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선천적 장애아를 태어나게 하셨는가?

 

성경해석의 두 가지 명제

 

성경해석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두 가지 명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반드시 앞뒤 문맥의 주제와 의미의 흐름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해석한 결과를 하나님의 속성에 비추어서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성경을 볼 때 한두 구절씩 따로 떼서 해석하는데 이는 절대적으로 배제해야 할 너무나 큰 잘못입니다. 성경은 도덕적 종교적 계명을 한 구절씩 정리해서 모아놓은 책이 아닙니다. 유일한 예외로 구약의 잠언과 신약의 야고보서를 들 수 있지만 그 둘마저도 자세히 보면 특정한 주제들이 있고 주제별로 진술을 모아 놓았습니다. 각각의 그 주제들도 책 전체의 한 가지 주제를 지향하며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성경에는 전기, 역사, 시가, 이야기, 비유, 예화, 교리, 대화, 토론, 논문, 묵시 같은 온갖 문학적인 장르가 다 동원되어 있습니다. 그럼 성경해석도 문학적 장르를 해석하는 통상적인 방식대로 따라야 합니다. 쉬운 예로 시가는 숨겨진 상징적 의미를 찾아야 하며 역사는 상징보다는 진술된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구절을 해석할 때는 그 본문이 속한 문단의 범위부터 정한 후에 문학적으로 어떤 장르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문맥의 스토리 전개를 파악한 후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서 저자가 강조하려는 주제와 의도에 합당한 해석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한두 구절만 따로 떼어내어서 문자적 의미만 찾으면 정작 성경저자가 말하려는 의미와는 전혀 엉뚱한 해석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성경은 또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이며 이 땅을, 특별히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관한 당신의 절대적 진리를 인간의 언어를 빌려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어떤 구절이든 성경을 해석한 결과가 하나님의 완전하며 거룩한 속성에 모순 상충된다면 일단 그 해석은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다시 정밀히 재점검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분은 영원토록 결점 하나 없이 완전히 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행하시든 선하지 않은 법이 없습니다. 그분은 그 어떤 추하고 악한 것과도 절대 공존하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구절을 해석한 결과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악한 행위를 했기에 불공평, 불완전, 나아가 악한 분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 해석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그런 해석이 끝까지 옳다고 여겨지면 구태여 그런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넘어서 악한 것 같다고 지레 짐작하고는 교회 출석도 중지하는 신자를 종종 봅니다. 성경을 자신이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지 않고 성경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옳고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끝까지 착각 오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결국 본인과 하나님은 아무 관계가 맺어지지 않고 그에 따른 모든 부정적인 결과도 본인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선천성 장애인이 너무나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단명하니까 그런 장애인을 태어나게 한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부모의 그 안타까운 생각은 충분히 이해해줄 만합니다. 자기들로선 아무 잘못도 없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런 비참한 형편에 빠트리게 하는 하나님이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을 넘어서 불완전하거나 악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 드러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당사자들의 고통을 우리는 감히 이해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오해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경 해석의 두 가지 오류 때문입니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 드는 성경구절들이 과연 그런 뜻인지 잘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장애인을 태중에서 만드셨는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1:5)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세밀하게 간섭하셨다는 뜻이므로 선천적 장애자도 하나님이 출생 전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구별해서 세우기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알았고, 성별했고, 선지자로 세웠을 뿐입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육체적인 어떤 외모와 체격을 조성해주었다는 의미는 본문에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육체적인 모습은 양쪽 부모는 물론 오랜 선조들의 DNA 체계에 따라 유전학적으로 정해질 뿐입니다. 이는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하나님의 수동적인 묵인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계시를 받자 자기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모른다고 즉, 선지자 직분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두렵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할 것이며 전할 말도 입에 두겠다고 위로 격려했습니다.(6-10절) 일반신자에게 확대 해석 적용하더라도 하나님이 각 신자가 맡아야할 당신의 일을 미리 계획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4:11)

 

하나님이 입 외에 다른 신체 기관도 만들었다고 말씀하셨기에 선천적 장애인을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앞선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과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동족을 구원해내라는 소명을 주자 모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대답했습니다.(10절) 모세도 예레미야처럼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이 안 되므로 그 사명을 감당하기 두렵다고 극구 사양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도 똑같이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12절)

 

상기 11절은 모세의 첫 반응과 하나님의 위로 사이에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말을 잘 못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전할 말을 심어줄 테니까 안심하라고 하면서 그 안심할 수 있는 근거로 당신께서 인생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신다는 뜻으로 부연 설명한 것입니다. 이 한절만 따로 떼어내어서 선천적 장애인을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입과 귀와 눈을 지었다고 말씀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앞에서 모세가 말에 둔다하고 했고 둘째는 애굽 사람들이 모세가 실현할 여러 이적들을 보고도 믿지 않고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풀어주라고 명해도 듣지도 않고 여러 재앙을 보고도 거역하겠지만 당신께서 그 모든 일을 주관하므로 반드시 출애굽 시킬 것이라는 뜻을 인간의 입 귀 눈을 주관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모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해서 실제로 말을 잘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정에서 왕자로 사십 년간을 지냈습니다. 고대의 왕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무술과 웅변술입니다. 전쟁을 잘 치러야 하고 부하와 백성들을 호령하여 잘 통솔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성경이 실제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2)

