익숙해진 삶의 울타리를 구태여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방해만 된다.

 

부모가 예수 믿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부모라도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일만 교회 가고 광신자처럼 교회에 너무 매이지 말라고 하면 부모가 기독교 신앙 안에 들어올 때까지는 당분간 감사하면서 그렇게 따라야 한다. 그러면서 불신자 부모가 믿음을 가지도록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보여드려야 한다.

 

둘째는 지금 이스라엘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과 오늘날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아예 비교의 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성전은 나라 전체에 하나뿐이다. 중앙 성소에서 매일 전 국민을 위한 상번제와 절기에 따른 제사를 지낸다.

 

특별히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백성들이 어디에 있던 이 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달라는 내용 하나만을 설교했고 또 기도했다.

 

성전은 이스라엘 전 백성의 마음과 삶에서 항상 그 중심에 위치했다. 성전은 일반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입법 행정 사법부의 역할도 했다. 간단하게 말해 첫째 이유에서 예를 든 것처럼 성전은 여호와 신앙 자체로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는 것은 여호와 신앙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은 종교와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교회 건축이 하나님의 일이긴 해도 현행법을 무시하고 불법 내지 편법에 편승해도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세상에서 불려 나와 세상 사람과 구별된 믿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다. 교회당은 모여서 예배와 성경공부하기에 부족하지만 않으면 충분하다.

 

셋째 이유는 둘째 이유와 연결된다. 하나님의 일은 외적인 모습과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5절을 다시 보라. 하나님이 유대 장로들을 돌봐주었다고 해서 공사를 방해하지 못하게 레이저 광선 같은 것으로 보호막을 쳐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큰 권능으로 막아서 대적들이 감히 공격도 훼방도 못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면 안 된다.

 

주변의 방해 세력을 다 죽인 것이 아니다. 여전히 공사에 반감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다. 마침 총독 닷드네와 관리들이 이전의 총독과 달랐을 뿐이다. 이미 왕의 조서가 내려져 있으므로 자기 책임과 권력으로 무조건 공사를 중지시켜도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 일은 자기 권한 밖이라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굉장히 소심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둘 다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왕에게 보내는 상소문을 아주 자세히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하자로 책잡히지 않으려는 뜻이었다.

결국 그 자세한 상소문으로 인해 아닥사스다 왕의 후임인 다리오 왕은 성전이 이스라엘 영지의 정치 행정을 주관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리오는 선대왕인 고레스의 조서를 찾아 읽고는 다시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렸다.

 

결론적으로 말해 에스라서를 읽으면서 성전 재건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단순 공식에 대입해선 안 된다. 교회의 운영, 프로그램, 사역, 종교적 업적 등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고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그러지 못하니까 교회당 건축을 밀어붙이는 담임 목사의 계획에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곧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처럼 매도 내지 정죄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일의 본질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바 핵심이 성전 재건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먼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더러 이스라엘에게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라고 가르치도록 일으켜세웠다. 정치 지도자들인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 가르침에 순종하여 공사를 시작하도록 이끌었다. 무엇보다 당신을 알지 못하고 성전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닷드네라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이방족속의 세상 관리를 예비해놓았다.

 

하나님의 일에 동원된 이 세 부류의 인간들은 여전히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소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목적을 지향하도록 하였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안에 불일치가 없도록 했으며 어떤 거역함과 훼방도 생기지 않게 막으셨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행하는 일을 당신의 뜻에 일치하게끔 이끌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 일의 본질은 사람들을 연합시켜서 합력토록 하고 서로 섬기며 서로에게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소수의 사람이 이스라엘 전 백성을 이끌어서 당신께 헌신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이런 온전하심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충성된 헌신이 없이는 성전이, 오늘날로 치면 교회당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해도 그 안에 그분은 계시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을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도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는가? 또 그래서 범사에서 항상 그분의 선하신 인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가? 내가 성취한 겉으로 드러나고 경건해 보이는 율법 준행이나 종교적 업적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세상의 법률과 관습을 예사로 위반 내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든 흑암에 미혹된 사람을 살리고 그 살아난 사람끼리 합력하여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입술로만 아무리 주여, 주여 불러도 손발이 따라가지 않으면 주님은 그 부르심에 결코 응하지 않는다.

 

4/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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