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9,20) 성탄후유증(1)(After-Christmas Blues)

조회 수 1076 추천 수 59 2006.12.27 20: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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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19,20)


영어에 “After-Christmas Blues”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구태여 번역하자면 “성탄절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탄절을 지나고 나서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라고 실망에 빠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최근에는 종교적 분쟁 조짐이 나타나서 조금 덜하지만 길거리와 가게들에 화려한 장식을 하고, 주위 아는 사람들과 정성어린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모여 성찬을 나눕니다. 주유소를 빼고는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이므로 가장 큰 명절입니다.

또 국토가 워낙 넓어 좀체 만나기 힘든 타 주에 살고 있는 가족이 오랜 만에 다 모이는 날(Family Reunion)이기도 합니다.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일 년 내내 이 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실제 성탄절 다음날 하는 파격세일에 내년 성탄절에 쓸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음)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설렘으로 지내니까 성탄절 후에 허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한국축구국가대표 팀의 월드컵 대진이 다 끝난 후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최초의 성탄절 후유증을 겪은 사람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마리아와 목자들이 그 주인공들인데 오늘날 우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일단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새로운 소망에 가득 찼었는데 반하여 오늘날의 우리는 오히려 낙담에 빠지는 것이 가장 크게 달랐습니다.

그들은 평생에 듣도 보도 못한 아니 상상도 못한 너무나 신령한 초자연적 체험을 했습니다. 목자들은 천상에서 이뤄지는 메시야 공연을 그것도 초연(初演)을 로열박스에서 관람했고 또 아기 예수로 오신 구세주 하나님을 최초로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단순히 그런 특권을 누린 것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보고들은 것으로 인하여 실제로 너무나 감격스럽고 경외감에 사로잡혀 자연적으로 찬송이 우러나왔습니다.

마리아의 경우는 더했습니다. 천사가 와서 수태 고지를 받을 때도 엄청난 충격과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일 년은 초조와 불안과 믿음이 기도 가운데 수시로 교차하면서 정말 살얼음 판 위를 걷는 듯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사실이 배가 불러가면서 차츰 돌이킬 수 없는 진실로 확정되어 갔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특별히 남편 요셉의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만 믿음으로 붙들었을 것입니다.

또 어느 날인가부터 밤하늘에 너무나 선명한 별이 나타나 마침 자기들이 호적 하러 가는 베들레헴 동네를 비추고 있는 것을 나사렛에서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사내아이가 건강하고도 너무나 귀여운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태아가 배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껴도 막상 태어난 후에 느끼는 실감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예사롭지 못한 태아의 비밀은 오직 산모만이 그 진실을 알며 또 예사롭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애정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천사의 예언이 비로소 그녀에게 온전한 진리로 실현된 것입니다.  

나아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아니 알릴 수도 없는 출산을 어떻게 알았는지 출산 직후 생면부지의 목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목자들도 자기처럼 천사의 말을 들었다며 들은 대로 전한 후에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또 먼 동방에서부터 온 박사들이 자기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뜻하는 귀한 선물을 아기에게 바치고는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메시야 탄생이, 하나님이 죄인을 구하러 몸소 이 땅에 오셨음이 요셉에게도 완전한 진리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지 않았겠습니까?

