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내적 증거(1)

조회 수 4501 추천 수 291 2008.09.19 02: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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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내적 증거(1)


성경의 신뢰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입증해주는 외적 증거는 많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성경을 부인해보려고 고고학 발굴을 하면 할수록 더 성경의 진리 됨이 밝혀진다. 지금껏 이교도들의 온갖 포악한 말살 정책에도 성경은 살아남았고 특별히 사해사본의 보존과 발견 같은 사건에선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외부 자료는 성경이 고대에 기록된 책들 중에 원전(原典)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는 것과 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그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까지는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  

실제로 성경이 고대에 인간이 기록한 하나의 책일 뿐이라고 믿는 자는 평생 가도 하나님 말씀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그분의 말씀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인간으로선 하나님 당신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데 그분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제는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결국 이는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또 사람마다 이미 성경에 대한 입장을 사전에 정해놓은 상태가 대부분인지라 굳이 입증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문제는 사실상 성경 내용이 각자가 기왕에 갖고 있는 믿음과 제대로 부합하는지를 사후에 판단하는 일로 제한되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 자체의 증거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이미 믿음을 가진 신자들에게는 더 강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또 성경에 대해 호기심이 있거나 부정적 시각을 가진 불신자들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서 성경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편집회의를 하지 않았다.  

성경의 직접 저자는 물론 인간이다. 그것도 1600 여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약 40 명의 인물이 기록한 책들을 모은 것이다. 그들의 직업과 신분은 왕, 의사, 농부, 세리, 어부, 율법사, 제사장, 선지자, 등등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저자들의 지식적, 도덕적, 종교적, 영적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 66권의 책들이 한 결 같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속했던 시대와 장소들이 다 달랐기에 그들은 한 번도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말하자면 편집회의를 소집해서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지 의논한 적이 아예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한 가지 주제로 글이 써졌다면 인간 밖의 제삼의 능력이 개입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성경은 인간들의 믿음 혹은 선입관이나 편견과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 진리 됨을 선언하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 통일된 주제는 무엇인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에 관한 것이다. 어떤 책이든 첫 시작과 끝을 보면 대체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로 시작해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28:21)으로 마친다. 우연찮게도 정말 성경의 내용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목적은 모든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5-20)

만물을 창조하신 이도 예수님이요, 그 창조의 목적도 예수님이요, 피조물의 운행과 충만도 오직 예수님에 의한다고 한다. 당연히 하나님은 만물이 예수를 통해 당신과 화목 되기를 기뻐한다. 성경의 처음과 끝이 말하는바 그대로다.

이처럼 한 마디로 성경은 예수에 관한 책이다.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책이 아니라, 그분이 당신의 독생자를 통해 당신만이 베푸실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모든 인간에게 나눠주는 책이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꼭 오셔야 했던 이유를 밝힌 책이라고 한다면, 신약성경은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과 인간에게 미친 결과를 적은 책이다.

성경 저자 40 여명 중에 3/4이 넘는 자가 예수님 오시기 전의 사람이다. 멀리는 예수님 오시기 약 1500년 전부터 짧게는 약 400년 전에 살았다.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었고 어떤 모습의 메시야가 오리라고 예측, 아니 상상도 못했던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라는  이름만 몰랐지 그분의 오심에 대해 세밀하게 예언을 했고 또 그 오심의 의미에 관해 정확하게 기록했다. 도저히 인간이 지어낸, 아니 그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가지 주제로 통일된 것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마저 전부 동일했기에 더 특이하다.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각 저자별 개인적인 특성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알기 쉽게 말해 구약에선,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는 표현으로 시작해서 실제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형식을 취했다. 신약성경의 예수님도 “내가 믿는 것을 따라 믿으라, 내가 가르치는 것을 배워서 훈련하라”고 하지 않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전적 권능 하에 당신을 하나님과 동격화 시켰다.

이처럼 동일 주제를 동일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만약 성경 66권의  저자가 한 사람이거나 최소한 동일 시대와 장소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입증해내지 못하는 한에는, 성경의 실제적인 저자는 그 40여명의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시대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오히려 그 전부를 아우르며 그들 모두더러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끔 만드신 분이 저자다. 그렇다면 그 저자는 바로 하나님이며, 예수님 또한 그분이 보내신 독생자 구세주임에 틀림없지 않는가?  

