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 여호와 하나님

조회 수 78 추천 수 0 2019.02.24 09:45:59

전쟁광 여호와 하나님 (민1:1-4)

구약성경강해 (11) / 민수기강해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민1:1-4)

 

하나님의 사전에 없는 단어

 

이스라엘은 출애굽한지 2년째에 가나안 땅을 향해 본격적으로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첫 번째 전투인 가데스바네야에서 곧바로 실패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건장한 체격과 견고한 성채와 강력한 군대에 겁을 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그렇게 불순종한 세대는 전부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대신에 새로 태어난 세대로 가나안 땅에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민수기는 그로 인한 이스라엘의 약 40년간의 광야방황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동안 책 제목이 말하듯이 두 번의 인구조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본문대로 출애굽 후 2년째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신정국가체계를 정비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광야방황의 벌을 마친 신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입경하기 직전에 군대 조직을 재점검하고 지파별로 땅을 분배할 목적으로 행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첫 번 인구조사를 시작하는 경위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20세 이상의 남자는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징집대상이 된다고 합니다.(3절) 지파별로 계수했는데(2절) 진군 방식과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대열을 지었고 선봉은 유다 지파가 맡도록 했습니다.(민2장)

 

지파별로 행군시킨 것은 친척끼리는 아무래도 희생정신과 결속력이 강할 것이므로 전투력 상승의 효과를 얻으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종족의 수령들이 조사를 담당했는데(4절) 전쟁 시에 전투사령관을, 평화 시에 정치 지도자를 맡을 자로서 지파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는 60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민2:32) 야곱의 가족들 약 70명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그대로 후손들이 아주 창성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 경험과 변변한 무기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군사력과 방어 태세는 월등해 군사적으로는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대는 특이한 군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막이 중앙에서 그들과 함께 행군하는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가 모든 전투에 함께 하시므로 승리는 보장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전에는 패배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실제로 믿음의 두 노인 여호수아와 갈렙이 지휘하여 가나안 전쟁을 치룰 동안에 백전백승했습니다. 아이 성에서 아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진멸하지 않는 바람에 패배한 것 한 번을 빼고는 말입니다.

 

진멸하라는 참 뜻

 

성경은 가나안 족속을 가축과 아이까지 진멸하라고 했고 아이 성에서 그 명령을 어기고 진멸하지 않았기에 아간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외부로부터 구약의 여호와는 전쟁을 좋아하는 잔인한 하나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일부 신자들마저 그런 점이 석연치 않아서 당혹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인종(人種) 청소를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에 절대 오염되지 말고 그들의 타락한 문화와도 결코 타협 수용하지 말라는 뜻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진멸하라는 말씀의 앞뒤에는 항상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경고를 함께 거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 그런 하나님의 뜻을 곳곳에 명시적으로 표명해 놓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구절만 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신7:22)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쫓아내므로’ 진멸이 아니었습니다. 또 조금씩 그러니까 많이 살려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더러도 급하게 멸하지 말라고까지 명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진멸이라는 단어로 강조했어야만 했던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18장에는 가나안 족속이 행한 모든 종류의 성범죄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신전의 예배절차에 포함되었으므로 자기들 신들이 허락 장려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죄책감은커녕 죄라는 인식도 없었고 이 땅의 삶을 풍요케 하는 경건하고 신령한 행위로까지 인식했습니다.

 

그 죄들을 망라한 후에 성경은 레위기 18:24, 25에서 어떻게 선포했습니까? 그들이 더러워졌고 그 땅이 더러워졌고 그래서 땅이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해낸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무생물인 땅이 행동하는 것처럼 의인법을 사용해서 상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땅이 더러워져서 거민을 토해낸다는 것은 땅 스스로 너무 더러워져서 도무지 견디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자신(땅)을 더럽힌 주범인 인간을 청소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땅이 스스로 거민을 토해낸다는 것은 가만히 놓아두어도 결국은 저절로 그 땅이 망한다는 뜻입니다.

 

자기들 신이 장려하니까 그 땅의 남녀노소 구분 없이 타락했습니다. 새롭고도 더 추악하게 타락할 것이 더 이상 없을 만큼 갈 데까지 간 것입니다. 당시의 열악한 위생 상태로 인해 성병이 만연할 것이고 그럼 2세로 불구자들이 많이 태어납니다. 결국에는 불임까지 이어져 후손이 끊어집니다. 실제로 죄송하지만 창녀 생활을 오래하면 임신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구태여 진멸하지 않고 가만두어도 어차피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것이 진멸하라고 명하신 실제적인 뜻이고 레위기 18장이 자세하게 성적 범죄를 나열한 이유입니다.

