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8:1-6)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있는가?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올해부턴 설교의 순서와 방식을 조금 바꿀 예정입니다. 아무도 성경 66권 전부를 순서대로 깊이 있게 설교할 수는 없고 시간도 부족합니다. 제가 미국나이로 6학년7반을 넘어서니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일종의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히는데 약 20년 전에 구강암 수술로 혀를 조금 잘라냈는데 그 동안에도 말을 하는 데에 사실은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갈수록 일부 발음도 분명하지 않고 힘이 더 듭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저에게 수시로 부어주신 은혜의 말씀들이 아주 많기에 더 늙기 전에 빨리 글로 옮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순서와 관계없이 책 전체를 다루지 못하거나 그 책의 순서에 따르지 못하더라도 지금껏 부족하게 가르쳐진 말씀 위주로 자유롭게 설교해 나갈 계획입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신명기 28:1-6을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의 내용는 간단히 말해 모세가 요단강 건너편 모압 평야에서 가나안 진군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들을 향해서 율법을 다시 풀어서 가르친 것입니다. 그 결론이 28장인데 율법을 잘 지키면 들어가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15-19절에선 동일한 단어와 패턴으로 정반대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들어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 적용해선 안 됩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 의해서 보충 완성이 되어야할 일시적 부분적 불충분한 계시인 구약성경은 더더욱 그래선 안 됩니다. 거기다 성경이 저작된 시간과 공간이 현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서 생활 관습 문화 윤리 등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던 당시상황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도 없습니다.

 

순종할 대상은?

 

이상하게도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오늘 본문 말씀만은 문자 그대로 믿으며 신앙생활의 금과옥조로 붙들고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그가 소원하고 행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여 복이 넝쿨 채로 굴러 들어올 것 같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가축은 물론 그릇까지도 복을 주신다고 하니까 언뜻 그렇게 오해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앞뒤로 조금만 따져보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순종해야 할 대상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 즉, 모세가 지금껏 다시 가르친 율법입니다. 신약시대라고 해서 모세 율법이 폐지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일부 율법들은 개혁할 때까지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영단번의 제사로 드려질 때까지 맡겨둔 것이라고 말합니다.(히9:9,10) 더 이상 짐승대속제사와 대속죄일의 필요가 없어졌기에 제사법과 그에 부속되는 정결례와 제물처리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폐지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선언했습니다. 문자적으로 준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폐지된 제사법까지 포함해서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영원토록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께서 이 땅의 공사역 동안에 율법의 정신을 완전하게 실천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 본체이신지라 그 정신을 다시 정확하게 가르쳤습니다. 대표적으로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지금껏 이렇게 저렇게 배웠지만 그 근본 의미는 이러하고 저러하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컨대 율법은 결혼 후 아내에게 하자가 발견되면 증서를 써주고 이혼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신24:1-4) 그런데 예수님 당대에는 자기 마음에만 차지 않아도 아내를 버렸다가 심지어 나중에 다시 데려와 종처럼 부려먹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혼전순결상실 같은 결정적인 하자 때문에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할 것 같으면 증서를 써주어서 이혼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배려해주라는 것이 그 규정을 제정하신 목적입니다.

 

주님은 그 규정은 오히려 여성권익을 보호하려는 예외적인 조치일 뿐 남편 임의대로 완악하게 아내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며 하나님이 붙여주신 아내를 사람이 결코 내쫓아선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마19:3-12) 오늘날도 그런 율법의 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신자들이 신명기 28장이 약속한 복을 받으려면 예수님이 개혁하며 가르치신 대로 남편은 아내의 인격을 존중하며 음행한 연고 외에는 이혼하지 말고 평생을 두고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신명기 28장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굉장히 무서운 말씀이 됩니다. 말씀에는 ‘하라’(do)는 것과 ‘하지 말라’(don’t)는 두 규정이 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것도 포함되므로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따라서 잘못을 범한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지 않거나,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를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 차라리 이 두 약속의 말씀을 모르는 편이 나을 뻔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왜 동일한 두 약속의 말씀 중에 자기에게 편리한 것만 적용합니까?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인간 신자가 성경의 말씀을 취사선택해 일부만 믿어선 안 됩니다. 죄에 찌든 인간이 성경을 자기가 편집 저작하는 일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셈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 축복의 약속만 문자적으로 적용하려는 신자야말로 나가도 들어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사실은 신명기 28장은 신자들이 순종해야 할 여호와의 말씀도 아닙니다. 모세가 다시 가르친 율법은 27장에서 끝나며 28장은 율법대로 지켰거나 안 지켰을 때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이므로 신경 써가며 배울 필요도 사실상 없습니다. 정작 정확히 배워서 견고히 붙들고 삶에 실제로 적용 실천해야 할 말씀은 28장 바로 앞까지입니다.

