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요? (1)

 

[질문]

 

창세기를 읽으면서 여자의 위치에 대해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3:16)‬하와가 선악과을 먹고 아담에게 주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는 분 아니신가요? 여자가 소유물 물건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오실 것을 아시지 않으셨는지요? 이외에도 성경에는 여자는 소유물처럼 여기는 말씀이 많습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여성인권이 낮아서 온갖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이 개선됐지만 현재까지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에 무시되었던 여성인권문제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로 인해 감당해야할 문제인지요? 아니면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는 것은 인간의 죄인지, 저 구절이 뜻하는 바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자가 남자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걸 아셨을 텐데도 저렇게 말씀하신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요?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창19:8) 창세기에 왜 아내를 둘을 두고 여자를 소유물처럼 여기는 것을 꾸짖는 구절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두 딸을 그냥 주기도 하구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여자 목사님들도 많이 생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여자들도 사회생활을 합니다. 시대가 변한만큼 성경의 여자들처럼 아이를 낳는 것을 필수과제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되었지요. 이런 부분에서는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벌을 내렸던 성경과 현실이 달라졌는데요. 어떻게 생각해야합니까? 노예제도도 궁금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창16:9)‬사라에게서 도망쳐 나온 하갈에게 주님의 천사가 와서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합니다. 인간은 주님 앞에서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 이야기한 것인가요? 주님 앞에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 노인 상관없이 다 같은 사람으로 보시는 게 맞는지요? 저런 구절들 때문에 의문이 듭니다.

 

[답변]

 

구약성경의 해석법

 

질문에 답변 드리기 전에 지적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성경을 어떻게 접근 해석 이해해야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신자들 스스로 경건의 시간을 통해 본문을 묵상하며 은혜 받으려 해도 시쳇말로 “내가 복음”(내 선입견에 영향을 받거나 내 지식 범위 내의 해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는 일반윤리로만 따져도 누구나 틀렸음을 압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계시해놓은 성경에 그분의 뜻처럼 기록되어 있으니 아주 곤혹스러워집니다. 지금 성경해석 전반에 대해 설명드릴 수는 없기에 구약과 신약의 관계만이라도 정리하셔서 앞으로 성경을 읽으실 때에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기억할 사항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 모두가 하나님의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이나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어떤 인물에 관한 족보, 고래부터 내려오는 도덕적 속담과 잠언과 시가, 신자들의 개인적 체험이나 하나님께 은혜 받은 후의 반응을 그들 자신의 언어로 고백한 것, 하나님의 마지막 날에 대해 은유와 상징으로 묵시한 것 등등 아주 다양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전체에서, 특별히 구약성경에선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가 직접 계시된 것은 양으로만 따지면 극히 일부입니다. 나머지들은 그 진리가 인간 사회나 개인에게 실현되는 모습과 결과를 기록한 것인데 그안에 하나님의 이차적인 혹은 지엽적인 진리들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반드시 종합적으로 서로 연결 비교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성경본문이 어떤 내용인지부터 파악한 후에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목적을 갖고 기록했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인간더러 반드시 알게 해주고 싶어 하신 그분의 뜻을, 직접 말씀하셨던 간접으로 계시하셨던, 찾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이 타락한 경로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죽음의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하며 그 뜻은 무엇인지, 그 은혜가 인간과 그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인류역사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어떻게 완성시킬지 등에 대한 계시가 그분의 절대적 진리가 됩니다.

 

요컨대 인생과 세상에 대한 거대담화(Meta Narratives)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경은 그것을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네 차원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절대 진리들의 중앙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서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로 타락한 인간 세상에 반드시 와야만 하는 배경과 이유를, 신약성경은 그분이 오셔서 행하시고 특별히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과 그 결과를 적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루셨고 또 완성시킬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 God’s redemption history)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경 말씀은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특별히 십자가 죽음의 관점으로만 해석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구약성경은 인류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골고다로 이끌어가는 예비과정이므로 반드시 신약의 관련내용과 연결시켜서 봐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진리가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새날이 오려면 처음에는 완전히 캄캄한데서 태양 빛이 조금씩 비취기 시작하고 조금씩 뿌옇게 변해갑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주변 모든 사물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는 어둠에서 새벽이 오는 과정이라면 신약의 예수님 십자가 죽음은 중천에 뜬 태양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어두움 내지 희미함은 반드시 태양인 신약 복음의 빛이 비춰야 실상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예수 십자가 진리가 확정되면 폐기되어질 내용들도 구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이 장막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말합니다. 그것을 포함하여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 즉 구약의 율법들은 개혁할 때(골고다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때)까지 맡겨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폐지된다는 것입니다.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도 예수님이 오셔서 개혁하고 폐지될 것을 가정해서 구약에 포함시켰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본래와 인간의 완악함

