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을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목사
마태복음강해 (215)



http://youtu.be/L6u3NQ9Kdhc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교회 성장학이 따로 필요 없다.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똑 같은 사랑으로 대하셨지만 유일한 예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창기, 세리, 귀신 들린 자는 물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대하는 모습과도 너무 대조적으로 심하게 질책했다. 본문은 그 두 번째 꾸중이다. 간단한 한 구절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항상 그러하듯이 정말로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는 교제도 하지 않았기에 해외에 선교하러 갔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이 국가 종교였다.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으로 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으로부터 시내 산에서 거룩한 율법을 받아 그대로 준행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유대인을 가장 유대인답게 만드는 특성이자 자랑이었다. 이 신앙은 그들의 전통, 문화, 아니 생활 자체였기에 유대인은 누구라도 나면서부터 유대교인이었다. 구태여 전도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예수님께 쏠리는 대중들의 인기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회유, 선동, 협박하여 자기들께 되돌리려는 모습을 표현한 말씀이다. 현실 정치와 종교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나사렛 시골의 무명 랍비와 그 소수의 제자들을 유대 사회에서 제거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이 일곱 꾸중을 예수님은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8절)는 말씀으로 시작했다. 당신의 제자들이 직접적인 청중이었다. 따라서 이는 모든 세대, 당연히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이 범한 일곱 가지 잘못을 절대 따라하지 않겠다는 것을 목회 철학의 기본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따로 교회성장학을 배워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전도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동안에 종교지도자들만 유일하게 야단을 쳤다. 지도자들이 교인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뜻과 반대쪽으로 이끄는 잘못은 절대 용서하지 않거나, 가장 크고 심각한 죄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예수님은 굉장히 투박한 어조로 냉혹하고도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교인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싫고 미워서 감정이 격분한 것이 아니다. 추호의 과장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 본체로서 절대적 진리를 엄격하고도 단호하게 선포한 것이다. 저를 비롯한 모든 목회자들이 본문을 자기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이 받아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분별하고 결단하여서 실천하여야 한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 받는다.

문제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지금의 목사가 교인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들 의사는 전혀 없고 꿈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예 그렇게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 정반대다. 천국 구원으로 인도할 목적으로 예수님 표현대로 바다와 육지들 두루 다니며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유대 회당에서나 지금의 교회 안에서 조폭처럼 악행을 가르치며 훈련시키지 않는다. 그 가르침은 모두가 옳고 선하다.

그런데도 주님은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인가? 바리새인과 목사는 이미 지옥 자식이 되어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었다. 그들에게 전도 받은 교인들은 처음에는 지옥 자식이 아니었는데 교회 안에 들어와서 지옥자식인 목사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의 모든 사역들도 그렇게 만드는 수단과 통로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이 격노하여서 무리수를 남발한 것이 아니다. 지옥 자식이란 천국 자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천국 자식은 구원을 받은 자로, 천국 문인 예수님의 보혈의 필터를 이미 통과한 자다. 목사가 교인들로 그 필터를 통과 시키는 일에 전념하지 않으면,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8,9에서 어떻게 선포했는가? “너희가 받은 복음”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참 생명이자 천국 문이라는 바로 그 복음, 그 진리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 목사가 그러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교인들로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해서 교인의 잘못이 지도자보다 크다는 뜻이 아니다. 문맥과 본문의 뜻에 비추면 당연히 목사의 죄가 더 크다. 이 또한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구원을 얻은 천국 자식 가운데 누가 더 잘나고 못난 구별이 없다. 모두가 동일하게 오직 예수님의 의로 덧입혀졌을 뿐이다. 지옥의 자식도 마찬가지로 더 크고 작은 죄인의 구분이 없다. 단순하게 교인들의 숫자가 목사보다 훨씬 많으니 지옥 자식의 숫자도 그렇다고 이해하면 된다.  

지금 주님이나 바울의 말씀에 기독교 교세를 확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목사를 사용하여 교인들로 의신칭의 교리라는 종교적 틀에 묶어 멍에를 지우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살고 죽는 유일한 기준을 계시한 것이다. 이 땅의 육신이 죽더라도 천국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사는 자와 이 땅에 살아도 죽은 것이요 그 육신이 죽으면 영원한 불 못으로 떨어지는 자를 나눈 것이다.

