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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예정론

조회 수 1104 추천 수 2 2020.07.22 16: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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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지난 15 여 년간 인터넷을 통해 기독교변증 문서사역을 해오는 동안 예정론과 그와 연관되는 주제에 대해서 상담과 문의를 가장 많이 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구원받아 영생을 누릴 사람”과 “버림받아 영벌을 당할 사람”을 하나님이 미리 정했다고 하니 이성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며 어지간한 믿음으로는 수용조차 안 됩니다. 예정에 누락된 자는 잘못 하나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너무 억울한 반면에 예정에 포함된 자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특혜 내지 편애를 받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아무런 귀책사유 없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하실 분이 아니며, 그렇다고 무조건 특정인을 편애하는 분도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예정 구원이 진리라면 너무 독선적이고 공평하지 않으신 하나님 같다는 의아심 내지 불만은 좀체 해소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구원에 관해선 신학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두 의견으로 나뉩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한 거부할 수 없는 일방적 선물이다”(칼빈주의)라는 측과,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과 협력할 수 있음은 물론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성취나 거부가 가능하다.”(아르미니안주의)는 측입니다. 이 두 진영의 시시비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예정론 관련 서적을 찾아서 읽거나 목회자의 설명이나 가르침을 받아도 정확히 이해되지 않고 의문만 더 쌓입니다. 어떤 변증가가 나서도 이 주제만큼은 딱 부러지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예정에 대해 아무도 깨닫지 못한 심오한 신학적 성찰을 얻어서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자격도 실력도 되지 않습니다. 책 제목이 뜻하듯이 가능한 신학적 접근을 최소화 하면서 예정론에 대해 조금 더 알기 쉽도록 풀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독자 모두에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다보면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것입니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간곡히 당부 드리고 싶은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 어느 쪽이든, 교회에서 지금껏 배워온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다 내려놓아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예정론에 대한 선(先) 이해, 개념, 지식, 교리 등을 완전히 비운 중립적인 백지상태에서 성경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 가보자는 뜻입니다. 신앙상의 모든 의문은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추적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특별히 이 주제만은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양 진영이 신학적 논의에만 집중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벗어난 논의를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을 논리적 교리적으로 따지려면 아무래도 신약성경의 서신서들 위주로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서신서에는 두 가지 의견을 다 제시하고 있는 것 같기에 아무리 토론해도 여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조금 접근을 달리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성경 인물들의 구원이 예정이었는지 자력으로 노력하여 구원을 성취한 것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예정으로 구원 받았으면 예정론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이며 예정은 당연히 옳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과 인물과 시대와 상황 등 전부를 합력하여서 당신의 완전하고도 일관된 뜻과 계획에 따라 인간 세상을 거룩하게 다스리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베푸신 권능과 은혜를 체험하고 이해한 바대로 성령의 영감에 따라 기록한 책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는 원리를 당신께서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이 간섭하신 현실사건들이 신학이나 교리의 확립 이전에 먼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선각자가 먼저 확정한 경건한 교리를 경전에 기록한 후에 신자들로 그대로 따르게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 종교입니다. 기독교 교리는 그 정반대로 하나님의 이미 실현하신 역사를 기록해놓은 성경을 갖고서 신학자들이 연구하여 그분의 영적진리를 사후에 체계화시킨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하나님의 일꾼이었다고 해서 그 구원이 오늘날의 일반신자들의 구원과 다르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시대와 장소는 물론 사람에 따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인물들도 주의 종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자입니다. 구원은 죄에 찌든 한 개인에게 이뤄지며 하나님의 일을 맡아 헌신하는 것은 그 구원 이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인물들이 예정으로 구원 받았으면 오늘날도 예정 구원이 옳은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십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해 말하는 바를 백지 상태의 중립적 입장에서 따라가려는 이유가 예정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입장과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간혹 일부 학자들이 예정론은 바울이 고안한 신학으로 서신서에만 기록되었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따져도 말이 안 됩니다. 바울의 모든 신학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인격적 대면에서부터 시발된 것으로 예수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전혀 다른 교리를 제 멋대로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를 기록한 성경이 예수님의 뜻과 배치되는, 그것도 가장 중요한 구원론을 수록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과 특별히 십자가 죽음의 대속 구원과 동떨어진 교리란 그 자체로 당장 파기 처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정에 대해 가장 잘 체계화시킬 수 있는 종으로 바울을 택하여 준비 훈련시킨 후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인격적 개인적으로 대면해주신 것입니다. 쉽게 말해 바울 본인부터 예정에 의해 구원 받았으니 예정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자체로 예정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주제는 오직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믿음과 연관해서 생기는 모든 의문과 논의의 최종적 판단 기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십자가 구원 진리에만 두어야 합니다. 성경 인물들의 구원과정을 살핀 후에는 예수님이 과연 예정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복음서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본 후에 예정론에 대한 가장 흔한 반론들에 대해서, 나아가 칼빈과 아르미니우스 두 진영의 주장을 간단히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 두 이론이 끝까지 상극으로 남을 것인지 균형 조화시킬 방안은 없는지도 따져보겠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둘 다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이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교리를 함께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간단하고 하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으로 신자로 곤혹스럽게 만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성경이 둘 다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므로 신자들이 어떻게 분별 해석해야 하는지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제 뜻은 예정론을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또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만 이해하고 믿자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구원도 오직 하나님이 결정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과정을 반추해 본 결과 성경 인물들과 동일한 구원체험을 한 자는 저의 이 변증과는 무관하게 성경대로 예정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의지로 믿으려 결단 헌신하여서 구원 받았다고 여기는 자라면 제 변증을 다 듣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또 다시 결론 없는 토론이 될 것이 빤한데도 굳이 이 논의를 해보려는 목적은 아주 단순합니다. 독자들로 성경이 말하는 예정론과 비교하여 자신의 구원 경험을 한 번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자 됨이 정말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로만 정의될 수 있는지 따져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정에 대한 저의 의견을 검증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의 예정에 대한 생각을 제 글을 참조하여서 다시 점검해보시라는 뜻입니다.

