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천사들을 실컷 부려 먹으라 (마6:10)

조회 수 1537 추천 수 92 2003.10.06 15:09:58

마태복음 강해(78) / 주기도문 강해 (10)  10/5/200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당신의 자녀는 일등이 될 실력이 있는가?

신자가 불신자와 달리 이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을 맛보지 못한다.

신앙생활이란 문자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의탁하고 그 분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혼자 스스로 수양하고 깨우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도덕과 철학이다.

물론 기독교도 구원 이후에는 도덕적 삶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그 보다는 모든 삶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는 생활이 더 우선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과 교제해 나갈 때에만 온전히 선해지고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그 능력에  한계가 있고 효과도 일시적일 뿐이다.

최근 돌아가는 세태를 보아라.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더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정말 겁도 없이 설치는 꼴이지 않는가? 꼭 죄악이 만연하고 영적으로 이상한 풍조때문만은 아니다. 여러분들이 실감하는 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아무도 예측 못한다.

나아가 이미 벌써 그런 징조가 나타났지만 갈수록 무한 경쟁시대가 될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가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가질 때쯤 되면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의 자녀가 아주 똑똑하고 일등이 될 능력과 자질을 갖고 태어 났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데도  어떻게 불안해서 기도하지 않고 가만 있을 수 있는가?

기도란 세상사람이 갖지 못하고 신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세다. 우리가 저들보다 세상적 실력이 뛰어나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도만이 우리가 저들보다 더 큰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무기다.

세상 만사는 절대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요소들로 진행되지 않는다. 눈에 안 보이는 영원한 세계가 따로 있고 그 세계의 영적 파워가 이 땅을 주관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말씀의 뜻은 영적세계에서 이루어진 일이 물질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통제해 간다는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와 교통할 수 있는 기도의 이 권세는 너무나도 대단한데 신자들이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를 단순하게 하나님께 내 사정을 아뢰는 것, 즉 편지나 전화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일단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급하고 억울하고 골치 아픈 사정을 다 전해 놓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정도로  그친다. 기도의 역할을 단지 영적인 세계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수단으로만 제한시켜 버린다.

바사국 군대의 방해    

다니엘서 10:12-14절로 가보자.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유다가 멸망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은 바벨론이 바사 제국으로 바뀌어도 그 곳에 총리가 되어 남아 있었다. 고레스 왕 3년에 세이레 동안 금식기도 한 후에 힛데갈 강가에 앉아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예언을 받는 장면이다. 함께 한 사람들은 이 사자의 음성은 직접 듣지 못했지만 빛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은 알고 떨며 숨었다. 그 사자가 다니엘에게 “은총을 크게 입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리라”(11절)고 하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 즉 다니엘이 금식기도 시작하자마자 들은바 되었고 바로 보냄을 받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즉시 기도를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가? 바사국 군대가 와서 막았다고 한다. 페르사 제국의 군대가 하늘에 올라가서 막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부하들, 흑암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천사장 미가엘이 도와주러 와서 함께 싸우느라 지체되는 바람에 이제야 왔다고 한다. 얼마 동안 지체 되었는가?  21일 즉 세 이레다. 다니엘이 금식 기도한 기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참 대단하지 않는가? 기도란 영적 세계가 있음을 알고 단지 통신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영적 세계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하늘을 움직인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하나님에게 일을 시켜 먹는 것이 기도다. 하나님께 드리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하늘에서 영적 전투를 해 주시고 그러면 땅에서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다.

다니엘이 기도했던 세 이레간 하늘에서 전쟁이 있었다. 천사와 사단의 싸움이 21일 간이나 지속되었으면 그 전투는 굉장히 치열했음에 틀림 없다. 그런데 왜 기도하는 동안에만 그 전쟁이 있었는지 이상하지 않는가? 기도 중에 더 일찍 끝낼 수 있었거나 기도 마친 후에도 계속 싸울 수 있었지 않겠는가?  

흔히 신자들이 기도가 영적 전투라는 부분에 있어 오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도는 영적 전투에 들어가는 준비라고만 생각한다. 맞다. 기도해야만 이 악한 세대를 분별할 줄 알게 되고 우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바칠 수 있다. 기도로 무장한 후 현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세상 권세 잡은 자와 죄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기도 자체가 사실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영적 전투를 위한 워밍업이나 훈련이 아니라 기도하는 중에 하늘에선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군병인 천사와 사단의 졸개들이  격렬하게 싸운다.