 

먼저 신약과 연결해 해석해야만 하는 여성비하와 관련되는 구약 말씀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24:1) 구약의 율법은 아내에게서 뭔가 하자를 발견하면 남편이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구약이 신약에 의해서 진리로써 더 밝혀질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라면 이 이혼증서법도 그래야 합니다. 그럼 또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지금도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구절을 하나님의 절대 진리이니까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그 구절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을 이미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5:31,32)

 

주님은 ‘일렀으되’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는데 모세 율법에 포함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아내에게 증서만 주면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고 전제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음행한 이유 없이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명합니다. 아내의 음행만을 이혼사유 즉, 증서를 주고 내보낼 수 있는 조건으로 제한했습니다.

 

만약 음행한 연고가 아닌데도 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면 너희들의 종교적 관습으로는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간주할지 모르지만, 그 결혼 관계는 하나님의 법 안에선 여전히 유효하게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여자에게 장가 들면 이전 남편의 아내 즉, 유부녀와 관계를 맺는 것이므로 간음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율법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 적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잘 살펴서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혼증서 규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오히려 음행 같은 결정적 하자가 아니면 아내와 헤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남편이 마음대로 아내를 버렸다가 다시 데려다가 학대함으로써 그 아내가 재혼하지 못하는 억울한 경우를 방지하고자 하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함부로 내다버림으로써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서 주님이 경고하신 간음죄가 성립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결국 모세 율법의 이혼증서 규정도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지 비하하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그 점을 명료하게 풀어서 설명해준 것입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19:5-9)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고(마19:3) 상기는 주님이 그에 대해 답변한 내용입니다. 만약 주님이 버려도 된다고 답하면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위반하는 셈이 되고, 반대로 버려선 안 된다고 답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셈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그러하듯이 yes와 no 둘 중 하나로만 대답해야하는 닫힌 질문을 던졌고 어느 쪽 대답을 하던 하자를 잡아 비방할 예정이었습니다. 주님도 항상 그러하듯이 어느 쪽에도 위배되지 않으면서 도리어 질문한 바리새인들의 음흉한 의도와 잘못을 밝히 드러내는 답변을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전제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라면 이혼은 결코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면 당연히 일부일처제도 그분의 뜻입니다. 바리새인은 주님의 그 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세의 이혼증서규정 위반이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이 버림을 허락하였으나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답했습니다.

 

‘본래’는 앞에서 전제한 엄격히 일부일처를 유지하라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완악하게도 아무 잘못이 없는 아내를 꼬투리를 잡아서 함부로 버리고 새 여자를 데려오거나, 버렸다가 다시 데려와서 여러 아내들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끔 그 규정을 율법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본래 뜻을 거역한 것은 너희들이지 당신께서 잘못 가르친 적도 없고 구약 율법 내용에 하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본래는 남녀의 완전한 평등

 

예수님은 상기 이혼증서 규정을 포함해 일부 구약 말씀들을 재해석하여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구약성경, 특별히 율법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주님이 밝히신 성경해석의 원칙은 말씀드린 대로 계명들의 문자적 의미에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과 율법을 주신 목적에 따라서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리새인과의 이혼증서 논쟁에서 보듯이 율법에는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제정한 것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여성비하와 노예제도가 그런 대표적인 예인데 그런 구절들을 하나님의 본래 뜻이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문자적으로만 해석 적용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꾸짖었듯이 그런 구절에선 오히려 인간의 죄악상을 찾아내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수여한 것은 약 BC 3500년 경입니다. 그 훨씬 전부터 죄로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본래 뜻에 위배되는 악한 제도와 관습들을 오랜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이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다처나 이혼증서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비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이브를 창조해서 그들이 선악과 금령을 거역하여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은 결혼제도를 제정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창2:24) 이 명령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크게 셋입니다. 첫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평생을 같이 해야 하며(일부일처), 둘째 부모를 떠난 남녀 둘이 결혼하면서 한 몸을 이루는 성적관계를 가져야 하며(혼전순결), 셋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대표가 되라는(남성의 가족부양책임) 것입니다.

