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청년부 사역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조회 수 47 추천 수 0 2019.11.14 16:28:29

교회청년부 사역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질문]

 

저는 20대 후반 청년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 50%이상이 주일을 온전히 교회에서만 보냅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섬기기에 예배 때부터 힘들어 하며 저 또한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었습니다. 매주 고달파도 예배로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팁니다. 교회는 저희들이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주길 원해서 주일예배 외에 특별행사들을 많이 맡깁니다.

 

작년에는 청년부 총무로 이번 년도엔 회장으로 섬기다보니 교회지도자들과 청년들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장로님들과 여러 집사님들의 기대가 이해는 되지만 현실이 너무나 큰 벽으로 느껴집니다. 알바와 공부를 겸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저도 취업난을 몸소 겪기에 사역에 적극 동참하라고 권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또한 경제가 많이 안 좋아진데다 성도 수도 줄고 있어 교회재정도 감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줄어 청년부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교회행사만 있으면 청년부가 갑작스레 동원되어 지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제 나름의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아래 세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청년들이 교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맡고 있는데 막막한 현실을 극복하고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재물과 시간을 다 내려놓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는 있지만 취업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교회 일에 거의 시간을 쏟다보니 막상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떻게 교회 일과 제 개인 일을 서로 조화를 맞춰나갈 수 있을까요?

 

2. 솔직히 매주 고달프기만 하는 현재의 청년부 상황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만 할까요? 심지어 임원들조차 사역에 불참하는 빈도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3. 그런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을 하고 행동으로 대해야할까요?

 

[답변]

 

많은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특별히 교회행사를 준비하여 수행하거나 주일학교교사를 맡을 인적자원이 부족한 대부분의 이민한인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진솔하게 현재의 상황을 밝히고 갖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으시며 대안을 물어오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드리는 답변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많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제 의견에 완전히 수긍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섬기시는 교회와 청년부학생들과 형제님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말하는 원리에 바탕을 둔 답변일 뿐입니다. 또 원론적 답변이기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는 형제님의 책임 하에 스스로 판단하시면 됩니다. 형제님이 어떻게 하든 그 원리에 바탕을 두었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질문을 받자마자 제가 댓글로 아래 세 가지 반문을 드렸습니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일의 관계를 제대로 알면 올바른 대응책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 1) 형제님에게 하나님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합니까?, 2) 지금 형제님이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교회 일들이 형제님이 생각하는 그 하나님의 일과 일치합니까?, 3)최근 주변과 갈등이 생겨서 고민하는 문제들을 하나님은 과연 어떤 관점으로 보실까요?

 

하나님의 일이란?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충성 헌신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보다는 그 일 자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너무 경건하고 심오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신자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대로 행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항상 소원하는 것은 신자 본인의 영적인 충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첫째 항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 그분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함으로써 그분의 영광만 높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그분을 진지하게 정확히 알아나가야만 합니다. 기독교의 종교적 지식과 의식에 능통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인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깨달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충만하게 깨달은 것이 너희에게 충만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앎이 신자의 존재와 삶과 일생에 더 많이 반영 구현되어져야 합니다. 본문 앞 16-18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설명해놓았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첫째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고, 둘째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야 하며, 셋째 너희가 모든 성도와 함께 사랑 가운데 뿌리를 내리라고 합니다. 그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게 자라가고 그분의 사랑으로 자기 주변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신자의 일생을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마5:13-16) 신자의 정체성이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자 세상에 진리를 밝혀주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생명을 살리라고 했습니다.(요12:24) 바울도 그래서 모든 성도와 함께 사랑 가운데 뿌리내리라고 즉,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는 물론 이웃을 대하라고 한 것입니다.

 

흔히들 예수님이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계명(마28:18-20)을 지키느라 전도에만 전념하는 신자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모든 족속에게 십자가 복음으로 초대하는 즉, 이 계명을 실현하는 첫 단계입니다. 주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께서 가르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전도를 했으면 반드시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야 합니다. 바울의 말로 바꾸면 그 속사람을 강건케 하고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가르친 모든 것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럼 주님이 가르친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주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큰지 물었는데 주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이 말씀에서 주목할 사항이 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은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과 같은 수준에 두었습니다. 신자가 이웃 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당신께서 이웃을 사랑하니까 신자더러도 똑같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믿음으로 행해야 할 삶의 실체입니다.