 

제사장 나라 역할에 실패한 까닭은?

 

땅이 스스로 거민을 토해낸다 즉, 어차피 멸망할 것이라면 가나안 정복의 이유를 구태여 그들 족속의 죄악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 계획은 누차 강조했듯이 이스라엘로 제사장 나라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실패했고 그 이유도 율법대로 거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임을 배워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신자들이 더 근본적인 원인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은 민족으로 가장 척박한 환경에 살게 했습니다. 특별히 세계 최강국가 둘 사이에 끼여서 살게 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배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비옥했던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 유역 사이의 황무지입니다.

 

자연히 바벨론과 애굽 중간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수시로 박해와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여건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밀어 넣었습니다. 그 가장 첫 번째 뜻은 이스라엘더러 애굽이나 바벨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희의 만족은 물론 안전조차 결코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더러 여호와가 출애굽을 시킨 하나님임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절대 잊지 말라고 계속해서 상기시킵니다. 애굽에서 십전십승(十戰十勝)을 거두었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최정예 전차군단도 바다에 수장시켜 전멸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애굽이나 바벨론이 아무리 강력하고 풍요로워 보여도 그들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의 신들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당신만 의지하면 출애굽 때처럼 얼마든지 애굽과 바벨론 두 강대국에 승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민족을 통해 신상(神像)도 이름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참 하나님 당신과 말씀과 기도로만 교통해도 당신의 당신 되심을 세상 어떤 강대한 민족도 패배당하는 방식으로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는 모든 족속에게는 전투하기도 전에 패배라는 정답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만이 이 땅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통치자임을 특별히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둘에게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만 붙들고 그 붙든 손에 힘이 빠지지만 않아도 제사장 나라로서 역할에 충성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스라엘로선 구태여 신령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 필요도 없었습니다. 행군의 중앙에 성막이 위치한 이유입니다. 또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유다 지파가 선봉을 섰습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셔서 대적을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인구 조사를 하게 한 의미와 목적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살기 싫어서 제사장 나라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거룩하신 여호와보다 눈에 보이는 장엄한 신상들이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가나안의 풍요도 부러웠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즐기는 음란한 쾌락이 더 좋아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해서 출애굽의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니 두려워서라도 차마 여호와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우상을 여호와와 함께, 아니 더 우선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강대국 바벨론에게 노예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금송아지 배역 사건 때에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진멸하려고 하실 때에 모세는 애굽에서 구원해 놓고 다 죽이면 그 구원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간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로 다시 애굽의 노예가 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이 의지했던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후로 이차대전 직후까지 약 2500년간 변변한 나라도 없이 온 세상을 나그네처럼 방황했습니다. 모든 민족의 미움의 대상이 되게 했습니다. 이런 분이 이방을 멸하기를 좋아하는 전쟁광이자 잔인한 하나님일 수는 결코 없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비록 세상의 왕따가 되어 방황하게 되었어도 그들과 처음 약속하실 때에 당신만을 찾고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수정 취소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멸시받을수록 더욱 그분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까지도 완악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엎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성전(聖戰)이 하나님의 뜻인가?

 

간혹 구약성경을 잘못 이해하여 우상 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나라는 적극적으로 징벌해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성전(Holy War)은 신자의 거룩한 소명이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반드시 서로 보완해서 해석해야 하고 특별히 신약에 와서 진리의 계시가 완성됨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로마나 헤롯 가문이나 주변의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들에 대해 꾸중은커녕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아무 말씀 없이 달리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100% 무저항주의를 가르쳤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또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이 누구에게나 항상 화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집안에 강도가 들어와서 가족을 죽이려 드는데 가장이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거주의 한계를 정했습니다.(행17:26) 절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말라는 것이며 또 자기 경계 한도 내에서라도 온전한 화평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전쟁 같은 인간 사회의 모든 윤리적인 죄악들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 스스로 범한 것입니다. 그 원인, 과정, 결과의 책임은 모두 인간에게 귀속됩니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여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나라끼리의 전쟁이 오래전 통계이지만 14,531회 있었는데 일 년에 평균 2.6회의 큰 전쟁이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은 선진국끼리는 첨단 무기가 발달되어서 전쟁을 치면 서로 공멸(共滅)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자제할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들은 아직도 재래식 무기로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미국을 향해 오는 캐러반은 마약 카르텔끼리의 전쟁에서 도망쳐 온 피난민들입니다.

