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성경적인 예정론을 추구하며

조회 수 478 추천 수 0 2021.06.01 05:08:26

더 성경적인 예정론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구원

 

세계교회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준 예정론과 관련된 구원론에 있어 두 가지 신학적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칼빈(John calvin)의 예정론과 웨슬레의 예정론 관점차이인데 물론 인신칭의에 관련된 구원론은 동일하나 예정론 부분에서 서로 다른 신학적인 강조점 차이가 드러난다.

칼빈의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계획되어지고 진행되어져오는 하나님의 단독사역으로서 인간은 구원의 사역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엡1:4). 다시 말해서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이 소유한 그 어느 것도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요1:13). 이에 반해 웨슬레의 예정론은 칼빈의 입장과 달리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는 것이기에 (골1:23) 만민에게 전파하여야 하고 구원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열려져 있기에(요한일서2:2) 누구든지(요3:16) 구원받기를 원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상기한 두 견해는 다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히 있고 세계교회가 논증해 온 건강하고 각기 소중한 특징을 지닌 신학적 강조점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나 웨슬레주의자가 자신들의 견해외에 다른 것은 모두 다 이단시하거나 극단시 할 때에는 그들 자체에 문제가 있고 그 입장은 곧 극단이다고 본다. 예를들면 교회내에 많이 상존하는 극단적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은 웨슬레의 예정론에 비해 성경 해석상 상대적으로 다음과 같은 더 큰 모순과 결함을 갖고 있다.

 

1. 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예수님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이중 예정론자들이 말하는 택자만 찾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전도하셨으며(눅8:1)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을 삭개오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받아들인 자와 많은 유대인처럼 거절하는(요8:45) 두 부류가 언제나 상존했다. 예수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시는 바보이신가?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것만 계산해도 최소한 세 차례나 가룟유다의 범죄할 죄를 상기시키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시간 낭비하신것인가? 결코 그렇지않다. 공평하시고 사랑 많으신 주님은 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전지하신 주님은 그가 끝내 회개치 않을 것을 아시고 “너는 낫지 않는 것만 못하다(막14:21)”하셨다. 주님의 본심은 가룟유다도 회개하시기를 원하신 것이 그 분의 본심이요(딤전2:4), 사랑의 성품이시다. 계시 자체인 주님과 3년이나 동거동락하며 배운 가룟 유다의 背信은 그 자신의 죄다. 그에게 충분한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회개치않는 것은 그 자신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계 2:21). 이중예정론은 가룟유다가 택정함을 받지 않아서 지옥갔다고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옥갈 사람을 사도로 택한 즉 예수님을 바보로 만드는 모순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도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전한 복음에도 받아들인자와 거절하는 자가 있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서 전도하자” 그렇게 말씀하셨지 “창세전부터 정해진 택자에게 가자” 고 하시지 않으셨다. 바울은 로마서 15장 19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 고백하고 있다.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당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누구든지 복음을 믿는 사람을 구원시키셨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받아들인 자와 거절하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2.극단적인 칼빈주의 이중 예정론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 아닌 폭군으로 만든다.

칼빈의 이중 예정에 의하면 구원이 아무 기준 없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결정된다. 이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대표적인 속성인 ‘하나님의 공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지옥갈 사람과 천국사람을 “아무런 公正한 이유”없이 창세전부터 운명적으로 정했다는 주장은 전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公平, 公義하신 성품에 어긋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공덕이 완전하고 모든 길이 공평하시다고 하였고 만민을 공평하게 판단하신다고 하셨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시 96: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있어서 정직하고 공의롭게 판단하신다. 행한 대로 갚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아무 기준이 없이 심판을 행하신다면 성경책도 필요 없을 것이다.

죄악이 충만한 이 세상에서도 법관이 재판할 때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결하면 재판관이 처벌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빛이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범죄를 하시겠는가?

구원은 영원한 천국이냐? 영원한 지옥이냐? 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다. 하나님이 아무 원칙 없이 주관적 뜻에 의해 구원과 심판을 행하신다면 공의의 하나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옥가도록 정해진 사람이 안믿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데 審判 할 이유가 있으며 그 심판이 公義로운가?

