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4-18)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 (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4-18)

 

동생을 더 높이는 형 

 

교회에 오래 출석했는데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신자들이 꽤 많습니다. 자기가 가진 믿음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일치하는지 자신이 없기에 남에게 간증할 내용이 딱히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그분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실제로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실을 본인이 모를 리 없으며, 또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도 굳이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간접적인 진술이긴 하지만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에 관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고 설명합니다. 바로 이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15절)는 세례 요한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1장의 기록에서 그 증언의 신뢰성에 관해서 추가로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세례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서 본서를 저작한 사도 요한은 그냥 요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외가 쪽 친척 형이라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고 유대 사회 랍비로도 먼저 활동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고 선포하면서 메시아가 곧 오심에 대비해 유대 백성들에게 그동안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듣고 찔림을 받아 많은 이들이 그에게로 나아오자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혹시 그가 메시아인지 알아보려 조사단을 보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고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메시아며 자기는 그의 신 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27절) 대답해주었습니다. 또다시 형이면서도 동생인 주님을 한껏 높이고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영적 우월성을 인정해주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에 그친다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 영적으로도 세례 요한보다 먼저 있을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는 헛소리이거나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비꼬려는 말장난에 불과해집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우선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서 마리아의 성령에 의한 예수 잉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눅1장) 그런데 그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31, 33절)라고 두 번이나 언급했으나,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으며, 더 정확하게는 그런 탄생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이전에는 잘 몰랐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그는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하나님을 뜻함)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33절b)고, 하나님이 이전에 자기에게 계시해주셨다고 증언합니다. 인간이 성령을 임의로 동원할 수 없으므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자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단강으로 나오시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면서(29절), 전에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이 예수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30절) 실제로 그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자 하나님이 이전에 이미 계시해준 대로 성령이 주님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32절)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직접 들었습니다.(마3:17)

 

지금껏 살펴본 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데 세례 요한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는 선지자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으로 마감하는데(말4장), 세례 요한이 구약성경을 마무리하는 바로 그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율법의 부족한 은혜

 

요한은 지금 세례 요한의 증거가 분명한 사실일진대,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이신 주 예수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7절)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옴으로써 은혜와 진리가 왔으며, 주님이 오지 않으셨다면 은혜와 진리는 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진리를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율법”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수여하신 율법이 은혜와 진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은 14절에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강조했고, 16절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다시 그런 뜻을 반복했습니다. 그럼 모세에게 주신 율법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진리이긴 하지만 그 충만함에서 조금 부족했다는, 즉 그리스도처럼 은혜 위에 은혜까지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그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8절)고 설명합니다. 앞의 16절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씀을 다시 강조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으나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모세로선 율법을 통해 부족하며 상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나타냈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본체이신지라 그 가르치신 진리와 베푸신 은혜는 당연히 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알다시피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후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수여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제사장 나라 언약을 맺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만 특별한 축복을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가 다 내게 속했다고 전제했는데, 이스라엘 외의 모든 족속이 비록 죄의 노예가 되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어도 당신께서 지으셨기에 여전히 사랑하시고 구원해주고 싶다는 뜻부터 가장 먼저 밝힌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명한 뜻도 다른 민족들에게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자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당신을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첫째가는 목적은 이방인들로 이스라엘을 통해 영적인 찔림을 받아 당신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거룩하고 신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방 족속들로 인간이라면 반드시 살아가야 할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저주받은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멸시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형식적으로 지키면서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현실적으로 가장 풍요케 해주어야 한다고 떼만 썼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실현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대신에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했으나 오히려 현실 형통을 보장하는 이방 나라의 우상들을 쫓기 바빴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당신의 인내 한계를 넘어서자 하나님은 그들이 열심히 추종하던 이방 강대국에 의해 비참하게 멸망 당하게 하는 심판을 내렸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이스라엘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분명히 드러났으나 정작 그들의 탐욕과 교만 때문에 그분의 영광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의 실패는 인류 전체에 대해 하나님이 소망했던 바가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할 것도 다 아시고, 정확히 말해 그마저도 당신의 인류 구원 계획에 들어있었기에, 장차 모세 같은 선지자가 와서 구원해줄 것이라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제사장 나라로 서기 전에 이미 예언해 놓았습니다.(신18:18,19) 

 

결국 모세의 율법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베풀 충만한 은혜와 진리로 이끌어서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더 확실하게 보게 해주려는 예비 조치였던 것입니다. 또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더러 예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알게 해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모세의 1,500여 년 후 사탄의 노예가 되어 죄 중에 절망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해주려고 하나님 그분이 스스로 인간으로 낮춰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신이 어떤 분이며 인류에 관해 어떤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지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완전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사실은 구약성경에 다 계시해 놓았으나 잘못 해석 적용했던 이스라엘에게 주님이 직접 진리를 가르치고 삶으로 그 진리 됨을 온전히 증명해주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직접 실현하신 은혜와 진리가 부족할 리는 없습니다. 

