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9:15-20) 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

구약성경 강해 (16) / 민수기 강해 (6)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어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민 9:15-20)

 

하나님의 삼색 신호등

 

교통신호등은 세 가지 색입니다. 녹색은 진행하라, 황색은 멈춰서라, 적색은 대기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행군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도 3색 신호등으로 인도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낮에 행군할 때는 성막을 덮고 있던 구름 기둥이 떠서 앞서 가면 이스라엘도 장막과 성막을 걷고  진군했습니다. 녹색 신호인 셈입니다. 구름기둥이 가다가 멈추면 진군을 중지했는데 황색 신호입니다.(17절) 구름기둥이 장막 위에 머물면 기간이 얼마가 되었던 함께 대기했습니다.(18-20절) 적색 신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러면 얼마나 신나고 편하고 힘이 나겠습니까? 특별히 새해에 새로운 계획들을 세울 때에 하나님이 진행, 중지, 대기의 신호를 분명히 보여주면 더욱 충성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하고 따른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목사님들은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시행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전부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면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다 인도해주신다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그런 가르침과 실제로 체감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원리일 뿐 실상과는 다르고 목사 같이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의 좋은 사람에게만 해당되겠지 여기고 치웁니다.

 

그럼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성경은 목사만을 위한 책이 아니고 그런 식으로 구름 잡는 책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더러 목사가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목사가 되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저도 구름 기둥을 확실히 보고 이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따른 적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혼란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을 너무 표피적으로 이해하고 치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과 행동을 올바르게 행하는 차원으로만 접근합니다.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정말로 하나님 그분을 믿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실력을, 아무리 그것이 다른 이를 향한 의로움이나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영성이라고 해도, 늘리는 것은 이차적인 과제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나를 통치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예수님의 사랑의 넓이 길이 높이 깊이 즉, 3D 입체적으로 깨달아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엡3:19) 

 

그래서 내 행위를 선하게 절제하기 이전에 인생 전체를 믿음 위에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 방향과 목적과 삶의 방식부터 확정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는 영적 시각도 3D로 넓혀야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 새가 아래를 한 눈에 다 바라보듯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굽의 은금을 주신 하나님의 오묘한 은혜

 

그러려면 출애굽에 베푼 하나님의 오묘한 은혜를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애굽의 금은 보화를 양껏 취하게 해주신 일이 출애굽에 숨겨진 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그 동안 몇번 언급했는데 간단히 다시 정리해봅시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사백 년간의 공짜 노역에 대해 밀린 임금이었습니다. 신자가 땀과 눈물로 수고하고 희생한 것들은 하나님은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반드시 공평하게 보응하십니다. 당대가 아니면 지금처럼 후손을 통해서라도 결실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보다 여러분의 아들이 복을 받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닊?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평생을 동행하는 신자는 그분께 불평 원망은커녕 세상 앞에 억울해 할 일도 전혀 없습니다.

 

이 일이 이스라엘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 즉, 불신자들의 입장을 배려해서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임금을 지불하게 만들어 인간 세상의 공의를 실현하게 한것입니다. 애굽의 체면 치레를 하나님이 대신 시켜준 셈입니다. 실제로 출애굽 당일날 밤에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의 권능에 항복하여 자진해서 그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둘째는 바로가 모든 장자가 죽는 심판을 받고도 홍해까지 추격한 이유가 됩니다. 나라의 국고가 텅텅 비워져 요즘으로 치면 애굽은 IMF 사태를 맞은 것입니다. 여호와에게 그렇게 혼이 나고도 이스라엘을  추격한 것은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광야가 가로 막고 있어 사면초가에 갇혔다고 본 것입니다. 아무리 히브리 신의 능력이 커도 바다를 가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한 것입니다.