*겔 18:25-27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이중 예정론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죄짓게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왜 사람을 죄짓지 않게 해서 구원할 수 없는가?’ 라는 문제이다. 이중예정은 하나님의 강제적인 의지가 포함된 것이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면 ‘왜 사람을 강제적으로 움직여서 모두 구원해주지 못하신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일 뿐이다.’라고 대답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이중예정에 나타난 하나님은 ‘전능한 폭군’이 되어버린다. 마음대로 사람들을 살리고, 죽이는 그런 신으로서의 모습이 나타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심판에 대해서는 더디 하시고, 회개하는 사람은 어느 민족이나 누구나 구해주시고자 공의로운신 하나님이시다. 기브온 거민과 같은 민족을 받아 준 것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으시며, 삼하 21장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죽였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는 모습도 보이신다.

*삼하 21:9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그리고 기브온 거민은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면서 그 역사를 꾸준히 이어가게 된다.

창세기를 보면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지 않겠다(창 18:32)는 말씀과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의 경우와 같이 회개를 한다면 심판을 연기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하겠다고 하시더라도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그 심판이 연기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심판의 때는 정말로 도저히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만 이루어진 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기본적인 심판과 상벌의 기준과 태도는 동일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정한 심판자의 하나님이시다.

 

3.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하나님이 사람에 따라 편파적인 사랑을 한다는 모순을 낳는다.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요일 4:8-9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로 우리를 친아들 같이 지극히 사랑하신다. 탕자 비유에도 나왔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흉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품에 안긴다면 언제든지 두 팔을 벌려 맞이해 주신다. 전체 성경을 볼 때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도록 예정하셨고 그 언약대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셨다. 어느 시대든지 인종과 성별, 빈부귀천으로 차별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구원얻는 길(因信稱義)을 여신 것이다. 하나님은 선천적으로 그리고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의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모순이다.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는 '전적타락' 교리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무조건 선택하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이를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하지만, 무조건적인 선택이 옳다고 한다면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에 '누구든지'라는 말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거스틴이나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성경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은총을 거부하는 죄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잠 1:24-26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기도 거부하기도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노아 당시 홍수가 세상을 덮을 때도 과연 다른 곳에 살 소망이나 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소망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만 소망과 은혜가 있는 것이다. 극단적 이중 예정론에서 가르치는 대로 한다면 방주에 들어갈 것도 예정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방주 밖 홍수 속에 있을 것이 예정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방주에 들어가고 싶어 방주 앞에 왔는데 노아가 방주문을 가로막고 “너는 예정되어 있지 않아서 방주에 들어 올 수 없다.” 라고 하며 방주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120년동안 노아가 기다리고 의를 전파하며 전도한 것은(벧후2:5)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노아를 결국 바보로, 곧 오래참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을 바보 하나님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극단적인 사상인 것이다.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노아가 아직 보지 못한 홍수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두려움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 역시 방주에 들어가도록 예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믿어지므로 방주를 예비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1장 7절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이 “이중 예정으로 인해서”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고 ‘믿음으로’으로이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오로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세상일에만 마음이 다 빼앗겨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다음과 같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하였다는 것을 보면 이는 예정되지 않아서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일에 마음을 다 빼앗겨 스스로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한 창세기에 기록된 소돔성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아도 그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아서 불로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 것만 추구하다가 죄악과 함께 멸망을 당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고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누가복음 17 : 28 – 29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며 그의 자비하심은 그의 모든 피조물 위에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그들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구원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4.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모순이다.

칼빈주의의 제 1강령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은 인간이 전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그 이상의 것임을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에서의 전적타락은 "전적무능력"을 포함하며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이킬만한 의지나 능력도 없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곧 칼빈주의의 그 유명한 이중 예정론으로 연결이 된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나, 하나님께로 회개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존재로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하신다. 죄를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신다. 사람이 복음을 믿고 영접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다면

*누가복음 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5:38~40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등의 성경말씀을 그들은 일관성있게 해석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전적타락이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한 증거는 유아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무능력으로 인해 정죄받지 않는다는 말씀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신 1:39, 롬 5:13; 4:15; 삼하 12:23; 롬 5:14,15).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동기를 보고 죄책을 판단하시는 공의 하나님이시다(출21:28-29). 따라서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주장대로“전적타락”의 교리가 옳다면, 즉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지까지 자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무능력하다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지옥에 보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한 사람도 지옥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주의 제1 강령부터 성경해석상 큰 모순을 초래한다. 칼빈주의자들의 극단성은 ‘죽음’을 인간의 인격의 기능까지 정지하는 것으로 보는데 있다. 그리하여 사람을 고장난 기계로 보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죽음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이지만 인격의 요소와 기능은 천국과 지옥에서까지 있는 것이다. 죽음이 고장난 기계와 같다면 지옥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를 심판하는 하나님은 바보 하나님이고 지옥의 형벌이 형벌이 되겠는가?

