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죽음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인가요? 

 

[질문]

 

우리 삶의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떤 식으로 죽는 것이 하나님이 태초부터 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죄로 인해서 죽게 되는 조건들이 맞았을 때 육신의 죽음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인지 조금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또 다른 때는 인간의 잘못이라고 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병, 자연재해, 재난 같이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때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죽음의 최종 권한도 하나님께 있겠지만 그 죽음으로 다다르는 직접적인 원인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면서 왜 젊은 나이에 데려가셨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설교나 신자의 신앙고백에서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너무 애매하게, 또는 인간적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쪽으로 혹시 잘못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지적하신 대로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에 개인의 죽음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순히 이해해 버리면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죽음이 분명 인간의 잘못에 기인된 것 같은데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려니 주저됩니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은 그분이 죽음의 과정과 시기도 계획하셨거나, 불신자들의 원망처럼 미리 알고도 막아주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언뜻 하나님답지 못한 결격요인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는 죽음뿐 아니라 인생사의 크고 작은 고난과 불행에 다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죽음은 그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이자 회복할 수 있는 제2의 기회가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죽였다면(?) 아무래도 그분에 대한 의심 내지 원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얻으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시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은 세상 어떤 존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한 치의 영향도 받을 필요 없이 스스로 자존하시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분의 피조물이나 오직 당신만은 피조 되지 않은 창조주입니다. 만사를 오직 당신의 의지대로만 행하실 수 있고 그렇게 행하십니다.

 

그분은 시공간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 영역 밖에서 태초부터 영원까지 좌정해서 당신만의 주권으로 전 우주를 통치하십니다. 이를 두고 그분의 초월성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분께는 능히 못할 일이 없기에 물리적 한계 안으로도 들어오셔서 바로 우리 곁에서 매사를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그분의 내재성(혹은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만은 자유의지를 주어서 사고, 말, 행동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창조 직후 선악과 금령을 주실 때도 심지어 당신과 사탄 둘 중에 임의로 택해서 따를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했습니다. 그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으로 죄에 빠질 인간의 구속계획을 온전히 다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5,1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 땅의 인간들이 넘치도록 누리면서 당신의 영광을 높이게 하려고 이 땅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오직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되게 하는”(엡1:10) 모습과 방향으로만 이끄십니다. 그분은 범사를 태초부터 영원까지 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죄에 찌든 인간을 구속해내려는 계획대로만 주관하고 섭리하십니다. 인간에게 각자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이미 주셨지만 그로 인한 결과와 상관없이 당신의 구속계획은 한 치의 차질 없이 당신의 일정과 방식대로 이뤄집니다.

 

인류역사는 인간 쪽에서 보면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뤄나간 문명개발사입니다. 그러나 실은 인간들이 어떤 역사를 이뤄나가든 삼위 하나님께서 당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완벽하게 작동해서 태초부터 마련되어 있던 인류구속계획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역사입니다.

 

당연히 신자 각 개인의 삶과 인생도 그분의 그 구속계획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엡1:4,5)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물질계 안으로 들어오셔서 한 죄인의 심령에 간섭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것 자체부터 그분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인간 죽음의 기원

 

신자의 일생이 본인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으면서도 이미 마련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뤄져 나간다면 개인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당신이 경고한대로 영적이고도 실질적인 죽음이 임했습니다. 비록 그가 사탄의 꾐에 넘어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행한 거역이었고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수 십자가를 통한 인류구속계획의 첫 걸음이 실현된 것입니다.(창3:15) 당시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그런 광대하신 계획은 전혀 인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께서 그 계획을 이뤄나간 것입니다.

 

아담의 이 타락으로 인해 육신적인 죽음도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죄의 삯으로 부과되었습니다. 바꿔 말해 인간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에게 의심과 원망을 가지고 따질 측면이 인간에겐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신의 넘치는 은혜와 권능을 아담과 이브더러 이미 충분히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얼마든지 사탄을 거역하고 당신을 따를 수 있게 해주셨는데도 인간은 자신만 높이려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에 대한 형벌로 이 땅에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형벌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최초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으며 오직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본성을 타고 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자기만 최고로 높이려는 인간들끼리의 무한 경쟁 터가 되어서 고난이 끊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의 대부분이 사실은 인간이 자초한 것으로 인간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불신자들이 하나님이 만사를 주관한다면서 일찍 죽게 했거나 막아주지 않았다는 불평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자가 당착입니다. 인간은 자기 의지로 모든 일을 자기 탐욕과 본능과 자존심을 채우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행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 사회의 질병 시기 분쟁 살인 전쟁 같은 모든 고난이 생겼습니다.