구원이 아니면 심판이요,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요, 진리가 아니면 비진리요, 생명이 아니면 죽음이요, 빛이 아니면 흑암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 중간 회색 지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을 만한 때에 얻지 못하는 자에게 어떤 유보나 추가로 고려될 사항이 전무하며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아무리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많이 소유했고 또 훌륭한 업적과 선행을 많이 쌓아도 그것으로 사람을 판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들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오직 두 부류의 사람으로만 나눈다. 그 평가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앞에 진정으로 항복했느냐 아니냐다.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은 물론 그 일생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만 구분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된다. 이 땅의 삶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당위성과 필연성과 방향성을 오직 골고다 언덕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로만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소망과 능력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만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10:9a)라고 하셨다. 당신이 하나님 독생자로 구원을 주시는 천국 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b)고 덧붙였다. 구원 이후의 이 땅의 삶에서도 신자는 예수로만 꼴을 얻어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양이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 질병, 상처 등을 기도하여 해결 받는 차원을 넘어선다. “들어가며 나오며”라고 했다. 신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해도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의 품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신자는 예수 안에서 예수에 의해 살고 있다. 또 그렇기에 당연히 예수를 위해 사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려면 그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가 그렇게 하도록 성령님을 평생토록 내주케 해주셨다. 그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구하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또 마땅히 예수님 마음에 자기 마음이 일치하게 되고 주님이 말하고 행동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요컨대 열두 제자들처럼 일생을 보내야 하고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누가 그래야 하는가? 바로 목회자들이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은?

바리새인들이 범한 잘못은 무엇인가? 그들이 제정한 율법의 세부 규정과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 감독한 것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 모세의 율법을 더 엄격히 세밀하게 지키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당시 상황에선 처음 입법한 목적대로 실행되었다면 분명히 의로운 열매들이 맺혔을 것이다. 하나님께 풍성한 복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범한 잘못은 남들에겐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자기들이 제정하긴 했어도 그것에 별로 큰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만약에 자기가 암이 걸리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정말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고치려 노력할 것이다. 가르친 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속에는 암이 없고 건강하다고 자부한 것이다. 이미 영적으로 성숙해 있기에 따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백성들이 유전 하나라도 어기면 완전히 말기 암에 걸려 죽을 자처럼 대했다. 곧바로 죄인 취급하고 상종도 하지 않았다. 예컨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해도 그랬다.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대 사회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 신앙공동체 밖으로 내모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구원 밖으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본문의 주님 말씀대로 처음에는 여호와 신앙 공동체 안에 있던 천국자식을 지옥 자식으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가로채는 정도를 넘어서 당신께서만 행사할 수 있는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가로챈 것이다. 실제로 성전에서 가르칠 수 있는 권세를 자기들이 독점하고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가르치느냐고 시비를 걸어왔지 않는가?

그들의 잘못은 그것뿐이 아니다. 성전에 바치는 제물로 흠 있고 저는 것을 예사로 바쳤다. 제물 드리는 일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그분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제물을 바치는 이는 주로 일반 백성이다. 율법대로 준행하는지 확인하여 지도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이 허락했거나 묵인했다. 그들이 희생 제물을 팔고 성전 세겔로 바꿔주는 장사치와 결탁해 중간이익을 착복했기에 백성들로선 흠 있는 제물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그분과 화해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그런 속죄를 하는 중에 또 다른, 더 큰 죄를 짓게 만들었다. 비유컨대 폭력 서클에 들어간 고등학생 아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나쁜 짓을 하니까 아버지가 야단을 치는데도 담배를 꼬나물고 아비에게 대드는 꼴이다.

그런데 이는 교인들의 잘못일 뿐이다. 제물을 드리는 이는 교인이다. 지도자들 잘못은 따로 있다. 그러는 것을 옆에서 잘 한다고 부채질 하는 정도도 넘어선다. 아예 아비에게 대들라고 시킨 폭력 서클의 두목 같은 죄를 지은 것이다. 앞에서 회당이나 교회에서 조폭처럼 악행을 조장할 리 없다고 했지만 지금 예수님은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오늘날의 일부 목회자들이 그렇게 한다고 야단친 것이다. 본문의 꾸중이 너무 투박하고 냉혹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비하면 오히려 약하고 부드러운 것 아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세계 최대 교회의 목사

설마 오늘날에도 그러는 목사가 있으랴 의아스러운가? 아니다. 엄연히 이번 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이미 신문에 기사로 떴기에 실명으로 언급하겠다.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가 공금횡령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한국의 조용기 목사를 두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린다고 비평했다.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 문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막은 것이다.