영적 바겐 세일

이 기사를 보고 다니엘이 금식 기도를 마치자마자 응답을 받았으니 나도 특별 작정 금식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번 금식기간 동안 지금까지 해결 안 된 이 문제 저 문제 응답 받아야지라는 유치한 생각이 앞서면 성경을 거꾸로 읽은 것에 불과하다. 금식 기도가 특별 대청소 기간이 아니다. 우리 영혼의 창고에 먼지 쌓이고 곰팡내 나는 오랜 상처, 곪아터지기 일보 직전의 잡동사니를 꺼내 몽땅 떨이 세일 하듯 하나님께 팔아 치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다니엘의 금식 기도 기간과 하늘의 전투의 기간이 일치했다는 것은 지난 주 말씀 드린 대로 그가 하나님이 시키신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의 기도에 동참한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당신의 이 땅을 향한 애끓는 심령 애절한 마음을 다니엘의 마음에 심어 주었다. 다니엘은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 기간 동안 직접 전투를 벌였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의 심령을 애타게 만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에스라서 5:3-5로 가보자.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발보스내와 그 동료가 다 나아와 저희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 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바사 제국은 바벨론이 포로로 잡은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귀환 시키고 성전 건축을 허락했다. 2차 귀환 시에 온 에스라의 지휘 하에 하고 있던 성전 건축을 사마리아 인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의기소침해져  실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니엘이 그 문제를 붙들고 간절히 금식기도 한 것이다.

성전 건축이라고 해서 요즘 식의 교회당 건물 짓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자 전부였다. 번제로 하루를 시작하고 번제로 하루를 마쳤다. 특히 바벨론 포로로 70년간이나 붙잡혀 가 있는 하나님의 징계를 거치고 난 후 자기들이 한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간섭으로 해방되는 큰 은혜를 맛본 그들이다. 영적 부흥을 경험했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한 시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몸소 실천하겠다는 뜻이 성전 건축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기의 자녀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 세력들에게 방해와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보신 하나님이 안타까이 여기셨고 다니엘로 하여금 금식하고 기도하도록 시켰다. 대신에 당신은 하늘에서 전투를 직접 담당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다리오 왕 육년 아달 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6:1,7,15)  

신자의 무릎에서 시작되는 역사

성경은 옛날 이야기 책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다니엘 같이 믿음 좋은 사람이 기도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났겠지가 아니다. 다니엘은 포로 귀환에 일부러 참가하지 않고 그 땅에 남아 멀리 떨어진 조국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말하자면 우리 같은 교포가 미국 시민권을 따고 자리잡고 편하게 살지만 매일 고국을 향해 기도한 것이다.  

현재의 한국 형편을 보라. 도저히 맨 정신으로 뉴스를 볼 수 없다. 멀쩡했던 정신이 뉴스만 보고 나면 돌 지경이다. 부정부패, 음란, 사기, 우상숭배가 흘러 넘치고 거룩과 정의는 눈을 닦고 볼래야 볼 수 없다. 교회 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에 여러분 같은 한 신령한 미국 교포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헤아려 간절히 금식 기도하면 한국 사회가 깨끗해진다. 영적인 부흥이 일어난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고 남북한을 가로 막는 휴전선이 뚫린다. 북한 땅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 곳곳에 찬송과 기도 소리가 들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난다. 완전히 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 고르바쵸프의 탈냉전 정책과 공산주의의 경제적 실패 때문이 아니다. 한 시골 교회의 이름 없는 목사가 공산 동독이 자유화되고 복음이 들어가도록 기도를 시작했고 열명 남짓의 성도들이 기도모임을 주기적으로 가진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국적인 영적 부흥으로 번졌다. 성도들의 기도에 하늘에서 하나님이 미가엘을 보내어 동독을 뒤 덮고 있는 흑암의 세력과 격렬한 전투를 벌려 이김으로  수 십 년간 막혔던 콩크리트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세계 역사에 죄악과 갈등과 분쟁과 전쟁 등으로 어둡고 사악해져 타락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순간적으로 희망이 되살아 나고 빛이 들어오는 전환점들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인간들이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마치 여리고 장벽이 무너지듯 악의 세력이 와르르 붕괴되었다. 그럴 때마다 그 뒤에는 반드시 영적 부흥이 먼저 있었고 또 그 영적 부흥 뒤에는 신령한 신자 몇 사람의 기도가 발단이 되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

하나님은 세계 역사를 신자의 무릎에서부터 기록한다. 신자의 무릎이 헤어지지 않으면 세상은 절망과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정치가, 사상가, 실업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자만이 역사의 참 주인공이다.    

