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느끼는 감정과 성령님의 관계는?

 

[질문]

 

신자 안에 내주하는 성령님이 가지는 감정이 신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요? 혹은 신자가 영적으로 회복하여 성령님과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인가요? 예컨대 특정한 일에 기쁜 감정을 느꼈을 때에 성령님이 갖는 감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본인의 독립된 감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함께 잘 분별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주제를 질문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인지라 신자에게 초자연적 능력으로 조정 강요하거나 기계적인 틀로 제한 구속하지 않고 신자의 자발적이고도 기꺼운 동의가 있어야만 역사하신다는 원리는 신자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인격적인 분이기에 성령님에게도 분명히 감정도 있을 텐데 그분의 감정이 신자와 어떤 상호관계를 맺고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거듭난 신자에게 내주하는 성령님이 신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오직 그분만의 신적인 신비와 권능에 속하므로 구체적인 과정은 확정적으로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주제와 연관되는 말씀들이 있기에 성경이 뜻하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추정은 가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역할에 관해서 가르치면서 신자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6,27)

 

우선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 당신의 평안이 신자에게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땅에 계시지 않아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위급한 상황이나 큰 고난이 닥쳐도 신자가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이 한 죄인에게 임하여 행하시는 사역 때문에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8-14)

 

쉽게 간략히 줄이면 성령은 한 죄인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탄에게 승리하고 구원을 주신 천국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고전12:3)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난 신자는 그 후로 평생토록 예수님의 구원 은혜 안에 거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신자를 끊어낼 존재는 세상에 하나도 없으며 더 이상 정죄함도 없습니다.(롬8:1&39)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평안 가운데 있기에 즉, 그 바뀐 신분과 권세로 인해서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그래서 자기 서신서들의 서두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3)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변경은 물론 결코 취소될 수 없는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는 신자라면 세상 사람과 죄악과 사탄의 세력들은 물론 어떤 고난 앞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혹 뜨겁게 찬양하거나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슴 가득히 감정적인 절정을 맛볼 수 있으나 성령이 신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가장 먼저 일으켜 주시는 감정은 평안입니다.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님은 평안 외에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9-11)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종교적 계명이 아닙니다. 예수님부터 아버지 계명을 지킬 때에 성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뜻으로 공사역 중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니까 홀로 두지 아니하고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기쁨을 누린 것 같이 신자들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서로 사랑할 때에 주님의 기쁨이 신자 내면에 성령을 통해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이런 말씀들로 인해 성령님이 신자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맥락이 잡혔습니다. 신자는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회상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할 때에, 특별히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길 때에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리고 그런 평안과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초자연적으로 신령하고 격정적인 감정을 맛보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평안과 기쁨은 금방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크고 강한 평안과 기쁨이 아니면 시들해집니다. 심지어 그렇게 금방 없어진 후에는 거꾸로 불안과 염려마저 몰려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쾌락을 얻으려는 탐욕만 더 늘어나게 만듭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쉽게 줄어들지도 않으며 은은하게 전 인격체에 가득 채워집니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방해 받지 않으며 지속되기에 신자의 삶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계속해서 주님의 일에 더 헌신하면서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리고 싶다는 소망과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이 생기게 해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신자의 평안과 기쁨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가 전해지도록 해줍니다. 본인 혼자만 잠시 좋다가 마는 세상의 기쁨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바울 사도가 성령의 열매를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온유 같은 것들은 전부 내면의 마음상태로 당연히 감정도 포함합니다. 그 모두가 순간적이고 격정적인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지속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나아가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합니다. 원어의 뜻은 금하는 율법규정이 없다는 뜻이지만 확대적용하면 성령이 주시는 열매인지라 인간의 통제력과 무관하게 성령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신자의 가슴에서 샘솟듯이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없거나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방식과 원리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면 성령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 기쁨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겨서 고통스러운 것은 성령님과 아무 관계없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상적 활동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일 뿐입니다.

 

반면에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거나, 기도로 주님과의 교통이 실제로 느껴지거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거나,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명에 충성하거나, 예상치 못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 자기인생에 생기거나 등등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감사와 경외 등이 성령이 주시는 감정입니다. 또 그 반대로 예수님이 병자, 죄인, 과부, 귀신들린 자, 창녀를 긍휼이 여겼고, 나아가 죽은 친구 나사로 무덤 앞에서 통분해 했듯이 죄에 묶여서 신음하는 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과 같이 애통해하고 긍휼해 하는 심정이 들어도 성령님이 주시는 감정입니다.

 

요컨대 성령님은 신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게 만들도록 인도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만약 신자가 주님의 일에 충성하지 않거나, 주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지 않던지, 평소에 주님과의 영적 교제에 등한히 하면 성령님은 신자에게 정서적으로 우울하고 영적으로 침체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일어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결론을 맺자면 신자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분 뜻대로 살아갈 때에만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신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 각각의 상황과 사건에 맞게끔 성령이 주시는 감정이 생깁니다. 신자의 그런 충성된 모습을 보고 성령님이 느끼는 감정이 신자에게 이입된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가 그러지 못하고 있으면 성령님이 대신 탄식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현재 관계를 잘 따져보면 사실상 성령님이 주시거나 혹은 영향을 받은 감정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도 있습니다.

 

(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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