한 때 교회 성장의 최고로 성공한 케이스였기에, 전 세계 목회자들이 롤모델(Role Model)로 삼아 그분의 목회철학을 배워서 따르려 했던 분이다. 지금은 너무나 불행하게도 양식 있는 교인들의 걱정과 불신자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유대 지도자들의 일곱 잘못은 절대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목회철학으로 삼았더라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 진정으로 통곡하며 함께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분의 개인적인 잘못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해결할 것이다. 정말로 큰 문제는 지금도 그분의 목회철학이 옳다고 믿고 계속해서 그대로 답습하려는 목사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일부 목사들이 교회 돈을 횡령하는 잘못은 도덕적 죄로만 따질 문제가 아니다. 목사도 연약한 인간이라 그런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문제는 분명히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라고(마6:24) 설교했을 것이다. 실형을 받을 정도로 횡령을 했다면 지속적으로 고액을 횡령한 것이다.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당장 제거하지 않으면 죽을 말기 암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다.

목사도 금전적인 실수를 몇 번 범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도자에게 죄를 절대 범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죄를 지어도 솔직하고도 겸허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통회 자백하면 미쁘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

목사는 무엇보다 자기가 맡은 양떼에게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피땀 어린 헌금을 바친 교인들에게 대한 의무라는 차원이 아니다. 목사의 윤리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만도 아니다. 돈을 주인으로 삼지 말라고 설교한 내용이 절대적 진리임을 실제 행동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러는 것이 예수님을 가장 예수님답게 가르치는 길이며 그분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나를 살고 죽게 만드는 영원한 진리이자 참 생명임을 목사가 실제 살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교인들도 그런 목사를 닮아가고 따를 것이다. 만약 목사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교인들 또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조용기 목사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이 나름대로 있었을 것이다. 목회만 하다 보니 세상의 실정법을 몰랐을 수 있고, 또 교회 장로들이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부추겼을 수 있다. 그러나 제가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이루려 했다는 잘못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아이러니 하게도 성령의 역사를 가장 강조했던 분이 정작 본인은 성령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리새인이 범한 정말 더 큰 잘못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명 대신에 인간의 유전으로 교인들에게 멍에를 메게 했다. 또 자기들 배를 불리려고 흠 있는 제물을 예사로 바치게 만드는 잘못을 범했다. 그들의 잘못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흠이 있던 제사라도 어쨌든 많이 드렸으니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 가르침을 받은 교인들이 현실적인 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자 하나님께 대들기 시작했다. 비유로 들었지만 죄송한 표현이지만 담배 꼬나물고 아비에게 대든 아들 같은 짓을 실제로 하나님께 자행했다. 말라기에 따르면 주의 이름을 멸시한 적이 없고(말1:6), 주를 괴롭게 한 적도 없는데(말1:17), 왜 주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따졌다(말1:2).

말라기는 일차로 제사장 즉, 목회자 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였다. 그러나 목사가 그렇게 하니까 백성들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 것이다. 신자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목회자의 가장 큰 죄다.  

흠 있는 제물을 받아야 했던 여호와 하나님은 제물의 기름에 배가 불렀고 그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급기야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말1:10). 그런데 정말로 성전 문은 닫고 천국 문은 열어주는 예수님이 오셨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철자 하나 다르지 않는 진리를 선포했고  그 진리대로 살다가 죽으셨다.  

우선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고 선포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속의 죄는 암이라고 여기지 않으면서 다른 이만 당장 죽을 말기 암에 걸렸다고 간주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기들 유전 하나만 어겨도 지옥의 자식으로 취급했던 그 의인들은 구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들의 더럽고 추한 죄를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어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던 창기와 세리 같은 자들이 죄인이었다. 그들이 당신의 피로 그 주홍 같던 죄를 양털처럼 희게 해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겸손하게 항복할 때에 구원해주셨다.

주님은 또 제사를 원치 않고 긍휼을 원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 받는 회개의 의식을 폐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긍휼이 빠진 제사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오늘날의 목사가 당신의 십자가 진리와 사랑이 빠진 채 제사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사역하였기에 하나님의 일에 충성했다고 착각한다면 외면하시겠다는 것이다.