1905년 영국 웨일즈 지방 일대에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이반로보트라는 한 광부와 그 친구 몇 명이 모여 몇 주를 회개하며 “이 땅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후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불경기도 아닌데 술집, 당구장, 극장, 경마장, 도박장등에 약속이나 한 듯이 손님이 일시에 뚝 끊어졌다. 유치장은 텅텅 비어져 갔고 경찰이 할 일이 없어졌다. 큰 조선소 직공들이 회사 몰래 훔친 철강재를 아무 말도 없었는데 한 사람씩 자발적으로 되돌려 놓아 그것 만으로 큰 창고를 지을 수 있었다.

이 청년들이 술집을 돌아 다니며 “회개하시오 천국을 믿으시오”라고 외친 적이 없으며 경찰서 유치장을 돌면서 전도지를 나눠 준 적도 없었다. 오직 한 곳에 모여 간절히 기도 드린 것 뿐이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술집과 도박장 등에 자리 잡고 왕 노릇 하던 사단의 세력을 물리쳐 주신 것이다. 그곳을 출입하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들도 모르게 미혹시켜 노예로 만들었던  죄의 사슬을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로 끊어 주신 것이다.

전 지역에 동시에 순간적으로 일어 났던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캠페인을 벌린 적이 없었다. 하늘에서 성령의 열풍이 내려와 모든 사람의 영혼에 불어 넣어졌다. 마가의 다락방에 불의 혀처럼 임했던 성령의 바람이 죄에 찌들고 사단에 눌렸던 그들의 인생을 단 번에 뒤집어 엎고 변화시켰다. 그래서 자기들도 구체적으로 의식을 못하는 사이에 세상의 재미와 죄가 싫어진 것이다. 사단의 더럽고 추한 실체를 또렷하게 눈으로 볼 줄 알게 된 것이다.

천사를 부려 먹어라  

히브리서 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을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했다. 이 말씀을 예수 믿은 신자를 하나님이 귀엽게 여겨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를 보내 주었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가 된 후 수호천사가 지켜주어 병에 안 걸리고, 교통사고 안 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재수 없는 일이 안 생기는 그런 법은 없다.  

분명히 성도들이 천사를 부린다고 했고 그래서 보낸다고 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보내심을 받고 하늘에선 미가엘이 실제로 흑암의 세력과 싸운다는 뜻이다. 또 그것이 다니엘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은총이 아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웨일즈의 그 영적 부흥이 일종의 전 사회적인 정화운동으로 나타났는데 사람이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한 정치가나, 사상가나, 도덕 군자나, 심지어 목사가 나선다고 될 일인가? 하늘에서 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의 모든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병에 안 걸리고, 교통 사고 안 나고, 자식은 공부 잘해야 하는 수호천사 식의 기도이지 않는가? 무당과 점쟁이에게 찾아가 요구하는 내용과 하나 다를 바 없다. 부르는 절대자의 이름만 천지신명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으로 바뀐 것 뿐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약속하셨는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위에 더하시리라고 하셨지 않은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자가 정작 빌어야 할 것을 빌어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내가 책임 지겠다고 하셨다.  

기도란 신자들이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 열심과 정성을 바쳐 대박을 터뜨리려는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 영적 전쟁 자체다. 필요하다면 웨일즈의 청년들처럼 목숨을 걸고 순교할 각오로 싸워야 한다.

“더럽고 추하며 썩어가고 있는 이 땅을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생명의 빛으로 채우셔서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대로 가만 두었다간 사단의 천지가 되겠습니다. 죄악이 들끓어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썩어져 가는 냄새가 진동하여 한시도 호흡 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이 땅을 살려서 저희도 숨 쉬게 해 주시든지 아니면 차라리 저희들을 천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이 땅에선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더러 꼭 전세계를 책임지거나 남북한의 운명을 양 어깨에 짊어지라는 말씀은 아니다. 우리 모두 솔직히 다니엘 만큼 믿음이 견고하지는 않다. 다리오 왕을 제외한 누구에게라도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해 왔던 것처럼 창문을 예루살렘 쪽으로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할 만큼 세지 못하다. 대신에 여러분 개인의 인생, 가정, 직장, 친구, 친척들을 두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가정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제발 남편 사업 잘 되게 해주시고, 아이들 안 아프고 공부 잘하게 해 주시고 식의 기도는 이제 하지 말라. 대신에 부부 사이와, 부모 자식간에, 직장 동료 간에, 모든 주위의 아는 사람과의 사이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그 힘을 발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더 이상 자존심, 체면, 위신, 고집, 정욕을 앞 세우지 말고 그런 것들 때문에 서로 상처 받고 야단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쓸데 없는 짓을 위해 기도를 동원하지 말라. 가장 먼저 자신부터 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 세상을 향해 빨리 뛰어 가는 마음,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의 근성들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어 깨끗케 해달라고 울부 짖어라.  