 

그런데 무기로 상대의 생명을 직접 죽이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쟁이 지금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계에서 최고로 발전된 한국과 미국에서 그야말로 피가 틔도록 진행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이 아닙니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양측에 대화와 타협은 완전히 실종되고 서로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아예 상종도 하지 않으려 듭니다. 심지어 기독교계 내에서도 우파와 좌파로 나눠져서 서로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고 비방하기 바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정말로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생각해서 답해 보십시오. 앞으로 인권과 자유와 특별히 소득의 평준화가 이뤄져 양극화가 해소된다면 전쟁과 다툼이 없어질 것 같습니까? 이 땅에 온전한 화평이 달성되어서 충만한 기쁨을 안고 살아갈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물론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분명히 어느 정도 성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 사회도 인간들끼리 서로 공존 번영하려는 목표는 지향해 왔고 그 결과가 현재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삶의 목표는 오직 자기를 최고로 높이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앞서 나가길 원합니다. 그러니 경쟁과 그것에서 누락과 소외는 필수적입니다. 최근에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소위 금수저들이 많아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수단인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은 이제 아예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방식으로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 범죄조차 자기를 증명하는 일에 동원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살인도 특이하게 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죄책감은 전혀 없고 얼굴을 뻔뻔하게 쳐들 뿐만 아니라 웃으면서 자랑하듯이 인터뷰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말씀드린 대로 전쟁의 역사입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살인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두가 자기를 더 높이려 드니 필연적으로 만인에 의한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인간 사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화친하기를 바라는데 인간들은 정반대로 모두가 모두를 다툼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원죄 하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자기와도 화평하지 못하는 인간

 

목사가 소망은 주지 못할망정 절망적인 설교를 한다고 탓할 계제가 아닙니다. 지금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저부터도 가정 안에서 제 자존심을 세우기 바쁩니다. 그래서 살을 맞대고 사는 아내는 물론 제 몸에서 난 자식에게도 제 욕심 체면 감정을 앞세우며 대할 때가 많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 혼자만의 온전한 화평조차 스스로 누리지 못합니다. 열등감, 죄책감, 무력감 등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업사이드다운을 반복합니다. 행동과 말과 태도와 표정이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해집니다.

 

물론 우리의 체질은 연약하고 죄의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성경도 그런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된다고 말합니다.(엡4:26) 목사인 저희도 부부 싸움을 하고 할 수 있으며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고 부부 싸움의 끝을 나쁘게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해가 지도록 즉, 새로운 날이 되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자칫 오래 분을 품다가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의 소명에 실패한 원인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한 탓입니다. 신약 신자들은 세상 앞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만 꼭 신령하고 거룩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당장 그럴 수 있는 충분한 영적 실력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줄 잘 알고 있기에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었고 이젠 거의 포기하다시피 되었지 않습니까?

 

가정 안에서 부부관계마저 원만하지 않은 그런 실패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실패와 같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행하든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내 속의 선하지 않은 것들을 그분께서 완전하고 아름답게 바꿔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 하나님을 꽉 붙들 때에 내 아내와 내 남편을 그분의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비로소 사랑하게 되기 이전에 아주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러지 않고 부부 싸움을 해가 지도록 즉, 장기적 지속적으로 하다가는 결국은 신자도 사탄에게 넘어집니다. 이혼까지 이어지고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힙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물론 자기와도 화평하지 못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 같이 모여 사는데 아무리 대책을 궁리하고 실현하려 노력한들 과연 항구적 평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바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지 알면 알수록 인간이 얼마나 거룩하지 않은 존재인지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꿇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없는 인간끼리는 절대로 거룩할 수 없으며 결론은 항상 분쟁이라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나라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신구약의 동일한 하나님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동일한 실패를 반복합니다. 작금 누가 봐도 공평과 정의가 실종되어 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적 타락은 소돔과 고모라 수준을 넘었습니다. 신자들마저 하나님이 세상을 온전히 통치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지 않고 가만두어도 멸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세속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그 공동체를 이끄시고 또 징벌하실 뿐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세상 모든 역사를 당신만이 주관하시지만 어떤 정파를 눈에 띄게 직접 편들지는 않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의 원리로만 세상을 이끄십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세울 제사장 나라나 신약의 하나님의 공동체나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경배 감사 찬양하는 모습을 세상 앞에 드러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유일한 구원의 길인 이유와 근거는 아주 많지만, 그중에 이것도 있습니다. 인간의 선함이나 그 노력에 단 하나 기대할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인간끼리 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나 오직 개신교만은 하나님 없는 인간만의 사회는 절망과 죽음뿐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러 이 땅에 오셨기에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원리를 실제적 사실로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주님을 죽였습니다. 로마 총독, 헤롯 가문, 유대 종교 지도층 등 어제의 적들이 공통적인 목표를 위해서 힘을 합쳐 하나로 뭉쳤습니다.