 

애굽의 우상 신들은 사기로 마술을 하거나 우연의 일치로 혹은 사탄의 능력으로 아주 가끔 질병을 낫게 하는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초자연적 기적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또 애굽의 모든 신들은 자연의 큰 힘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바다의 신도 있었고 그 신께 열심히 제사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바다가 자신들을 죽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합니다. 독 안에 든 쥐 같은 이스라엘이 홍해에 수장되거나 자기들 칼에 죽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으나 거꾸로 자기들만 수장되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동안에 만나는 족속들과는 전쟁을 치르지 말고 화평을 청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지경을 통과할 때에 물과 음식 등을 돈을 주고 사먹으라고 했는데 그 비용으로 주셨습니다. 실제로 40년 후이긴하지만 에돔 지경을 통과할 때에 물 값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민 20:19) 에돔이 그마저 거절하자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 즉, 피를 나눈 형제족속이라 전쟁하지 않고 우회했습니다. 넷째는 같은 맥락에서 가나안 정복전쟁의 군자금이요, 정복한 후에 약속의 땅에 신정국가를 건설할 비용이었습니다.

 

다섯째는 보물 중에 특별히 금은 성막의 언약궤를 비롯한 성소의 기구들을 만드는 재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금으로 애굽의 황소 신을 만들어서 음란하게 섬겼으니 당장에 진멸하겠다고 하나님이 불같이 진노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은금과 구름 불 기둥의 관계

 

그 금은 보물과 오늘 본문의 구름 불 기둥과도 연결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보물을 다 챙겨서 탈출했다는 사실은 익히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주변 족속들의 약탈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세계 최강국 애굽을 상대로 십전십승 했고 히브리 신이 홍해를 갈랐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따라들어가면 물과 음식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 광야인지라 쉽게 침공할 생각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직접 안 당해 보고는 못 믿는 습성이 있습니다. 야간에 기습하여 일부만 탈취하면 되고 그럼 하루 이틀 시간이면 충분하므로 구태여 물과 음식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그런 판국에 구름과 불기둥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도적 떼에게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는지 훤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참 대단하고 오묘하지 않습니까? 언제 쳐들어와도 벼락을 내려 몰살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게만 해석하면 하나님을 정말로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상의 사형수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입이 닳도록 애굽에 열 번이나 긍휼을 베풀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방인 강도 떼라도 당장에 죽이는 냉혹 잔인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 일방적으로 강도짓 하고 죽인다면 응분의 벌은 받습니다만 그 전에 그러지 못하도록 주관하시거나 회개의 기회를 준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제일 먼저 반드시 믿음 생활에서 고쳐야 할 것이 하나님의 전능성만 붙들려는 습성입니다.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지금까지처럼 편협하고 미개하며 어리석은 신앙에 머물러서 평생토록  성장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막을 건설하자 구름이 임재했고 그 후에 진군을 시작했습니다.(15-17절) 그럼 그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성막을 완성하고 유월절 제사를 지내며 제사장 나라 소명을 다시 다짐했고 인구조사를 통해 열두 지파의 행군 배열과 순서를 정했습니다.

 

그 후에 본문대로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전쟁경험이나 무기체계가 변변찮아도 바로의 왕자였던 모세의 지휘아래 애굽 식으로 최고 발달된 군대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고대의 왕자들은 다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그 전에 천부장 백부장 제도도 시행 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야간에 보초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불 기둥으로 밤에도 훤히 밝아서 침입자를 쉽게  발견하여 적절히 수비할 수 있었습니다. 두 기둥을 보고 추격해온 도적 떼도 진의 배열이 그 방어 태세가 애굽 식으로  철저한 것을 보고 침공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가 전하는 여호와의 명에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다고 말한 것입니다.(23절) 백성들 모두가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출애굽이 밤중에 급히 이뤄졌는데 하나님은 하필 보름날 밤에 탈출하도록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재도구도 챙겨야 하고 노약자들이 도보 행군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조명을 밝혀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오묘하다 못해 너무 정미하지 않습니까?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않게

 

그런데 구름 불 기둥이 단순히 신호등 역할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막을 통과하려면 낮에는 햇살이 뜨겁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합니다. 시편 기자는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121:6)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인간 생존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와 달이 어떻게 인간을 해칠 수 있습니까? 기자는 바로 그앞 5절에서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광야를 행군할 때에 구름 기둥이 낮의 뜨거운 해를 막아주는 파라솔 역할을 했고, 불 기둥이 밤의 추위를 견디게끔 히터의 역할을 했던 그 은혜로웠던 체험을 기자는 전해 듣고 감사 찬양한 것입니다.  