 

둘째, 온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은 성경 전부를 일컫는 히브리 관용구입니다. 성경 전체가 신자에게 행하도록 명하는 것이 그 둘로 축약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신자에게 명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신자가 행하기를 원하는 바로 그분의 일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권한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이 계명대로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했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성전과 집에서 자주 모여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나눠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 구원 받는 사람을 주께서 날마다 더하게 했습니다.(행2:44-47)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행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 주님께서 초대교회를 불같이 부흥케 해주셨습니다. 아직은 요즘 식의 교회와 예배와 사역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교회 사역 이전에 신자가 반드시 행해야 할 그분의 일입니다.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라고 해서 불쌍하니까 도와주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그 이웃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고 그 새 제자로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 사랑으로만 통치하는 그분의 나라로 이웃을 초대하여서 함께 그 나라를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도 당연히 신자들로 자신의 현실 삶에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사역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로는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죄로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어서 인간의 도덕적 종교적인 양심과 의지력으로 스스로 행하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도리어 왜곡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죄악이 되는 사랑으로 결말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자신을 통해 드러나게끔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자신의 지식 양심 의 종교적 실력 등을 모두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온전한 이웃사랑이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주일에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 설교, 찬양, 기도, 말씀공부, 봉사 등 모든 사역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그 십자가만이 드러나게끔 행해야 합니다. 골고다 대속 죽음의 은혜와 진리를 가르치고 신자들의 몸에 배이도록 하는데 집중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이 평일에 스스로 하나님을 알아가며 교제하는 일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기 마음에 있게끔 양육시켜야 합니다. 신자가 일주일의 삶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바탕을 두고 또 그 사랑이 이웃에게 실현되어지도록 말입니다.

 

바꿔 말해 예수님 그분을 신자들의 가슴에 가득히 채워서 그들의 손과 발을 통해 세상에 실현되게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경건하고 신령해 보이는 사역도 교회에선 행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서적 감정적 기쁨 내지 평안을 채우는데 주력하는 종교적 행사는 힘써 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토록 행할 첫째 일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온전히 알아서 실현하지 않고는 그분을 기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작금 많은 교회들이 정작 예수님이 반드시 행하라고 명한 이웃사랑을 실현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마저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을 기뻐하고 삶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아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그분에게서 받는 현실적 복만 기뻐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이웃사랑이 바로 하나님사랑이라고 했는데 주일에 교회에 우리끼리 모여서 교회와 목사와 성도만 사랑하는 것으로 격하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달리 유일하게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당신 대신에 이 땅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것입니다.(창1:28) 또 그 일을 각 가정을 통해서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창2장)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를 최고로 높이는 타락으로 인해 세상은 탐욕의 무한경쟁 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청지기 역할을 전혀 수행할 수 없고 도리어 피조세계는 인간의 죄악으로 황폐해지고 인간사회의 악은 더욱 확대발전 되었습니다. 노아의 심판을 겪고도 그랬으며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하나 다를 바 없습니다.

 

신자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며 그분의 이름을 증명하라고 따로 불려 나온 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이 땅을 회복시킬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그분의 청지기로서 자연과 인간사회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가꿔나가야 합니다. 우선 자기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필두로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가 맺히게 해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막는 일에 마땅히 앞장서야 합니다. 남녀가 하나님의 신성한 언약 안에서 결혼하고 부부간에 진정으로 사랑하며 자녀를 출산하여서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자기 인생과 가정의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완벽한 주인임을 주위에 드러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예수 십자가를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죄로 타락한 이 땅에 누룩처럼 번져나가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신자가 정작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따라서 교회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증거와 실천에만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지 않거나 그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사역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기독교 행사와 의식을 정기적으로 행한 인간적인 일일뿐입니다.