 

끝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 의견의 전체 그림은 제 글들의 문맥대로 잘 따라와야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정론에 대해서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사항은 부록과 마치는 글에 있을 수 있으니 마지막까지 읽어봐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여름이 무르익는 계절에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인근에서

 

 

차례

 

들어가면서...

 

구약 인물의 구원

 

- 아담과 이브도 예정으로 구원 받았다. (구원의 길은 하나. / 구약시대에도 성령은 역사했는가? / 아담과 이브도 예정으로 구원받았다. / 예정 구원 자체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 하나님은 아벨을 택했고 가인은 택하지 않았다. (죄의 심각성 / 제물보다 사람을 보았다. / 믿음의 제사와 불신앙의 제사 / 구원을 얻는 믿음이란?)

 

- 하나님과 동행하여 구원 받은 에녹과 노아. (하나님께 은혜 입은 노아 / 하나님이 동행해주어야만 구원된다. / 우주적 구원이므로 예정 구원이다.)

 

- 하나님은 우상숭배자 이방인 나아만도 택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구원 /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 / 구약 시대 일반인의 구원은?)

 

신약 인물의 구원

 

- 사마리아로 통행(通行)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베드로 / 사울이 바울이 된 이유 / 수가성의 한 많은 여인도 택함 받았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 (예정이 강제적 기계적 구원인가? / 꿈을 이루려 노력하지 않았던 요셉 / 요셉의 자유의지 / 하나님의 예정 /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가는 예정)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핍박자 사울에게 먼저 찾아오신 부활 예수 / 사흘간의 무덤 체험 / 이방인 사도로 준비 된 바울 / 초월과 내재의 하나님)

 

- 하나님예정과 인간의지가 상충되지 않는 과학적 근거 (기독교 교리보다는 개인적인 신앙고백 /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 / 천국의 시간 (1) -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 천국의 시간(2) - 영생(永生 everlasting life)과 영원(永遠 eternity) / 예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라.)

 

- 하나님의 시간은 빼고 인간의 의지는 더해라. (예정이 타락 전이냐 후냐? / 예지예정이냐 예정예지냐? / 숙명론 결정론 예정론)

 

예수님이 가르치신 예정론

 

- 예정론은 바울의 고유사상인가?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 이중예정에 대한 반론 /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 예수님이 바울에게 예정론을 가르치셨다.)

 

- 예수님이 가르치신 예정론 (1) (예정이라는 용어만 바울의 발명품이다. / 사람을 낚는 어부 / 갈릴리 어부를 제자로 택한 이유)

 

- 예수님이 가르치신 예정론 (2)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 /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하나님으로선 다 할 수 있느니라.)

 

- 예수님이 가르치신 예정론 (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성령의 간섭이 믿음의 결단보다 먼저다. / 깨끗함을 입은 자는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예정론에 대한 중요 반론들

 

- 하나님은 택한 소수만 사랑하지 않는다. (본문을 앞뒤 문맥에 비추어 해석하라. / 인간이 하나님을 도우려 하지 말라. / 영생을 얻는 온전한 길 / 하나님의 구원소원과 구원방식)

 

- 하나님은 심판으로 예정하지 않았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똑같다. / 죽어 마땅한 죄인이란? /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지 않았다. / 불신자를 그냥 그대로 두었다.)

 

- 택함 받은 자에겐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다. (방기(放棄)라도 자기 죄로 심판 받는다. / 타 종교인들도 심판으로 예정되었는가? / 택함에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 구원으로 택함에 하나님만의 목적이 있다. (예정 구원의 목적 / 전도는 왜 미련한가? / 주님을 입술로 시인하려면? / 심히 떨면서 행하는 전도 /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이유)

 

- 택함 받은 자에게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열매 맺게 해주시는 예수님 / 자기 주변부터 전도하게 하는 택함 /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신 예수님 / 예수님과 같은 핍박이 따라오는 부르심 / 오늘날에도 여전히 심한 핍박 / 전도은사가 없어도 전도자로 택함 받았다.)

 

- 죽기 직전에 구원받으면 특혜 아닌가?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 / 하나님은 심령의 깊은 곳까지 아신다. /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알기 쉬운 예정론의 결론

 

-길 가다 천국입장권을 주은 행운아(?) /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 / 본인 고백 없이는 예정론은 무효하다. / 바울의 고백이지 신학이 아니다. / 예정론의 개요 / 정말로 중요해서 덧붙이는 말

 

부록:

 

부록1 - 구원으로 예정이 되어 있다면 구태여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 (사고를 바꾸어 보라 / 인간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 / 성령과 전도 / 복이 통과하는 파이프 / 부끄럽지 않은 구원)

 

부록2 - 구원이 예정되었는데 왜 백보좌 심판이 필요한가?

 

부록3 -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 주의의 비교 (TULIP과 항론 / 두 주장을 비교하는 첫째 기준 / 상대의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서로 전제가 다르다.)

 

부록4 - 과연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과연 오직 은혜인가?/ 히브리서 6:4-6 / 야고보서 2:14)

 

글을 마치면서...  

 

 

 


낭여

2020.07.28 02:43:50
*.127.192.37

오 알기 쉬운 예정론이 e-book에 추가되었네요!

날마다순종

2020.07.28 14:18:56
*.14.99.25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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