 

우선 율법에 드러난 진리부터 온전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모세의 십계명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에 관해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고 그 진리의 의미를 정확히 풀어주었습니다. 모세 율법으로는 행동으로 범하는 간음만 금하고 있으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까지 간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쁜 여자를 보고 스쳐 지나가는 야릇한 생각까지 문제 삼은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보려고 궁리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마음으로 간음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모세의 이혼증서에 관해서도 아무렇게나 적당한 구실만 붙여서 아내를 내쫓고선 새 아내를 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금하면서 아내가 음행했을 때만 적용해야 한다고 명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이 마음으로 간음하다 못해 그렇게 음욕을 품은 여자를 취하려고 이혼증서를 남발했던 죄를 엄중하게 야단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 간음한 자는 지옥을 가게 되니까 차라리 그 눈을 파내 버리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말씀까지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만큼 마음으로 짓는 죄도 정말로 심각하게 간주해야 하며 나아가 그런 죄가 사람을 더 추악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성인 남자에게 눈이 붙어 있는 한 예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간음에 관한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저촉되지 않는 의인이 있다고 쳐도 율법의 다른 규정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불신자들에게 전도해보면, 저도 예수 믿기 전에 그랬지만, 십계명을 잘 지키니까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칩니다. 그 계명대로 부모님 효도 잘하고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신자들마저 형제를 바보라고 욕함으로써 말로서 인격적인 살인을 예사로 행한다고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생각으로 간음했다는 가르침도 이웃의 예쁜 아내를 탐낸 것이므로 마지막 열 번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위반한 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큰소리처럼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는 얼마든지 의로울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형통 부요한 이웃에게 시기 질투 느끼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가장 가까운 친척인 사촌이 논을 사면 축하해주어야 마땅한데도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생겼겠습니까?

 

산상수훈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의미를 정확히 따져본 자라면 그렇게 살고는 싶지만, 도무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또 살지 못했다고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상수훈은 신자가,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면 지향해야 할 인간다운 삶에 관한 교훈이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이 처한 영적 실상은 그와 정반대로 절망적 죽음에 처해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실상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에 율법으로는 죄에 대한 정죄만 있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을 시작할 때부터 심령이 가난한 자라야 천국이 임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마5:3)

 

예수님은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구원의 가망이 전혀 없다고 정죄한 이방인, 세리, 창녀, 귀신 들린 자, 불구자 등을 오히려 더 큰 사랑으로 교제하며 하나님 사랑의 품 안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윤리적으로 사형에 처해 마땅한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도 그 자리에서 용서해주었고, 남편이 다섯 있었고 여전히 젊은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도 당신의 메시아 됨을 알게 해서 천국으로 인도했고, 부정하다고 아예 상종도 않는 문둥병자의 얼굴에 직접 손을 대고 치료해주었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죄의 삯인 죽음의 형벌을 이기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해주었습니다. 

 

유일하게 당신을 대놓고 대적하며 비난 멸시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한 자만 야단쳤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에는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원수마저도 저들이 자기 죄를 알지 못하니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인간사회 윤리로는 이스라엘의 대적이자 최고의 악인인 헤롯과 빌라도마저, 비록 그들이 외면하긴 했어도, 당신의 긍휼을 베풀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최고로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데도 한마디 항변 변명하지 않고서 십자가에서 묵묵히 우리의 죗값을 대신 다 짊어지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죄악의 덩어리가 되어서 속에서 나오는 것이 죄뿐이기 때문입니다. 말로서 하늘의 윤리를 아무리 잘 가르쳐도 그 생각과 말은 물론 행동조차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외면한 인간은 결코 진정으로 의로워질 수 없으므로 그 사랑부터 먼저 온전히 보여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선언한 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니까 그분의 원수이자 죄인 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담 이후의 인간이 원죄 하에 태어났어도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께서 만드신 자연과 공짜로 베푸는 일반은총을 통해 핑계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계시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을 택하여서 그들의 역사에 개입하여 온갖 기적으로 은혜를 베풀었고 율법을 통해 진리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택한 백성도 오직 현실적인 형통 즉, 돈만을 주인으로 삼고 싶어서 당신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그런 배역 무도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당신께선 여전히 인간과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하고 싶다는 뜻을 당신의 죽음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선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특정한 자격 조건 능력이 없어도 되니까, 즉 아무런 요구 사항이 없으니까 제발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만 알아달라고 당신의 생명까지 걸면서 처절하게 호소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절규로 인류 앞에 제시된 온전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어폐가 있지만 죄 중에 있는 인간에겐 최후의 소망일 수밖에 없는데 그 사랑마저 외면하면 남은 것은 당연히 심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망은 결코 심판이 아니라 거룩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만 가면 구원의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참 인간으로서 참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성령의 거부할 수 없는 권능 

