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한 문둥병자의 아주 특별한 외출 (마8:4)

조회 수 2005 추천 수 100 2004.05.16 18:38:16
마태복음 강해 (101) 5/16/0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당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중에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간혹 있다. 이해하기 힘들다 보니 그 해석이 여러 가지로 나눠지며 그 중에는 무리한 해석도 있게 된다. 본문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예수님은 지금 문둥병자에게 불치병을 치유해준 사실을 소문내지 말라고 하면서 성전에 가서 율법대로 결례를 행하라고 했다. 왜 이해하기 힘든가 하면 이미 허다한 무리 앞에서 행해진 이적인데 그 당사자만 입막음 한다고 비밀이 보장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성전에 가서 결례를 행하려면 그 되어진 경위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본문의 내용과 평행 되는 마가복음 1:40-45에 의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 받은 문둥병자는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45절) 했다.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무리 당시에 통신과 교통 수단이 발달이 안 되었지만 한국 속담처럼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으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게 마련이다.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또 아무리 약속을 어겨 비밀을 누설했지만 문둥병자만 나무랄 수도 없을 것 같다. 지금 발생한 상황은 아무리 따져 보아도 그로 하여금 비밀을 지킬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만약 여러분이 말기 암에 걸렸는데 산상 기도원에 가서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가정해보자. 설령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내가 너를 낫게 해줄 테니 내려가서 절대 남들에게 비밀로 하라 대신 너는 내 일군으로 삼겠다”는 음성을 들었다 치자. 당사자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던 그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병이 나은 감사함으로 인해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노력하여 끝가지 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가족 친구 친지들은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 올라 갔다가 천사를 만나 아내 엘리사벳의 수태를 예언 받으면서 그 징표로 벙어리가 되어서 나온다. 본인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 못해도 사람들은 전부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고 했다.(눅1:22) 이웃 집 개가 죽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사형 선고 받아 집에서 죽을 준비하라고 했던 사람이 기도원에 올라 가 며칠 만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 왔는데 주위 사람들이 더 입이 근질근질해 못 견딘다. 마찬가지로 본문의 문둥병자의 경우도 이전에 문둥이였던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텐데 비밀 유지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문둥병자의 아주 특별한 외출

당시 그의 입장과 상황으로 한 번 되돌아 가보자. 벤허 영화를 보면 문둥이들은 계곡에 있는 문둥이 굴에서 따로 격리되어 생활했다. 가족이 도르래에 달린 들 것 요즘 식으로 하자면 화물용 엘리베이터 같은 것에 먹을 것을 내려 주면 그것을 받아 먹으며 연명한다. 본문의 문둥병자도 인생의 모든 희망을 접고 세상과 담을 쌓고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료 문둥이들이 “아니 나가면 돌에 맞아 죽는데 어딜 가려고 그래? 우리가 외출하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 없어.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지?”라고 말렸다. “아니야. 나는 결코 이대로는 내 인생을 마칠 수 없어. 나사렛 동네에 예수라는 청년 랍비가 나타났는데 그 말씀이 심령을 쪼개고 언뜻 소문에 듣자 하니 못 고치는 병도 없다고 하던데 그 분을 만나러 갈 거야. 돌에 맞아 죽거나 길 가다 병이 도져 죽는 한이 있어도 아무 시도도 안 해보고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나을 거야” 하면서 한사코 말리는 동료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았더니 그 말씀이 권세 있는 자 같아 자기 영혼이 뒤집어지고 완전히 포기했던 불치병 마저 나아 버렸다. 지금껏 일생을 걸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평강과 자유함이 심령 깊숙한 곳에 넘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후에 그가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 디즈니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았을까?

예수님이 아무리 비밀로 하라고 했어도 틀림 없이 자기처럼 팔 다리가 썩어 떨어지고 얼굴에 진물이 흘러 형체도 없이 녹아 내리는 동료 문둥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을 것이다. 매 순간에 희망, 재미, 기쁨, 감사는 완전히 실종되었고 대신에 오직 슬픔, 고뇌, 절망, 원망만 가득찬 그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되었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도 소망이 생겼고 새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을 만난 안드레가 당장 형 베드로를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고함쳤듯이 단 걸음에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미쳤을 것이다. “내가 주님을 보았다. 구세주를 만났다.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찾아 오셨다. 사람과 세상에 완전히 버려졌던 우리 인생이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같은 죄인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다. 이 깨끗케 된 내 몸을 보라. 다들 나를 따라 그 분에게 나아가자.”

아무리 주님이 비밀로 하라고 해도 우리가 이 문둥병자라도 그 약속은 깨트렸을 것이고 또 깨트려야 맞지 않는가? 그럼 주님이 과연 그런 것까지 하지 말라고 금했을까? 이미 공개된 비밀이나 다름 없고 문둥병자가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오히려 복음을 더 증거 해야 하는데 왜 주님은 구태여 비밀로 하라고 하셨을까?

전통적 해석 세 가지

복음서에 여러 번 나타나는 이 예수님의 함구령(Messianic Secret)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여러 가지지만 그 핵심은 다음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문둥병자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맛본 자는 평생을 감사하며 더욱 겸손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간혹 “40일 금식기도하고, 열흘 철야 하고, 신구약 성경 3번 독파했더니 나았더라”는 식으로 자기 자랑으로 흐를 수 있다.