 

특별히 그 셋을 상하, 주종,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연합하는 바탕에서 시행하라고 했습니다. 연합하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신분과 위치와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뜻에는 남성우위사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그 후의 모든 인간은 원죄 하에 태어났고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가 확장 발전되어갔습니다. 가인의 친형제 살인과(창4:8), 가인의 후예인 라멕의 일부다처제로(창4:23)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믿음의 조상으로 불려 나온 아브라함도, 비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인간적 수단으로 얻으려는 동기였지만, 일부다처제를 죄의식 없이 따랐습니다. 심지어 자기 혼자만 살려고 아내를 두 번이나 이방족속에게 넘겼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부터 남성중심 우대사상에 철저히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인간들이 잘못한 결과로 전적으로 인간이 책임질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제정할 때부터 그래선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금령을 위반한 것도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이나, 그들을 거짓말로 속인 사탄의 책임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고 실제로 타락 전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동행에 따른 기쁨을 충분히 맛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 전에는 아담이 이브를 두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2:23)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귀중히 여기며 진심으로 자기 전부를 바쳐 사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했습니다.(창2:25)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짓은 서로에게 전혀 하지 않고 순전한 마음과 행동으로 대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자 인간들끼리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창3:12-14) 남성이 여성을 우습게 취급한 것도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최가 원인입니다.

 

인간의 죄악에 맞추어준 율법

 

그 이후 땅에 죄악이 관영함(차고도 넘침)을 보고 하나님은 마음에 한탄하사 노아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에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1-22)

 

다시 심판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함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악뿐이기에 어차피 세상은 또 다시 죄로 만연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은 쉬지 않고 돌아가게 즉, 죄에 찌든 인간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입니다.(로마서1:18-32도 같은 내용을 말함) 또 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심판과 구원으로 나누겠다는 뜻도 암시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구약의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서 죄의식 없이 이미 통용되고 있던 관습들을 그대로 둔 채 당신의 본래 뜻을 최대한 반영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제정하셨던 것입니다. 그 중에 인종 문화 사상 종교 등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진리는 요즘으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십계명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십계명들과 연결되거나 별개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안들을 치리하기 위해 율법의 세부규정들을 제정했는데, 당신의 본래 뜻을 최대한 반영하되 기존의 관습과 행위에 맞춘 차선의 방안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설명을 빌리면 인간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인간들로 하여금 그보다 더 나빠지게 하지 않게끔 하려는 최선의 방안으로 하나님이 크게 양보한 셈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성비하나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본래 뜻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의 윤리 의식 수준과 이성적 분별력이 많이 낮았습니다. 또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의 절대 진리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인지라 인간이 충분히 납득하고 그런대로 순종할 수 있는 한도를 감안해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고 또 율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거기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곤 전부 죄뿐이고 세상은 죄로 관영했기에 당신의 본래 뜻을 일일이 정확하게 계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아무도 율법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율법은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서 제정한 것입니다.

 

율법이 차선의 방안으로 제정된 진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모든 죄를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서 스스로는 절대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율법을 제정하고 그대로 준행한다고 해서 인간이 거룩해지지 않고 그전에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자도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 스스로 높아졌기 때문에 모든 윤리적 죄가 파생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죄인이 되어서 죄를 짓는 것이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 죄를 씻는 길도, 말하자면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를 고치는 일도 예수를 믿어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위에서 예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의 절정이자 완성이라고 말한 까닭입니다.

 

실제로 여성의 권익 신장과 노예 제도 폐지는 이런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그에 헌신된 소수의 크리스천들이 평생을 바치며 수고하고 희생하여서 그것도 최근에서야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언젠가는 인간들도 그 제도의 나쁜 점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도 성경에 금지 혹은 야단치는 말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미리 다 아셨지만 성경을 주실 때의 인간의 도덕적 영적인 상태는 그런다고 실천은커녕 알아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사회의 그런 완악한 관습과 행위들을 예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들이 올바르게 고쳐주길 바라고 구약에는 그렇게 규정해 놓았던 것입니다.

 

10/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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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이어집니다.(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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