 

결국 요한이 말하는 예수님이 충만하게 보여준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생생하게 보고서 주님의 은혜와 진리에 충만해져야만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대의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예수님을 직접 뵙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은혜가 성경 속에 글자로 표현된 객관적 진리로만 남아 있어선 안 됩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제자들이 두려움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주님은 곧바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그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베드로를 포함한 일백 이십여 명의 신자들을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죄악뿐인 타락한 인간인지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하므로 그 존재 전체 새롭게 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가르치신 까닭입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이후로 예수님 대신에 마지막 날까지 이 땅에 남아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택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게 하는 구원의 역사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기와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일단은 제게 그랬던 것처럼 대체로 현실적 고난이나 큰 재앙을 겪게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인도합니다. 그런 절실 궁핍한 자들에게 필요하다면 기도에 응답하여 고난에서 건져주는 큰 복을 주시거나, 신유의 기적이나 신령한 은혜 체험과 심지어 직통 계시 등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런 극적인 체험 없이 오랜 기간의 성경 공부를 통해 예수님과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점점 깊이 알아가게 해주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한 죄 중에 빠져서 구원의 소망이 없이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해서 아무 자격이 없다고 통곡하며 절망하고 있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서 용서해주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그 신자들을 극렬히 핍박하는 원수였음에도 주님이 사랑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주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던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예수 십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시면 인간은 그 권능에 완전히 압도당합니다. 초자연적 경험이나 감정적 절정을 맛본다는 단순한 뜻은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예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다는 진리만은 절대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중생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분의 십자가 사랑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너무나 무가치 무능력 무지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너무나 추하고 비참한 실상을 생전 처음으로 발견하게 함으로써 영적 절망에 빠트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통곡하게 이끌어서 그 시선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돌리게 해줍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적으로 극적이고 신령한 체험이 없어도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만 온다는 믿음을 확실히 심어주십니다. 은혜란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예수님이 당신의 대속 죽음으로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이며, 진리란 예수님의 그 사랑만이 인생의 유일한 소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절대로 주인으로 모시기는커녕 인정도 하지 못하지만, 그 반대로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면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주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믿음은 아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과 그 십자가 진리를 성경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앎이 성경 안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그럼 현실적으로 조금만 괴로워도 그저 불안해지고 조금만 죄를 지어도 혹시 심판받지 않나 염려됩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요한의 말을 빌리자면 성령이 새롭게 열어주신 자신의 영적 안목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실제로 본 것입니다. 어떤 상대라도 그 삶을 지켜봄으로써 그의 정직한 성품이나 의로운 인격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자연히 믿어지고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알기 전에는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믿는다는 표현은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것과 완전히 믿어지게 된 것 둘 다를 의미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면 믿음이라는 행동의 주체가 신자 자신이 되지만, 구원에선 성령의 역사로만 그런 확신이 생기니까 믿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믿어지는 것은 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그분을 알게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분명히 당신을 보게 되고 또 당신께서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전혀 의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부모로서 평생토록 나의 편이라면 세상 부모도 그러할진대, 그것도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까지 주신 분이 그렇다면 더 이상 어떤 큰 고난에도 염려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면 정말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진리와 은혜가 나에게도 체험적으로 충만해지길 간절히 소원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 같은 선지자가 메시아로 온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자 출애굽 후 광야 방황 때의 만나와 생수의 기적을 떠올리고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인자인 당신께서 너희에게 주리니 당신을 믿으라고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었습니다.(요6:26,27) 예수님을 믿으려는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현실의 풍요와 안일뿐이라면 십자가 예수님을 만날 수도,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십자가의 영광을 본 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나와 내 인생 전체를 당신의 거룩한 손으로 붙들어주고 계신다는 사실에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우리는 연약하여 때때로 죄를 짓거나 그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분의 사랑을 순간적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님이 우리를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다시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진리 하나만은 평생을 두고 부인하지 않게 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넘어서 정확히 알고 있다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계획은 아담 때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원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은혜로 택하여 율법의 진리를 삶에서 실현케 해서 모든 족속 앞에 제사장 나라로 세우려는 그 뜻은 신약 신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실제로 본 자는, 즉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성령의 권능에 압도되어서 반드시 이전과 전혀 다른 거룩한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영광을 비취게 합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예수님이 천국 보좌에서 그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고 잘못된 것 아닙니까? 

 

(5/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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