 

그런데도 그가 혀가 뻣뻣하다고 한 까닭은 알다시피 그는 인생 전반 40년을 바로의 궁정에서 애굽 왕자로, 중반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지냈습니다. 출애굽 소명을 받은 80세 때에 그에게 능통한 언어는 애굽과 미디안 말이었습니다. 젓을 뗄 때까지 생모에게서 자랐으니 그 때에 히브리어를 배웠겠지만(출2:6-10) 초보적인 수준이고 그마저 그 후에 거의 쓸 기회가 없어서 많이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거기다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는 성격이 아주 급해서(출2;11-14, 민20:10-13) 말을 조금 더듬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모세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대변인으로 붙여준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세는 민족적인 정체성은 물론 모국어를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원대한 계획에 따라서 그를 80년간이나 외롭게 지내게 만들고 혀(히브리말)마저 둔하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는 출애굽 때에는 바로와 맞상대해야 하고, 출애굽 후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여행해야 합니다. 그를 미리부터 전반 40년간 애굽 궁정의 모든 법규 관습 등에, 중반 40년은 광야의 기후 풍토 지리 등에 전문가로 준비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위해서 당신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모세는 물론 애굽과 미디안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주관하셨습니다. 상기 출4:11의 말씀은 그런 의미로 모세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혀와 귀와 눈을 당신께서 만드신다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은 모세를 선지자로 미리 구별해서 그 사명을 수행하기에 합당하도록 모든 준비를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의미이지 선천적 장애인을 미리부터 만드셨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해석상의 오류는 서두에서 설명 드린 대로 책의 주제, 문맥의 의미, 저자의 의도, 당시의 역사적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두 구절만 따로 떼어서 단순히 문자적 의미만 찾는 것은 성경해석에서 절대 금기사항입니다.

 

예수님이 드러낼 영광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1-3)

 

나면서 맹인 즉, 선천적 장애인이 태어난 원인을 예수님은 본인과 부모의 죄가 아니고 그를 고쳐줌으로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합니다. 본인과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랜 선조들까지 올라가는 DNA 체계에 따른 유전적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1:26,27)

 

성경은 동성애자들은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이미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알다시피 AIDS가 동성애자들에게서 많이 발병됩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한 때에 AIDS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문란한 성생활에는 성병 외에 온갖 신체적 질병이 따르고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많은 피해가 생깁니다. 성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것을 어기는 자들에 대한 형벌을 창조의 섭리 가운데 이미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고대의 우상숭배는 신전에서 난잡한 섹스파티로 끝나며 성전에는 창기와 남창과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그 일을 봉사할 사제로 항상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가나안 땅을 발굴했더니 어린아이들의 시신에 성병으로 인한 불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근친상간을 하면 정신적 육체적 불구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각종 공해나 환경 홀몬은 물론이고 정신적 피폐함이 육체 즉 유전자에 미치는 악영향은 대단할 것이며 그런 폐해가 오랜 세대에 걸쳐 누적되면 어떤 결과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꿔 말해 선천적 장애인이 태어나는 것은 인간 죄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천적 장애인을 만들지도 않았고 계획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면서 맹인을 고쳐주는 과정을 잘 살펴보십시오. 먼저 그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3절) 앞으로 당신께서 행하는 일 즉, 눈을 뜨게 해주는 일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합니다.(5절) 빛을 만드신 분 즉,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빛은 어둠을 없애야 생기고 빛이 생겨야 어둠이 없어집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 빛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첫째 목적이 혼돈과 흑암 속에 있던 물질계에 어둠을 없애고 인류에게 광명한 빛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당신의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서 맹인의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심으로써 빛을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에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던(창2;7) 인간에게만 고유했던 창조 방식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골1:15) 상징적 행동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나면서 맹인 되는 것이 당신의 창조 경륜에 없었던 일이라고 시청각교육을 시킨 셈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사람들은 지금과 똑같이 선천적 장애인의 비참한 처지에 관해 하나님에 대해 원망 내지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래서 대체 왜 그런지 물었는데 그에 대한 주님이 대답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본인과 부모의 직접적인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럼 인간의 오랜 죄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당신께서 그런 선천적 장애인을 고쳐줌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병 주고 약 주는 하나님?

