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4:18이 행위구원을 뜻하는지요?
[질문]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8) 이 구절을 행위구원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맥적으로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그들 주장대로 거룩한 사람들 의인 즉, 성도도 간신히 구원받는다는 말인가요?
[답변]
먼저 신약성경 특별히 사도들의 서신서를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를 아셔야 합니다. 모든 서신서들이 일차적으로 이미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저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내용이 신자가 된 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적성숙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주님이 맡긴 소명을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또 그런 측면에서 당시 초대교회가 당면하고 있던 교회 안팎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침도 함께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신약성경을 해석할 때는 본문이 구원(칭의, 중생)에 관한 가르침인지 성화에 관한 지침인지부터 분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관해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로마서1-8장(6장-8장도 실은 성화이지만)과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의 초반 정도입니다. 구원에 관해 논의 하려면 분명히 칭의를 가르치는 그런 구절에 기준해야 합니다. 나머지 구절로 구원을 논하는 것은 논의의 기준 자체를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베드로 전후서는 성화 중에서도 당시 로마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는 신자를 위로 격려하며 승리할 수 있는 지침이 그 주제입니다. 믿은 후에도 잘못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의도는 저자 베드로에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단순히 상기 한 구절만으로 자기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성경해석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 뜻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왜곡시키는 죄이기도 합니다.
상기 구절이 속한 전후 문맥부터 살펴보십시오. 바로 앞의 4:12-16에선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을 이겨내라고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고난이 격심하여서 견뎌내려면 아주 힘들기 때문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행이라는 하나님의 합격기준에 간신히 들어서 구원 얻거나, 아슬아슬하게 모자라서 구원 얻지 못한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면 그런 연단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성령님이 부어주십니다. 설령 순교당하는 지경에 이르러도 스데반의 경우에서 보듯이 성령님이 함께 하여서 그 고통을 없게 해주거나 최소한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인간이 일정한도 이상의 고통을 받으면 기절하든지 아니면 그런 인식과 감각이 없어지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신자더러 살인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15절) 그런 것은 불신자가 행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신자가 받아야 할 연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말씀으로 행위구원은 본문 안에서도 부인된 것입니다. 신자가 그런 일로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선행과 악행으로 나눠서 일일이 선행은 하나님에게서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 것이, 즉 고난이 악행의 형벌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받고 있는 여러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너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구원을 증거 하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형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게 그분을 거역대적하고 있는 세상 사람이 주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겪는 핍박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인데 세상과 사람은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으므로 너희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탁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위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겨우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 반드시 견디기 힘든 심한 핍박을 겪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이 서신을 저작하게 된 동기대로 마지막 19절에서 그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 비록 심한 핍박 가운데 있지만 결코 실망하지 말고 도리어 선행도 행하면서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면 핍박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문맥 전체의 주제부터 “구원의 근거가 믿음이냐 행위냐”를 따지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인용하신 구절도 당연히 행위구원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6/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