신자를 향한 모든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은 오직 그 분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며 그 근거도 당신만의 무조건적인 자비와 은총이다. 신자 쪽에서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 조건, 전제란 없다. 기도, 금식, 찬양, 성경봉독도 능력을 받는 수단이나 근거가 결코 될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신자가 한 없이 낮아지고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이 되었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표시로서 그 분의 은혜가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죄를 회개하여 거룩해지지 않고 또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

예수님이 이런 주의를 주지 않았으면 자칫 문둥병자도 “내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을 무릅쓰고 그 수천명의 무리를 뚫고 정말 젖 먹던 힘도 다 짜내어 헤치고 나갔어. 그 많은 사람이 아무도 주님(퀴리에)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할 때 나는 그 분이 메시야인 줄 알아 봤어. 그래서 주여 저를 깨끗케 해달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 바로 엎드렸지”라고 침이 튀고 목에 힘이 들어갈 수 있다.    

또 이런 이적의 소문을 간접적으로 들은 백성들이 기복신앙으로 흐를 것을 염려한 것이 두 번째 이유다. 한국의 신유 기도원에는 사람들이 돈 봉투를 싸 들고 오직 병만 낫겠다고 모여든다. 나중에는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고 이단으로 판별된 곳들이 생긴다. 메시야를 만나러 가자는 권유를 들은 동료 문둥병자들은 처음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처럼 자기 인생을 근본적으로 고쳐 보겠다는 것은 관심 밖이고  병만 나아야지라는 생각밖에 못한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여 병이 낫고 돈 벌고 자식을 출세 시키는 데 동원되어질 수 없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는 세상의 어떤 환난도 문제 될 것 없지만 주님은 지금 문둥병자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듯이 오히려 그런 일들에는 극도로 절제하셨다. 대신에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다.

처음 목회자 인턴쉽을 마치고 온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겨 가더라고 신나서 자랑하자 그 정도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다. 뱀의 독을 마시고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제어할 권세를 받은 성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이름을 부르는 성도를 해치고 망하게 할 세력은 이 땅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정도로 난리 칠 것 없이 대신에 우리의 이름이 천국의 생명 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그 분의 영원한 계획 중에 포함되어 그 분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우리 인생의 목적을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둔다면 주일 날 교회에 나올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시간에라도 나가서 가게를 열고 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베푸실 때가 멀었기 때문에 문둥병자에게 치유 사실을 비밀로 지키라고 했다. 돌아 가시기 전에 복음의 진리와 천국의 비밀을 먼저 가르쳐야 했다. 그러기 전에 자칫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질투를 사거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꼬투리를 잡혀 복음 전파에 방해를 받아선 안 되었다.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는 진 밖에 거하되 낫게 되면 성전에 가서 제사해야 했다.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함구령을 내린 이유에 관한 이 전통적인 세가지 해석에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오히려 완전히 그 반대로 전개되었다. 과연 예수님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 말씀을 하셨겠는가? 정말 순진하게도(?) 그 세가지 목적이 그대로 달성되리라 기대하셨을까?  

예수님은 인간의 폐부를 감찰하시고 그 심령의 가장 깊숙한 비밀마저 놓치지 않으신다. 우주 만물의 운행을 다스리시고 모든 역사를 꿰뚫어 보시고 직접 그 주역으로서 이끌어 가신다. 그런 주님이 사태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다.

학생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중에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고 공부만 해라고 해도 자식이 그것을 제대로 지킬 리 없다는 것은 뻔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공부하지 않고 게임만 해도 된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예수님이 비밀을 못 지킨 문둥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나는 말했으니 내 책임 아니라고 발뺌하려고 하신 말씀은 아니다.

의도하신 목적이 이뤄지지 않을 줄 알고도 말씀하신 뜻은 역으로 말하면 그 목적들이 이뤄질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진짜 목적이다. 인간은 교만하지 말라고 말로 가르쳐 들을 존재가 결코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절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채우기 위해 찾지 말라고 해도 정작 바로 그 이유가 아니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런 일에 급한 일이 생겨야 기도한다. 제사장더러 시기 질투하지 말라고 해도 부끄럽게도 막상 시기가 가장 심한 곳은 목회자들 사회다.