 

자연재앙으로 인해 비록 많은 사상자가 나긴 해도 사실은 각 케이스마다 잘 분석해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컨대 천둥과 번개는 엄청난 양의 지구 대기를 단번에 정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사실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축복이 이 땅을 당신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청지기 직분이었습니다. 인간이 그 직분에 충실하여 지구를 청정하게 지키고 치산치수를 잘 하면 자연 재앙의 피해를 급격히 줄일 수 있고 오히려 그로 인해 인간 사회에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 같은 것으로 억울하게 일찍 죽을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이 상대의 과실을 막아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약 인간사회의 사고를 다 막아주려면, 사실은 인간의 책임인데도, 비상한 방식을 동원해야 합니다. 가해자만 미리 따로 벌을 주거나, 교통사고에서 피해자는 멀쩡하고 가해자만 죽게 만들거나, 피해자나 차를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올리는 기적 등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일상적 삶을 매번 기적으로 메꾸는 방식으로는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 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사57:1,2) 무엇보다 그렇게 억울하게 일찍 죽었어도 신자의 경우는 더 좋은 곳에 가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막아주지 않으셨다는 불평은 엄밀히 따지면 그 분의 전지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영적 오류입니다. 하나님은 범사를 미리 다 아시기에 전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세상만사와 인류역사 전부가 이미 당신께서 완벽하게 계획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 땅에 이뤄질 그 모든 일들을 영원한 현재 시제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물질계의 시공간에 제한된 인간의 입장에선 미래의 그분의 역사를 모를 수밖에 없지만 이미 확정된 그분의 미래가 바뀔 리는 없습니다. 그분이 미리 알기에 전지한 것이 아니라 전지하시기에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죽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원론적으로 각 개인의 죽음의 시기와 방식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들어있습니다. 원론적이라고 말한 까닭은 구원으로 예정되지 않는 불신자의 경우는 하나님이 그 인생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까지 구태여 마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십니다.(롬1:24) 평생 동안 짓는 죄악의 결과로 시기 살인 분쟁 악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폐해로 죽는 것이며 그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불신자들의 죽음마저도 당신의 구속사를 이뤄나감에 필요하다면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계획하십니다. 알기 쉽게 노아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집단 심판의 예입니다. 심지어 당신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도 가데스 바네야의 거역으로 인해 광야에서 그 세대가 다 죽도록 사십 년간 방황시켰습니다. 이 모두가 사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죽음이지 않습니까?

 

개인별로도 가룟 유다, 사울 왕, 엘리 제시장, 느부갓네살 왕, 므나셋와 아합과 이세벨, 모압 선지자 발람 등등 많습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지만 성경이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다스리는 당신만의 영적 진리는 물론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구속사를 예수 십자가로 완성하기 위해 불신자들의 죽음마저 당신이 정한 일정과 방식대로 수행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신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창세기의 네 족장의 죽음은 반드시 그 모습으로 그 장소에서 그 때에 이뤄져야 했습니다. 모세의 출생과 죽음도 그러합니다. 사무엘,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 왕을 비롯해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이 다 그러합니다. 신약에선 세례 요한, 스데반, 바울, 베드로, 야고보 등의 죽음을 일일이 하나님이 계획 인도하셨고 그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권능과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들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당연히 그 죽음도 하나님이 계획해 놓았습니다. 불신자였던 지인 중의 한 분은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아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심판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중풍으로 누워계시는 동안에 일찍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아버님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서 너무나 평안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의 영혼이 빛 가운에서 천국으로 영접된다는 말이 실현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입니다.

 

일반 신자가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죽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소자 한 사람에게 물을 떠 준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그렇게 한 것과 같습니다.(마25:40) 무엇보다 그 믿음이 단순히 후손으로 연결되는 것만도 엄청난 일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5-7)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시니, 바꿔 말해 죽이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정답

 

이 질문은 사실 처음부터 명료하고도 간단한 해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신자를 택해서 예수를 믿게 했고 성령님이 내주하여서 거룩으로 인도한다면 죽음까지도 그분의 주권과 계획에 당연히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인생을 몇 살까지만 계획하고 그 뒤는 손을 놓아버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0-24)

 

바울의 이 고백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가 다메섹 도상에 회심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살게 된 이후로는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고후11:23-27) 그래서 어서 빨리 천국에 올라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큰 고난이 닥칠 때마다 죽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의지로 노력했습니다. 자기 계획에 따라서 자기 의지대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여전히 자기가 행해야 할 소명이 남아 있었기에 이 땅에 살아있어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당시의 땅 끝인 스페인에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로마 감옥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투옥과 죽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전에 바울이 스데반의 기독교 최초의 순교를 주도하게 한 것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행7:58-8:1) 스데반의 죽음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 모양으로 이뤄지게 하고 바울로 목격하게 했다면 마찬가지로 바울의 죽음의 현장에도 제이 제삼의 바울이 있었을 것입니다. 없었다 해도 그의 생애와 마지막 순교하는 모습만으로 후대에 그의 신실한 믿음은 승계 됩니다. 

 

상기의 고백 후에 바울은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1:25)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천국으로 당장 데려가지 않고 살려둔 것은 다른 이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계속 살려두었다는 것은 언제 죽을 것인지도 계획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 본인의 고백대로 그가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보되는 방향으로만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죽음까지도 계획 주도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개인의 죽음이 인간 개인의 잘못인지 하나님의 계획인지 구분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 둘 다에 해당됩니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이 먼저이고 주도적이며 인간의 잘못은 그 안에 종속됩니다. 개별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을 더 강조하는 것은, 그것도 믿음에 오해가 안 되고 진보가 되는 방향이어야 하지만, 괜찮습니다.

 

대신에 개인의 허물과 죄는 물론 죽음마저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은혜와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가 불신 세상에 비춰 나오도록 헌신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계획이 실현되는 모습과 방향으로만 주관하시듯이, 개인 특별히 거듭난 신자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리스도 복음이 진보되는 모습으로 일일이 주관하십니다.

 

(4/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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