 

복과 저주를 받는 대상은?

 

하나님이 복이나 저주를 내리는 대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성읍과 들인데(3절) 들은 일터이고, 성읍은 거주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 받는데 장소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자녀와 토지소산과 가축의 새끼들 즉 신자가 소유한 것들의 전부입니다.(4절) 셋째로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인데 일상의 생활도구를 말하니까 먹고 마시는 것 같은 삶의 사소한 분야까지 포함합니다.(5절) 마지막으로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나가는 것은 일하러가는 것이며 들어오는 것은 일을 마치고 쉬러 오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전부 즉, 복을 받는데 시간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6절)

 

이 말씀을 100% 문자적으로만 적용하면 신자는 어떤 슬픔과 고난과 질병과 실패도 없어야만 합니다. 거의 전지전능하신 신의 수준에 다다를 판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소원하고 계획하여 기도하는 일마다 응답을 받습니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그 진술들을 자세히 잘 살펴보면 개별적 물건이나 사건이나 업무 등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 받는데 장소와 시간의 구분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소유와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 전부 망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듯 하는 일마다 형통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과 일생 전부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신자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당신의 복을 받았고 그 가운데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된 자는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많은 멸시 비방 박해를 겪다가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으나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하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성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존재이며 그분의 복 안에 거하고 있음을 잘 알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그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라는 책의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말씀들이고, 영어와 우리말로는 율법을 다시 설명했다는 뜻입니다. 한자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신(神)이 아니라 ‘반복하다’는 뜻의 신(申)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이름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나안 진군을 눈앞에 둔 신세대들을 향해서 가르친 것인데 그들은 시내 산에서 처음 율법을 받을 때에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로선 두 번 가르쳤지만 신세대에겐 생전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거기다 이 28장은 첫 율법에는 없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야에서 첫 세대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벌을 받았기에 신세대들에게 그런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아주 실감나도록 과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린이에게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큰 선물을 주고 나쁜 짓을 하면 도깨비가 와서 잡아 간다고 말한 셈입니다. 신자가 28장을 신앙의 금과옥조로 삼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산타와 도깨비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꼴입니다.

 

이미 복을 받은 존재라면?

 

신자라는 존재 자체가 복을 받았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먼저 신자가 행하는 일마다 복과 저주가 정확히 비례해서 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바치는 정성 치성 열성이 많을수록 더 형통케 해준다고 약속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신자의 궁핍과 부유에 관계없이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방식대로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개별 행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신자의 모든 행사는 물론 마음의 묵상까지도 다 알고 계시며 심지어 때로는 말과 생각까지 당신께서 심어주십니다. 그러나 일일이 비례해서 상벌을 주면 상을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큰 열성을 내고, 반대로 벌을 받지 않으려고 형식적으로 따르는 척만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모세는 그런 점을 이 마지막 설교 중에 엄숙히 경고했습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신28:47,48)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즉, 하나님이 이미 많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지 아니하면” 혹시라도 그분을 순전히 사랑하지 않고 그릇된 동기로 순종하면 도리어 대적을 동원해서 멸망의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작금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가르침은 빼고 교회 생활에 성실하고 담임 목사에게 충성하면 많은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데 신명기 28장이 매번 인용됩니다. 바로 그 28장 안에서 그런 가르침은 틀렸다고 선언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간혹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이 잘 믿어서 현실적으로 큰 복을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따져보면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신다고 약속했듯이, 오직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당신의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정신 차리게끔 해주려는 배려였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욥 같이 아무 이유 없이 최고 큰 고난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죽을 때 소유한 땅이라곤 무덤 하나뿐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솔로몬을 믿음으로 복 받은 예로 간주해선 안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 국민 중에 단 한 명이었고 역사상 최고로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 지혜로 풍부해진 것입니다. 나아가 본인이 전도서에서 모든 현실적 풍요가 완전히 헛것에 불과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형통과 풍요를 바라며 그를 롤 모델로 삼았다면 그가 말한 대로 완전히 헛것만 추구하는 헛된 믿음, 아니 자기가 솔로몬만큼 전혀 지혜롭지 못하기에 망상일 뿐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

 