맨 밑의 문둥이에서 맨 위 제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유일한 목적이 자존심과 위신을 세우고 체면치레를 하여 자기 잘난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추구하는 것은 부와 권세와 명예뿐이다. 이웃이 어떤 형편에 있는지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식구가 남들 위에 서고 앞장 서서 많이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으로 있어야 할 신뢰, 섬김, 존경, 순종, 사랑은 완전히 실종되었고 시기, 질투, 거짓, 사기, 원한, 분노, 저주만 남았다. 이 땅은 골고루 썩어 황폐해져 가고 모든 존재는 죄악에 물들었다. 모든 자가 교묘하게 가식과 위선으로 눈 속임을 해 서로에게 보이는 얼굴은 이미 자기 본 얼굴이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교양, 지성, 도덕성, 심지어 영성으로 무장해도 겉으로 예쁘게 보이려 화장한 것에 불과하다. 날이 갈수록 죄와 기만은 늘어나듯 그 화장하는 두께도 늘어 칼로 벗겨도 벗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아무리 강한 척 해도 화장을 지우고 난 그 실제 모습을 보면 불안, 염려, 뒤틀림, 눌림, 매임으로 가득 차 있다. 속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라곤 한숨과 시름과 후회와 탄식과 눈물 뿐이다. 모든 자가 타 들어가는 목마름과 속이 완전히 텅 비어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공허함에 그저 문둥병자처럼 죽지 못해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주님은 그런 상태의 인간들에게 도저히 지켜내지도 못할 당부를 하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네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가? 또 그런 사랑을 너에게 부어주는 상대가 있는가? 네  전 존재와 인생을 걸고 의와 거룩과 생명이 넘치는 일을 달성하고 있는가? 아니 그럴만한 일을 발견이라도 했는가?”

그렇다고 당장 거룩해지고 죄를 씻어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그 삶의 실체가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지 알아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거하면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도리어 아무 능력 없이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는 갈대 같이 세상과 사탄의 놀이감이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주님의 당부 말씀

예수님은 이 땅을 정죄하여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러 오셨다. 인간 부모도 뻔히 안 지켜질 줄 알면서도 자식에게 게임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당부하는 것이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거나, 나중에 출세한 아들의 덕을 보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식이 잘 되기만 바라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과연 네 힘과 네 잘난 것과 네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지금 세우고 있는 인생의 목표가 결국은 좀과 동록과 도적이 들 끓는 이 땅에다 보물을 쌓으려는 싸움 아니냐? 너희 스스로 웅덩이를 파도 절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웅덩이일 뿐이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렸기 때문임을 제발 깨달아라고 오늘도 우리를 향해 안타깝게 소리치신다.

세상에서 스스로 제일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자들만큼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자가 없다. 지능지수가 낮고 공부를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가 똑똑하니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주님의 메시지가 들어갈 리 없다. 자기가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된 죄인인 줄은 평생가도 꿈도 못 꾼다. 자기는 남보다 더 의롭고 선하다는 교만한 생각에 가득 차  하나님 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 없이 일생을 마친다.

그런 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멸망뿐이다. 엄격하게 말해 예수를 안 믿어 벌 받아 지옥 갔다는 기독교 교리와도 사실은 관계 없다. 본인 스스로 이 땅이 전부고 이 땅에만 보물을 쌓았으니 이 땅의 삶이 끝나므로 자신이 존재할 의미와 가치도 완전히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똑똑한 자가 이러니 인간은 스스로 선해지거나 말로 고쳐질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십자가가 무슨 뜻인가? 도저히 말로는 인간을 고치고 그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택한 자에게 성령으로 간섭하셔서 거듭나게 해야 그 구원이 성취된다. 인간이 생긴 대로 그대로 두어선 절대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새롭게 창조해 주어야만 한다.

신자 또한 영적으로 문둥병자였던 자들이다. 주님의 은혜로 다시 깨끗케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본문의 문둥병자와 똑 같은 당부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구원 받은 사실을 비밀로 하고 대신에 성전에 가서 결례를 드려라.”  

비밀로 하라는 것은 우리의 공적과 선행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선물 받은 것임을 잊지 말고 평생을 감사하며 하나님과 세상과 사람 앞에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을 자랑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 해야 하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위해 주님을 찾지 말고 먼저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특별히 주의 종들은 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나라 확장하는 일에만 전 인생을 바쳐야 한다.  

성전에 가서 결례를 드려라는 것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은혜와 권능을 제대로 누리려면 절대로 그 분과의 관계를 먼저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손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인간들이 제대로 지키지 못할 줄을 훤히 아시고도 또 다시 그 분만의 인자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계신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낙타무릎

2011.02.15 12:42:53
*.129.122.217

아멘입니다

운영자

2011.02.16 19:44:49
*.108.161.206

이 채엽님
오랜만입니다. 아이디 그대로 기도의 종이신 것 같습니다.
이 완악한 세대를 살릴 길은 십자가 복음 뿐이므로
우리 모두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1.09.03 11:45:58
*.169.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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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말로는 고칠 수가 없고 그 죄를 씻을 수가 없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임을.. 아멘!
저를 들여다 보아도 십자가 없이는 도무지 사람 구실 할 수 있을까? 순종이란
단어가 십자가 없이는 이 세상에 존재라도 할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도... 아무런 소망이 없는 세상에 십자가 사랑을 내려주신 그 은혜를 어찌 말로
표현인들 할 수 있겠는지요.

날마다순종

2020.09.11 15:11:33
*.14.99.253

너무나 우준하고 진토같은 거기에 완악하기까지한 사망과 죄의 권세아래 있던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덕분에 그나마 사람답게 되어짐에 엎드려 감사드리며 이렇게 고치시고 새생명을 주심에 이제는 영원토록 기쁘게 순종하며 예수님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미쁘신 주님 저를 도와 그렇게 이끌어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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