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28-53)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참 믿음이다.

 

다윗 왕이 가로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니 저희가 왕 앞에 이른지라.”(왕상1:32)

 

 

아도니야가 스스로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되려했던 시도는 하루도 가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반란 소식을 들은 선지자 나단은 밧세바에게 빨리 다윗 왕을 만나 그가 이전에 하나님과 그녀에게 행한 맹세를 지킬 것을 촉구하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밧세바에게 그녀의 소생인 솔로몬으로 왕위를 잇게 하겠다고 맹세해주었습니다. 다윗의 왕위이양 절차는 간단하게 끝났으나 아도니야의 풍성한 잔치와 비교해보면 왕이 되어야 할 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군대 장관 격인 브나야 세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입법 사법 행정의 세 장관을 다 소집한 격입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조직의 수장이 왕위 이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증인 삼아 준 것입니다. 솔로몬의 왕위 계승의 법적인 정통성이 확보된 것입니다.

 

아도니야도 독자적이고 자의적인 왕위 선포식에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요압을 청하긴 했습니다. 아비아달과 사독 두 사람 다 다윗에게 나름의 공을 세워서 함께 제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삼하20:25) 요압은 왕이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두 번이나 어기고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아브넬과 반란을 일으키긴 했어도 다윗이 총애했던 왕자 압살롬을 살해했습니다. 요압은 온갖 전투에서 다윗 왕을 위해 힘껏 충성했으나 이처럼 자기 판단을 앞세워서 주저 없이 왕을 거역하기도 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왕상1:7) 이 두 명은 아도니야와 모반할 계획을 일찍부터 함께 세웠던 것 같습니다. 아도니야가 회유 협박한 것도 아니며 모반이 성공하자 어쩔 수 없이 따른 것도 아닙니다. 다윗에 대한 불평이 컸거나 뭔가 잘못을 범해 솔로몬이 왕이 되면 반드시 쫓겨나거나 벌 받을 줄 미리 알고 그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솔로몬더러 요압은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2:6)고 즉, 죽음의 형벌을 내리라고 유언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에게 소집당한 세 사람과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왕상1:7) 그들도 초청을 받았거나 그런 움직임을 알고도 전혀 동조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반역은 어차피 자기를 편드는 자들로 거사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고 치울 계제가 아닙니다.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도니야와 “함께한 손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49절)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조치는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저희 소리로 인하여 갈라질 듯.”(40절) 하는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군사력 재력 모략으로는 아도니야 쪽이 뒤지기는커녕 훨씬 우월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을 빼고 왕자들도 다 참여할 정도였습니다. 왕위대관식을 겸한 그 잔치는 아주 풍성하고 화려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노구를 이끌고 침상 앞에서 몇 마디 말로만 왕위양도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그 형식과 참여 인원수에 있지 않습니다. 몇 명이 되었던 신하들의 견고한 신뢰를 얻었느냐, 그래서 백성들에게 참 기쁨을 주느냐 여부였습니다.

 

신하와 백성들은 다윗의 평생에 걸친 순전한 믿음과 백성들을 위한 성실하고 진정어린 헌신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신하들의 재력 무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기 인격적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긍휼로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워질 그분의 나라의 왕이 될 자는 무력과 재력과 정치력에 뛰어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겸비하여서 백성들 앞에도 겸비한 자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정말로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양 떼들 앞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겸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신뢰를 견고히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인격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세상의 외모로 성도들을 차별대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의 숫자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한마디에도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영적 권위가 서고 양들로 순전한 기쁨으로 순종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목자부터 하나님과 인격 대 인격으로 매일매일 대면 교제 동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한 마리의 양이 되어서 주님의 참 사랑을 받고 누려본 목사만이 자기가 맡은 양떼에게도 주님 닮은 목자로 서서 주님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목회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자는 제사장 족속으로 불신자에게 예수님의 목자로 서야 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이로부터 칭송을 들을 필요는 없으나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 자가 전하는 복음에 참 생명이 넘치고 불신자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와 인격대 인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정말로 이 시대에, 아니 모든 세대에 주님이 찾고 또 찾고 있으며, 길 잃은 양떼들이 갈급히 만나고자 하는 목자와 신자의 상입니다.

 

6/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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