본문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성읍에서나 들에서나, 들어가도 나가도 율법에 순종해야만합니다. 하루 24시간 한 번도 순종하지 않는 시간이 없어야 하고 순종하지 않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는 사실상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반대로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를 받으려면 하루 24시간 하는 일마다 불순종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당시의 유대인이나 오늘날의 신자나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율법을 안 지키는 자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축복의 약속은 사실상 이미 복을 받는 존재라는 의미이며, 마찬가지로 저주의 약속도 사실상 이미 저주를 받은 존재라는 의미가 됩니다. 모세로선 이스라엘더러 율법대로 살 것을 권면 독려하고 그럼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강조하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모세 본인이 의식하지 못했어도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아예 따르지 않는 자, 두 부류로만 나뉜다고 율법의 결론을 내린 셈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가치나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거나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대로만 행동합니다. 행위와 말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그러합니다. 모든 이가 자기 고유의 인생의 목표, 방향, 선악관, 가치관, 인생관 등등 자기만의 분명한 기준이 반드시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돈, 권력, 명예, 지성 등을 가능한 많이 가지면 자신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그 기준에 따라 행합니다. 최근에는 직업도 갖지 않고 계속해서 세계를 여행만 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짧고 한 번뿐인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므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야만 자기 인생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는 믿음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열심히 살고 인생 목표도 다 이룬 사람들도 결국에는 아무리 그렇게 해도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고 솔로몬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그들도 사실은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존재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갈구가 깔려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심령 깊숙한 욕구는 스스로의 지성과 이성과 경험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엄청나고 경이로운 자연을 보며 절대로 저절로 생겼을 리 없다고 시인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는 행복이나 불행이 생길 때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인생사를 주관하는 큰 힘이 따로 있다고도 인정합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기에 그분에 대한 영원한 향수병에 아주 심하게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절대자에 의지하여서 자신의 삶과 인생을 풍요롭고 특별히 흔들리지 않는 가치 의미 기쁨 만족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예기치 않은 큰 불행을 당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신인지도 모르지만 신에게 도와달라고 빌고, 반대로 분에 넘치는 행복이 생기면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믿어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성경의 하나님을 소개해주면 믿으려 하지 않고 때로는 반감마저 표하는데 유독 기독교에 대한 비평과 반발이 가장 심합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독교에는 세상 모든 종교들과 전혀 다른, 정확히 말해 정반대인 사항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그 가르치는 교리와 계명과 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만 믿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간 선각자가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은 바를 배워서 그대로 수긍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인간이 깨달은 바이므로 당연히 누구라도 충분히 수긍 동의 할 수 있고 그대로 따를 결심도 쉽게 생깁니다.

 

기독교만은 정반대로 일단 믿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조건 믿는 맹신, 알지도 못하고 믿는 미신, 자기 기분대로 믿는 광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처음 접했을 때는 도무지 그 가르치는 바가 불합리하고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서 전혀 믿기지 않다가 어느 순간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믿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쪽에서의 믿음을 심어주는 역사가 선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초자연적으로 생성된 믿음의 내용이 황당무계한 것이라면 당연히 알 수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기가 지성적 영적 분별력을 동원해 노력했어도 전혀 알 수 없었던 성경의 모든 기록들이 하나 의심 없이 온전하고도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어지고 또 이해까지 됩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당신을 어렵게 계시하려는 뜻도 아니며, 무조건 종교적 충성과 헌신부터 요구하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먼저 진심으로 믿어야만 그분께서 인간이 당신에 대해서 알 수 있게끔 당신을 드러내어 주십니다. 최소한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분을 알아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온전히 믿어진다면 확고히 믿고 따르겠다고 열린 마음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단순히 그분을 알려고 만해선 도리어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알려고 시도하는 것은 인간의 지정의 한계 내에서 그분을 파악하려는 뜻입니다. 인간이 속한 물질계 밖에서 우주 만물은 물론 인간의 지정의까지 만드시고 영으로만 역사하시는 광대하신 그분이 인간의 그 좁디좁고 어러석은 레이더망 안에 포착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분을 알기 전에 우리는 의식하지 못해도 그분이 믿어지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마음부터 그분께서 심어주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반드시 친밀한 언약관계를 먼저 맺으신 바탕에서 당신의 모든 역사를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먼저 언약관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인간 혼자선 그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끌고,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진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두 배로 커지면 은혜도 두 배로 커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야만 믿음대로 살 수 있고 그러면 믿음이 더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고 진정으로 감사하면 그 은혜가 아주 크게 다가오고 범사에 그렇게 하면 일생 동안 그분의 은혜를 더더욱 많이 깨달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존재가 이미 되어 있다는 것은 신자 입장에선 하나님을 먼저 믿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명하는 대로 순종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니까 자연히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신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먼저 맺어졌으니까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기쁨과 감사로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처럼 사는 신자들

 