 

나아가 민수기 10:31을 보십시오.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아들인 처남 호밥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30절) 모세는 출애굽 소명을 수행하려 갈 때에 그 일이 위험한 줄 아니까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미디안 처가로 돌려보냈습니다. 출애굽 후에 장인을 비롯한 처가 식구가 다시 찾아와 그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천부장 제도도 가르쳐 주고 할 일이 끝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남아 있기를 강청했습니다.(31절) 호밥의 대답은 기록이 없으나 사사기와 사무엘상 등에 보면 이 때에 모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31절 끝에 광야에서 어떻게 진을 칠 것인지 우리의 눈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구름 기둥 대신에 호밥이 이스라엘을 이끌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밤에는 행군을 하지 않으니 불 기둥은 주로 성막 위에 머물렀습니다. 낮에 구름이 인도하는데 높이 떠있으므로 가르키는 지역이 광범위합니다. 호밥이 장막을 치기 좋은 장소를 지정해주고 광야생활의 모든 노하우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미디안에서 양을 40년이나 쳐서 광야를 알지만 양은 아침 저녁으로 몰고 나갔다 돌아옵니다. 들판에서 기숙해도 일시적입니다. 장기간 민족 전체가 광야에서 장막 생활하며 이동하는데는 호밥이 훨씬 전문가였습니다. 모세는 자기 능력 밖의 일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미디안 이방인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요컨대 구름 불 기둥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행군만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적 위험과 도적 떼에서 지켜 보호해주셨습니다. 자연과 인간 사회의 일상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그것들을 사용하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구름 기둥은 에어컨, 불기둥은 히터와 조명등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두 손과 발을 가만히 놓아두고 하나님이 이리 가라, 저리 가라는 그대로 따르고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낮과 밤으로 군대의 진용을 갖추고 질서정연히 행군했습니다. 사방으로 밤새 보초도 철저히 섰습니다. 세속의, 다른 말로 불신자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자연 안의 초자연적인 이적

 

따라서 도적 떼가 은금 보화를 탈취하려고 사막까지 기어이 쫒아 왔지만 철통 같은 방어 태세를 보고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람이 침공했을 때에 엘리사를 통해 그들의 눈을 못 보게 했듯이(왕하6장) 하나님이라면 얼마든지 구름과 불 기둥으로 도적 떼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갔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아무도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며 어쨌든 도적떼에서 40년 간 지켜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런 은혜와 권능을 자기들을 위해 베풀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도 비상한 기적이 사실은 인간의 눈에는 자연 안에 일상적 일로 일어나니까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어지간한 믿음으로는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인도 보호를  의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 짐작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들 운전할 때나 아이들을 집안에 혼자 놀게 할 때에 하나님이 지켜 보호해주지 않으면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습니까? 일상의 사소한 일이 은혜를 넘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먹고 자는 것 아니 호홉하는 것도 기적이며 지금 이 자리에 모여서 예배 보는 것도 전부 그분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기적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용한 시편의 기자는 요즘 식으로 치면 신학교를 졸업한 것도 기독교 교리에 정통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범사를 오직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니까 모든 신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절대적 영적 원리 하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세밀하고도 완벽하게 당신의 백성들의 전후좌우를 두르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적으로 24 시간 / 7일 간을 레이저 막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적 용어로는 하나님은 신자의 침 삼키는 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 바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십니다. 우리가 측정 상상하는 모든 한계를 초월합니다 인간이 상상한 최대한의 한계도 그 광대하심에 비교하면 해변가 모래알 하나 밖에 안 됩니다. 믿음은 그분의 광대하심에 최대한 많이 맞추어서 반응하는 실력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종교적 실력은, 심지어 기도 경배 찬양 감사 등도 하나님 앞에 도무지 내세울만한 의가 되지 못합니다. 그 안에도 우리의 욕심과 죄가 알게 모르게 섞여 있습니다. 그분이 먼저 택하고 사랑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었고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의롭게 보아주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로선 어린 자녀가 무슨 짓을 해도 예뻐보이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올해도 여전히 힘들 것이지만…