예언의 성취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경에는 예수님과 인류 역사에 관한 예언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것은 어김없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과 인류 종말에 관한 2백 개가 넘는 예언들이 아직도 성취를 기다리며 남아 있다. 그 예언들이 하나님의 계시로 인간에게 실제 전해진 시점은 성경이 기록된 년대보다 훨씬 앞선다. 심지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는 예언처럼 최초 인간이 살았던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다.

예수님의 초림에 관해선 그분의 동정녀 탄생,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 베들레헴에서 출생, 헤롯의 영아 살해, 애굽으로 피신, 유다의 배반,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 등 중요 사건들뿐만 아니라 아주 세밀하게 예언된 부분까지 다 달성되었다. 대표적 예로 예수님 오시기 천 년 전의 사람인 다윗이 기록한 이 시편을 보라.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4-18) 누가 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예언의 성취를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돌릴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구약의 예언 8개만 예수님 당대에 성취될 확률은 10경(京-영이 17개 붙은 숫자) 분(分)의 일이다. 실감나게 설명하면 10경개의 동전으로는 미국의 텍사스만한 주를 완전히 뒤덮고도 남는다. 따라서 10경분의 1의 확률이란 그렇게 깔린 동전 중에 색깔이 다른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무작위로 집어 올렸을 때에 그 동전이 집어졌다는 의미다. 예수님에 관해 명확히 인정할 수 있는 중요 예언으로 48 개가 성취되었는데 이는 영이 157개가 붙은 숫자 분의 일의 확률이다. 다시 실감나게 비유하자면 토네이도가 폐차장을 지나가면서 순간적으로 부품을 모아 자동차 한 대를 완전하게 조립해낼 수 있는 확률이다.” (The Bible Embracing God's Truth by Max Anders 1995)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선 아예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실제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도 우주여행에 적용하는 확률로 영이 12개 붙은 숫자를 넘어가면 아예 발생가능성의 오류에서 제외한다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인간의 창조를 생각해보라. 생명을 갖고서 스스로 지정의적 활동을 하는 인간의 신체는 단순히 철강과 플라스틱 같은 물질로 만든 기계에 불과한 자동차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며 고차원적이다. 창조주 하나님 없이 우연에 우연만 겹쳐 물질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그 말은 사실상 철강이 자동차를 거쳐서 스스로 지정의를 갖추고 생명까지 만들어 냈다는 뜻과 같다. 창조보다 진화를 믿으려면 오히려 더 큰 믿음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자동차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셨다. 토네이도가 폐차장을 지나면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 과연 영이 몇 개가 붙은 확률인가? 인간적 수학으로는 도무지 계산, 아니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나 인간의 신분이 고귀한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어떤 과학자가 말한 대로 몇 천원 치 밖에 안 되는 물질 덩어리지만, 그분 안에 있는 신자의 신분과 특권을 따지면 천하보다 더 귀한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나아가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은 수학적 계산으론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지 않는가? 또 죄악에 빠져 당신을 저주하며 원수가 되어 있던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을 도대체 인간의 확률로 따질 수 있는가 없는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 이해, 상상도 안 되는 예수님의 구속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내적 증거를 따지는 것 자체도 그분의 십자가 앞에선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그 은혜를 새삼스레 더 깊이 깨달아 오직 그분께만 감사와 경배를 돌리는 데에 조금 보탬을 줄 수 있을지언정 말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저작된 책

어떻게 40여명의 인간 저자가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할 수 있었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하나님의 감동(inspiration)으로 써졌다고 한다. 인간 저자가 자기 임의로 저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것이다.