 

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

 

하나님의 일을 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우선 예배와 설교와 성경공부 등을 통해 성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고 솔선해서 실천하는 본을 보여야 하는 전임사역자입니다. 평생을 두고 그 일에만 헌신하는 자입니다. 또 그 일로 사례를 받아 생활을 꾸려가기에 그 일이 직업이 되고 그 직업을 잘 수행하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배워서 훈련받은 주님의 사랑을 자기가 하는 직업을 통해 이웃에게 실현함으로써 이 땅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스려야 하는 일반 성도입니다. 일반신자에겐 자신이 가진 직업을 잘 수행하는 것이 더더욱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지금껏 설명 드린 맥락에 따라 세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 힘에 버거운 교회 일과 개인적인 일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둘을 나누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개인적인 일에서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이웃사랑을 잘 실현하고 있다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데다 복음의 직접적인 열매가 열리므로 주일 교회사역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들은 주일 교회에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 경배한 위에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배워서 그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결단해야 합니다. 주중에는 자기 직업을 통해서 이웃을 주님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실제로 행해야 합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당연히 또 가장 먼저 직업부터 가져야 합니다.

 

시간과 재물을 다 내려놓고 교회 일에 전념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전임사역자가 해야 할 일이지 일반성도가 행할 바는 아닙니다. 물론 주일 하루는 주님의 복음으로만 청년부를 충만케 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머지 6일에 지장이 생긴다면 문제입니다. 주일 하루는 나머지 6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평일 6일이 주일 하루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종이라면 교회 일과 개인 일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사실상 갈등할 이유도 없습니다. 시간과 재물을 기꺼이 내려놓고 그 하루를 따로 떼어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이미 바쳤지 않습니까? 그러면 또 성령님이 나머지 6일을 주님 사랑 안에서 세상에서도 성실히 살아나갈 수 있는 믿음과 지혜로 채워주십니다.

 

엄격히 말해 현재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다른 청년들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질문자님부터 교회 봉사하는 일을 그만 두셔야 합니다. 맨 서두에 하나님이 가장 바라는 것이 신자 본인의 영적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는,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기도하고 헌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 앞에서 봉사하는 것을 주님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선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할 수 없기에 청년부 부원들이 예배 중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형제님이 전임사역자로 주님의 부름을 받아 평생을 헌신하지 않는 한 돈도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목회자도 교회 사역을 통해 사례를 받습니다. 일반 성도가 세속의 직업에 성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와 통로를 넘어서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직업을 통해서 이 땅을 아름답게 보호하고 이웃들의 유익을 제고시켜야 합니다. 어서 빨리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에 합당한 직업부터 가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십시오.

 

교회 봉사는 정말로 더 열심히 더 큰 기쁨으로 행하시던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고 예배만 참석하든지 본인의 믿음과 형편에 따라 편할 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교회 사역 자체가 하나님의 일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년부 자체에서 결정하고 시행하는 사역과 별도로 교회가 청년부를 동원하는 일은  솔직하게 청년부 사정을 말씀드리고 중지해달라고 교회지도부에 간곡히 부탁해야 합니다.  

 

둘째로 매주 고달프기만 한 청년부의 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모든 이가 고달프다고 여겨지면 이미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거나 뭔가 방법론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제대로만 가르쳐지면 사람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지 절대로 매번 반복되는 피곤과 짜증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은 교회는 청년들이 예수 십자가 은혜 안에서 건전한 직업을 갖고 하나님이 맡긴 청지기 직분을 잘 수행하게끔 만드는 데에 모든 사역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청년부 사역에 열심을 내지 않는 청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이기에 절대로 탓하거나 불만 원망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질문자님부터 피로감 위에 장래 직업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자칫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탓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청년부 사역을 책임지는 자라면 복음의 생명력이 넘쳐서 다른 성도들에게 거룩한 영향을 끼쳐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청년부가 정말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믿음이 아직 없는 탓입니다. 믿음이 성숙되지 않는 자는 잘 가르치고 기다려주어야지 야단칠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청년부 사역에서 직업은 성과 속으로 구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 자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회가 잘못하는 것입니다.

 

10/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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