자식을 위해서도 더럽고 악한 세력이 접근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 중요하다. 성령이 수호천사처럼 지켜 달라는 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이 스스로 죄악을 죽기 보다 싫어하고 사단의 세력을 분별하여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니엘 같이 신령한 기도를 할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아이가 성령의 권능에 사로 잡혀 주위에 예수님의 고귀한 빛을 비추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맘껏 끼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아이가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쓰임 받아 이 땅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셔야 한다. 그것도 하나님의 그 애타하고 안타까워 하는 심정과 열심을 갖고 기도하셔야 한다. 그럼 나머지 질병, 공부, 돈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자를 굶기시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이전에 이미 그는 그런 것들로 자기 인생이 흔들리거나 현실의 삶에서 괴로워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로 바뀐다. 사자 굴에 던지어도 극렬한 풀무불도 그의 삶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절대 가리울 수 없는 자가 된다.  

기도는 신자가 세상이 못 갖는 권세를 가지고 세상보다 앞서 나가게 하는 수단이 아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 애절함, 그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싸움이다. 신자더러 “네가 이 땅을 끌어 안고 눈물로 부르짖어보라 그러면 내가 하늘에서 네 대신 직접 싸워줄게”라는 약속의 보증이 기도다.

여러분과 이 교회가 아직은 연약한 모습이고 주위에 이름도 없지만 정말 세상이 누리지 못하는 권세로 기도하길 원한다.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시기 바란다. 지금부터 하늘의 모든 천사들을 실컷 부려먹으셔야 한다. 그러면 그 이름 없는 목사와 성도들 몇이서 베를린 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 같은 역사가 여러분을 통해서도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 “모두 내 탓이오” 운동을 그만 두어라.(마7:1-5) [2] 운영자 2004-01-26 4294
45 공부가 제일 쉬웠다 (마6:31-34) 운영자 2004-01-12 2468
44 허풍쟁이 예수님 (마6:26-30) [2] 운영자 2004-01-05 1911
43 기도로 염려가 없어지지 않는다 (마6:25) [2] 운영자 2004-01-02 3191
42 넷 째 나팔도 이미 불리워졌다. (계8:6-11) [1] 운영자 2003-12-24 1567
41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마6:19-24) 운영자 2003-12-15 2313
40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마6:19-20) [2] 운영자 2003-12-09 1963
39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신학교수 (마6:16-18) [1] 운영자 2003-12-02 2142
38 바리새인은 위선적이지 않았다(마6:16-18) [2] 운영자 2003-11-25 2234
37 기도 걱정 꾼들(Prayer Worriers) 마(6:13) [1] 운영자 2003-11-10 1618
36 김정일이 예수를 믿었다면?(마6:13) 운영자 2003-11-04 3716
35 욕심을 채우며 살아라 (마6:13) [1] 운영자 2003-10-28 2017
34 용서는 해도 절대 잊지는 못해 (마6:12) [1] 운영자 2003-10-21 2368
33 카터 대통령의 별난 식사 기도 (마6:11) 운영자 2003-10-13 1723
» 천사들을 실컷 부려 먹으라 (마6:10) 운영자 2003-10-06 1537
31 왕의 자리에서 내려 오시오(마6:10) [1] 운영자 2003-09-30 1516
30 정신병원에서 왕 노릇 하는 신자(마6:10) [1] 운영자 2003-09-23 1454
29 자식을 12명 이상 낳아라(골2:16,17) 운영자 2003-09-15 1641
28 자동 응답기를 설치 해 놓으신 하나님(마6:9) [2] 운영자 2003-09-09 1466
27 하나님 제발 힘 좀 내세요! (마6:9) [1] 운영자 2003-09-04 1658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