사람을 고장난 기계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과 생명을 택하라고 설교하던 모세와 여호수아를 바보로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신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행동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선택은 의지를 행사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거듭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알리시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사실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바르게 행사하라는 요청인 것이다.(신30:19, 수24:15, 사1:16,20, 계22:17)

하나님께서는 무지 때에는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행 17:30).

극단적 칼빈주의 예정론이 옳다면,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무능력하다면 어떻게 그가 노력했더라도 결국에는 할 수 없었을 일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또 그 책임을 물으실 수 없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허물과 죄로 죽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동기에 책임이 있다. 이사야 45:19, 마23:37, 누가복음 17:1은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사 45:19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눅 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따라서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만약 어떤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 스스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 칼빈주의자들은 “어떻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그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며, 그가 노력했더라도 결국 할 수 없었을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종종 로마서 3장 11절을 인용하는데 그런데 거기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 찾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총각이 결혼하지 않은 것과 못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다(사 55:6). 그리고 또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찾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 4:29, 렘29:13). 믿음이나(빌4:6)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약1:5)고 하셨다. 제자들은 믿음을 달라고 구했다(눅17:5). 믿음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고 구원은 선물이지만(엡2:8-9) 인간은 그 선물을 거절할 수 있고(성경에 많은 사례 有 ) 그리고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인간의 공로로 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사실 칼빈주의에서 이 첫번째 강령중에서 전적타락 니용은 당연히 수용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면 다른 강령들도 다 문제가 있게 된다.

 

5.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모든 복음 전파를 무가치하게 만든다. 전도자를 결과적으로 위선자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면 굳이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외치는 것이다. 극단 칼빈주의자들은 전도는 성도의 본분이기에 전도 한다고 한다. 이는 자신을 속이고 전도받는 사람을 속이는 ‘거짓과 위선의 죄’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부르실 때 사람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마4:19)고 약속하셨다. 즉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작정하신 것이다(고전2:7). 하나님은 전도를 기뻐하시는 일인데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전도가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죄를 범하는 일이나 다름없으니 선교와 전도를 소극적으로 하도록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전도자체를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범죄로 간주한 적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러나 논리상 그렇게 보아야 맞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초대교회가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한후 100년이 못되어 온 유대와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까지 복음이 편만히 전파된 대부흥을 맞은 것은 저희가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행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6.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고, 버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이 없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이 예정되어있다면 성경에 있는 모든 구원과 관련된 구절이 소용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누구든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은 디모데전서 2장 3,4과 에스겔 33장 11절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 9절과 같은 말씀을 바르게 그리고 시원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자리로 초청한 하나님의 초청장을 자기들이 임으로 제한시켰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러 성경에 입각한 논증을 종합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하신 자들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칼빈주의 제한 속죄론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크게 왜곡하는 중대한 과오이다. 미국의 교회 사학자 필립 샤프( Philip Schaff) 도, “제한된 속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結果로부터 原因을 推論한다.”고 지적한 뒤에, “그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 요한일서 2장 2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베드로후서 3장 9절 등의 성경 말씀에 대하여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술을 밝혔다. 요한일서 2장 2절을 보면 분명 중생하여 구원받은 우리만 위할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은 죽으셨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성경은 다른 성경을 갖고 있는가?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게 된 까닭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개념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3차원적인 인간의 시간과 공간개념으로 분석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을 도입하여, ‘원인-결과’라는 인간적 논증 도식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2장 3,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되어 있으며, 또 에스겔 33장 11절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는 말씀이 있고,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말씀도 이중 예정론자들은 해석할 길이 없다. 여기에서 만일 ‘아무도’ 를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라고 본다면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다 회개할 수 밖에 없는데 당연한 사실을 왜 말씀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고 ‘아무도’ 가 모든 인류를 뜻한다면 이중 예정론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중예정론의 치명적인 문제는 구원의 능력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는 유리하나, 멸망의 책임도 결국 하나님이 지셔야만 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받으라 하셨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7. 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의 모순중에 자연인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성경은 수없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중예정론은 만약 내가 지금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이 나를 재수없게(왜냐하면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무조건적이니까) 만약 구원받지 못하는 유기쪽으로 정해 놓으셨다면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인가? 못 받은 것인가?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님 정말 죽어봐야 아는가? 이렇게 평신도들은 여전히 미궁에 빠지기 쉽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사람이 살면서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는지, 유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칼빈은 선택 받은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선택 받았는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가?