 

혹시라도 보수 기득권층들이 자기들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해석하면 성경을 너무 단순하고도 순진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밀고해서 십자가 사건을 시발케 한 가룟 유다는 지금으로 치면 극좌 진보파인 열혈당원(zealot)이었지 않습니까? 그는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 머리에 붓자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헛된 소비를 한다고 화를 내었던 자였습니다. (요12:3-6)

 

하나님의 관심은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에 편중되게 실리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어리석은 고집에 불과합니다. 그분의 관심은 오직 예수 십자가 앞에 스스로 자기를 낮춘 가난한 심령 쪽으로만 향합니다.

 

모든 인간을 향한 그분의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여호와 외의 어떤 신에게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잔인하거나 신약의 하나님이 사랑만 넘치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법률, 도덕, 정치, 종교를 발전시켜도 당신을 부인 외면하면 결국 서로 다툴 수밖에 없는데도 그런 진리를 외면하고 여전히 다투고 있는 모습을 너무나 불쌍히 여기시는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십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과 이스라엘을 함께 사랑했고,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이스라엘의 소외된 자들과 차별 없이 교제했으며, 오늘날 이 땅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똑같이 안타까이 여기실 뿐입니다.

 

인간에게 허용된 유일한 전쟁

 

하나님이 인간에게 유일하게 허용한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대신에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싸움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보다 공중권세 잡은 자들 즉, 이 땅에서 인간을 미혹시키는 사탄과 그 흑암의 세력들과는 철두철미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엑소시즘(exorcism) 같이 초자연적으로 신령한 모습의 전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봐주는 것이 자신의 영적 실상이라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는 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왜 이런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까? 사탄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것을 사탄은 너무 좋아하고 바로 그런 자들을 맘껏 조종하고 농간할 대상으로 삼습니다. 해가 지도록 노를 품지 말라는 것은 그 전에 각기 상대의 장단점에 대해 서로 수용하고 조종 타협하여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에게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귀신같이 잡아내는 인간들끼리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자기를 낮추며 상대를 높이지 않고는 인간끼리 화평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지금은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문자적 의미로 땅이 거민을 토해 내고 있는 중입니다. 애국심을 핑계 삼아 자기 나라만 위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한국은 미세 먼지로 고통을 당하고 있고 미국은 이번에 역사상 최대의 캘리포니아 산불을 겪었습니다. 마침 오늘 아침 미국 TV 뉴스는 기상이변으로 미국의 GDP가 20%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실망을 드리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바닥에 떨어져야 위를 바라보고 다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절망 아니 죽음에 다다라야 비로소 하나님의 소망과 생명이 강력하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생명이 인간 사회에 실제적인 소망과 생명으로 실현되려면 예수 십자가를 믿는 신자가 세상의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는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내 가정에서부터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안타까운 긍휼을 베풀고 서로 나눠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 열매가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너무 외롭고 고달프겠지만 결과를 오직 하나님께 맡기면 틀림없이 그분께서 신자의 삶에 충만한 기쁨으로 임재해 주실 것입니다.

 

11/2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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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 master 2019-02-24 67
» 전쟁광 여호와 하나님 master 2019-02-24 78
118 삼위일체를 간략히 설명해주십시오. master 2018-10-13 174
117 죄악이 번창하도록 방치하시는 하나님 master 2018-09-08 30
116 질투라 이름 하는 하나님 master 2018-07-14 179
115 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금지했나요? master 2018-07-10 59
114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master 2018-07-10 308
113 하나님의 뒷모습이라도 보는가? master 2018-07-10 282
112 하나님을 친구로 삼는 방법 master 2018-07-10 30
111 병 주고 약 주는 하나님 master 2018-07-10 25
110 십자가 목걸이를 걸지 말라. master 2018-06-07 243
109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하나님 master 2018-06-07 34
108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과 상충되지 않나요? master 2018-04-21 26
107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 master 2018-04-21 1320
106 여호와가 정말로 당신의 깃발인가? master 2018-01-13 306
105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첫째 이유 master 2017-11-3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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