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죄를 쫓지 말라.

조회 수 878 추천 수 0 2018.08.01 08:06:35

(왕하3:1-3) 여로보암의 죄를 쫓지 말라.

새벽기도 설교 (16)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3:1-3)

 

여로보암의 죄

 

열왕기에선 북 이스라엘 왕들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우상을 제거하는 개혁을 했더라도 꼭 여로보암의 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도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은 없앴지만(2절b),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다고 합니다.(3절)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느밧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느밧은 솔로몬의 신복이었는데 성경은 그 아들을 두고 “큰 용사요 부지런한 자”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밀로 성의 무너진 데를 수축할 때에 그를 요셉 족속의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여러모로 뛰어난 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 아히야가 열두 지파 중에 열 지파를 떼어서 그에게 주어서 새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왕상11:26-40)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흔히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부친의 가신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젊은 친구의 말을 따랐기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멍에는 가벼웠지만 자기는 전갈로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폭압 정치를 하여 민심이 이반하는 바람에 북 이스라엘의 수립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여로보암이 그 후에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배드리러 내려가면 민심이 다시 유다로 향할까봐 염려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 둘을 만들어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하면서 벧엘과 단에 두었습니다. 곳곳의 높은 산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우상숭배를 공개적 본격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또 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으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팔월 십오일에 절기를 별도로 제정하여 장막절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날짜를 변경함으로써 남쪽 유다와 분리를 고착시키려는 의도였고, 또 현실적으로는 북쪽이 곡식의 결실이 늦으므로 초실절을 수확시기에 맞추려 한 것입니다. 본문 3절의 뜻도 그래서 여호람 왕이 바뀐 절기에 따라 일반백성 제사장이 주도하는 제사를 산당에서 또 두 금송아지 우상에게 드렸다는 것입니다.

 

남북 분열의 진짜 원인

 

그런데 남북 분열의 원인에 대해 성경은 놀라운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북 왕국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너에게 준다”고 합니다.(왕상11:31) 우리가 이해한 바대로 하자면 르호보암의 손에서 빼앗아야 하는데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는다고 합니다.

 

솔로몬에 대한 평가가 아주 후한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방금 인용한 성경 구절은 그런 평가는 틀렸다고 증언합니다. 솔로몬이 잘했으면 왜 그의 손에서 빼앗는다고 표현하겠습니까? 한국으로 치면 이조실록에 해당되는 열왕기는 이스라엘 분열의 원인이 솔로몬의 잘못 때문이라고 분명히 판결내린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은 지혜롭게 통치를 했고 성전을 건축하는 등 큰 업적은 이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큰 과오들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정치적으로만 따져도 아들인 르호보암마저 아버지가 채찍으로 다스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늙은 가신들도 르호보암에게 이젠 멍에를 가볍게 하라고 충고했으니 그가 국민을 강제노역으로 혹사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이방족속의 후궁을 많이 두어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오염되게 만들었습니다. 고대에 외국인을 후궁으로 맞는 것은 그들과 조약을 맺었다는 증거입니다. 후궁이 강대국에서 왔으면 그 나라를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하고, 약소국에서 왔으면 반역을 방지하는 인질의 역할을 했습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솔로몬이 정력을 주체 못해서 그렇게 많은 후궁을 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고대에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으면 상대국의 신들을 인정 존중해야 하고 조약을 체결할 때에 그 신들의 제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부패하는데 솔로몬이 앞장섰거나 최고의 원인 제공자였습니다.

 

현실정치로 따지면 조약을 많이 맺는 것은 그들과 무역거래를 활발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필연적으로 이방의 세속적인 관습, 문물, 문화, 사조가 유입됩니다. 결국 솔로몬의 통치 목표는 오직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말년에 전도서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긍휼만이 소원이라고 회개했지만 오직 나라 부강만이 그의 목표였으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그 나라를 둘로 나눠버리는 심판을 하십니다. 요컨대 아들 르호보암이 아니라 아버지 솔로몬 때문에 나라가 분열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한 심판

 

그런데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잘못을 징계하려고 여로보암을 세웠다면 그들과 반대되는 통치를 하고 영적인 개혁을 하여 백성들로 여호와를 잘 섬기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간접적으로 우상 숭배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여로보암은 한 술 더 떠서 적극적 노골적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남북왕국을 하나님이 징계함에 일관된 원칙이 있었습니다. 앗시리아나 바벨론처럼 가장 흉악한 나라를 징계의 도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악한 상태 그대로 버려두는 것입니다. 악이 자동으로 확대 재생산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된 징계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분의 통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재위 중에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솔로몬이 죽자 돌아왔습니다. 이미 일차 반역을 시도하다가 들켰다는 뜻입니다. 그는 애굽의 선진 정치 문화 문물에 물들었습니다. 화려하고 장엄한 우상숭배에 현혹되어서 금송아지 신상을 두 개나 세웠습니다.

 

그가 솔로몬에게 배운 것도 많습니다. 비록 솔로몬이 강제 노역을 많이 시켰지만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백성들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또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을 많이 지어서 그런 평화스럽고 부요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여로보암도 르호보암과는 달리 백성들을 얽매지 않고 많이 풀어주었습니다. 아무 지파나 제사장으로 세웠고, 가까운 산당에서 편하게 제사 드리게 했고, 눈에 보이는 금 신상을 만들어 뭔가 경건하고도 장엄한 예배를 드린다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본문의 여호람을 비롯해 북왕국의 왕들이 여로보암과 같은 죄를 범했다고 말할 때에 사람들이 편하도록 산당을 그대로 두었고 특별히 금송아지 신상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하나님은 뒷전이고 인간이 중심이 되었다는 뜻이며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악으로만 갚으면 언제 공평하고 정의로운 선이 회복될 수 있습니까? 끝까지 그렇게 방임하면 아예 그분과의 관계마저 끝나는 것 아닙니까? 징계란 반드시 회복을 목표로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태여 징계를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앗시리아나 바벨론 같은 최고의 악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그 나라들을 하나님 대신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다른 것에 의지한 결과가 어떤가 보라고 즉, 오히려 가장 크게 망하는 길임을 철저히 체험시킨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시 돌이켜서 당신을 간절히 찾게 만들려는 뜻입니다.

 

본문에도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하는 북왕국에게 모압이 반역합니다. 두려움을 느낀 여호람은 어쩔 수 없이 엘리사를 찾아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11,12절) 인간의 악을 방치하거나, 악을 악으로 갚는 이유는 인간은 갈 데까지 가야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로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죄의 노예로 묶고 있는 힘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것이 그 반증입니다.

 

그럼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오늘날의 신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잠시 외면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의지하면 그냥 그대로 두신다는 것입니다. 구태여 말리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선한 교제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의 고통을 손쉽게 편하게 해결하려고 세상 방식과 타협하면 당장은 몰라도 언제는 반드시 그 사람이나 그런 방식으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아주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오직 범사에 그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7/2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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