 

그럼 몇 가지 반발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면서 맹인을 고쳐준 경우도 병부터 주고 나서 뒤늦게 약을 주면 뭐하느냐고 따집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병을 주고 약을 주는 목적은 하나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서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고 한 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광대하신 분이 굳이 당신의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을 믿도록 강제적인 힘을 발휘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그렇게 부정적인 목적 음모 기만에 동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최초 인간 아담부터 자유의지를 부여해서 자발적으로 기꺼이 당신을 따르게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병을 주고 약을 주는 식으로 인간을 갖고 노는 분이라면 믿음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습니다. 병 주고 약을 주는 것은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인간에게 겁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굿을 하면 병이 나을 때도 있지만 다시 더 큰 병을 도지게 해서 더 큰 굿을 하도록 하여 자기 노예로 묶어 버립니다. 점술이나 굿에 빠진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병 주고 약주는 분이라는 해석 내지 생각이 들면 맨 서두에 말씀드린 성경해석의 두 번째 명제대로 일단 잘못된 해석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믿지 않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에 맡겨두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모습을 성경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하며 그 결과는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것은 맞지만 두 가지 방식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처음부터 계획해서 능동적으로 주관하는 경우와, 인간이 자유의지로 맘껏 행하도록 묵인하시지만 그 배후에서 당신의 인류에 대한 궁극적인 계획대로 이끌어가는 수동적인 경우입니다. 인류 역사는 사실상 후자의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그렇게 해도 광대하시고 완전하신 분이라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뤄나가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본 주제와 연결시키면 하나님이 빛을 비롯해서 인간을 심히 기뻐하는 즉, 불구가 없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능동적인 통치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과 잘못 때문에 나면서 맹인이 생기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쳐주신 것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후자도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에 속하므로 신자라면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면서 맹인이 된 것이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잘못도 아니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고쳐주심으로써 너희의 오해를 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미리 막아주지 않느냐?

 

마지막으로 그렇다 해도 장애인이 되는 것을 미리 막아주었어야 하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참으로 무리한 요구이자 너무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그럼 아담이 타락하는 것부터 막아주었어야 하고 그 전에 선악과 금령부터 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따지는 셈입니다. 지금도 신자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일일이 막아주었어야만 한다는 요구가 됩니다. 결국 인간을 기계나 짐승처럼 만들었어야만 했다는 뜻입니다.

 

본 주제와 연결해서 조금 더 실감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태어나고 보니 북한이거나 무슬림 국가이므로 하나님 왜 나를 이런 곳에 태어나게 했느냐 왜 미리 막아주지 않았느냐고 탓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너무나 이상한 병들이 많아서 예컨대 가와사끼 병이나 간암을 안고 태어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당사자와 부모가 느끼는 고통을 일일이 수치로 비교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직접 당사자에겐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통인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천성 장애인은 그래도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기라도 하지만 인큐베이터 안에만 있다가 죽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도 미처 받아보지 못하고 바깥세상이 어떤지 구경도 못하고 너무나 억울하게 죽는 것입니다.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에는 아주 특이한 병원이 하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혹은 유년기에 걸린 암 같은 특수한 아동질병만 취급하는데 전액 무료로 치료해줍니다. 또 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려고 엄청난 규모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운영경비를 기부금으로만 조달 충당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제 사이트에 소개했는데 아래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감히 짐작컨대 하나님이 선천적 장애인을 태어나게끔 묵인하신 가장 중요한 뜻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그 병원은 어쨌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했던 것을 대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선 부모더러도 예수님의 역활을 대신하여 평생을 그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은 당연히 들겠지만 그러나 그분의 책임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인간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더 이상 원망하지 말고 그분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참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 죄악의 산물이라도 한 생명을 하나님이 너무 귀하게 여기니까 너희도 특별힌 신자는 더더욱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자인 우리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천적 장애인이었습니다. 육체적 장애인보다 더 증세가 심각하고 영원한 멸망만 기다리는 영적 시체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당신께서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주고 아무런 값없이 영생의 선물까지 주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이 삼 년간의 공사역 동안에 중점적으로 행하신 일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마11:6) 일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어떻게 선천적 장애인을 태어나게끔 주도했겠습니까? 이율배반적인 야누스의 하나님일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바로 이어서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상으로는 옥중에 있는 요한의 메시아 사역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주는 말씀입니다만, 선천적 장애인을 태어나게 하는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선천적 장애인을 볼 때마다 인류 역사 내내 쌓였던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하고 많았으며 그 부작용과 폐해도 얼마나 심각하고 많은 지부터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작금의 코비나 사태도 사실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환경을 파괴한 결과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벌로 주었거나 막아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펜데믹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해서 실행하면 인류에게 큰 유익이 되며 하나님도 합력해서 선으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지 않고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이 인류 역사는 물론 개인의 일생을 주관하는 유일한 뜻입니다.

 

누구나 장애인을 바라볼 때에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그런 자들이 나도록 묵인하신 뜻입니다. 모두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죄악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장애인 본인이나 그 부모 형제의 아픔을 비록 완전히 공감하지 못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동참해서 위로 격려해주라는 것입니다.

 

그 당사자에게도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너무 낙심되어서 힘들 때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끝까지 참으라거나 힘든 데도 믿음이 강한 것처럼 가장하라는 뜻도 전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선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선천적인 장애인에게 하늘의 보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왜 나에게, 왜 우리 가정에 이런 비참한 일을 허락하셨는지 평생토록 구체적으로 모르고 지날 수 있겠지만 죽어서 천국에 가면 모든 사정을 명백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그러기 위해서라도 당사자들도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6/19/2021)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병원

http://whyjesusonly.com/index.php?mid=gallery&page=2&document_srl=27127


날마다순종

2021.06.19 18: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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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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