감동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의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당신의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창2:7) 것 같이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저작되었기에 살아 있는 당신의 말씀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그분과 교통할 수 있듯이, 성경도 저자들이 성령의 간섭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    

그 영감의 의미로 우선 선생님은 구술하고 학생은 단지 받아쓰듯이 저자의 정신 활동이 중지된 채 기계적으로 받아 쓴 것을 들 수 있다. 저자의 영적 체험이나 개성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인간은 단순히 녹음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윗의 시편을 보거나, 복음서를 예수님의 직접제자들로, 복음의 의미를 밝힌 서신서를 바울로 하여금 특별히 기록케 한 의미만 보아도 틀렸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단순히 저자들의 정신적, 영적 활동을 고취시켜 인간 저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작하게 했다는 간접적 영감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셈이 되며 나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되지 않기에 성경의 기록과도 상치 된다.  

하나님은 저자의 개인적 성격, 학식, 체험, 문체 등을 고려하여 그 모든 특성은 살려둔 채 당신의 뜻하는 바를 온전히 계시해 주셨다. 그렇다고 저자에게 당신의 음성을 직접 들려주신 것은 아니다. 저자로 항상 성령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해서 죄의 영향은 전혀 미치지 않도록 하고 심지어 단어 하나하나까지 축자적(逐字的)으로 떠오르게 하셨다. 저자의 지정의가 생생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 주권 하에서 그 모든 저작 과정을 유기적으로 주관하셨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 저자의 자의적 창작 능력 간에 단 한 치의 상충 없이 당신의 뜻대로 완벽하게 기록토록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지 궁금하다면 한 번 목사가 되어 설교를 준비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 지식을 전하기 위해 성경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좋은 말들을 추출해 짜깁기 하듯이 설교를 준비한다면 하나님의 감동은 전혀 작동할 수 없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복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받기를 소원하면 그분으로부터 들리는, 즉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미세하게 들리는 말씀이 있다. 당연히 설교의 주제와 전체 맥락을, 심지어 단어 하나, 예화까지도 정확하게 생각나게 해 주신다. 막상 설교 단상에서도 그전까지 준비하지 않은 것이나, 더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는 말씀들을 입술에 담아 주신다. 물론 설교자의 개성과 스타일은 그대로 놔두고서 말이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영감이 미치는 범위는 절대로 단순히 사상의 맥만 잡아 주거나, 성경의 일부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66 권 전부가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영감 되어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경의 첫 구절과 끝 구절이 성경 전체 주제와 일관되듯이 말이다.

신약서신서의 상당 부분을 저작한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영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했는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0-12) 하나님께로 온 영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그대로 성경으로 기록케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마련하신 인간 구속의 경륜을 당신이 택한 저자들로 당신의 영감을 불어넣어서 기록케 한 성경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말로 디모데처럼 성경을 제대로 알면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딤후3:15) 해준다. 신자의 믿음과 행위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성경은 절대적으로 신빙성이 있으며 인간이 자의적으로 접근 해석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그런데 불신자는 이런 성경의 내적 증거들에 대해서마저, 성경이 성경에 대해 스스로 증언한 것이라 믿지 못하겠다고 반발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간 저자들이 자신의 사상이나 지어낸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심에 대해서도 바울 사도는 미리 못을 박아 두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3-16)

한 마디로 하나님과 성경을 믿지 않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확실한 증거를 갖다 대어도 꿈쩍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나아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 자체도 그리스도께서 신자에게 심어주신 당신의 마음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믿음 자체가 그분에게서 온 선물이요, 은혜이다. 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자에게 성령의 감동이 임하여서 정말 그분께서 지금 바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을 들을 수 있다. 또 생명력 넘치는 그분의 권능과 은총을 실제 삶에 충만히 적용하며 누릴 수 있다.      

9/18/2008



운영자

2008.09.19 18:07:35
*.104.224.250

이글을 읽으신 분은
'거꾸로 읽는 성경" 사이트의 #157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도
함께 참조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김순희

2010.12.13 11:07:53
*.161.91.154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해 놓으신 말씀이 온 우주 만물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우리 한 사람을 위해
기록해 놓으신 울 하나님의 선물임을 가슴 터지게 감사합니다.
그 선물로 하나님의 맘을 알게 하시고 그 선물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주시고 또 그 선물로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권능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도록 허락하심이 너무도 놀아우신 섭리임을 이 시간
전율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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