대부분의 신자들도 성탄절 후유증을 겪습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재롱 잔치를 보고 성도들 끼리 선물과 성찬을 나누며 구역별로 장기 자랑했던 성탄절 예배의, 실질적으로는 성탄절 파티의 재미가 너무 좋아서 그 다음 날부터 이제 교회를 무슨 재미로 가나 실망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혹시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것도 큰일입니다. 성도나 교회 둘 중에 문제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빌미(?)를 제공한 교회가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보다는 신자들에게도 마리아와 목자들이 겪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대면하거나 초자연적 은혜를 입거나 신령한 종교적 체험을 한 후에는 특이한 현상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의 감격이 너무나 생생하고 깊어서, 부흥회나 수련회에서 평소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아서, 혹은 개인적으로 기도원에 가서 신유 같은 이적 체험을 하고난 후에는 다들 좀 별다르게 반응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신자가 가장 일반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그런 큰 은혜를 또 다시 맛볼 수 없는가?”입니다. 그 때가 가장 큰 은혜처럼 생각되면 당연히 지금은 그보다 훨씬 못하게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이제는 무슨 재미로 신앙생활하지?”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더 겸비해지든지, 더 헌신해야 할 텐데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후유증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부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 중독증(addiction)이 생기기 십상입니다. 은혜에도 경제학적 용어로 한계효용체감(예: 사과를 반복해서 먹으면 나중에는 맛이 덜하게 여겨지는)의 법칙이 작용해서 이전보다 더 큰 은혜가 아니면 은혜 같이 여겨지지 않습니다. 더 화끈하고 자극적인 은혜만 찾게 되고 흘리는 눈물콧물의 양이 이전보다 적으면 신앙생활이 메말라지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물론 신자는 항상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하며 또 그런 소망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이 자랄수록 더 큰 은혜를 준다는 원칙이 사실상 하나님에게는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자의 잘못된 인간적인 기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은혜를 새로운 방법으로 전혀 예기치 않는 때에 주실 뿐입니다.

사람과 환경과 전후 상황이 다 다르기에 일어나는 일도 당연히 다 다릅니다. 단 한 순간도 같은 때가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같은 경우를 되풀이해서 겪어도 본인의 심령의 상태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각의 경우에 가장 적합하고 그 신자에게 가장 유익하되 무엇보다도 당신의 뜻에 가장 맞는 은혜를 베풀 뿐입니다.

신자가 은혜 후유증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이 법칙에 자신을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은혜를 소망하지 말고 새로운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새로운 은혜에는 당연히 이전 보다 작은 은혜도 포함됩니다. 혹시 그 작은 은혜들이 비슷하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까지 작용되어 더 작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가 신자에게 새롭고 특이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로서 효용을 절대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가 새롭게 여겨지려면 당연히 과거는 아예 완전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이전과는 달라야 하는데 비교할 유사한 대상이 있으면 벌써 새롭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더 크고 좋아 보이면 아무리 새로운 은혜를, 그것도 사실은 더 큰 은혜를 받아도 절대 크게 여겨지지 않는 법입니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해 미래를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실 은혜가 과연 어떤 새로운 모습일까,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까 계속해서 기대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진짜로 설렘과 흥분을 심지어 호기심을 안고 새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새 은혜를 소망하는 것에도 여전히 한 가지 문제는 있습니다. 어쩌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진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칙이 작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날마다 새 믿음으로 새 날을 시작하여 새 은혜를 맛보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만약 새 은혜가 자기 기대에 못 미치면 여전히 과거와만 비교해보는 은혜 중독증과 결과는 같아집니다.  

나아가 날마다 새것으로 바꾸어도 그 은혜를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받으면 나중에는 은혜가 아니라 단순한 일상사가 되어버립니다. 매일 아내에게 꽃이나 선물을 사다 주는 남편이 아무리 그 종류를 날마다 달리해 본들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서 아내에게 별다른 감동이 생기지 않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럼 은혜 후유증을 극복하는 절대적인 방안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 또한 아주 단순한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후유증이란 이전 상태보다 지금이 나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후유증을 극복하려면 지금 당장이 이전보다 나아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은혜를 소망만 하는 것은 아직은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은혜가 없어도 의지적으로 감사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처해있는 환경 가운데 그분의 너무나 신령하고도 초자연적인 은혜가 깃들여져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신자가 믿음으로 인식이나 확신을 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진짜로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참 신자란 하나님의 일하시는 현장에 자신이 동참해서 그분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철두철미한 인식으로 무장이 되어 있는 자입니다. 단순히 “내 일에 하나님 어서 와서 도와주세요!”라고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을 갓 믿기 시작할 때의 믿음 수준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믿음이란 은혜를 얼마나 많이 초대할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실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자기를 최대한도로 많이 잠기게 해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른 말로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자기 주위를 살펴서 아무리 일상사 같은 작은 일이라도 그 가운데 새롭고 특이한 은혜를 발견해 내는 능력입니다.

