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좋은 믿음
- 진실을 알고도 증언하지 않으면 세상의 법정도 위증죄로 처벌한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주님을 거부하는 이웃들에게 신자가 십자가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증언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법정에선 더더욱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겠는가? (6/8/2020)
- 신자들의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아주 좋으나 문제는 마음으로만 믿어서 탈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마음, 죄를 뉘우치는 마음,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할 마음, 불신자를 전도할 마음 등등이 아무리 많고 강해도 단 한번 실천하는 믿음보다 못하다. (6/5/2020)
- 인간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은 혼자서 가능하나 완전히 새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신령한 힘이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교회가 가르치는 이신칭의 교리를 자기 지정의로 스스로 믿으면 가능하다고 한다. (6/4/2020)
- 교회활동에 충성이 하나님 사랑의 첫째 증거라고 강조하면 거짓선생이다. 연인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사랑이다. 교회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함이 그분을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 막상 그분은 이웃도 당신만큼 똑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6/3/2020)
- 종교적이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아무리 많아도 크게 둘로 나뉜다. 자기에게 편리한 하나님을 골라 자기 식으로 믿느냐, 자기는 아무리 불편해도 그분이 계시하신 절대적 진리를 믿고 따르느냐다. (6/2/2020)
-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궁극적 시련이다. 그에 도전하는 모습은 크게 둘인데 이 땅의 삶을 끝내고 마는 것과 더 좋은 곳으로 새로 떠나는 것이다. 전자는 자기 힘으로 최대한 풍요롭게 장식하려들고 후자는 하나님의 의로운 품에 자기를 완전히 내맡긴다. (6/1/2020)
- 신앙연륜과 성경지식과 교회직분 등이 믿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믿음의 외적표시는 남들 앞에 교만하지 않고 어떤 고난에도 평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웃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고난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사고의 향방과 삶의 방식이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5/29/2020)
- 세상 죄악과 쾌락의 시험을 이겨내는 길은 둘이다. 그것들이 너무 추하다고 절감해야 한다. 또 하나님이 베푸는 은혜가 너무 소중하며 성령님이 인도하는 길만이 의롭다고 체험해야 한다. 전자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후자가 더 우선이어야 한다. (5/28/2020)
- 죄는 주로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웃의 풍요가 더 커 보여 인간적 방식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목적이 하늘의 신령한 영적축복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형통인 신자는 그분께 받은 축복이 항상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뜻이다. (5/27/2020)
-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물질문명은 최고 발달했으나 그것을 받쳐줄 정신문화는 최고로 퇴보했다는 것이다. 현대 신자의 가장 큰 문제도 기독교적 지식과 의식은 최고로 발달했으나 그것을 삶에 실현할 영적 분별력과 지혜는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5/2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