불신자들을 전도해 보면 하나님도 살아 있는 것 같고 예수님도 좋은데 일단 믿으면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목사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야 하고 세상에서 좋아하는 일들을 중단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대부분이 믿지 않겠다고 반응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죄 값을 지고 대신 죽어서 이제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고 영생을 선물로 얻는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믿는 것은 좋은데 그분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보려는 뜻이 내 스스로 살아보려니 힘들고 억울한 일도 많고 때로 내 계획 기대 예상과는 전혀 엉뚱하게 엄청난 환난이 생겨서 도무지 내 힘으로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뿐입니다. 오직 자기 인생이 자기 뜻대로 형통해지거나 조금 더 즐거운 일이 많아지거나 최소한 힘든 일이 안 생기게 해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거룩하게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4,15) 탄식하신 대로입니다. 내게 고침을 받을까 즉, 그분과 거룩한 언약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그분을 자기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들어가도 나가도 그분의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표현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신자들을 저주해서 큰 고통이나 심판을 따로 내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어법(語法)에는 대조되는 두 뜻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려고 정반대로 아주 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로마서 9:13에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에서를 미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야곱이 택함을 받았고 에서는 받지 못했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려고 정반대의 표현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명기28장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저주한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지금 불신자들을 탓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솔직하게 스스로 점검해보십시오. 들어가도 나가도 성읍에서나 들에서나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그릇과 떡 반죽 즉,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그분의 복임을 확신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분의 복 받은 존재가 이미 되어 있고 영원토록 그 사실에 단 한 치의 손상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쉽게 말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인터넷 목회를 하면서 가장 자주 그것도 기독 청년들로부터 받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에 빠지면, 수련회에서 헌신하기로 서원했는데 지키지 못할 것 같은데, 술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고 있는데,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나에게 크게 잘못한 친구를 아직도 용서 못하고 있는데, 나를 자꾸 못살게 구는 상사를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 드는데,,. 등등의 이유로 혹시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도덕적 종교적으로 잘못한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하나님이 징계 내지 심판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신 분인지 모릅니다. 그분을 찌질하기 짝이 없는 인간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질문들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못해 화가 치밉니다. 교회에서 그동안 성경말씀을, 대표적으로 신명기 28장 같은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 적용하도록 배워왔던 탓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하나하나 벌을 주시는 분이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도 필요도 전혀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 전에 지구상에는 단 한 명의 인간도 살아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또 지금 당장 멸망시켜도 일언반구 변명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우리는 신자가 되기 전과 비교해서 도덕적으로 더 선해진 측면이 하나 없습니다. 아주 조금씩 아주 더디게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중일뿐입니다. 종교적으로 경건한 의식과 행위를 아무리 많이 능통하게 행한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선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신자의 생각과 말은 물론이고 행위만 따져서 일일이 벌을 준다면 교회 안에도 저부터 남아있지 못합니다. 신자가 된 후에 유일하게 바뀐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복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뿐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품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띠든 어떤 행동을 하던 그분의 품안에 있기에 그분 쪽에서 우리를 절대로 내치지 않습니다. 태초의 아담 때부터 이 땅으로 거룩하게 완성시키러 다시 오실 그 때까지 그분이 인간을 향해서 오직 한 가지 바라는 소망은 당신의 품을 절대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가 된 후에 몇 가지 잘못된 행동을 두고 벌을 줄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회개치 않고 계속 범할 때만 깨달아 고칠 수 있도록 사랑의 매를 들 뿐입니다. 불신자는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서 주님을 따르지 않지만, 신자는 깨달아 고침을 받는 것이 너무 좋아 그분을 기꺼이 넘치는 기쁨과 감사로 따르게 된 것 하나의 차이만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계명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고 그 지킨 것에 점수를 매겨서 복과 벌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아주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같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계명을 지켜야 구원 주는 것이 아니며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도 없으며 나아가 계명을 지키는 성적에 따라 상벌이 달라진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온전히 믿는 자는 계명을 부득이함이 아니라 그분이 너무 좋아서 자연스레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또 그렇게 했다고 추가로 상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계명대로 사는 것이 상임을 알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계명대로 살아야 하니까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 것이며 그 전에 평생을 복 받은 존재가 이미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 대신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여러분을 위해서 부활하셨지 않습니까? 그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것, 아니 모든 것을 신자를 위해 이미 다 주셨습니다. 더 이상 줄 것도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분과 함께 평생을 동행하며 그분의 일에 동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신자더러 자기를 부인하고 당신을 따르라고 명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당신께서 우리가 가는 땅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신자더러 이미 복을 받은 자가 된 것을 제발 잊지 말라는 것이 구약 율법 전체가 말하는 뜻이며 또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으로 실천한 뜻입니다.

 

1/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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