하나님은 마지막 때 모든 사람을 불러 생명책에 기록된 행위대로 심판을 하신다.

만약 구원에 예정되어 있다면 굳이 행위대로 심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같은 종교 개혁자이지만 루터는 구원의 절대조건을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죄인들의 신앙”이다. 루터는 여기에서 칼빈과 갈라진다. 루터는 웨슬레의 견해와 비슷한것이다. “예정에 관한 교리는 루터 신학의 중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을 십자가에 의한 구원에 관련시키지 않는다면 예정론에 있어서 선택되었는지 혹은 안되었는지 하는 문제는 사람의 심령을 괴롭힐 뿐이기 때문이다. 죄에 의한 고통과 십자가나 죽음의 비애를 경험하지 않고 예정 문제에 부닥친다면 하나님을 도리어 원망하고 두려워하게 된다고 루터는 생각하였다.”

 

8.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어 이 세상의 모든 악도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자행되었다는 모순이 생긴다.

칼빈은 유기(遺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그 정당성을 강조했다. 칼빈에게 있어 유기는 개별적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적 작정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 불변한 계획에 의해 어떤 이를 멸망되도록 결정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기인된 것이다. 인간의 죄도 그것에 대한 예지도 유기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유기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즉 기뻐하시는 뜻 안에 있다고 했다. 칼빈의 예정론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것이 죄의 책임 문제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원인이라면, 죄의 창시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의도하셨다는 것은 인정했으나, 죄의 창시자라는 것은 부정했다. 칼빈은 유기의 원인을 긍극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으로 구별했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 궁극적 원인인 반면, 인간의 죄는 직접적 원인이다. 칼빈은 유기 행위의 직접적 원인을 하나님으로부터 제거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인간에게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의 창시자가 되지 않고, 어떻게 작정에 의해 인간의 미래를 결정했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비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고백했다. 칼빈의 고백처럼 인간은 한계가 많은 연약한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말씀 자체를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극단적인 예정론자들의 타락전 예정설(Suralap-sarianism)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죄와 인간의 타락도 예정하셨다는 말이 되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해받게 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다.

지옥갈 사람의 責任이 結果的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다. 그런 논리와 思考라면 가룟유다는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 인간이 罪 때문에 인간이 地獄에 간다면 그 責任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있다. 칼빈이 잘못 적용한 하나님의 주권은 결국 그의 후계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목적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용하기로 (창조전에) 예정하셨다는 타락전 예정설까지 등장시켜,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죄의 창시자로 오해시킨 것은 중대한 신학적인 과오이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이론대로라면 결국 사람들은 그 모든 죄를 하나님의 계획대로 지은 것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죄의 근원이라는 주장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 위험성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중 예정론은 큰 문제가 있다. 성경을 읽어보면 이들의 범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이들의 범죄에 대해서 극도로 분해하신다. 그리고 돌이키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범죄를 보시고 음란한 죄라고 회개하라고 하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이시다라고 하셨다. 다윗의 범죄만을 보더라도 삼하 12:7-10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다윗이 무시하고, 어겼다고 말씀하신다. 즉, 다윗이 행한 범죄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롬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에게는 결코 불의가 있을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일부러 악한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이중예정론은 결과적으로 복음을 믿지 않고 지옥갈 죄인을 생산하는 죄악을 만드는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셨다.

*약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세상의 악한 일은 인간의 악한 본성과 마귀의 유혹과 시험으로 말미암는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영적인 전쟁 차원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도리어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행2:23, 갈6:7~10, 렘6:19, 마12:36, 약2:12,13, 계22:12) 불의한 이 세상에서도 선택에 필요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선천적인 정신박아나 판단력이 없는 어린 아이 등 선택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법에 의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결과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는가?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당위성을 크게 훼손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다.(전12:14, 마25:31~47, 행17:30,31)

이러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딤전2:4)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베푸시는 은혜를 거역하지 말고, 의지를 바르게 행사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을 행함에 의한 자력구원을 시도하는 극단이나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로 온다고 말하면서 믿는 행위자체를 자력구원 시도라고 보는 것은 모순중의 모순이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친구의 우정어린 선물을 받는 것을 사람의 공로나 행위로 본다면 바보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찌 자력구원의 시도로 볼 수 있는 것인가?

 

 

9.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gistable Grace)는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는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죄인을 강제로 이끄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은 무엇에 홀린 듯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한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느 9:16-17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아담과 이브는 선택받아 온갖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고, 출애굽 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구약시대 내내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신을 섬기다가 수 없이 심판 받았고, 선지자와 메시야를 거부하고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유대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다는 것은 포도원 비유와 혼인잔치 비유에 나온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의 본심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모든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다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는가에 대해 극단적인 이중예정론으로는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없다.

