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8은 무슨 뜻인가요?

조회 수 506 추천 수 1 2019.06.25 10:17:12

베드로전서 3:18은 무슨 뜻인가요?

 

[질문]

 

예수님께서 육으로 부활 하셨다는 것은 물고기 등을 드신 일, 도마에게 만져보라 하신 일 등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단교인이 베드로전서 3:18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육이 아니라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서 이 구절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답변]

 

이단 교인과 상대하려면?

 

이단교인들은 자기들 교리를 논리적으로 변증하는 면에선 아주 능숙합니다. 관련된 성경구절을 아주 많이 알고 또 각 구절의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들 주장과 일치시킵니다. 조금이라도 유사한 의미가 있으면 찾아내고 안 되면 억지로라도 갖다 붙입니다.

 

반면에 정통 교단의 신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믿고 따르기에 구태여 변증 논리를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서 그들이 내세우는 성경구절에 의거해 세부적인 토론에 들어가면 번번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이단과 논의를 할 때는 일차로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 주장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쳐주려 들어선 이미 방어논리로 세뇌되어 있는 자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대신에 복음의 진리만 말해주면 됩니다. 틀린 것을 비방하지 말고 옳은 것을 가르쳐서 과연 그것이, 신자가 전하는 내용이, 옳은지 생각해보라고 권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이 쉽사리 설득되리라 기대해선 안 됩니다.

 

상기 주제에 대해서도 질문자님이 확신을 갖는 성경구절로 대응을 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시어 물고기를 드시고 도마에게 손과 허리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신 말씀을 역으로 그에게 해석해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아마도 십중팔구는 예수님이 고기를 구어서 드신 기사는 제자들의 환시(幻視)이며, 도마의 경우는 그 본인이 그렇다고 느낀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벧전3:18을 들이대며 “봐라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육신은 죽고 영으로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거꾸로 대들 것입니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습니다. 무슨 구절이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단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딤3:10)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단을 교리로 설득시켜서 정통 신앙으로 돌려보겠다는 시도는 거의 실패할 것이며 시간 낭비라는 뜻입니다. 사탄이 그들 심령 안에 심어놓은 거짓의 울타리가 너무나 견고한 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침 문제의 구절 바로 앞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정통 신앙을 가진 자는 자기 믿는 바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고 누구에게든지 잘 설명해줄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구절도 이단과의 논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신자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물어도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 되신 이유와 주로 모신 후에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와 권능에 대해서 당당하게 간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님도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럼 당연히 영으로만 부활했다는 것은 일단 틀린 해석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과 마지막 날의 신자의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고린도 전서15장에서 자세히 변증하고 있습니다. 이단과 토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이 부활의 장을 같이 공부해보자고 제안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는 이단만 상대하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저작 의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 범하는 치명적인 잘못은 한 절씩, 심지어 한 구절 한 단어를 따로 떼어내서 해석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는 것이 이단이 가장 잘 발달시킨 자기들 변증의 방식입니다. 신자들이 개별 구절을 문자적으로만 접근했다간 전혀 의도치 않았음에도 이단적인 해석에 빠질 우려가 다분히 생긴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원래 장절 구분이 없이 죽 이어져 작성되어졌습니다. 장절은 내용 구분이나 찾아보기에 편리하도록 훨씬 후대에 부쳐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선 본문의 뜻을 찾되 그 찾아낸 뜻을 반드시 앞뒤로 연결해서 살펴봐야만 합니다. 특별히 베드로전후서 같은 서신서들은 단번에 전부를 여러 번 읽어서 전체 주제와 의미의 흐름을 파악한 후에 같은 내용 별로 묶어서 세부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8) (개역본)

 

먼저 18절 본문의 뜻부터 살펴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도 ~~ 하심이라”와 “육체로는 ~~ 받으셨으니”라는 두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 문장이 “그리스도께서도”(Christ also)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자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는다는 의미의 설명이 있었거나 그와 연결되는 진술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말 개역본 번역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어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두사(For)가 있습니다. 앞의 설명에 대해서 그 이유나 근거가 18절 전반의 문장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문장은 “받으셨으니”라고 그 진술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므로 19절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앞 문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게 된 이유나, 그와 관련된 추가 설명이 19절에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단히 문장구조만 따져 봐도 한절씩 따로 떼어서 해석 적용해선 얼마나 쉽게 오류에 빠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앞뒤 문맥은 물론 책 전체의 주제와 연결해서 묵상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이런 훈련이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일부 목회자들마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데 성경적 무지 내지 목회적 나태이거나, 아니면 말씀 해석을 독점하여 교인들을 자기 의도대로 조종하려는 탐심 둘 중 하나의 소치입니다.

 

우선 18절 전반은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의 실제로 있었던 육체의 죽음이 신자를 위한 대속죽음이었기에 신자도 육체로는 죽어도 그 영은 주님처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바로 앞 17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봐야 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연결지어야 합니까? 무엇보다 베드로가 이 서신을 저작한 배경과 그 의도를 알아야, 즉 책 전체의 주제를 살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는 로마 제국이 크리스천에 대한 핍박이 극심해질 때에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위로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붙들어서 인내하라고 권면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17절에서 아무리 괴롭더라도 악을 행하는 것, 예컨대 믿음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핍박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그리스도도 고난을 받아 죽었으나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한 것 즉, 지금 고난 받고 있는 신자들의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가 육체로는 죽었으나 영으로 부활함으로써 신자에게도 부활의 승리를 보장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흐름 상 베드로가 문제의 18절 후반 구절을 기록한 의도는 고난 중의 신자들더러 마지막 날의 육체의 부활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부활 승리만큼 종교적 핍박을 견딜 수 있는 힘과 근거는 없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이단교인이 그리스도가 육체로 부활하지 않았다고 즉, 제자들의 눈에 보인 것이 단순히 환각으로 보이는 이미지였다는 뜻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 부활까지는?