 

올해도 많은 힘든 일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일년 365일 내내 평안하고 형통할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로는 이 땅은 항상 한숨과 눈물이 그칠 새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키기 전에는 그렇습니다. 신자가 안락과 형통만 구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어리석은지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상하좌우로 요동치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호등은 세 가지 색으로 고정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만 해도 살펴본 대로 구름 불 기둥이 진행 멈춤 대기 세 가지 색깔만 보인 것 같아도 사실은 여러 숨겨진 은혜로 즉, 무지개 색으로 이스라엘을 보호 섭리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 같은 우리이기에 무슨 일이든 소원하고 계획하여  최선을 다해 이루려 노력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단 범사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세상만사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십니다. 범사에 그분이 동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수시로 하나님께 감사 대신 의심 불만 불신을 품으면 바로 그 간단한 진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하나님 그분을 부인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올해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이끌지 모릅니다. 내가 볼 때에는 분명히 나쁜 일인 것 같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많이 일어날 수 있으나 그 안에도 감사할 내용 즉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너는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잠3:5) 계획과 뜻을 세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두손 두발 다 내려놓고 있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 기자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네가 길을 갈지라도 즉, 하나님의 길이 아닌 네가 계획했던 바로 그 길로 네가 행할지라도 그 안에서 그가 지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새롭게 바꾸는 연습을 하라.

 

올해는 신앙생활을 정말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행해보십시오. 문제와 고난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마십시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믿음의 일이지만 문제 고난만 해결하려 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전능성만 붙들려는 미숙한 옛 습성으로 돌아갑니다.

 

지금부터는 문제와 고난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반드시 들어있으니 꼭 더듬어서라도 찾아서 내 유익과 기쁨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승화시키도록 노력하십시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거슬르는 일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생각의 패러다임을 낙관적으로 바꾸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처음에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될 수밖에 없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전부를 쉽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제대로 찾다보면 코가 길다는 사실 하나는 알게 됩니다. 그럼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많이 모이면 코끼리 실체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 능력이 약해지는 데서 온전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고 고백했습니다. (고후12:9)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라는 것이 일차적인 뜻입니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내 능력이 약했다면 그 능력으로 이겨내지 못한 문제와 고난의 와중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자신의 영육간 모두가 더 온전해진 것입니다. 고난이 끝나서가 아니라 바울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고난 중에 그리스도가 채워졌기에 반드시 선하게 결론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일이 잘 되면 자기 실력이고 잘 안 풀리면 남과 세상 탓입니다. 신자는 어떻습니까? 잘 풀리면 내가 잘 믿고 열심히 기도한 공로이고 잘 안 풀리면 하나님이 능력을 발휘해주지 않은 탓으로 돌립니다. 엄격히 말해 신자가 불신자보다 더 잘못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긴 하지만 최소한 하나님을 탓하지는 않는데 신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것도 교회생활 열심히 행한 것을 빌미로 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이 신자더러 비겁하다고 욕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신앙생활의 실상입니다. 그 잘잘못을 떠나서 바울이 말한 대로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머물지도 않습니다. 올해만은 정반대로 행하십시오. 잘되는 일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요 못되는 일은 자기 책임이라고 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못되는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오묘하고 풍성히 숨겨져 있으므로 그 보고를 찾아내셔야 합니다. 잘 되는 일에 그분 은혜 찾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어렵고 분별이 잘 안 되면 범사에 감사라도 하십시오. 그마저 어려우면 범사에 그분을 인정이라도 하십시오. 범사를 그분의 중심으로 묵상하면 나쁜 일에도 더 큰 은혜가 있음을 조금씩 조금씩 보일 것입니다. 그럼 전혀 다른 신자가 될 것이며 정말로 올해만은 믿음으로 승리하는 첫해가 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피할 수 없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일이라면 오히려 즐기라고 말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난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 욥, 모세, 다윗, 바울 등이 그랬습니다. 그들에겐 고난이 친구였습니다. 세상 사람도 고난을 즐기면서 잘 이겨내는데 신자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함께 해주는데 왜 염려 불안해 하십니까?

 

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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