*계 2:21~23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스 7: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내 맘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freewill)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조정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으셨고 하나님께서 만든 자연만물에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인격체이다. 하나님은 노아홍수전 사람들의 악행을 회개치 않음을 보시고 한탄하셨다.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리고 믿었던 사울이 배신하자 사울을 왕 삼었던 것을 후회하셨다.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눅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성경에“하나님을 거스른다(레26:40). 성령을 훼방한다(막3:29). 또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5:19)”"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여,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그대로 행하는도다"(행7:51). 는 말씀은 잘못 기록된 것인가? 극단적인 칼빈론자들의 성경은 다른 성경인가? 의구심이들 정도이다. 택한 백성은 끝내 돌아왔는가? 그렇지 않다. 끝내 돌아오지 않은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대다수이고 선택받은 가룟유다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와 구원받지 못함의 궁극적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또는 선택하심을) 못 받았기에 구원을 못 받는 것이라면, 그 인간의 멸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죄를 범치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10. 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는 결국 성경을 고쳐야 하는 모순을 낳는다

*롬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나님은 복음을 믿고 영생을 얻은 자는 축복으로 갚으시고 복음을 거절하고 악을 행한 자는 저주로 갚아 주신다. 구원이 창세전에 예정되었다면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는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칼빈의 극단적인 예정론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순에 빠져버린다. 또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길을 예정된 대로 당연히 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난다.(겔33:11, 벧후3:9, 약1:13, 요일1:5)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그들의 자유의지까지 하나님이 조종하여 구원받도록 하신다는 것인데 반대로 구원받지 못하는 자는 조종을 받지 못했기에 믿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결국 구원받지 않은 책임은 하나님께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구원받기로 절대 예정된 자는 자유의지까지 조정되었는데 여호와를 찾고 믿음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그리고 믿음과 천국을 구하라(마6:33)고 하신다.

*슥 8:21-22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이중 예정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성경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논리데로 성경 해석을 바로 할 수 없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네가 만일(‘만일’이라는 말을 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는 절대 불가항력적으로, 즉 결국은 자동으로 믿게 된다)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창세전에 택정 받은 자)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창세전에 택정 받은 자)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이중 예정론자들은 이 말씀을 성경에서 삭제해야 한다)를 위하심이라”(요일2:2)

“누구든지(창세전에 택정 받은 자)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만일(‘만일’이라는 말을 빼야한다. 왜냐하면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는 절대 불가항력적으로, 즉 자동으로 믿게 된다)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택함받은 자는 절대 흔들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들은 삭제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택함받은 자)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1:23)

“누구든지(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

누구든지(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벧전2: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만)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누구든지(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에스겔 33장 11절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이런 하나님이 어떻게 어떤 자들은 창세전부터 유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성경 구절은 이중 예정론자들은 해석할 방법이 없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에게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14:6)

여러분은 수정한 성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수정하지 않은 성경을 택하겠는가?

 

  이중 예정론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니까 스스로 신본주의라 자처하고 이중예정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인본주의자라 생각하고 함부로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상 성경말씀을 믿는 것보다 칼빈을 더 신봉하는 지나친 칼빈주의자들이 바로 인본주의자나 다름없다. 개혁주의자들이 쉽게 빠지는 모순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개혁주의 신학자들 예컨대 칼빈의 교리와 성경해석의 관점이 아니면 이상하게 보는 즉 말로는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행동으로는 성경의 하인(下人)에 불과한 신학으로 돌아가는 딱한 경우를 어럽지 않게 보는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성경시대는 어거스틴이나 칼빈도 요한 웨슬레나 칼 바트같은 신학자들이 아직 없던 시대였어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받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거대한 예정론을 칼빈의 오대강령인 “TULIP” 으로 다 담으려는 것은 마치 다 큰 청년이 유아용 옷을 입으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웨슬레의 예정론 관점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변증하고 구원받은 교회에는 칼빈의 온화한 예정론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master

2021.06.01 05:14:14
*.16.128.27

예정론에 대해선 보내주신 파일처럼 양 진영 사이에 앞으로도 끝없는 논쟁이 이어질 것입니다. 제 의견은, 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쉽게 이해시켜보려는 의도에 따라,  "알기 쉬운 예정론" 사이트에 간단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보내주신 반증에 대한 일부 변증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http://whyjesusonly.com/book/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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