 

이제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구절을 19절과 함께 붙여서 뜻을 생각해볼 차례입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19절)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가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이유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죽고(마27:46)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부활하실 때까지 주님의 상태를 베드로 사도가 변증한 것이 19절 말씀입니다. 알다시피 19절은 아주 난해한 구절인데 크게 보아 주님이 문자 그대로 영으로써 죽음 너머의 영계에 다녀왔거나, 십자가 대족죽음의 복음이 영계를 포함한 온 천하에 선포되었다는 둘로 해석합니다.(저는 후자를 지지합니다.) 어느 쪽의 의미를 적용하든 18절 후반은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주님의 물리적 상태를 설명하려는 뜻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 이단 교인은 18절 한절 전체도 아니고 일부분만 가지고 그것도 단순히 자기가 해석한 문자적 의미만으로 자기주장의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그 당연한 결과로 성경해석의 무지함을 오히려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이단 교리와 그 옹호논리를 가르치는 교단의 지도자들이야 사탄의 하수인이지만 그들에 속고 있는 일반 이단교인들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의 기록대로 분명히 가시적일 뿐 아니라 가촉적(可觸的 tangible)인 육체를 갖고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 사역, 행적, 특별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그대로 믿지 못하면 기독교 교리를 논할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단은 한두 번 타이르고 멀리하라고 성경이 선언한 것입니다.

 

서신서들을 기록한 사도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거나 바울처럼 사도들과 교제하며 복음서에 능통한 자입니다. 특별히 질문하신 구절을 기록한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제자 중에 부활의 첫 증인이자 부활 주님과 가장 많은 교제를 가진 자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만 있는 허상으로 이해했을 리는 결코 없습니다. 그랬다면 그가 가장 먼저 복음서부터 그 기록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그 당대에 이미 문제 삼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신자들의 육체의 부활은 고전15장에서 설명했듯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모든 신자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 앞에 보여준 부활 육체는 마지막 부활 때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부활 신체에 대해서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것 이상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땅에서 시공간을 초월하고 물리적 장벽의 방해를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은, 이 이상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며 이런 모습마저도 세밀히 따질 필요가 없음, 신령한 육체를 입을 것입니다. 또 주님과 세세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왕 노릇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육체일 것입니다.

 

6/25/2019

 

*** 신자가 죽은 후의 마지막 부활 때까지의 상태에 관해선 성경문답의 “부활 이전의 성도는 어디에 가나요?”와 “죽은 후 부활 때까지의 상태는?”, 두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낭여

2019.06.28 16:31:40
*.125.120.67

목사님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럼 기독교에서는 영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는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영이 부활하려면 영이 죽어야하는데 성경에서는 최후의 심판날까지 영은 잠들어있든지 어딘가 다른데 있든지 하고, 최후의 심판을 받더라도 그것은 영의 죽음(소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일테니까요. 또 최후의 날에 육이 부활하려면 새로운 육체를 입을 영혼이 있어야 할테니 육의 부활을 위해 영이 죽는(소멸) 일은 없겠죠?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있어서도 예수님이 영으로서 죽은 일은 없을테고요(영원히 계시는 분일테니까). 이(영은 죽지않는다는 전제)에 따라서도 영의 부활은 없다란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master

2019.06.29 03:42:29
*.115.255.228

낭여님 위 답변에서 밝힌 대로 

신자가 죽은 후의 마지막 부활 때까지의 상태에 관해선 성경문답의 “부활 이전의 성도는 어디에 가나요?”와 “죽은 후 부활 때까지의 상태는?”, 두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낭여

2019.07.02 01:15:12
*.125.120.67

목사님 상기 글들은 예전에도 읽어봤고 참조하라셔서 다시 읽어봤지만 제 댓글의 질문과는 좀 핀트가 다릅니다. 제 질문은 신자가 죽은 후 마지막 부활 때까지의 상태가 어떠하냔 것이 아니고 그 중간기 동안 잠만 자든지 별도의 공간에 있든지와 무관하게 '기독교 세계관에서 영의 소멸은 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영의 소멸 = 존재의 멸절로 생각되는데 영의 소멸=존재의 멸절이라면,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하는 기독교와는 무관하리라 생각됩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든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한 괴로움을 받든 말이죠.

 그러니까 제 요점은 육의 부활을 위해서는 육이 죽어야 하겠지만 영(존재, 자아)은 남아있어서 육으로 부활 할 수 있지만, 이단교인이 말한 영의 부활이란 개념은 영이 죽으면  영을 부활시킬 대상, 존재 자체가 없어지니까 영의 부활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도 반론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완전히 존재 자체가 소멸된 존재를 다시 존재하게 한다면 부활이 아니라 재창조겠죠)

master

2019.07.02 02:58:00
*.115.25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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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여님 죄송합니다. 제 답글이 핀트가 많이 어긋났네요. 제가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가 홈페이지 운영과 제 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네요. 형제님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특별히 "제 요점은 육의 부활을 위해서는 육이 죽어야 하겠지만 영(존재, 자아)은 남아있어서 육으로 부활 할 수 있지만, 이단교인이 말한 영의 부활이란 개념은 영이 죽으면  영을 부활시킬 대상, 존재 자체가 없어지니까 영의 부활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도 반론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변증은 논리적으로 아주 뛰어납니다. 혹시 제가 앞으로 그대로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ㅎㅎㅎ 

낭여

2019.07.07 10:36:26
*.125.120.67

어이쿠 목사님께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실수를 인정하시는 모습도 감동입니다.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됩니다. 저작권이 있을만한 부분도 아니고요. 제 작은 생각이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사님의 변증사역에 활용된다면 저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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