자꾸 큰 은혜를 소망하는 것, 말하자면 은혜 후유증을 심하게 겪는 것을 두고 믿음이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더라도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미리 빼앗아(?) 와서, 즉 이미 놀랍고도 신비한 모습으로 숨겨져 있는 은혜를 발견해내어 누릴 수 있는 자라야 믿음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부가 된장 하나를 끓여도 하나님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즉 그분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은혜 후유증에 거푸 시달리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흥회나 수련회 후유증은 더 큰 은혜를 사모하니까 그나마 다행입니다. 야외예배, 구역별 장기대회, 성탄파티 후유증은 교제하는 재미 때문에, 서리집사임명, 제직회, 공동의회 후유증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에 더 이상 교회 다닐 맛이 없다고 난리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마음에 지켰습니다. 마음에서 아기 예수가 메시야가 될 그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과 설렘이 절대로 약해지지 않도록 소망하며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미래를 가지고 현재를 산 것입니다. 날마다 새 믿음으로 새 은혜를 찾아서 살아가는 자는 평생토록 새날로 가득 찹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큰 은혜도 은혜로서 마음에 끝까지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은혜에만 붙들려 있는 자가 첫째입니다. 더 큰 은혜를 찾아 헤매는 은혜 중독증에 걸린 신자입니다. 반면에 미래의 은혜만 목매달고 기다리는 신자도 있습니다. 은혜 중독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은혜 과대망상증에 걸릴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가장 바로 된 신자는 항상 주님의 품 안에서 그분의 미래의 은혜를 현재에 당겨와 실현시키며 사는 자입니다. 주님의 소명에 자기 전부, 생명까지 바치며 헌신하는 신자입니다.

이미 지나간 은혜는 실효된 은혜이며 미래의 은혜는 아직 실현 안 된 가상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신자가 지금 현재 서 있는 바로 그 위치와 신분과 하는 일에서 찾지 않으면 은혜로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당신은 이 세 부류 신자 중 어디에 속 합니까?  

12/28/2006      

황호연

2006.12.28 02:09:21
*.57.110.10

아멘..

더 큰은혜를 사모하는것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기대치만 높다보면 어느새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속에서 실망하게되고 심지어는 메말라 버리기도 하는게 지금까지의 제 모습 이었습니다
더큰은혜 새로운 은혜 마음의 감동 이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현실속에 감추어져있는 은혜를 발견하는 일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은 신실하시며 그 진리의 변함이 없으시며
내가 스스로 실망하지만 않는다면 절대 나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분임을 믿으려 애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기고 또 새깁니다.
이것조차도 나의 노력에 불과하겠지만 주님을 어떠한 여건속에서도 신뢰하는 굳은 믿음을 받으려고
기도합니다.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황호연

2006.12.28 02:18:15
*.57.110.10

작은 깨달음이었지만 어제는 매일 한끼 금식하며 기도가운데 준비했던 직장에서 출근하라는 소식을 받았으며
직장에 나갈 차비가 없어 걱정하며 기도한중에 오천원 밖에 없던 지갑에 오만원을 채워넣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이루신 극히 작은 일들이지만 그 직장을 통해 또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에 앞으로 이루실 일들을
더욱더 기대합니다. 무엇을 얻어서라기보다는 삶속에서 주님의 간섭하심을 몸소 체험하며 살고싶은게
솔직한 저의 신앙의 기대입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닌 현실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조인구

2006.12.28 10:24:26
*.75.9.226

김문수

2006.12.28 11:11:19
*.75.9.226

솔로몬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예레미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베드로 후서 1장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


바울사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

사고뭉치 골통의 부끄러움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덜덜덜 !!!!!!
주여 내 영혼이 수척하나이다 !!

이놈을 당장죽일수도 없고......
무화과나무잎으로만든 치마는 안전하지않고 흘러내릴수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아~~~
나는 죄인중의 괴수 오직 예수님 공로와 은혜입니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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