교인들마저 그런 식으로 충성했기에 즉, 진리의 말씀대로는 살지 않고 헌금 봉사 전도 많이 했기에 하나님께 복을 받으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열심히 섬겼는데도 왜 복을 안 주느냐고 대들게 된다. 바로 목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예수님이 이 시대에 다시 오신다면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실까? 정말로 두렵고 떨리지 않는가? “너희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죄에서 구원하려고 십자가 천국 문으로 들어오게 인도했으니 천국에서 잔치를 벌어야겠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까? 아니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한 명을 더 보태 교회를 키우고 목사의 이름을 높이려 드니 너는 이미 지옥의 자식이고 교인들을 배나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구나!”라고 야단치실까? 당장 저부터 도무지 할 말이 없어서 그분의 십자가 앞에 다시 겸비하게 엎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오늘날의 목사더러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한 것이 단순히 종교적 위선과 가식을 떤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적 모습일 뿐이다. 그 이전에 목사들에게 당신이 절대적 진리와 절대적 생명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거나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말기 암이자 바로 죽음이라는 철저한 자각이 없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지 않고, 예수님에 의해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면 일등에 걸린 로토 복권을 줄 것이니 가보라고 하면 안 따를 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다는 약속이 어찌 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예수님으로 인해 꼴을 얻어먹고 있는 것이 어찌 참된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목회자들부터 본문의 말씀을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 두렵고 떨림으로 받지 않았고 또 그 진리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있다.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받는다고 했는데 완전한 이단이나 거짓 복음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외에 인간의 다른 공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긍휼이 빠진 제사만 많이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만으로는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처럼 교회의 행사와 모임이 다양하고 풍성하고 활발해진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메말라가는 까닭은 어떤 사람이라도 가장 참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긍휼이 실종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 사랑도 같이 줄어든 것이다.

신자나 목사에게 자기들은 이미 천국 문 안에 들어와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종교적 열광과 충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절대적 진리인 당신의 은혜와 권능 안에 들어오면 자유케 된다고 약속하셨다. 당신의 문을 들어오고 나가면 반드시 세상을 이길 꼴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물론 목사들까지 인생을 정말로 풍성하고 아름답고 거룩하며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수시로 잊고 세상을 기웃거린다. 예수님은 여전하신데도 사람들 사이에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에 따라 울고 웃는다. 목사가 세상 평가에만 급급해 한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성도들 사이에 거룩하게 역사하는 일을 성장하려 하기 보다는 교회만 성장시키려 든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번져 나가는 것은 물론 교회 안에 실현되는 일조차 가로막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본문 말씀이 굉장히 투박하고 냉정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지금이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 다시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참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 한 분께로만 향해야 한다. 목회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여서 삶에서 그분 가신 길을 따라가면 그 말씀이 반드시 살아서 풍성하게 역사한다. 목사가 그렇게 살면 그 삶이 바로 살아있는 설교가 된다.

그럼 교인들도 단지 헌금, 봉사, 전도 많이 했으니 복을 받으리라는 착각을 하지 않게 된다. 교인들도 삶에서부터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바친다. 자연스레 교회의 영적 부흥은 이뤄진다. 그런 교인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바다와 육지를 건너 두루 전파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 기독교와 교회 부흥을 위한 일만이 아니다. 바로 교인과 목사 개인이 정말 기쁘고 참 만족의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4/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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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오병이어의 이만 배 축복이 이천 배로 축소되었다.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5-완)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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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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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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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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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다.(출애굽기강해#3-출1:15-22)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다. 출애굽기 강해 (3)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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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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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1]

(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4)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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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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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1]

(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룻기 강해 (8)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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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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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0:1-7&17,18)생명을 살리는 선지자로 기도하라-기도시리즈(8) [1]

(창20:1-7 & 17,18) 생명을 살리는 선지자로 기도하라. 기도 시리즈 (8)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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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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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8-12) 내년에도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살아라.

(요14:8-12) 내년에도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살아라. 2021 송구영신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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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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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7,10,32) 그런데도 아직인가? 그러나 이제는인가?

(눅15:7,10,32) 그런데도 아직인가? 그러나 이제는인가? 돌아온 탕자 시리즈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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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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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14-19)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둘째 아들

(눅15:14-19)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둘째 아들 돌아온 탕자 시리즈 (5)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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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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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 이성적인 믿음 (민수기강해#15-민14:4-10) [1]

(민14:4-10) 예수님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 이성적인 믿음 구약성경강해(25) / 민수기강해(15) - 가데스 바네야의 불순종(5)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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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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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질투하고 있는가?(출애굽기강해#63-출34:29-35) [1]

(출34:29-35) 하나님을 질투하고 있는가? 출애굽기 강해 (63)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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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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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소명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마28:16-20) [1]

November 12, 2017 Morning Service from Kirby Woods Baptist Church on Vimeo. 설교 요약: 마태복음 28:16-20 제목 (가제): “위대한 사명 (임무) Commission” 요약: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면서 끝을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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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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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오병이어 기적 (9)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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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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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0:1-5, 22-24) 역전된 인생을 살고 있는가? [1]

(창30:1-5, 22-24) 역전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야곱 바로 알기 (13)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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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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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뒷모습이라도 보는가?(출애굽기강해#60-출33:18-23) [1]

하나님의 뒷모습이라도 보는가? 출애굽기 강해 (60)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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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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